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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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컨디션이 별로라 자다깨다를 반복했더니 아뿔싸 눈 떠보니 8시 10분!! 대충 씻고 대충 입고 대충 찍어바르고 부랴부랴 나와 회사까지 사정없이 뛰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횡단보도 신호까지 딱 맞춰져 중간에 가방 한번 추스른다고 멈춘 거 외엔 내내 달렸는데 기분이 왜 이리 상큼한 겁니까?? 엘베 안기다리고 계단 타고 사무실까지 뛰어올라가서 하마터면 야호 외칠 뻔 했잖아요. 숨이 차서 헐떡헐떡 심장이 쾅쾅 터질 것 같은데도 입가에 푸스스 웃음이 일더라구요. 제가 원래 이런 식으로 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여름 전만 해도 조금만 뛰면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고요. 뛰다 걷다 반복하며 얄짤 없이 지각이었는데 가을 초입부터 6천보씩 1만보씩 꾸준히 걷고 뛴 효과일까요? 오늘의 저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날렵하더라구요. 아, 이게 뛰는 맛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한참 걷기에 재미들린 요즘이라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던 책이에요.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 배드민턴, 수영, 필라테스, 복싱, 요가, 승마, 아쿠아로빅 등등. 왕성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운동을 섭렵한 이진송 작가님의 운동 유목민 생활의 간증서더군요. 살을 빼기 위해 해야만 했던 자학적 운동의 시간을 거쳐 생존 체력을 기르는 삼십대 운동 시간으로 접어든, 저의 지금 이 순간과 비슷한 나이대라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나를 지켜주는 삶을 만들기 위해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 어디에서 운동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고, 또 운동으로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할지에 대한 담담한 고민과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걷기가 재미있는데도 걷기라는 운동에 자신이 없달지 조금은 의기소침했던 제게 용기를 주는 얘기도 있어서 많이 신났답니다.

끈기가 없는 저 나름으로는 두 달 넘게 꾸준히 걷고 뛰는 제가 뿌듯해서 주변에 얘기를 했는대요. 대번에 그러더군요. 걷는 게 무슨 운동이냐, 할머니들도 하는 그거 운동 안 된다, 잘못 걸으면 무릎 상하고 연골 닳는다, 1만보에 시간 얼마나 걸리냐길래 1시간 20분 남짓 얘기 하니 시간낭비다 그러고요. 대박이었던 건 묻지도 않았는데 야 너 살 하나도 안 빠졌다 하던 거;;; 다이어트 목적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살이 안빠진 것도 맞지만, 너무 살살살 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습니다. 충만하던 내 기분 돌려줘요ㅠㅠ 근육 짱짱, S 라인, 몸무게 쭉쭉 내리는 혈기왕성형 운동은 아니지만 걷고 뛰고 땀 흘리고 저는 그게 넘 재미난데 타박이 한 마디씩 보태지니 속상하더라구요. 삼십대에 걷기는 넘 가벼운 운동인가 고민도 되고요. 그런데 이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으면서 그런 마음 쓰레기통에 내다버리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하나 보다"의 의미는 각자의 삶으로 제각각 해석되는 겁니다. 운동으로 곰이 인간이 되는 것 같은 극적인 변화를 만드는 거, 물론 좋죠. 할 수만 있다면 최고 아니겠어요? 근데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눈 뜨기 편하고 자다가 다리에 쥐나서 깨는 일 없고 한여름에도 차갑던 손발에 훈기가 돌고 더 오래 앉아서 책에 집중할 수 있고 피곤해서 별 거 아닌 일에 짜증내는 일이 줄어드는 정도의 변화로도 운동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러므로 저의 걷기도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체력은 저축 보험을 넣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의미는 정확히 반대로. 지금은 사소하고 별것 아닌 양 보이는 운동의 성과가, 꾸준히 쌓은 후 돌아보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 붙는 이자는 은행의 그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율이거나, 에계? 싶은 알량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의 성분. 그런 생각을 하면 운동 가기 싫어서 드러누워 있다가도 슬금슬금 움직이게 된다."(p137) 오늘의 걷기도 1만보 남짓. 칼로리 소모량으로만 보면 오늘 마신 커피 한 잔도 퉁치지 못하겠지만 에계?라고 생각 안할 겁니다. 숨쉬기보다 좀 나은 수준이라도 뭐 어때요? 티끌 모아 티끌이래도 제 체력은 분명 늘고 있어요. 오늘 아침 제가 지각을 면한 게 그 증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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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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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한국작가님 책들을 연속적으로 읽고 있다.

또 어쩌다 보니 덥썩덥썩 집어먹은 책들이 죄다 맛이 좋다.

읽는 걸로 살이 쪘으면 올 가을 둥그런 오리 몸통처럼 빵실빵실 부풀었을텐데.

눈이 아니라 입으로 먹어서 참 다행이지?

가수로 만화가로 영화 감독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작가님의 이력처럼

이 책의 단편들도 다양한 장르를 취하고 있다.

아침부터 식인 바이러스 긴급재난문자를 받은 국제커플의 좀비물 <하나, 둘, 셋>

주님께 차별받고 천사들에게 왕따 당하는 사탄의 종교물 <오리 이름 정하기>

좀비 변장했다가 벼락 스타가 된 보조출연자의 성장 소설 <똥손 좀비>

실종된 콘돔 세 박스를 찾아 나서는 코지 미스터리 <이따 오세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건강한 여자의 섹스에 대해선 말하고 싶은 놈들에 대한 경고 <섹스와 코미디>

애인인지 호스티스인지 분간 안가는 여자들에 대한 탐구 소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한국이 싫어서 싸우는 두 친구 얘기는 장르를 뭘로 하지? 혐오소설?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

정신과 의사가 사주명리를 공부하다 마녀가 된 이유 어쩌면 명상록 <나는 오늘 들었다>

나의 신은 예술이다, 전도소설 <깃발>

17,919,015원의 이체, 꽃뱀 고발 범죄소설인가요?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

여자로 살기 지겨워 불 지르는 방화 소설 <센세이션-휏손>

그게 선물이든 뇌물이든 거부하겠어, 가족관계 단절하고픈 장녀의 드라마 <증여론>

독특하다. 신선하다. 기묘하다. 불편하다. 통쾌하다. 진지하다. 가볍다. 쑥스럽다. 당당하다.

어느 한 가지 느낌으로 퉁치기 어려운 단편집이다.

직독직해가 되는 경우가 있고 두 번 읽어도 영어지문인냥 의도가 파악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작정하고 썼겠지만 왠지 놀다 쓴 문장 같고 골 싸매고 썼겠지만 대충 휘갈긴 것처럼도 느껴진다.

엉터리 같았다가 멋졌다가 아직은 모르겠다.

모르지만 그래서 더 좋기도 했던 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이 작가님 본명이라는데 이 이름은 누가 정했을까??

#오리이름정하기

#이랑

#위즈덤하우스

#소설

#한국소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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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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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성천지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취업이 된 건 나명 뿐일 겁니다. 전 남자친구의 자살로 우울 및 불면에 시달리고 상습 자살 시도를 감행하던 명이는 제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들어가 보니 웬걸. 나 정도면 엄청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는 자각에 현타가 오고요. 시끄러운 병실 동기를 보다 보니 멀쩡한 자신이 좀 멋쩍어요. 이래저래 퇴원할 때는 되었는데 여전히 현실도피는 하고 싶고 그러다 자기만큼 멀쩡해 보이는 아저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겁니다. "저어... 담배 한 대만 주실래요?" 알고 보니 흡연자였던 명이는 호텔 사장인 도박 중독자 박씨에게 코가 꿰여 호텔 캐셔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박사장이 그랬거든요. 엄청 쉽다고요. 할 일도 별로 없다고요. 돈 받고 키만 주면 된다고요. 대에박, 정신병자 독박 중독자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박사장 이 새끼 완전 사기꾼이었어요!

다 쓰러져가는 호텔 드림초콜렛. 카드 전표만 봐서는 이게 호텔인지 팬시점인지 과자점인지 알 수 없는 그곳에서 주임 직함을 받고 근무하게 된 나명에게도 한 때 빛나는 청춘이 있었습니다. 남한사회주의노동당에서 글발 좀 날릴 때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로 출근하며 폼생폼사를 뽐내었거만 이제는 사람이라면 겪어서는 안되는 고초에 엮어 버렸어요. 옥상 물탱크가 떨어져서 아우디를 박을 뻔 하고요.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는데 이노무 문은 카드키를 암만 꽂아도 열리지를 않아 때려부수고요. 에어컨이 안돌아가 손님들에게 욕쳐먹기 부지기수에 새벽에 끊긴 카드내역을 의심한 여자친구가 쫓아와 씨씨티비 좀 확인해 보재요. 주차장에서 딸내미 사진 들어간 차키 내밀고 당당히 호텔 입성하는 불륜남녀는 양반이고요. 미성년 성매매에 3p에 집단자살에 여기가 동물의 왕국도 아닌데 참 장벽없다 싶어요. 거기다 박사장은 사람은 참 좋은데 일만 했다하면 또라이가 되요. 프린트 맞은 편에 공짜 커피, 공짜 토스트, 공짜 유자차로도 부족해서 공짜 팥빙수를 하쟤요. 실컷 일 치룬 남녀가 프린터로 전화해서 팥빙수 주문을 하는데 박사장놈 까짓 네가 갔다 주라네요. 네가 가라 하와이 하면 냉큼 가겠지만 미친놈아 때려치고 말지, 나는 싫다규!!

근데 참 이상한게요? 나명은 틀림없는 불면증 환자인데 야간 근무만 서면 꾸벅꾸벅 졸고요. 따는 수고 말라고 문도 안 잠그고 약 먹었던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거 양심적으로 어처구니가 없지만요. 호텔방에서 시체 볼까 겁나서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방도 안내줍니다? 하루종일 울기 바빴는데 열 받는 일 너무 많고 짜증나는 상황이 태산을 쌓으니까 눈물은 커녕 욕하다 보면 하루가 다가고요. 글을 못써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었는데, 진짜진짜 글 안써져 자살시도 한 적도 있었는데. 드림초콜릿에서 일하니까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 글이 잘 써져요. 이거 대체 뭘까요? 진짜로 미쳤나??

잘들 살더라는 거에요. 인간 같지 않은 새끼도 인간 이하인 새끼도 인간 안된 새끼도 그냥저냥 살고 그게 큰 문제도 되지 않더라는 거에요. 죽은 남자친구 엄마가 그러네요. "명이 씨는 명이 씨 몫의 삶을 살아요. 리재의 몫 따윈 신경쓰지 말아요.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다하다 저엉 안 되면, 그냥 대충 살아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p206) 맞아요. 대충 살아야 될 것 같아요. 문도 안잠기는 방에 손님 받는 드림초콜릿처럼. 지구야 썪든 말든 시간 없고 바빠서 분리수거 안하는 드림초콜릿처럼. 불륜도 성매매도 눈 따악 감고 올려보내는 드림초콜릿처럼. (아냐, 이건 좀 고민해보자.) 너무 엄격해 나를 폐허로 만드는 사람이 되기 보다 무너지는 건물도 절대 수리 안하고 버틸만큼 버티면서 당당하게 돈 버는 드림초콜릿처럼. 병심들도 당당한데 우리가 안당당할 이유가 대체 뭐냐고요. 달콤쌉싸름하고 웃픈 이 소설처럼 우리 그냥 대충대충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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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의 왕자들
김대웅 옮김, 아미르 후스로 델라비 원작 / 책이있는마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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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와 인도를 배경으로 해서일까요? 세렌디피티의 왕자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아주 닮은 느낌입니다. 책을 읽는 초반부엔 영락없이 "아메드 왕자와 페리 바누 요정 이야기"의 확장판 인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혹시 아시나요? 사촌 누이와 결혼하고픈 왕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지 않도록 아버지 왕이 아들들로 하여금 보물을 구해오게 하는 이야기를요. 제일 훌륭한 보물을 가져온 아들과 조카를 결혼시키겠다는 말에 큰아들은 날으는 양탄자를, 둘째 아들은 보고 싶은 건 무엇이든 다 볼 수 있는 유리 대롱을, 셋째 아들은 어떤 병이든 낫게 하는 사과를 구해오는데요. 여기 세렌디피티의 아버지 왕이 아들들에게 넘기고자 하는 존재는 조카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세렌딥이라는 위대하고 평화로운 나라였어요. 왕은 후계를 뽑기 위해 아들들을 시험하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어쩜 이렇게 자식들을 잘 키웠을까요. 다들 지혜롭고 성품이 훌륭하고 재치가 넘쳐서 왕은 도저히 한 명의 후계자를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은 아우에게 아우들은 형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우선적으로 아버지의 건강부터 걱정하니 왕은 참 복도 많죠. 그러나 어진 왕은 이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안분자족하여 좁은 시야가 될 것을 걱정해 거절에 화가 난 듯 꾸며서 나라 밖으로 쫓아보내요. 내 허락이 있을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 왕자들은 그로부터 유랑 같은 여행을 시작하는데요. 상인의 잃어버린 낙타를 찾아주려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요. 정의의 거울을 찾아 여왕의 나라에 갔다가 청혼을 받기도 합니다. 마음의 병을 얻은 한 황제를 치료해서 땅을 물려 받기도 하고요. 그 땅을 주지 않으려는 후계왕과 전쟁을 치르기도 해요. 첫째 왕자는 양치기의 딸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하고 둘째 왕자는 이웃 나라 왕의 사윗감으로 점찍어져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요. 여왕의 수수께끼를 풀었던 셋째 왕자는 아버지와 형님들이 싸준 보석들을 지참금으로 싸안고 여왕의 품으로 걸어갑니다. 아메드 왕자처럼 저마다의 보석을 구한 거에요. 그 사이사이 재치가 넘치고 기개가 흐르는 실로 놀라운 페르시아의 옛 이야기들도 이야기꾼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또다른 천일야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행운, 우연한 발견을 의미한다고 해요.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에도 세렌디피티가 있는데 가사 중에 "우주가 우릴 위해 움직였어"라는 구절이 있거든요. 이 구절만큼 세렌디피티의 왕자들에게 어울리는 문장도 없는 것 같아요. 우주가 세렌디피티의 왕자들을 위해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연과 행운이 어쩜 이렇게 연속으로 몰려오는지 말예요. 뜻밖의 사건으로 마주하는 인연과 사랑과 용기와 희망을 지혜로 버무려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 잠이 오지 않는 밤 가볍게 펼쳐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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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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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린 날 세영은 남편을 핑계로 자리를 피한다.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다"(p45)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었다. 될대로 되라지 라는 무책임함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 하나 빠진다고 결과에 그렇게 차이가 날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니었다. 한 표 차에 가해 아이들의 전학은 무산되었고 피해 아이는 자살을 했다. 피해 아이의 할아버지가 구급차 옆에서 발을 구르며 질렀다는 고함 소리가 다른 학부모의 입으로 전해진다. 내가 다 죽여버린다고. 저 학교 사람들 몽땅 다 죽여 버린다고. 세영은 몰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딸 도우가 장례식장에 가려 준비 중인 것을 잡는다. 나중에 가자,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아이를 설득하지만 나중은 너무 늦다며 완강하게 고집하는 딸아이를 잡지 못한다. 피해 아이의 할아버지가 몽땅 다 죽여버리겠다는 사람 속에 내 아이가 들어갈까봐 세영은 두렵다. 생모인 자신의 자살이 냉정한 딸아이의 성품에 인격적 성숙을 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던 쌀쌀한 모정을 까마득히 잊은 듯이 세영은 부랴부랴 도우를 찾아 장례식장에 발을 디딘다. 엎드려 울고도 싶고 뒤돌아 나가고도 싶은 그 자리에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게 될 밤을 생각한다. 신은 선택하지 않은 자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다. 신은 선택을 미룬 자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다. 그 벌이 내가 아닌 나의 아이에게 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영이 느낀 건 그런 예감이었지 싶다.

뉴스 너머 스치듯 듣고 돌아서면 잊게 되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단히 확실하다. 분노도 동정도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우리 동,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난감하다. 누구 편을 들어야할지 모르겠어서 누구 편을 들어야하는지 확실하게 알지만 그러기 힘들어서 난감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힘없어서 당했는데 맞고 난 후라고 어떤 힘이 생겼을리 없다. 폭력 피해자들에겐 내 편에 서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웃과 친구, 학부모, 선생님은 다 아는 사이에 어떻게 한 쪽 편만 드냐며 난감해한다. 한쪽 편을 들었다가 받게 될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 일에 함부로 나서기 겁난다는 것도 한 몫 한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판가름할 재량이 없다 손사래치며 가급적이면 원만한 해결을 보고자 한다. 주변인들의 이런 목소리가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또다른 폭력임이 분명함에도. 세영의 양심은 가해 학부모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것, 받은 선물을 먹지 않고 베란다에 내놓는 것으로만 표출된다. 그리고 나는 세영에게 손가락질 하지 못한다. 나라고 다를까. 나는 대단하게 정의를 부르짖으며 피해 아이의 편에 서게 될까. 자살이 주는 놀라움, 그 상황이 몰고올 복잡함에 대한 걱정에 앞서 죄책감부터 느끼게 될까. 가해 학부모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피해 학부모의 성난 목소리를 피곤해 하는 세영의 모습을 빼다 박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피해자가 된 나와 나의 아이는 상상하지 않을까. 정작 나는 이 사회에서 그리 힘센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는 심장 안쪽의 내 눈물을 닦으려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 정작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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