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알고 싶다 : 낭만살롱 편 -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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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귀로 듣는 음악보다 글자로 다가오는 음악이 더 반가울 때가 있다. 장르부터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클래식일 때는 더 그렇다. 안인모 작가의 <클래식이 알고 싶다>는 드물게 선율과 글자를 모두 책에 실었다. 본문 속 QR코드라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작곡가의 삶을 따라가다 휴대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으면 곧장 유튜브로 연결되며 음악이 플레이 된다. 글자의 뒤로 배경처럼, 어떤 이야기 앞에선 글자의 지휘자처럼 음악이 흐른다. 독자 앞에 한없이 친절한 책, 한층 기술적인 책,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유형의 독서였다.

친구가 시 한 수 적어 보내면 글자 위로 음표를 쓱싹쓱싹 그렸다는 슈베르트.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노래한 윤동주와는 달리 길을 걷다가 번뜩 책을 읽다가 번뜩 맥주를 마시다가 또 번뜩 쉴새없이 자아지는 멜로디는 그의 자부심이었다. 괴테에 대한 존경으로 "마왕", "실 잣는 그레첸"을 지어 보내기도 했지만 괴테가 아무 응답없이 악보를 돌려주어 상처받은 날도 있었다. 훗날 괴테는 자신의 82세 생일에 슈베르트의 마왕을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안타깝게도 슈베르트는 이미 사망한 다음이었다.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죽는다. 처음에는 놀랐는데 그의 뒤로 등장하는 많은 작곡가들도 매독에 걸렸다. 예술가와 사창가, 보편적 질병이었는가 보다. 생을 마감하기 일주일 전까지 독서를 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라스트 모히칸, 나도 찾아봐야지.

낭만 시대, 오랫동안 독보적 연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피아니스트로는 클라라 슈만을 꼽을 수 있다. 슈만의 아내로만 알았던 그녀의 삶을 책 속에서 건져 마음 속에 꽃잎처럼 말린다. 스물도 안된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과 결혼한 클라라. 11세에 대뷔하며 이른 성공을 커둔 클라라의 커리어는 슈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클라라의 3주 연주 여행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슈만의 1년 수입보다 많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해도 그녀는 여자였고 아내였다. "그가 자신의 예술에 집중을 하면 할수록, 내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적어진다. 하늘만이 아시지! 살람이 아무리 조촐해도, 할 일은 끊이지 않고, 나는 언제나 연습 시간을 뺏기고 만다."/ "내 피아노 연주는 늘 뒷전이다. 슈만이 작곡할 때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도 쓸 수 없다니! 내가 너무 심하게 뒤처지지 않기를 바랄 뿐. 악보를 읽는 것을 또 포기할 수 밖에."(클라라의 일기 중)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 비크의 태도는 냉혹했지만 그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며 재판장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는 진실이었다. "슈만은 클라라의 커리어를 도울 수 없다." 계속된 임신과 출산, 슈만의 정신병(훗날 매독으로 인한 착란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슈만의 자살, 7명의 자식(슈만 사망 당시 막내가 2세), 그중 절반이 넘게 그녀보다 먼저 죽는 것을 보는 삶, 클라라의 음악 밑으로 눈물이 지하수처럼 고여들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시간을 연장해 손자소녀의 경제적 뒷바라지까지 도맡는다. 슈만과 또 브람스와 이루었던 그녀의 사랑보다 나는 고통 앞에서도 무던히 성실했던 클라라에 태도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QR코드를 찍어 직업을 삶의 위로로 삼았던 예술가의 음악을 듣는다.

이밖으로도 이별을 노래하는 시인 쇼팽, 사랑을 꿈꾸는 슈퍼스타 리스트, 환상과 영감의 장인 슈만, 영원한 사랑 가을 남자 브람스, 럭키 도련님 멘델스존 등 총 7명의 음악가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피아니스트이며 클래식 연구가인 안인모가 과외 선생님처럼 조목조목 짚어주는 낭만시대 피아노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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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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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p9)

레오는 짐을 싸고 있다. 축음기 상자였던 돼지 가죽 트렁크에 아버지의 것이었던 먼지막이 외투와 에드빈 삼촌의 니커보커 바지, 카르프 씨의 가죽각반과 피니 고모의 초록색 양모장갑,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실크 스카프와 세면도구를 담았다. 아마포로 표지를 씌운 책들도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했다, 파우스트, 바인헤버의 얇은 책과 시 선집. 가진 것을 다 꾸려도 트렁크 하나, 보퉁이 한 개 밖에 되지 않는다. 1945년 1월. 한겨울의 러시아로 향하는 독일계 루마니아 소년의 짐치고는 지나치게 단촐하다. 나치도 유대인도 수용소도 그들에겐 너무 먼 개념이었을까? 러시아의 수용소는 독일의 것과 다를 줄만 알았을까?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고있는 젊은 독일인들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징집됐다. 비슷한 소재의 책들을 숱하게 보았음에도 이 책이 남다르게 느껴졌던 건 수용소에 갇힌 이들이 그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p12)

오리나무 공원을 드나들며 남색에 빠진 소년은 이미 오래전에 구속의 두려움을 알았다. 그들이 랑데부라 말하는 관계는 교도소, 죄수수용소, 죽음으로 향하는 직행열차다. 나라가 그리고 가족들이 그를 추락시킬 터였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수용소로 향하는 길이어도 상관없었다. 동성애라는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랄지언정 전쟁과 수용소라는 단어 앞에선 오히려 차분할 수 있는 고작해야 열일곱 밖에 안된 어린애의 맹목이었다. 루마니아를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러시아의 밤. 열차의 모든 문이 열리며 작센족 남녀는 구분없이 밖으로 쏟아졌다. 바지 내렷! 자동권총의 부리 끝에서 바지끈을 풀고 단체로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수치. 얼어붙은 엉덩이와 초라해지는 오장육부와 졸졸 흘러가는 소태 소리와 설원의 들판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직면하며 소년은 러시아인들에게 끌려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쳤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배가 고프다는 것 말고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p28)

수용소에서의 삶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배고픔이다. 폭력과 추위와 강제노동과 병마와 향수를 다 합쳐도 굶주림만못하다. 내 빵보다 더 커보이는 남의 빵으로 교환하기 위해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한다. 남편에게 먹을 것을 약탈당하는 여자의 멀건 양배추 수프를 그 남편이 없을 때에 뺏어먹는다. 침대 밑에 숨겨둔 빵을 훔쳐먹은 놈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후 그 얼굴에 오줌을 눈다. 쓰레기를 뒤져 언 감자껍질을 주워먹는다. 차마 먹진 못했지만 들개를 삽으로 내려친 적도 있다. 273개의 감자를 옷속에 숨긴 채 함밤중 홀로 걸어가던 밤 레오는 기도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돼. 집으로 가는 길이야.' 레오는 배고픈 천사가 자신의 곁에 머무는 걸 느낀다. 천사의 무게가 소년보다 무거워지는 날 다른 이들이 그랬듯이 레오 또한 심장삽에서 뛰어내릴지 모른다. 죽음을 귀찮은 개처럼 쫓아버리기 위해 레오는 빵의 덫을 놓는다.

"책에는 어느 시공간에서든 저마다의 영화가 상영되는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p239)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그어진 밑줄에 책이 낙서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어느 바닥에 어느 한 문장 정도가 아니라 책 속의 모든 단어가 가슴을 두드린다. 거칠게 쾅쾅이 아니라 숨죽이며 조심조심, 감수성을 예리하게 세워야 들을 수 있는 노크다. 너는 돌아올거라는 할머니의 말 이외엔 아무 희망도 없는 독일계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 제 손으로 무너뜨린 것은 아니지만 제 민족이 무너뜨리고 약탈한 땅에서 얼은 대지를 맨손으로 파헤치고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붓고 슬래그를 굳히고 벽돌을 쌓고 벌목을 한다. 1945년 5월, 종전 선언도 이들 작센족의 노동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후로도 5년을 더 러시아 땅에 묶인 채로 삶과 죽음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실제 체험에 기대어 쓰여진 책이며 그가 머물렀던 수용소 또한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있다고 한다. 믿기지 않게도 파스티오르는 종종 수용소를 그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레오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성애자로서의 삶이 수용소의 통제 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일까? 수용소의 배고픈 입에 뜯겨나간 구멍은 종내 매워지지 않았고 레오는 여전히 침묵을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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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오늘의 젊은 작가 24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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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신이 주는 게 아니야. 인간이 만드는 거지."(p32) 창녀에게 옮은 에이즈로 아내를 죽인 훙의 아버지가 그랬다. 누군가 넘어져서 땅이 파인 자리에는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또 넘어지게 되는 법이라고. 그 창녀는 나쁜 년이 아니며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탱크 부품을 만드는 한국의 공장에서 훙은 손가락 세 개가 잘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훙은 아무 원망도 하지 않았다. 허드렛일이라도 하게 해줬으면, 작은 돈이나마 계속 벌게 해줬으면, 홍이 바라는 댓가래야 고작 그뿐이었는데도 윤 사장은 매몰차게 거절한다. 내가 보고 있기 속상해서 그래요, 뻔뻔한 한 마디에 훙은 쫓겨난다. 그리고 결심한다. 한국을 떠나겠다고. 그러나 그냥 가지는 않겠다고. 누군가 넘어져서 파인 땅에는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넘어지게 마련이므로 이번에는 내가 너희를 넘어뜨리겠다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세계만을 알았던 유순한 아가씨, 윤 사장의 딸 파이니스트 정인이 팔다리가 묶인 채 몸부림 친다. "너는 나를 알아야 해." 훙과 똑같은 모양새로 제 딸이 주저앉을 줄 알았다면 윤 사장의 선택은 달랐을까.

"세상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너무 많은데 자기 자신의 삶조차도 그 대상이 되는 건 너무 부당한 일이라고"(p245) 와이는 벤의 딸이 차라리 죽어버리기를 바란다. 다정한 아버지인 벤은 약혼자인 정우와 함께 태국을 방문한 섬머에게 카드에서 이기면 캐나다의 집을 물려주겠다고 바람을 잡는다. 누가 봐도 일부러 져주는 것이 확실한 태도, 당신 너무 취했다며 와이는 벤을 말리지만 벤은 이미 카드를 뒤집은 후다. 아버지뻘의 남자와 살림을 차린 자신이 누군가의 눈에는 창녀처럼 비칠 것을 안다. 어쩌겠는가. 이게 방콕의 여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노골적인 미국남자, 뒷통수 치는 영국남자, 매너 좋은 독일남자, 무책임한 한국남자, 여자 등쳐먹는 베트남 남자. 와이는 캐나다 남자 벤을 보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운이 좋지. 그러나 와이의 불룩한 뱃속의 아이에게 벤은 무관심하다. 당신 아이라는 말에도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아이를 낳아 발목을 잡을 수만 있다면. 벤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와이는 욕망하고 벤은 외면하며 사진 속 섬머는 환한 미소로 와이를 비웃는다. 와이는 벤의 책상 서랍에 총이 있는 걸 안다. 와이는 섬머의 사진을 덮어버린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이 뭐라고 생각해?"(p49) 한국은 사육용 개들을 대하는 태도가 악마적이라고. 개 맛이 어땠냐며 정우를 괴롭히는 섬머는 동물보호센터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며 전세계의 학대받는 동물을 구조한다. 한국의 농장에서 데려온 60마리의 개들을 입양시키며 섬머는 얘기한다. 윤리의 안테나를 세워야 해. 검지를 뿔처럼 머리에 올리며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말하는 섬머는 사랑스러웠지만 정작 그녀는 알지 못한다. 제 아버지가 와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와이가 낙태한 아기가 하얀 비닐봉지에 쌓여서 어떻게 신전 밑에 묻히게 되었는지. 애는 또 낳으면 된다고 와이를 위로하며 벤이 얼마나 빠르게 와이를 안았는지. 의식하지 못할 뿐 언제나 가해자가 생기고 피해자가 생긴다는 벤의 말을 섬머는 헛소리로 치부한다. 섬머가 쏟아내는 말 앞에 와이의 대꾸는 한 가지 뿐이다. "넌 아무 것도 몰라."(p190)

"내가 자꾸 같은 얘기를 빙빙 돌려서 하는 것 같다면,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소. 모두 다"(레이먼드 챈들러, 빅슬립, 북하우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24번은 김기창 작가의 장편소설 <방콕>이다. 에디터 김아름은 방콕을 두고 소설 속에 설치한 카메라가 몇 대쯤 될까 궁금하다고 했는데 나도 그랬다. 한국으로 베트남으로 캐나다로 방콕으로 흩어졌다 모여드는 인물들의 삶에 맞춰 하나씩 카메라를 돌린 느낌이랄까. 고작해야 334 페이지. 젊은 작가 시리즈를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판형이 크지도 않은데 이만한 분량에 이 많은 이야기를 다 녹여냈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한국에서 잘려나간 건 손가락이 아니라 나의 존엄이었다는 훙, 훙에게 갈취당한 자존을 어떻게해도 되찾을 수 없는 정인,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깨달음 후에도 복수밖에 생각하지 않는 윤 사장, 자유와 방탕을 즐기기 위해 천사의 도시를 방문한 벤, 자유를 향해 기꺼이 몸을 파는 와이, 인간에게도 다양한 층위가 있음을 알지 못한 섬머, 동생에게 생긴 일도 엄마가 찾는 남자에 대해서도 섬머와 벤을 맴도는 추격자의 존재에도 무지한 정우. 방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쇄적인 재앙 앞에서 겁먹지 않을 독자가 한명이라도 있을까. 타인의 불행은 막연하다. 어떤 파탄이 눈앞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현실감이 없다. 타인의 불행이 내 양심의 가책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파탄의 결과가 내 눈을 찔러야 한다. 그렇게 찔린 자들의 통곡이 김기창의 방콕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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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쉽고 그럴싸한 요리책 - 파워블로거 벨루가가 알려주는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최해정 지음 / 미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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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를 포함해서 올해 네 권쯤 요리책을 읽었다. 못먹을 요리만 나오는 레시피도 있었고 시도 불가능한 재료와 도구를 구비해야 하는 레시피도 있었고 도구도 재료도 있지만 공이 너무 들어 엄두가 안나는 레시피도 있었는데 이 책만큼 쉽고 간편하고 따라하기 좋은 레시피 책은 처음이었다. 하기야 톱니오리의 털을 벗겨 포도주에 6개월쯤 담가두는 요리법과 비교하면 뭐든 쉬울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요알못, 자취생, 신혼부부 뿐만 아니라 저학년 초딩에게 맞겨도 가능한 레시피들이 즐비하다. 기본적으로 전자렌지를 이용하는데다 시판 제품을 활용하는 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반조리 식품을 안먹으려 노력 중인지라 나는 전자렌지로 만들 수 있는 반찬들을 주로 살폈다. 십분 만에 제조 가능한 초간단 김국, 무가 익을까 의구심이 생기지만 꽁치 통조림과 함께 만드는 무조림, 메추리알 장조림과 꽈리고추무침도 전자렌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다. 내가 반찬가게 가면 꼭 사는 두가지인데 이렇게 간편할 수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돼지고기 양념볶음을 하면 기름이 튀기 마련인데 닦으면 그만이라지만 어떤 밤엔 그마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전자렌지를 이용해 보자. 재료를 모두 버무린 후 전자렌지에 3분. 골고루 섞어 다시 한번 3분. 구운 것보다 맛있을 거라고는 기대하면 안되겠지만 편한 방법이 맘에 들었다. 순두부찌개, 가지찜, 미니단호박계란찜, 콩나물 무침, 깻잎찜, 들깨강된장, 매콤두부, 베이컨숙주볶음, 새우젓호박볶음, 짜글이찌개, 감자볶음, 굴밥, 물만두국, 들깨탕, 참치덮밥 등등등 이런 반찬까지 전자렌지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다고?? 놀라 되묻게 되는 갖가지 레시피들이 있다. 분량은 딱 손바닥만한 하고 손질이 어려운 재료도 없고 양념류도 하나같이 익숙한, 기본 살림은 한다 하는 집에는 다 구비되어 있는 재료들이라 도전에 용기가 생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좋을 책. 요리가 귀찮지만 대충이라도 챙겨먹으려는 사람,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해 소소한 레시피라도 개념치 않고 주워모으는 독자가 읽으면 딱인 책이다. 바로 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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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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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해리 홀레란 사람이 누굽니까?"(p7) 한 노르웨이의 여성이 호주에서 살해당한다. 잉게르 홀테르, 이십대, 금발, 반라의 상태로 해변가에 버려진 여성을 어부들이 발견했다. 증인도 증거도 없다.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은 호주 경찰들은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형사 해리 홀레가 수사에 참여하는 걸 원하지 않고 관광 가이드인냥 원주민 수사관 앤드류 켄싱턴을 붙여준 후 조용히 놀다 가라고만 한다. 가타부타 저항없이 국장의 방을 빠져나온 해리는 쥐죽은 듯 떠날 생각이 없으므로 앤드류와 함께 죽은 피해자의 흔적을 조용조용 뒤진다. 피해자가 떨어진 절벽, 피해자가 자취하던 집, 피해자가 근무하던 바, 피해자의 연인이 기거하던 마약도시 님빈, 이후로도 차례차례 근방을 훑어오는 해리의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건 범인에 관한 증거만이 아니다. 호주 한켠에 자리잡은 뼈아픈 역사, 호주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그 중에서도 원주민을 두고 벌인 어이없는 정책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본성은 거대하고 어두운 숲과 같습니다, 국장님(p277)" 호주 정부는 1910년부터 1970년까지 백인의 피가 섞인 원주민 아이들을 원 가정에서 떼어내어 백인가정에 입양시켰다. 입양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공장과 농장의 일꾼으로 보내기도 했다. 미개한 원주민들에게서 백인에 가까운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하에 이토록 비윤리적인 행위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루어졌다는게 신기하다. 10만에 가까운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형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국가에 의해 정체성을 거세 당한 아이들은 마약을 하고 알콜중독에 빠지고 폭력을 휘두르고 감옥에 가는 것으로 소요를 일으켰는데 백인들은 혈통의 문제라며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 뒤늦게 호주 정부는 정책의 잘못을 인지한다. 원주민 복지법령은 폐지됐지만 사과나 보상, 사후처리는 없었던 듯 하고 원주민들은 호소할 길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품었다. 그들이 느끼는 혼란, 괴리, 패배감과 허탈감이 페이지마다 쏟아져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밖으로도 동성애, 마약, 매춘, 폭력이 뒤흔드는 호주 뒷골목을 해리와 탐구하고 호주의 땅에 켜켜히 쌓인 전설들을 앤드류를 통해 전달받는 동안 사건은 잉게르의 사망을 뛰어 넘어 연쇄살인사건으로 확장된다. 누구냐? 누가 여자들을 죽이는 것이냐? 용의자들을 뒤쫓으면서도 해리는 어딘가 찜찜한 마음을 씻어내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만 같은,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예감. 빨간머리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비르기타와의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면서도 사건의 얼개에서 손놓지 않는 해리, 그가 마주한 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것을 빼앗겼던 인간이 펼친 박쥐 날개와 같은 그림자 아래서 해리가 잃게 될 것은 또 무엇일까?

"어차피 언젠가는 끝나야 했다. 언젠가는 그때가 올 터였다."(p451)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작가 얀네 S. 드랑스홀트는 잠깐 요 네스뵈를 언급한다. "노르웨이 문학은 항상 심각성과 진지함과 슬픔을 담아왔다. 비평가들에게서 좋은 평을 받았거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모두 강렬함, 영혼을 파고드는 깊은 슬픔 등의 단어로 포장이 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작품 또한 어둡고 심각하며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요 네스뵈의 작품 박쥐를 만나고나니 진실로 그 말이 옳다는 걸 알게 된다. 호주의 쨍쨍한 태양 아래에서도 알코올에 쩔어 비틀비틀 걸어가는 해리 홀레의 어둡고 축축하고 으슬으슬한 기운은 씻기지를 않았으니까. 무서운 건 배경이 호주라 해리 홀레 특유의 우울함과 음습함이 그나마 덜했다는 증언들이다. 무시무시한 남자, 어떻게 이보다 더 시리고 추울 수가 있단 말인가. 2권은 핑크빛 표지에도 불구하고 제목부터가 이미 바퀴벌레다. 제목부터 비호감, 덜덜, 나 얼어죽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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