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퉁이 집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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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와 역사와 로맨스가 이 한 권에 다 담겨있다. 오색의 다양한 물감의 결이 느껴지는 표지 속에 한 여인의 옆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오색의 빛깔은 꽃이 되고 나뭇잎이 된다. 그 모퉁이 집에서 일어난 80년의 이야기가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의 시선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와 현재 그리고 15년 전을 오고 간다. 시간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그들은 또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들 사이에는 꽃이 있다. 그리고 꽃을 통해 서로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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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현지 마을에서 하나 꽃집을 경영하는 동우. 용남 부부는 세 자녀가 있다. 큰 딸인 마디와 쌍둥이 마린과 마룬. 마디는 아쟁 연주가다. 얼마 전 큰 사고로 손을 다쳐서 한동안 아쟁을 잡지 못했다. 지금은 회복하는 중이다. 마을의 모퉁이 집이 한 채 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저주받은 집이라 불리던 집에 두 남자가 이사를 온다. 마디네 하나 꽃집에서 매일같이 절화 꽃다발을 주문하는 터라, 알바로 바쁜 마린을 대신해 집으로 돌아온 마디가 모퉁이 집 배달을 맡았다. 사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마디는 그 집을 이끌렸다. 집 안에 커다란 정원이 있는 것일까? 가득 꽃내음이 뿜어져 나온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보던 중, 주인을 마주한다. 첫인상부터 날카롭기만 한 그 남자 모도유. 처음 보는 마디에게 생채기 나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왠지 마디는 도유가 무섭거나 어렵지 않다. 그가 차갑게 대해도 말이다. 모퉁이 집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성서휘는 도유와 반대로 무척 자상하다. 덕분에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친해진다.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진주 경찰서 정보관인 정아서. 왕 할머니라 부르는 증조할머니와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은 후부터 집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도 얼굴의 상처만큼 진하게 남은 상처 때문에, 옆집인 마디의 집은 오고 가지만 본가에는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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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시 80년 전으로 건너간다. 동아염직소 사장인 고윤송은 경무부 부국장 등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차에 뛰어든 한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강은조였다. 도와달라는 그녀의 말에 은조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윤송. 은조는 그날 술자리에서 아쟁을 연주한 예인이었다. 은조에게서 나는 창포향 때문일까? 그날 이후 은조는 윤송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은조에게 마음이 있는 윤송은 어떻게든 은조와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하지만, 은조는 이미 뱃속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윤송은 은조의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양 소문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윤송의 집에서 일하는 여자아이인 옥이의 도움을 받는 은조. 윤송이 집을 비운 사이, 은조는 몰래 집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곳에는 일본 경찰 다카키가 있었다. 과연 은조와 다카키는 무슨 사이일까? 이 둘은 왜 몰래 만난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비밀 얘기를 옥이 듣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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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등장하는 해눈이라는 존재와 천년도 그리고 꽃과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 등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식물의 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은 책 속 인물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은 대를 이어가며 등장한다. 잠깐의 기다림도 지루한데, 15년을 기다리고, 100년을 기다릴 수 있다며 마음을 쓴 이야기가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설렘을 만들어 낸다. 책의 초반에 **으로 처리된 그 이름을 마주하게 되자, 퍼즐이 하나 둘 맞추어진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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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끔찍한 시기를 지나며 스러져 간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은조와 구헌의 사랑 마디풀과 도유의 우정, 그리고 은조와 마디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가진 해눈의 이야기는 물이 땅에 스미듯 조금씩 풀어져 가며 또 다른 여운을 남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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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 : 서양미술 편 - 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
KBS <예썰의 전당> 제작팀 지음, 양정무.이차희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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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 중 제일 흥미로운 것은 일명 비하인드 스토리라 불리는 뒷이야기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어려웠던 이유가 늘 딱딱하고 훌륭하기만 한 위인들의 성장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은 위인들의 실수담이나 뒷이야기를 곁들여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만난 후 한결 편안하게 위인전과 교과서를 마주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 아닐까? 음악이나 미술 등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 분야들의 뒷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결 거리감이 덜어지는 것 같다. 특히 내게 미술이 그런 분야였다. 미술작품에 관심을 가진 큰 아이에게 나와 같은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시작한 매년 미술서적 읽기는 처음에 비해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긴 했지만, 미술관에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는 여전히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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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꾸준히 읽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각 시리즈의 저자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관련된 지역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와 녹여서 풀어낸다. 갑자기 이 시리즈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예썰의 전당 속에서 마주한 작가들 중 여러 명이 그 책의 단독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을 통해 만났지만, 잊힌 이야기뿐 아니라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예술과 인물의 삶을 조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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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를 예를 들자면, 가령 첫 번째 등장한 만능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서자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눈썹 없는 그림으로 유명한 모나리자의 작가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근데 작디작은(가로 53cm, 세로 79cm) 한 장의 그림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되었을까? 현재 이 그림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데, 과거 첫 순회 전시가 열렸을 때 워낙 많은 관람인원(170만 명)이 몰려서 관람시간을 20초로 제한했다고 한다. 왜 모나리자는 유명해진 것일까? 과거 모나리자가 도난 된 적이 있었는데, 도둑은 이탈리아인이었다. 문제는 그림이 잃어버린 지 24시간이 지나도록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데 있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고, 특히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던 루브르에서 도난되었기에 더 논란이 되었다. 2년 후 그림을 되찾긴 했지만, 워낙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지라 그 이후 모나리자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나리자가 과연 진품인 걸까? 모나리자라고 이름 붙여진 그림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작품 말고 또 있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다. 그에 대한 진실을 책을 통해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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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림이 익숙한 경우도 있다. 그중 한 명이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화가였다. 그는 특히 궁중 초상화를 많이 그린 화가인데, 피카소를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화가였다고 한다. 가톨릭의 3대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근방에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어서 성지를 순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산티아고 기사단이 조직되었는데, 당시 기사단이 되는 것은 상당히 영예로운 일이자 신분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유대인으로, 낮은 계급의 귀족 집안이었기에 기사단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꾸준히 궁정 초상화를 그렸기에 그 공으로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분 상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자들의 그림을 마치 재력가와 비등하게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궁중 난쟁이 곡예단 뿐 아니라 자신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를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파레하의 재능을 높이 산 벨라스케스는 파레하를 자유인으로 놓아주고 그가 화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이름 혹은 그림만 봐도 아! 하고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화가들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당대에도 성공 가도만을 달렸을 거란 착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기에 절망을 하기도 하고, 슬픔과 고통을 겪기도 했다. 상황이 어떻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기에 설령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어도, 현대에는 불세출의 화가로 인정받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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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을 통해 서양 예술 화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보니, 한결 그 인물을 이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너무 기대된다. 좀 더 가까이 예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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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ㅣ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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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벌어지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내가 있을 때 이룩해야 하고 내가 있을 때 끝장을 봐야만 한다.

다음 세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급하고, 해야 할 일만 많다.

하지만 정작 비중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은 몇 가지나 해결하는가.

야단법석과 부화뇌동, 우왕좌왕과 조변석개로 끝난다. 더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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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의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조조의 이야기다. 유비에 비해 악역을 도맡아 하는 조조는 정말 삼국지연의에 이야기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을까? 조조의 마지막을 기록한 삼국지연의의 부분을 보자면 정말 마지막까지 교만이 철철 흐른다. 죽어가는 마당에도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과 노래와 춤까지 곁들이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의 유언을 다르게 적고 있다. 장례가 끝나면 상복을 벗고, 병사를 통솔하는 자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고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행하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의 시신에 평상복을 입히고 다른 것은 묘에 넣지 말기를 당부한다. 삼국지 기행의 저자는 실제 역사와 삼국지연의 속 역사를 비교하며 실제 인물의 인물됨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조조라고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유비라고 실책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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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아꼈던 동작대와 업성의 이야기로 책의 포문을 여는 2권에는 삼국지의 중반을 넘어 위. 촉. 오 세 나라의 성립과 패망이 담겨있다. 특히 이 세 나라가 서로 견제와 동맹을 적절히 사용하며 서로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구축하는 장면들 속에 등장하는 지역들을 돌아보는데, 초판을 쓰며 저자가 다녔던 지역을 새롭게 소개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 없던 건물이나 새롭게 개장한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삼국지의 인기에 편승하여, 좀 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성곽이나 성벽을 복원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히려 보존되어야 할 문화재는 한쪽에 방치되어 있고, 다른 것만 크고 웅장하게 증축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 내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고 웅장한 부분만 보고 지나쳤겠지만, 삼국지 관련 책을 내고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꼼꼼히 비교하며 팩트를 판단할 줄 아는 저자의 눈에는 그런 부분들이 더 확연히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저자가 언급해 주었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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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뿐 아니라 각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각 진영의 인물들의 됨됨이나 상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삼국지를 마주했을 때 알았으면 하는 인문학적 소양도 함께 다룬다. 덕분에 여행서를 넘어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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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나 역시 삼국지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큰 부상을 입은 관우가 의사 화타의 치료를 받으며 바둑을 두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있던 지역인 형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뼈의 독을 긁어내는 수술(괄골요독)을 받은 관우는 신의라 불리는 화타의 집도를 받았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마량과 바둑을 두었다는 데 있다. 이 지역에는 현재 형주 병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정사에 의하면 관우는 화타의 치료를 받기 몇 년 전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것은 소설 속 관우에 대한 인내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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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장비와 관련된 유적지인 장강 삼협은 댐 공사로 인해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장비 사당 또한 그 지역에 있어서 소실될 뻔했지만 댐 완공 전 상류 쪽으로 옮겨서 복원해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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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 조조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는지라, 조조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하나 둘 발굴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보도된 지 10년째지만 여전히 발굴 중이라는 조조의 고릉은 과연 언제쯤이면 마주할 수 있을까? 저자의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내게도 느껴져서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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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견 있는 저자 덕분에 더 풍부하고 정확한 삼국지 기행을 했던 시간이었다.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완독한 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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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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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의 두 번째 권은 땅속의 용이 울 때다. 첫 번째 권인 별의 지도는 얼핏 유추가 가능했지만, 땅속의 용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내심 난해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 아닐까 우려했는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싶다. 땅속의 용을 한자로 하면 지룡(地龍)이다. 지룡이 과연 누구일까? 사실 이 생물이 이렇게 불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른 이름으로는 토룡(土龍), 구인(蚯蚓)이라고도 부른단다. 힌트는 지룡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환형동물이다. 혹시 눈치챘는가? 지룡은 바로 지렁이를 의미한다. 혹시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지렁이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이 첫 장부터 빵빵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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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지렁이가 뭐길래 찰스 다윈도, 이어령 교수도 지렁이를 생각하며 연구하고 책을 쓴 것일까? 나 역시 비 오는 날 길을 따라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참 많이도 봤다. 어찌 보면 생태계의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지렁이 때문에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지렁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약해 보이고, 가장 약하기만 한 지렁이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간다. 흙을 먹고 분해하고 배변하고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흙 속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때론 흙 밖으로 나와서 나뭇잎을 먹고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서 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그 식물을 먹고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간다. 지렁이가 묵묵히 살아낸 그 시간이 지금의 우리까지 살게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렁이는 약하지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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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담긴 이야기가 펼쳐지며 또 다른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0대 당시 마주한 노부부와 자동차 이야기를 비롯하여 아리랑과 한자세대 그리고 한글세대의 이야기, 일본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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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작년에 별세하기 전인 88세까지 60여 년간 글을 쓴 이어령 교수는 자신을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10년을 단위로 늘 새로운 글과 생각들을 펼쳐놓은 저자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놀랐고, 조금만 나이 들어도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소위 꼰대가 되는 사람이 많은 시대 속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이의 마인드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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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채집을 해서 먹고사는 수렵인들과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의 우리들에 대한 비교 글도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당연히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수렵인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보다 더 고달프고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왠지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저자의 견해는 달랐다. 물론 저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타인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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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 채집인은 인근의 식량 자원이 고갈되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납니다.

우리에게는 고되게 보이는 이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소풍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이 '게으른 여행자'가 도착한 새로운 지역은 식량을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제공해 주었겠죠.

게다가 이들의 인구는 자연이 마련해놓은 훌륭한 창고의 혜택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적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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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사느냐에 따라 삶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글쎄... 덮어놓고 그들이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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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의 책을 통해 만난 저자 이어령 교수의 글에는 다양한 감정선이 담겨있다. 유머도, 채찍도, 감동도, 그리고 묵직한 눈물도 담겨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 한국인 시리즈는 총 6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은 4권의 책 또한 이어령 교수만의 한국 문화 이야기가 어떻게 꼬불꼬불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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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ㅣ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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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이름이 주는 묵직한 맛이 있다. 집에 정사 삼국지(진수)도, 황석영 작가 번역의 소설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설)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표지 말고는 펼쳐보지 않았지만 말이다.(이게 바로 내 책이 되는 순간 언젠가 읽겠지...의 폐해다.) 그렇다고 삼국지의 내용을 1도 모르는 건 아니다. 10권짜리 전집은 아니어도, 두 권으로 축약한 책은 읽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삼국지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이문열 번역의 삼국지를 읽다가 2권 초반에 접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전집을 들일 때도 그래서 나름 고민하고 자문을 구한 다음에 구입했지만 읽지 않을 바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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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이라는 제목을 마주한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3세기(정사 삼국지 기준)부터 이어져 온 위. 촉. 오 3국의 배경이 되는(또는 15세기- 삼국지연의 기준) 곳이 과연 현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또 하나는 삼국지 기행이 흥미롭다면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읽는 데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행이라면 두 권의 삼국지가 궁금해졌다. 내용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장소 속에서 벌어졌던 일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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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책은 2009년 동일 저자가 쓴 책의 증보판으로, 저자가 약속했던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 과거의 다녔던 지역 중 일부를 다시 다녀보고 책을 손봐서 다시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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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국지의 내용을 정확히 꿰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1.2권으로 나뉘어서 담긴 이야기가 각 권의 어떤 부분을 놓고 답사했는지를 쓸 수 없는 게 아쉽다. (제목과 내용을 보자면 유비와 관우, 장비의 만남부터 동탁의 정권을 잡고 적벽대전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다행이라면 저자가 각 장소를 다녀오면서 삼국지 속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내기 때문에 삼국지를 읽지 않았어도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두 책(정사 삼국지, 삼국지연의)을 대비하며 실제 역사와 다른 소설만의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코멘트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진짜 역사와 창작된 역사를 구별하며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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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다녀온 삼국지 속의 배경지를 언급하기에 앞서서 앞으로 갈 곳의 지도를 먼저 보여준다. 삼국지 속 어떤 부분의 내용인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실제 사진이 함께 담겨 있기에 읽는 맛보는 맛이 쏠쏠하다. 사실 상당히 오래된 역사인지라 과연 오랜 세월 동안 그 장소가 잘 보존되어 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책 속 내용을 마주하니 극과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 중 상당수는 파헤쳐 지고, 그냥 터만 남아 있거나 터 조차 없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오히려 찾아간 저자나 글로 마주한 내가 민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다른 장소는 관광객을 위해 과할 정도로 꾸며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삼국지가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기왕이면 차라리 후자처럼 보존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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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조조와 관련된 장소와 함께 삼국지연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서에 따라 황건적, 동탁, 여포, 원소 등과 관련이 깊은 장소가 등장했다. 우리도 유비와 조조에 대한 온도차가 상당한 것처럼, 중국인들 역시 그런가 보다. 상대적으로 조조와 관련된 장소(고향을 비롯하여)들의 경우 마을 사람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보존 상태도 아쉬움이 남으니 말이다. 또한 누구나 삼국지 하면 떠오르는 삼 형제의 도원결의가 실제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도원결의 장소는 관광객을 위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놓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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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2권에서는 삼국지의 어떤 장소가 등장할지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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