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p9)

레오는 짐을 싸고 있다. 축음기 상자였던 돼지 가죽 트렁크에 아버지의 것이었던 먼지막이 외투와 에드빈 삼촌의 니커보커 바지, 카르프 씨의 가죽각반과 피니 고모의 초록색 양모장갑,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실크 스카프와 세면도구를 담았다. 아마포로 표지를 씌운 책들도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했다, 파우스트, 바인헤버의 얇은 책과 시 선집. 가진 것을 다 꾸려도 트렁크 하나, 보퉁이 한 개 밖에 되지 않는다. 1945년 1월. 한겨울의 러시아로 향하는 독일계 루마니아 소년의 짐치고는 지나치게 단촐하다. 나치도 유대인도 수용소도 그들에겐 너무 먼 개념이었을까? 러시아의 수용소는 독일의 것과 다를 줄만 알았을까?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고있는 젊은 독일인들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징집됐다. 비슷한 소재의 책들을 숱하게 보았음에도 이 책이 남다르게 느껴졌던 건 수용소에 갇힌 이들이 그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p12)

오리나무 공원을 드나들며 남색에 빠진 소년은 이미 오래전에 구속의 두려움을 알았다. 그들이 랑데부라 말하는 관계는 교도소, 죄수수용소, 죽음으로 향하는 직행열차다. 나라가 그리고 가족들이 그를 추락시킬 터였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수용소로 향하는 길이어도 상관없었다. 동성애라는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랄지언정 전쟁과 수용소라는 단어 앞에선 오히려 차분할 수 있는 고작해야 열일곱 밖에 안된 어린애의 맹목이었다. 루마니아를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러시아의 밤. 열차의 모든 문이 열리며 작센족 남녀는 구분없이 밖으로 쏟아졌다. 바지 내렷! 자동권총의 부리 끝에서 바지끈을 풀고 단체로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수치. 얼어붙은 엉덩이와 초라해지는 오장육부와 졸졸 흘러가는 소태 소리와 설원의 들판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직면하며 소년은 러시아인들에게 끌려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쳤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배가 고프다는 것 말고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p28)

수용소에서의 삶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배고픔이다. 폭력과 추위와 강제노동과 병마와 향수를 다 합쳐도 굶주림만못하다. 내 빵보다 더 커보이는 남의 빵으로 교환하기 위해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한다. 남편에게 먹을 것을 약탈당하는 여자의 멀건 양배추 수프를 그 남편이 없을 때에 뺏어먹는다. 침대 밑에 숨겨둔 빵을 훔쳐먹은 놈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후 그 얼굴에 오줌을 눈다. 쓰레기를 뒤져 언 감자껍질을 주워먹는다. 차마 먹진 못했지만 들개를 삽으로 내려친 적도 있다. 273개의 감자를 옷속에 숨긴 채 함밤중 홀로 걸어가던 밤 레오는 기도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돼. 집으로 가는 길이야.' 레오는 배고픈 천사가 자신의 곁에 머무는 걸 느낀다. 천사의 무게가 소년보다 무거워지는 날 다른 이들이 그랬듯이 레오 또한 심장삽에서 뛰어내릴지 모른다. 죽음을 귀찮은 개처럼 쫓아버리기 위해 레오는 빵의 덫을 놓는다.

"책에는 어느 시공간에서든 저마다의 영화가 상영되는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p239)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그어진 밑줄에 책이 낙서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어느 바닥에 어느 한 문장 정도가 아니라 책 속의 모든 단어가 가슴을 두드린다. 거칠게 쾅쾅이 아니라 숨죽이며 조심조심, 감수성을 예리하게 세워야 들을 수 있는 노크다. 너는 돌아올거라는 할머니의 말 이외엔 아무 희망도 없는 독일계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 제 손으로 무너뜨린 것은 아니지만 제 민족이 무너뜨리고 약탈한 땅에서 얼은 대지를 맨손으로 파헤치고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붓고 슬래그를 굳히고 벽돌을 쌓고 벌목을 한다. 1945년 5월, 종전 선언도 이들 작센족의 노동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후로도 5년을 더 러시아 땅에 묶인 채로 삶과 죽음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실제 체험에 기대어 쓰여진 책이며 그가 머물렀던 수용소 또한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있다고 한다. 믿기지 않게도 파스티오르는 종종 수용소를 그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레오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성애자로서의 삶이 수용소의 통제 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일까? 수용소의 배고픈 입에 뜯겨나간 구멍은 종내 매워지지 않았고 레오는 여전히 침묵을 두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