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스 서점 - 틸리와 책여행자들 페이지스 서점 1
애나 제임스 지음, 조현진 옮김 / 위니더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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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스 서점에 사는 틸리 페이지스는 단짝이 없다. 빨강 머리 앤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아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단짝이 될텐데! 언제나 곁에 있어주고 틸리의 말에 절대 따분해하지 않고 용감하고 똑똑하고 재미있고 한곁같이 모험을 좋아하는 책 속 등장인물 같은 친구가 어디 없을까?? 할아버지는 언젠가 찰떡같이 함께하는 친구가 생길거라고 말하지만 틸리는 영 믿음이 안간다. 미래의 단짝이라니 빛바랜 사진만큼이나 흐릿하기만 한걸. 어쨌든 지금은 서점 주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5층이나 되는 서점을 꽉 채운 책들이 있고 책 속에 좋아하는 주인공들이 있으니까 문제는 없다. 딱 하나, 실종된 엄마만 빼고 말이다.

틸리의 엄마는 틸리를 낳고 실종됐다. 커피 한잔 마시고 오겠다며 나간 엄마는 갓난아기와 부모님을 두고 사라져버렸다. 경찰에서 수사를 했지만 납치로 의심되는 어떤 정황도 나오지 않아 일종의 가출로 처리됐다고 한다. 틸리는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한 엄마가 그립고 사진조차 보지 못한 아빠가 알고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줘도 아빠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당신들도 아는 바가 없다는데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틸리는 의구심을 느끼면서도 추궁하진 않는다. 대신에 엄마가 어릴 적에 아껴읽던 책상자를 발견해 거기에 담긴 책을 읽는다. <소공녀>, <빨간머리 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첫 페이지에 꼬부랑 글씨로 쓰여있는 엄마의 이름 "베아 페이지스." 마법은 그 책들을 펼치며 시작된 걸지도 몰랐다.

앨리스가 페이지스 서점의 계단에 앉아 틸리를 향해 젤리빈을 던지고 모퉁이 소파에는 빨강머리 앤이 앉아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쉰다?? 틸리의 이야기를 들은 난독증 소년 오스카가 틸리의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해가 간다. 누가 이런 일을 진짜라 믿으랴. 그러나 앤과 앨리스, 틸리의 손을 잡고 그들의 책 속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을 때 오스카도 이게 더는 틸리의 꿈이 아니며 착각은 더더욱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길버트가 앤을 두고 홍당무라 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앤의 편을 들었다가 필립스 선생님께 혼이 난 틸리가 칠판 앞에 서서 앤과 함께 벌을 서는 판국에 이건 가짜다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책에서 "엔 셜리는 성질이 사납다. 엔 셜리는 성질 죽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묘사됐던 칠판엔 이제 "틸니 페이지스는 말대답을 한다. 틸니 페이지스는 말조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도 적혀있다. (이럴 수가! 필립스 선생님은 알고 보니 애들 이름 틀리게 적는 일에 선수였다. 앤을 몇 번이나 봤는데 나는 왜 몰랐지??)

페이지스 서점엔 책 속 여행자로 선택받은 독자들과 책을 사랑해 그 안에서 영영 길을 잃은 독자들과 때때로 아주 골칫덩이 같은 독자들이 모여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책들과 어쩌면 아주 이상한 책들과 안전하거나 그렇지 않은 책들이 독자를 끌어당기고 비밀을 품은 영국 국립 지하도서관이 이들을 관리한다. 책으로 향상되는 우리의 삶, 책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우정, 책이 만드는 기적을 담은 신비하고 아름답고 특별한 동화책! 보물섬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세라의 다락방을 방문하는 세계 속으로 당신의 모험을 찾아 나서기를 또한 나의 모험을 발견하게 되기를. 오늘도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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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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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운동 삼아 매일 저녁 공원을 걷거나 달리는 중인데 며칠전 하마터면 경미한 부상을 입을 뻔 했다. 코너를 도는데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커플과 부딪힐 뻔 한 것이다. 부딪히기 직전에 커플을 인지한 내가 급히 보행로에서 내려선 것까진 좋았는데 자갈들에 미끄러졌다. 그쪽도 놀랐는지 멈칫 서고 나도 숨을 헐떡거리며 일어서는데 여자가 씨X이라고 욕을 했다;;; 엉겹결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게 무안하고 억울했지만 싸우기 싫어서 무시했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라지만 2010년부터 공원 및 산책로에서도 우측통행이라 권고했고 교과서도 변경된 상태이며 공원 곳!곳!에 안전을 위해 우측통행 합시다 안내표지!!가 세워져있는데다 공원을 걷고 뛰는 사람들이 다들 우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특히나 그렇다. 가로등이 있다고 해도 시야가 좁아져 역방향으로 걸을 시 충돌의 위험이 높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체 이 커플은 우측통행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우측통행 표지판들을 물로 봤나? '거꾸로 강을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굳이 우측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헤치며 역방향으로 걷는 이유는 뭘까? 왜 잘못은 지들이 하고 욕은 내가 먹나?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을 때도 뇌과학으로 분석해 보자.

1. 성격장애

신경전문의이자 이 책의 작가 카야 노르뎅엔에 따르면 "극단적이고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충동적이고 강방적이라 사회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때 성격장애"(p68)라고 진단한다고 한다. 이 중 핵심 요소는 "일관성과 부적응"인데 커플이 쌍둥이처럼 정신질환 및 성격장애에 걸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므로 반사회적 인경장애 등을 의심하는 건 지나친 일인 것 같다.

2. 멀티 태스크에 대한 지나친 믿음

본인의 뇌를 과대평가한 커플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믿은 걸수도 있다. 우측통행 따위 하지 않아도 둘이 합쳐 눈이 두 짝도 아니고 네 짝이나 되니까 마주 보며 걷고 말하고 앞에서 걸어오고 뛰어오는 사람들을 잘 살펴서 다 피해가는 다중작업이 가능하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믿음이다. 설령 본인들은 두 가지 혹은 세네 가지의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느낄지라도 실제 뇌는 작업 1과 작업 2 작업 3, 4를 빠른 속도로 멈춤-전환하는 중이므로 이는 동시수행이라 볼 수 없다. 멈춤-전환-시작의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이 인지하지 못할 뿐인데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시 뇌는 일시적 마비 증상까지 겪을 수 있다. 멀티 태스킹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8%에 달하는 음주자가 운전하는 것 만큼이나 주의력이 떨어지는 일/0.08%면 면허 취소수준"(p49) 이라고 하니 파트너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공원에선 필히 우측통행하자.

3.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전두엽이 본분을 망각한 상태"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은 추론하고, 계획을 세우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84) 그러나 기억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기억해야 할 정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저녁 나절 다정히 만난 커플이 데이트를 하는 순간 같은 때가 그렇다. 바라만 봐도 너무 좋은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대뇌피질의 해마가 꼭 필요한 정보를 전두엽에 보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각, 청각, 후각이 우측통행 표지판 대신에 상대의 미소, 체온, 내일의 계획 같은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해마에게 보내는 것이다. 우측으로 걷고 뛰는 사람들이나 표지판은 우선순위가 낮은 정보가 되어 감각에서 차단되거나 인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감각 신경을 통한 정보 수집 과정에 일련의 장애가 발생한 상황에서 다급하게 감각 신경이 확장될 때 감정은 대뇌피질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럴 땐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욕이 튀어나올 수 있다. 내 잘못 네 잘못을 가리지 않는 반응이다. 정보수집이 모두 끝이 나고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이 상황을 제대로 추론 하게 되면 부끄러웠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해도 전두엽이 아직 제 본분을 끝내지 못했거나 전두엽에 문제가 여전한 상태일 것이므로 아무리 쪼잔한 나라지만 이 일은 이만 잊기로 하자.

유익함으로 읽고 즐거움으로 곱씹는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신경전문의가 쓴 교양서는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하고 유쾌한 마음이 되게 해주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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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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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과 눈 맞은 아내가 바람나 집을 나갔다, 이것은 불륜 탐정 할아버지의 사연입니다. 남자친구 바람을 뒤쫓다 탐정의 재능을 깨달았다, 이것은 불륜 탐정 엄마의 사연이고요. 대대로 불륜 탐정 집안이라 가업을 이었다, 이것은 아빠의 사연입니다. 불륜남을 파헤치다 군대로 달아났다, 이것은 오빠의 사연이고요. 할아버지, 엄마, 아빠, 오빠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그녀 이름은 전일도, 탐정이죠!

불륜 탐정 집안에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사건 현장에 뛰어든 전일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국수는 언제 먹여줄거냐? 그 소리만 아니었으면 시작도 안했겠죠." 집에서는 언제 결혼하냐 닦달을 하지요. 집성촌 사는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은 다 결혼해서 매년 애들이 세뱃돈 삥 뜯으러 오는데 그게 그렇게 배 아플 수 없고요. 축의금 돌려놓은 거 아깝기도 하잖아요. 뭣보다 전세금이 미친듯이, 이노무 연봉보다 더 올라서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결혼지원금 좀 받고 축의금 좀 보태서 전세금 마련하자 싶어서 재벌은 아니지만 드라마처럼 계약결혼을 해보리라 데이팅 앱을 깔았다는 겁니다. 황당해야 되는데 전 사실 이해가 되기는 하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오죽 크고 전세금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서요. 다행히 재미교포 2세 스테파니 황이라는 여자와 데이트 해서 성공리에 계약 결혼식까지 잘 치뤄요. 축의금은 딱 절반씩 깔끔하게 나누고요. 일년 후 이혼, 여기까지 합의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근데 살다보니 장점이 많은 여자였고 스파게티를 너무너무 맛있게 만드는 여자였고 작은 거에 대단하게 감동하니까 우쭐하며 마음이 뜨거워져서 계약 결혼에서 계약 빼고 결혼으로 쭈욱 가도 좋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녀 몰래 프로포즈를 준비한 날 그러나 가짜 아내가 사라져버립니다. 왤까, 남자는 무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누가 봐도 프로포즈를 피해 달아난 모양새인데 내가 그렇게 별로였을까? 월급이 얼마냐 물어본 게 잘못이었을까? 머리를 싸쥐며 그녀를 찾지만 어찌된 일인지 알고 있던 신상으로는 아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친정 엄마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 모른다며 전화를 끊고요. (미국에 사는 장모님 휴대폰 번호가 왜 010으로 시작하나요?) 이탈리안 레스토랑 셰프래서 일대 레스토랑을 다 뒤졌지만 그런 사람은 모른다 하고요. (셰프라면서 토마토 스파게티 만드는데 기본 1시간일 때 정말 괜찮았나요?) 신흥종교 스파게티교 신자랬는데 관련해서 뒤져볼래도 이 사이비 냄새나는 종교는 흔적도 없고요. (스파게티교라며 채반을 둘러써도 이상하다고 못느낀 당신은 대체?? +.+)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아내 좀 찾아주세요!

처음으로 불륜이 아닌 실종사건을 수사하게 된 탐정 전일도의 가볍고 유쾌한 수사일지! 하나도 아니고 무려 아홉개나 되는 사건의 해결을 모은 연작 단편집입니다. 할인은 되지만 할부는 NO! 열 번 의뢰하면 한번은 공짜! 생계형 탐정 전일도가 실종된 가족, 실종된 꿈, 실종된 취업, 실종된 집값, 실종된 퇴사, 실종된 미투, 실종된 미래를 찾아드립니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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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 오딘, 토르, 로키 이야기
케빈 크로슬리-홀랜드 지음, 제프리 앨런 러브 그림, 김영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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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세번째로 읽게 된 북유럽 신화입니다. 게중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고요. 크기가 가장 큰 책이고 또 가장 멋진 책이었습니다. 제프리 앨런 러브의 어마어마한 일러스트가 더해진 탓도 있지만요. 그보다는 케빈 크로슬리-홀랜드가 오딘, 토르, 로키 위주로, 실은 어마어마하게 로키!! 위주로 신화를 편집 각색해 이야기를 재구성한 탓이 큽니다. 이전의 북유럽 신화책과는 다르게 천지창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 점도 독특합니다. 세 권 밖에 안읽은 주제에 보통은...이라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요. 보통은 ㅋㅋ 얼음을 핥아 부리를 꺼내는 암소 아우둠라나 이미르를 죽이는 세 신 오딘, 빌레, 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이번 <북유럽 신화 오딘, 토르, 로키 이야기>는 스웨덴의 왕 귈피로부터 신화의 포문을 열어나갑니다. 제게는 굉장한 개성처럼 느껴지더군요.

"아량을 베풀어라 / 기상을 떨쳐라 / 그리하면 네 삶은 행복해지리라." 하지만 호기심 많고 기억력이 좋은 재주꾼 왕 귈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신에게 아량을 베풀었다가 되려 기름진 평원을 도둑 맞습니다. 사기꾼 같은 여신이라니 지금도 그 옛날에도 상상을 못할 일이라 귈피는 어안이 벙벙하지만 억울함을 고할 데가 없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신들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홀로 스웨덴을 떠나 달콤한 향이 넘치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을 거쳐 아스가르드로 올라가는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에 도착합니다. 마법의 힘으로 강글레리라는 떠돌이로 변신한 귈피를 헤임달이 발할라로 안내하고요. 그곳에서 높은 자와 높은 자와 같은 자, 세번째라 불리는 왕을 만납니다. 왕들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지만 왕들로 하여금 더 많은 숙제를 떠안은 귈피. 귈피는 자신이 알게 된 이야기를 반드시 주변에 나누어야 하고요. 스웨덴의 네 주변과 북쪽 세상 도처에 산재한 신들의 이야기를 찾아 모으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세상이 지속되는 한 신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귈피가 만난 이야기와 그 시작으로 우리가 북유럽의 많은 신화들을 읽게 된 셈이지요.

원수같은 거인족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협박하고, 때려죽인 거인의 딸과 혼인을 하고, 망치를 도둑 맞고, 머리카락을 잘리고, 바닷물을 마시고, 신의 피로 술을 담그고, 말과의 하룻밤으로 망아지를 낳는, 괴짜 같고 신기하고 기발하고 때때로 폭력적이기도 한 바이킹들의 신화.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종말 다음의 후손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남긴 바이킹들의 믿음이 생생하게 남은 오늘이 신기합니다. 800년 전의 어느 밤, 신화가 잊혀질까 두려워 깃펜으로 잉크를 찍어가며 양피지 위에 글을 써내려갔다는 스노리 스툴루손, 그에게 감사하는 케빈 크로슬리-홀랜드의 마음이 이해가 가요. 성경에 이 재미난 이야기들이 모두 쓸려갔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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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다이어리 - 시인을 만나는 설렘, 윤동주, 프랑시스 잠. 장 콕도. 폴 발레리. 보들레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바라기 노리코. 그리고 정지용. 김영랑. 이상. 백석.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starlogo(스타로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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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윤동주, 새로운 길 중)

 

올 새해에도 다이어리를 써보겠다는 포부를 품었는데 결과는 대실패!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다이어리 한 권을 품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와 짧은 글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시 속에 함께했던 시인들의 시, 윤동주를 사랑한 또다른 시인들의 시 102편을 담은 시집 같은 일기장입니다. 기분 내키는대로 어느 달 어느 날짜를 펼쳐도 시를 품은 내지에는 마음을 두드리는 고운 글들이 가득합니다.

 

릴케와 프란시스 잠, 정지용과 장 콕토, 샤를 보들레르와 발레리. 시인이 베옷 입고 고향길을 소 끌고 다닐 적에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는 시집 속에 그들이 있었겠지요? 방학 때마다 시인의 짐 속에서 쏟아졌다는 수십 권의 책 속에도 그들이 있었을 테고요. 시인이 소장했던 800권의 책 무더기 속에도 "껍질채 송치까지 다 노나 먹고"(윤동주, 사과) 싶은 시의 언어들이 가득했을 겁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김영랑 시인의 <내 마음의 아실 이>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 낭독하면서 이 시야 말로 일기장을 위한 시구나 했고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2월에 앞서 이바라기 노리코라는 시인의 시가 실린걸 보고 어떻게 일본 시가 실렸지? 깜짝 놀랐다가 검색하고서야 이 시인이 윤동주를 일본에 소개한 분임을 알았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 윤동주 시인이 <참회록>을 노래하는 11월에 다다라 오늘 하루 반성할 만한 일이 있었나 생각도 합니다. 너무 많아....... 자기 비하에 빠질까봐 이만 멈추기로 해요. "하나,둘,셋,네...... 밤은 많기도 하다"(못자는 밤) 에서 윤동주 시인이 말씀하셨지요. 젊은 시인의 잠 못드는 밤을 헤아리며 독자는 5년을 기록하는 만년 다이어리에 앞으로 남은 많은 밤들을 다 써도 좋을 것만 같습니다. 잊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시인의 시 곁에 모자란 매일을 채워나가보자 시인이 "가자, 가자, 가자"(윤동주, 반딧불) 라고 노래한 내일이 우리한텐 있으니까요. 19년의 1월 1일에서는 까마득히 멀어졌고 20년의 1월 1일은 아직 좀 남은 10월하고도 17일이지만 이 밤부터 시작해 보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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