바람과 구름과 비 2 -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원작소설!
이병주 지음 / 그림같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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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2)

 

이런 대하소설, 결코 서두르지 않고 깊은 물을 이루며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서서히 흘러간다, 이제 전 10권중 두 번째 책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느긋하게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면접한다 생각하면서, 읽어보자.

 

또 다른 여인, 박숙녀

 

장소와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했는데, 조선조 말기 최천중 말고 또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1권에 여인들은 거의 다 등장했나 싶었는데 저자는 또 한명의 여인을 배치해두었다. 박숙녀!

최천중이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여인.

 

얼굴만 살펴보자.

 

그 여인의 얼굴을 청묘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 모습에 배꽃의 정취를 느꼈기 때문이다. (164)

 

조금만 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장들 음미해보자.

 

황봉련의 아름다움이 요염하고, 왕씨 부인의 아름다움이 우아하고,

정씨녀의 아름다움이 단려하다, 이 박씨낭의 아름다움은 청묘하다고밖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청묘한 여인이 하얀 배꽃을 꺾어 황혼의 노을 속에서 우수를 달래고 있는 풍정.    

 

미장부, 연치성

 

또 하나, 2권을 달구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치성.

최천중의 꿈을 이루는데 각각 한 몫을 담당하게 되는 인물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데, 2권에서는 바로 이 미남자가 등장하여 여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문무를 겸비한 것만 해도 걸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청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여 몇몇 처녀들이 상사병으로 드러눕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하여간, 연치성, 최천중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최천중의 뜻을 이루어가게 된다. 이런 대화는 그래서 연치성이 최천중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떻게 지리와 인물에 밝으십니까' 라는 연치성의 물음에 최천중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이 산천의 의미를 알려고 뜻을 세웠다. 억울하게 죽은 인물들의 한을 샅샅이 내 가슴 속에 새겨 넣을 원을 세웠다. 나는 그들 원혼들의 염력(念力)을 빌려 내 힘으로 하고, 이 강산에 보람의 꽃을 피울 작정이다. (90)

 

최천중을 이해하기 위하여

 

최천중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다른 인물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조, 그를 난세의 간웅이라고 하지만 영웅치고 간웅 아닌 사람이 있었겠나. 미천한 출신으로 천하를 잡으려면 간(奸), 교(巧)도 출중해야 하는 법이여. 유독 조조만을 간웅이라고 한 것은 나관중의 취향이 만들어 놓은 일야.> (288)

 

그의 생사관

 

生者以生爲樂(생자이생위락)인데 安知死不又死爲樂(안지사불우사위락)이리오. (18)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다는 그것으로 낙을 삼는데, 죽은 자는 또한 죽음으로 낙을 삼을지 모르는 일이다.

 

북강 양길의 문집, 홍북강시문집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다.

이 글에 대하여 최천중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덧붙인다.

 

<최천중은 과연 그럴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死者)가 죽음을 낙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자세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맹수를 가지고 있다. (275)

 

우리 주변에 사람 같은 놈 그다지 흔치 않다. 인면(人面)을 쓴 채 돼지일 수밖에 없는 놈,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놈, 독사 같은 놈이 우굴우굴하지 않은가. 그놈들을 말살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부득불 우리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279)

 

스승인 산수도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연치성에게 들려주며, 최천중은 연치성에게 다짐한다.

 

<나는 내 속의 맹수를 죽이지 않으려고 한다. 조정의 고관들과 관속들이 호랑이처럼 이리떼처럼 백성들을 노략하고 있는 판국에, 순하게만 곱게만 살아갈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 그의 뜻, 응원하고 싶다.

 

이런 시, 한 수 외우고 싶다.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    

 

술에 취한 님 비단 옷을 잡으니

그 손에 따라 찢어질까 두려워

한 벌의 나삼을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은정이 끊어질까 두렵사외다 (177)

 

매창의 시다.

저자 이병주 선생이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한시들, 경전들, 그밖의 시문(詩文)들을 별도로 음미해 보고 싶다. 해서 그의 책속에 인용되는 한시들을 모아 하나의 별권부록으로 만들어보면 어떨지!

 

하나 더!

 

인생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무슨 일을 하기엔 너무나 짧다.’ (289) 는 말은 내가 2권에서 꼽은 글 중의 글이다.

 

이번 읽는 것으로 이 책을 세 번째 읽는다.

그전 읽을 때에는 줄거리에 재미를 붙여서 줄거리 따라 읽느라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세 번째 읽으면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그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다른 각도로 보자면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고전에 대한 그의 신선한 해석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그의 소설 면면에 묻어나는 새로운 고전 해석을 읽게 되는 기쁨도 맛보게 되니, 그의 소설을 읽을 때에 느끼는 기쁨은 그래서 일석 삼사조가 된다 할 것이다.

 

장차 어느 출판사에서 그의 책에 녹아있는 그러한 것들을 뽑아내어 <이병주의 고전 해석집>이란 제목으로 출판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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