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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평점 :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운동 삼아 매일 저녁 공원을 걷거나 달리는 중인데 며칠전 하마터면 경미한 부상을 입을 뻔 했다. 코너를 도는데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커플과 부딪힐 뻔 한 것이다. 부딪히기 직전에 커플을 인지한 내가 급히 보행로에서 내려선 것까진 좋았는데 자갈들에 미끄러졌다. 그쪽도 놀랐는지 멈칫 서고 나도 숨을 헐떡거리며 일어서는데 여자가 씨X이라고 욕을 했다;;; 엉겹결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게 무안하고 억울했지만 싸우기 싫어서 무시했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라지만 2010년부터 공원 및 산책로에서도 우측통행이라 권고했고 교과서도 변경된 상태이며 공원 곳!곳!에 안전을 위해 우측통행 합시다 안내표지!!가 세워져있는데다 공원을 걷고 뛰는 사람들이 다들 우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특히나 그렇다. 가로등이 있다고 해도 시야가 좁아져 역방향으로 걸을 시 충돌의 위험이 높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체 이 커플은 우측통행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우측통행 표지판들을 물로 봤나? '거꾸로 강을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굳이 우측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헤치며 역방향으로 걷는 이유는 뭘까? 왜 잘못은 지들이 하고 욕은 내가 먹나?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을 때도 뇌과학으로 분석해 보자.
1. 성격장애
신경전문의이자 이 책의 작가 카야 노르뎅엔에 따르면 "극단적이고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충동적이고 강방적이라 사회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때 성격장애"(p68)라고 진단한다고 한다. 이 중 핵심 요소는 "일관성과 부적응"인데 커플이 쌍둥이처럼 정신질환 및 성격장애에 걸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므로 반사회적 인경장애 등을 의심하는 건 지나친 일인 것 같다.
2. 멀티 태스크에 대한 지나친 믿음
본인의 뇌를 과대평가한 커플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믿은 걸수도 있다. 우측통행 따위 하지 않아도 둘이 합쳐 눈이 두 짝도 아니고 네 짝이나 되니까 마주 보며 걷고 말하고 앞에서 걸어오고 뛰어오는 사람들을 잘 살펴서 다 피해가는 다중작업이 가능하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믿음이다. 설령 본인들은 두 가지 혹은 세네 가지의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느낄지라도 실제 뇌는 작업 1과 작업 2 작업 3, 4를 빠른 속도로 멈춤-전환하는 중이므로 이는 동시수행이라 볼 수 없다. 멈춤-전환-시작의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이 인지하지 못할 뿐인데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시 뇌는 일시적 마비 증상까지 겪을 수 있다. 멀티 태스킹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8%에 달하는 음주자가 운전하는 것 만큼이나 주의력이 떨어지는 일/0.08%면 면허 취소수준"(p49) 이라고 하니 파트너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공원에선 필히 우측통행하자.
3.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전두엽이 본분을 망각한 상태"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은 추론하고, 계획을 세우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84) 그러나 기억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기억해야 할 정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저녁 나절 다정히 만난 커플이 데이트를 하는 순간 같은 때가 그렇다. 바라만 봐도 너무 좋은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대뇌피질의 해마가 꼭 필요한 정보를 전두엽에 보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각, 청각, 후각이 우측통행 표지판 대신에 상대의 미소, 체온, 내일의 계획 같은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해마에게 보내는 것이다. 우측으로 걷고 뛰는 사람들이나 표지판은 우선순위가 낮은 정보가 되어 감각에서 차단되거나 인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감각 신경을 통한 정보 수집 과정에 일련의 장애가 발생한 상황에서 다급하게 감각 신경이 확장될 때 감정은 대뇌피질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럴 땐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욕이 튀어나올 수 있다. 내 잘못 네 잘못을 가리지 않는 반응이다. 정보수집이 모두 끝이 나고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이 상황을 제대로 추론 하게 되면 부끄러웠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해도 전두엽이 아직 제 본분을 끝내지 못했거나 전두엽에 문제가 여전한 상태일 것이므로 아무리 쪼잔한 나라지만 이 일은 이만 잊기로 하자.
유익함으로 읽고 즐거움으로 곱씹는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신경전문의가 쓴 교양서는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하고 유쾌한 마음이 되게 해주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