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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대체 이 해리 홀레란 사람이 누굽니까?"(p7) 한 노르웨이의 여성이 호주에서 살해당한다. 잉게르 홀테르, 이십대, 금발, 반라의 상태로 해변가에 버려진 여성을 어부들이 발견했다. 증인도 증거도 없다.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은 호주 경찰들은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형사 해리 홀레가 수사에 참여하는 걸 원하지 않고 관광 가이드인냥 원주민 수사관 앤드류 켄싱턴을 붙여준 후 조용히 놀다 가라고만 한다. 가타부타 저항없이 국장의 방을 빠져나온 해리는 쥐죽은 듯 떠날 생각이 없으므로 앤드류와 함께 죽은 피해자의 흔적을 조용조용 뒤진다. 피해자가 떨어진 절벽, 피해자가 자취하던 집, 피해자가 근무하던 바, 피해자의 연인이 기거하던 마약도시 님빈, 이후로도 차례차례 근방을 훑어오는 해리의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건 범인에 관한 증거만이 아니다. 호주 한켠에 자리잡은 뼈아픈 역사, 호주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그 중에서도 원주민을 두고 벌인 어이없는 정책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본성은 거대하고 어두운 숲과 같습니다, 국장님(p277)" 호주 정부는 1910년부터 1970년까지 백인의 피가 섞인 원주민 아이들을 원 가정에서 떼어내어 백인가정에 입양시켰다. 입양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공장과 농장의 일꾼으로 보내기도 했다. 미개한 원주민들에게서 백인에 가까운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하에 이토록 비윤리적인 행위가 이토록 오랫동안 이루어졌다는게 신기하다. 10만에 가까운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형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국가에 의해 정체성을 거세 당한 아이들은 마약을 하고 알콜중독에 빠지고 폭력을 휘두르고 감옥에 가는 것으로 소요를 일으켰는데 백인들은 혈통의 문제라며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 뒤늦게 호주 정부는 정책의 잘못을 인지한다. 원주민 복지법령은 폐지됐지만 사과나 보상, 사후처리는 없었던 듯 하고 원주민들은 호소할 길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품었다. 그들이 느끼는 혼란, 괴리, 패배감과 허탈감이 페이지마다 쏟아져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밖으로도 동성애, 마약, 매춘, 폭력이 뒤흔드는 호주 뒷골목을 해리와 탐구하고 호주의 땅에 켜켜히 쌓인 전설들을 앤드류를 통해 전달받는 동안 사건은 잉게르의 사망을 뛰어 넘어 연쇄살인사건으로 확장된다. 누구냐? 누가 여자들을 죽이는 것이냐? 용의자들을 뒤쫓으면서도 해리는 어딘가 찜찜한 마음을 씻어내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만 같은,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예감. 빨간머리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비르기타와의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면서도 사건의 얼개에서 손놓지 않는 해리, 그가 마주한 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것을 빼앗겼던 인간이 펼친 박쥐 날개와 같은 그림자 아래서 해리가 잃게 될 것은 또 무엇일까?
"어차피 언젠가는 끝나야 했다. 언젠가는 그때가 올 터였다."(p451)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작가 얀네 S. 드랑스홀트는 잠깐 요 네스뵈를 언급한다. "노르웨이 문학은 항상 심각성과 진지함과 슬픔을 담아왔다. 비평가들에게서 좋은 평을 받았거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모두 강렬함, 영혼을 파고드는 깊은 슬픔 등의 단어로 포장이 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작품 또한 어둡고 심각하며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요 네스뵈의 작품 박쥐를 만나고나니 진실로 그 말이 옳다는 걸 알게 된다. 호주의 쨍쨍한 태양 아래에서도 알코올에 쩔어 비틀비틀 걸어가는 해리 홀레의 어둡고 축축하고 으슬으슬한 기운은 씻기지를 않았으니까. 무서운 건 배경이 호주라 해리 홀레 특유의 우울함과 음습함이 그나마 덜했다는 증언들이다. 무시무시한 남자, 어떻게 이보다 더 시리고 추울 수가 있단 말인가. 2권은 핑크빛 표지에도 불구하고 제목부터가 이미 바퀴벌레다. 제목부터 비호감, 덜덜, 나 얼어죽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