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딸의 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린 날 세영은 남편을 핑계로 자리를 피한다.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다"(p45)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었다. 될대로 되라지 라는 무책임함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 하나 빠진다고 결과에 그렇게 차이가 날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니었다. 한 표 차에 가해 아이들의 전학은 무산되었고 피해 아이는 자살을 했다. 피해 아이의 할아버지가 구급차 옆에서 발을 구르며 질렀다는 고함 소리가 다른 학부모의 입으로 전해진다. 내가 다 죽여버린다고. 저 학교 사람들 몽땅 다 죽여 버린다고. 세영은 몰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딸 도우가 장례식장에 가려 준비 중인 것을 잡는다. 나중에 가자,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아이를 설득하지만 나중은 너무 늦다며 완강하게 고집하는 딸아이를 잡지 못한다. 피해 아이의 할아버지가 몽땅 다 죽여버리겠다는 사람 속에 내 아이가 들어갈까봐 세영은 두렵다. 생모인 자신의 자살이 냉정한 딸아이의 성품에 인격적 성숙을 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던 쌀쌀한 모정을 까마득히 잊은 듯이 세영은 부랴부랴 도우를 찾아 장례식장에 발을 디딘다. 엎드려 울고도 싶고 뒤돌아 나가고도 싶은 그 자리에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게 될 밤을 생각한다. 신은 선택하지 않은 자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다. 신은 선택을 미룬 자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다. 그 벌이 내가 아닌 나의 아이에게 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영이 느낀 건 그런 예감이었지 싶다.
뉴스 너머 스치듯 듣고 돌아서면 잊게 되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단히 확실하다. 분노도 동정도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우리 동,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난감하다. 누구 편을 들어야할지 모르겠어서 누구 편을 들어야하는지 확실하게 알지만 그러기 힘들어서 난감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힘없어서 당했는데 맞고 난 후라고 어떤 힘이 생겼을리 없다. 폭력 피해자들에겐 내 편에 서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웃과 친구, 학부모, 선생님은 다 아는 사이에 어떻게 한 쪽 편만 드냐며 난감해한다. 한쪽 편을 들었다가 받게 될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 일에 함부로 나서기 겁난다는 것도 한 몫 한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판가름할 재량이 없다 손사래치며 가급적이면 원만한 해결을 보고자 한다. 주변인들의 이런 목소리가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또다른 폭력임이 분명함에도. 세영의 양심은 가해 학부모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것, 받은 선물을 먹지 않고 베란다에 내놓는 것으로만 표출된다. 그리고 나는 세영에게 손가락질 하지 못한다. 나라고 다를까. 나는 대단하게 정의를 부르짖으며 피해 아이의 편에 서게 될까. 자살이 주는 놀라움, 그 상황이 몰고올 복잡함에 대한 걱정에 앞서 죄책감부터 느끼게 될까. 가해 학부모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피해 학부모의 성난 목소리를 피곤해 하는 세영의 모습을 빼다 박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피해자가 된 나와 나의 아이는 상상하지 않을까. 정작 나는 이 사회에서 그리 힘센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는 심장 안쪽의 내 눈물을 닦으려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 정작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