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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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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와 <동물농장>을 완독하지 않은채 조지 오웰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고 어불성설이지만, 읽지는 않아도 모두가 아는 소설을 썼으며 나 역시 읽지 않고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 그의 소설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조지 오웰의 이야기를 꺼낼 최소의 자격은 갖추지 않았나싶어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대표 소설 외에는 작가 '조지 오웰'을 만나볼 기회가 적었던 내게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 조지 오웰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썼던 에세이 가운데 29편을 뽑아 씌어진 순서대로 엮은 조지 오웰 에시이집으로, 소설과는 달리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기에 인간 조지 오웰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안 사실이지만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영국 식민지인 인도 행정국 관리인 아버지와 버마에서 자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교육열에 비록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이사와 대부분의 생활을 그곳에서 하게 된다. 그의 학창 시절을 보여주는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는 집을 떠나 세인트 시프리언스라는 유명 예비학교에 진학해 부유 자제들과 학교장 부부의 차별을 받으며 단체 생활을 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제목과는 달리 상처 받은 학창 시절을 써내려간 조지 오웰의 글을 보고 있으면 아마도 이 시기에 돈과 부에 대한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 가장 필수적인 것이 돈, 작위 가진 친척, 운동 실력, 재단사가 만든 옷, 단정히 다듬은 머리, 매력적인 미소인 세계에서 나는 변변찮은 존재였다.
 _ <정말, 정말 좋았지>, 427쪽"

어쨌거나 그는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명문 사립 웰링턴과 이튼의 장학생으로 선발된다(세인트 시프리언스에는 총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순수 귀족, 돈만 많은 재벌, 그리고 조지 오웰과 같이 공부를 잘해 학교의 명성을 높여줄 돈 없는 아이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장학금을 받으며 피터지게 공부해 명문 사립에 진학한다). 조지 오웰은 시프리언스를 다닐때와 달리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예비학교에서의 공부에 대한 시달림에서 지쳤기 때문인 것 같다. 학업에 열의를 잃은 그는 졸업을 하고 대학 대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하기로 한다.  하지만 제국의 식민 통치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 경찰직을 그만두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코끼리를 쏘다><교수형>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로 많은 괴로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부 버마의 몰멩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내가 중요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_ <코끼리를 쏘다>, 31쪽 

결국 경찰직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조지 오웰은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부모에게 선언한다. 그는 우선 자신이 흠모하던 작가였던 잭 런던의 논픽션 <심연의 사람들>의 궤적을 따라 빈민가에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이 에시이집의 가장 첫 에세이인 <스파이크>가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는 부랑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부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한 임시 숙소에서 끼니와 잠을 해결한다. 바깥 생활보다 못한 임시 숙소의 처절한 환경과 부랑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알력 다툼, 그리고 그 안에서 담배 몇 개비로 피어나는 우정은 이 단편에 잘 묘사되어 있고 후에 그의 첫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27장과 35장에 실렸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지 오웰(조지는 가장 흔한 영국 남자의 이름, 오웰은 마을 이름)이란 필명을 쓰시 시작한다. 

그 즈음 서점에서도 잠깐 일을 하게 되는데 <서점의 추억>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 대한 유형 분석이라든지, 단편보다 장편이 좋은 몇 가지 이유를 열거한 부분은 책을 좋아하는 내게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조지 오웰은 서점에서 일을 하면서 책이 싫어졌다고 말했는데 그건 손님들에게 책을 팔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매일같이 수백권의 책을 옮기고 책 먼지를 털다보니 책이 지겨워졌다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오래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서점에서 일을 한 뒤로 "가끔씩만 책을 사고, 그것도 읽고는 싶은데 빌려 볼 수 없는 것만을 산다_ <서점의 추억>, 50쪽 "고 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은 그의 나이 33세인 1936년, 스페인내전 참전으로 바뀌게 된다. 그때부터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작가로 거듭나는 데 그 이후로 그의 모든 대표작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동물농장>, <1984> 등이 쏟아진걸 보면 전쟁이 그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그는 말한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한다. _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보다>, 137쪽"

조지 오웰은 이후 스페인 소속 민병대원이라든지 독립노동당 가입이라든지를 통해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적인 정치 활동을 하며 집필에 몰두한다. 조지 오웰은 근본적으로 작가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직설적으로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것이나 주목을 이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_ <나는 왜 쓰는가>, 297쪽 "라고 밝힌다. 자신의 쓴 글들을 봤을 때도 맥락이 없거나 현란하기만 한 의미 없는 구절을 썼을 때는 어기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글이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작가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책을 썼을 때 대작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쓰다보니 조지 오웰의 생을 따라 이 에세이 집을 설명하게 되었는데, 그 외에도 조지 오웰의 독특한 생각이 담긴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쏟아지는 책에 쌓여 더 이상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라든지, 일반인도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밝힌 <과학이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를 공격한 톨스토이의 팜플렛 글들에 관한 조지 오웰의 시각을 말한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스위프트에 대한 흠모와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는 읽는 재미는 물론 참신한 시각까지 전해준다.

이 책을 다 읽고다니 그동안 완독에 5번이나 실패한 <1984>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알면 그의 작품이 친숙해지듯 <나는 왜 쓰는가>는 어렵고 두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조지 오웰의 책들에 다시 한번 손을 뻗칠 용기를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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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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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미술관에서처럼, 우리 두 사람 뿐, 세상엔 아무도 없었다. _ 43쪽 중에서

한 미술관 강연회장에서 열린 조그마한 파티.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그녀의 눈동자를 주시한채 천천히 걸어온다. 파티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그녀의 눈에는 그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손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 선 남자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세상엔 그와 그녀 달 둘 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이 한마디를 건넨 사람은 바로 그녀의 남편 회사 헬데겐 사에서 주최하는 상공인협회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베르톨트다. 베르톨트가 이런 도발적인 말을 건넨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네. 마리안네는 헬데겐 사를 경영하는 남편 막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들 권터, 그리고 남편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시아버지와 함께 '적어도 남들이 보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런 마리안네에게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한 남자의 도발적인 고백.  그녀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대로 따르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도발적이다. 늦어도 11월에는 읽고 말거라며 벼루던 한스 에리히 노삭의 소설 <11월에는 늦어도>의 시작은 지극히 통속적이며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발칙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의 고백에(사실 그는 사랑한단말을 건넨 것도, 함께 도망을 가자고 한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 마리안네는 그날 밤 집을 나와 그와 함께 열차에 몸을 싣고 다른 도시로 떠난다. 몇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과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을 버려둔 채.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고, 도덕적인 금기를 깨며 시작된 이들과 같은 사랑이라면 보통의 소설가들은 그 모든 희생과 고통을 덮어버릴만큼 행복한 결말을 그려준다.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만난 그녀는 새로운 행복을 만끽하며 오래도록 그와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마리안네의 행복은 불과 몇 시간만에 무참히 깨진다. 베르톨트와 함께 탄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리안네는 베르톨트가 당시 미술관에서 고백을 하던 그 남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작품을 써내야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베르톨트는 안정된 회사를 운영하는 재벌 막스와는 달랐다. 그는 작품이 올려지는 11월까지만 그녀에게 자신을 이해하고 기다려달라고 말하지만, 마리안네는 자신이 도움이 되어 줄 수도 없고 오히려 그에게 방해만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시아버지로 부터 온 편지를 받아든 마리안네는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가정을 떠나던 날 그녀의 짐 싸는 것을 도와준 것 처럼 베르톨트는 자신을 떠나가는 그녀의 짐 싸는 것을 다시 한번 도와준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안네의 입장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베르톨트에게 고백을 들을 이후 집을 떠나 열차에 오르기까지의 불과 몇 시간 동안 그녀의 머릿 속에서 몰아치는 광풍, 낯선 도시에서 베르톨트와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고통 받는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 시아버지의 회유 아닌 회유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막스와 베르톨트 사이에서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한채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모든 심리상태가 이 소설에서 고스란히 표현된다. 그 누군강의 강요가 아닌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만 내려진 결정이기에 마리안네는 누구를 원망할 수도, 남을 탓할 수도 없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상 속 사랑을 쫓는다.

마리안네의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합리화 할 수는 없지만 '행복'이라는 이유로는 설명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안네는 말했다. "사람들을 속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모두들 절 부러워하죠. 사람들은 내가 무척 행복한줄 알아요.(76쪽)" 남들이 보는 행복, 남에게 보이는 행복은 마리안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베르톨트에게 떠난 것도, 그 삶에서 만족 못하고 다시 막스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온 것도 모두 그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그녀의 인생 도박이었던 것이다.

베르톨트와 약속했던 11월,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자신과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다. 이전과는 달리 마리안네를 잡는 막스를 뿌리치고 그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베르톨트의 차에 오른다. 그리고 집에 홀로 남은 막스는 몇 시간 후 다리 난간에서 떨어져 강물로 빠져버린 두 남녀가 탄 차 사고 소식을 접한다.  

이 세상에는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결말이었을까? 아니면 영원한 사랑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2010년 11월 아주 위험한 책을 한 권 만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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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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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서평을 써볼거라는 야심찬 포부로 블로그에 책에 관한 글을 쓴지 2년이 지났다. 그간 책에 관한 포스팅만 300개, 그중에서 나름 서평 흉내를 내보겠다며 쓴 글은 어림잡아 100편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사람들은 블로그라는 누구나 접하기 쉬운 매체에, 어떠한 글쓰기 제약도 없이, 쓰고 싶은 책 이야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서평 쓰는 것이 쉽고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아직까지 내게 서평쓰기는 어렵고 때론 압박감도 느껴지는 그런 일이다. 더 절망적인건 쓴 서평의 개수가 늘어날 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서평을 쓰는 것이 쉬워지지도 않고, 쓰는 시간이 단축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때론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서너권의 책을 뒤적이고, 때론 하나의 서평을 완성하는 데 꼬박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기도한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를 쓰기 위해선 그의 신화 역사를 알기 위해 1권에서부터 4권까지 다시 꺼내 훑어보아야만 했고, <실크로드의 악마들>을 쓰기 위해선 실크로드 관련 도서를 죄다 찾아 본 건 물론이거니와 며칠에 걸린 임시저장 끝에 '확인'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그래도 쓰면 다행, <인간 실격>과 같이 서평 쓰기를 진작에 포기한 것도 있고, 두 권을 엮어 더 재미있게 쓰려고 구상만 하다 지금까지 쓰지 못한 <사하라 이야기>와 <흐느끼는 낙타>와 같은 책도 있다. 쓰기는 했지만 부끄러워 공개하지 못한 몇 권의 서평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알라딘 서재에만 올려 두었고, 어떤 말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는 <생각의 지도>나 <열정으로서의 사랑>과 같은 책들은 맘에 드는 구절을 옮겨 적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만큼 서평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난 꾸준히 서평을 올리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체화된 컨텐츠를 다시 한번 먹기 쉽게 꼭꼭 씹어 준 그들의 글을 읽다보면 그 책에 대한 매력이나 호감도가 상승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완벽한 해설에 더 이상 그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은 것 마냥 느끼게 될 때가 있다. 로쟈도 내게는 그런 블로거 중의 한명이었다. 물론 그를 단순한 블로거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견문을 겸비한 자이지만 어찌되었든 블로그라는 매체를 통해 꾸준히 서평을 써왔다는 점에 있어 그는 내게 블로거였다. 엄청난 독서량, 읽는 책의 수준, 그리고 맛깔나게 소화해낸 그의 서평은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서평집이 나왔다. 전작 <로쟈의 인문학 서재>와는 달리 이번 책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각종 지면에 실렸던 그의 서평만을 온전히 추려내어 주제별로 엮어 본격적으로 로쟈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총 30여개의 주제로 묶었고 그 안에는 각각 4,5편의 서평이 들어 있다. 하나의 서평을 쓸 때마다 그가 인용한 책의 권 수가 최소 5,6권은 되니 이 서평집 하나에 담겨 있는 책은 어림잡아 600권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분야도 다양하다. 그의 전공인 러시아 문학에서부터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동양 고전 <논어>, <기형도 전집>을 비롯한 한국 문학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누군가의 서평집을 이토록 꼼꼼하게 오랜 시간 잡고 읽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어떤 서평은 읽다가 책을 찾아 읽을 거라며 책 이름에 밑줄을 그었고, 어떤 서평은 로쟈만의 해석 방법이 재미있어 별표시를 해 두었으며, 어떤 서평은 나도 언젠간 이런 서평을 쓰고야 말겠다는 묘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빠져 있다보니 읽고 싶은 책이 배로 늘었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은 그 이상이 되었다.  

로쟈가 말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책이 있는 곳에 서평이 따라붙는 것은 자연스럽다. 서평은 말 그대로 책의 됨됨이에 대한 평이니까 책이라는 물건이 존재하는 이상 서평은 불가능하다. 책에 대한 평이라고 했지만 이때 평은 좋고 나쁨 따위를 평가하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값을 매기는 일이다. 책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 풀어서 말하자면 한 책에 대해 품평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원적 의미 그대로 '꼴값'을 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별을 위해서 보통은 책을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적어도 넘겨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리뷰re-view 다."  _ 39쪽 중에서

한 편의 제대로 된 서평을 위해서는 모름지기 책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리뷰'라고 부른 다는 것.10년간 꾸준히 책을 써온 서평가이자 블로거인 로쟈가 제2의 로쟈를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이 말은 서평가를 자칭하며 책이나 구걸하는 몇몇의 블로거들에게는 일침을 가하는 말이 될 것이며, 나와 같이 진정한 서평가를 꿈꾸는 블로거들에게는 달콤한 열매는 씨를 뿌리고 경작을 해내는 인내의 시간 없이는 결코 맛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말이 외어 줄 것이다.   

그의 책을 늘 손 닿는 가까운 곳에 꽂아 두었다. 서평쓰기가 나태해질 때마다 꺼내서 보려고, 읽고 싶은 책을 찾을 수 없을 때 꺼내서 찾아 보려고, 한 주제에 관한  여러 관련 도서가 궁금할 때 보려고 말이다. 책꽂이에 꽂아두니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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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1월 인문/사회 주목신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 

두달 전 우리 곁은 떠난 신화를 사랑한 이윤기 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고,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고 한다. 이야기꾼 이윤기가 들려주는 더 이상의 신화 이야기는 없지만, 그의 마지막 바람이 담긴 이 책이 나올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신을 위한 변론 

최근 개신교도들이 불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신에 대한 의미가 권력관계로 퇴색되어 버리고, 믿음이란 것이 서로 편을 나르고 배타적으로 변질되어버린 요즘 우리가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의 참의미를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왜 도덕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를 새롭게 재조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번에는 '도덕'이라는 주제로 찾아왔다. 어찌보면 너무나 진부한 주제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요즘 우리에게 진지하게 던져볼만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또 한번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기대되는 책이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따귀 맞은 영혼>의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신작.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토대로 이번에는 '관계의 심리학'을 보여준다. 나르시시즘, 관계의 권력, 애착과 착취 등 관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목차부터가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모든 관계들도 획복 가능해지는 걸까? 궁금해진다. 

 

 

  

 

 

공감의 시대 

<소유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의 신작. 19세기에서 21세기 까지 긴 인간의 '공감' 능력이 어떻게 계발돼 왔는지에 대해 써내려간다. 무엇보다 '공감'능력이 중요해진 요즘 과연 그는 어떤 방식으로 '공감'을 풀어냈는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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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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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제우스와 해라의 이야기로 그 방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지이윤기는 달랐다. 10년 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권을 펼쳤을 때 이윤기는 외짝 신 사나이 이아손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로 안내했다.

아르고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북쪽 나라로 가서 옛날 그리스인들이 잃어버린 황금빛 양의 털가죽을 찾아온다는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 '모노산달로스(신발을 한짝만 신은 사나이)가 내려와 왕이 된다네'라는 이상한 노래의 예언 그대로 한짝 신발만 신은 채 황금빛 양의 털가죽을 찾아 돌아와 펠리아스 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는 아르고 원정대의 수장 이아손의 이야기. 이윤기는 바로 그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담으로 신화의 포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르고 원정대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아르고 원정대의 이야기를 끝으로 독자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지난 8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맛깔지게 들려주던 이야기꾼 이윤기가 세상을 떠났다. 더이상의 이윤기가 들려주는 신화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의 마지막 유고가 발견되었다. 바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의 10년간을 아우르는 마지막 5권 원고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5권의 주제로 써내려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르고호의 다이나믹했던 모험담과 같이 원정대 이야기로 시작해 10년 간의 항해 기나긴 항해를 마치고 다시 아르곤 원정대 이야기로 귀환한 것이다.  



나는 내 연하의 독자들을 향하여, 특히 좌절을 자주 경험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활을 겨누듯이 겨냥하고 쓴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_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 들어가는 말 中

 

마치 마지막 자기 고백이라도 하듯이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책을 네 권이나 쓰기까지 단 한번도 그리스에 가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5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리스로 날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데는 바로 '아르곤 원정대'이야기의 역할이 컸고 그 때문에 그가 이 이야기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아르곤 원정대가 4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이 흘러드는 무시무시한 물살을 뽐내는 해협인 쉼플레가데스를 뚫고 지나가 황금모피를 찾아 돌아왔듯이, 그 역시 신화의 현장으로 가기 위해 그리스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르고 원정대가 결코 쉽지 않은 위대한 시작을 통해 황금모피를 획득했듯이,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방대한 세계로 떠나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우리에게 남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르곤 원정대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저자가 들어가는 말 중에 다 밝혀놓았다. 우리가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는 건 그들이 모두 좌절과 실패를 거듭나 목표한 바를 성취한다는 데 있을 거다.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아도, 앞이 보이지 않고 주저 앉고 싶을 정도로 풍랑이 몰아쳐도 그 모든 장애물을 딛고 일어나 자신이 꿈꿔온 바를 이룬다는 데 있는 거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사 저주에 걸린 렘노스 섬을 거치고, 원정대의 가장 든든한 대원 헤라클레스는 중도하차하는 등 어려움과 고난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뚫고 이아손은 황금모피를 획득했다. 우리는 그런 영웅들의 모습 속에서 용기를 얻고 자신만의 황금모피를 찾아 떠날 힘을 얻는 거다.

이윤기가 풀어 놓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담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끝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한듯 설명이 약간씩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이아손에게 보이는 애착 때문인지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손에 놓을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만든다. 중간중간 좀처럼 보기 힘든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는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우리의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또 인생선배가 방황의 시기를 걷고 있는 후배에게 따가우면서도 따듯한 조언을 들려주고 있는 듯해 든든해지기까지 한다.

아르고 원정대의 이야기를 읽다 그동안 읽었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들이 생각나 두 꺼내어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신발, 길 읽은 태양 마차, 온 땅에 넘친 대홍수 등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를 다룬 1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고 종종 찾아서 읽는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를 다룬 2권, 약속, 앎 등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를 다룬 3권,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영웅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을 다룬 4권까지 5권을 쌓아 놓고 보니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시 한번 1권부터 차근차근 이윤기가 들려주는 신화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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