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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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백건대,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p95) 줄거리가 있는 소설이 아니다. 천희란의 <자동 피아노>는 오로지 죽음을 이야기 한다. 소설에는 내내 죽음 밖에 없다. 죽고 싶다,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왜 죽지 못할까, 어째서 죽음에 실패할까. 어떤 이야기로 흘러도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죽음만을 떠올리는 이야기이며 죽음을 뒤쫓다가 죽음에 쫓기다가 아침이 밝은 줄도 모르고 뒤척이는 이야기다. 죽지 않고 살아서, 살고 있어서, 살 수 밖에 없어서 죽음 말고는 말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당신은 볼 수 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여기에 있다. 과잉의 고통이 있다." (p119) 당신을 무엇을 보았는가(p95) 작가가 독자에게 묻는다. 여기에서 나를 찢어도 좋다(p97)고 말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고 어떻게 보면 성의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책이니까. 단 하나의 사건도 없이 의식의 흐름만으로 죽음을 쫓는 소설이 죽음만을 감각하게 하는 소설이 독자에게 당혹스러울 수 있음을 알아줘서 다행이다. 독자인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 삼았던 것만은 아니로구나 느지막히 안심도 한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도중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삶"(p135) 매순간 죽음만을 생각하는 삶이라는 게 잘 상상이 안간다. 뾰족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은 심장을 찌르는 가시가 저절로 자라나 내내 피 흘리기도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그걸 한 권의 책으로 소화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 십여 년을 자살 사고에 시달린 작가의 고백 앞에 마음이 묵직해졌다. 지난 봄 문득 죽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백 앞엔 안심이 됐고. 이 밤 한잠도 깨지 않고 잠들었다가 거울 속 어떤 그림자도 보지 않은 채 세수를 하고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며 완벽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를 들은 후 이번엔 생을 감각했던 그 봄의 이야기를 써주시면 좋겠다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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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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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2018.1.3. 02:51 :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떠돌게 내버려둬야 한다."(p9-10)

2018년 1월 3일부터 2018년 3월 24일까지. 새해가 시작하고 아마도 의기양양 블로그를 시작했을 등단을 꿈꾸는 한 학생이 블로그에 올린 습작물의 형태를 띄고 있다. 어떤 날은 일기 같고 어떤 날은 소설 같고 어떤 날은 기사를 옮겨 붙이기 한 것 같은 게시글들이 연속된다. 글의 성격을 잘 구분 짓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가 이웃이 되어 아마 댓글도 달았던 것 같다. 글에 등장하는 시인 이성복이 우리가 아는 그 분 맞아요? 아니라면 이 글 내려주세요. 오해하잖아요. 출간된 책을 두고 작가의 피드백을 받기는 어려운데 블로그에 올라온 게시글은 좀 다르다. 피드백도 금방금방. 작가는 "1. 글에 등장하는 이성복은 실제 시인 이성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이런 걸 굳이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3. 관련이 있다 한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4. 이제 그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p111)라고 공지를 띄운다. 급 궁금해진다. 이 블로그의 방문객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 밑에 댓글은 몇 개쯤 달렸을까? 댓글의 내용은 어땠을까? 블로그로 보면 종이책과 느낌이 좀 달랐을까? 좀... 덜 난해했으려나??

이것은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이고.(p9)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시인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 에이치에게 자정 넘어 셀카를 찍어 보내고 술을 먹자고 꾀어내고 허접한 그녀 작품에 말도 안되는 찬사를 날린다. 누가 봐도 자고 싶어서 그러는건데 본인만 모르는 줄 안다. 알아도 아무 상관없던지. "나"는 나이 먹고 헛짓거리 좀 하지 말라고 했다가 시인과 몸싸움을 벌일 뻔 한다. 에이치는 두 달 사귀었던 남친에게 스토킹도 당하는 중인데 소설 첫머리에 있었던 "이것은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이고" 는 이 부분을 말하는걸까? 남자가 자기 입으로 한남 한남 거리는 건 비꼬기인가 자기비하인가? 희롱이나 추행도 혐오의 일환에 속하는건가? 궁금하고 갑갑하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누가 밑줄 쫙쫙 그어가며 설명 좀 해줬으면 싶다.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p9), 라는 부분은 다행히 곧장 알 수 있다. 습작물의 제목이 야간 경비원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적별색 빌딩 서울스퀘어에서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의 아시아지부장인 조지(훈)과 건물에 입주한 벤츠 코리아에 여자친구가 있는 송 주임과 함께 근무 중이다. 투명인간이라는 경비원의 현실과 정규직이라는 경비원의 비현실 속에서 가능성 없는 미래 '에콜42 입학 + 등단 + 사랑 + 떼돈'을 꿈꾸다 꿈꾸는 것에 지쳐서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가 "임의로 꿈이라고 치는 이야기의 문을 닫고 나와"(p128) 오늘을 산다. 미치지 않고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감방에 가지 않는 방법은 그뿐인 것 같으니까. 도피도 물론 한 방편이겠으나 그건 정지돈이 아닌 박솔뫼의 이야기다. 얘기 같다. 실은 잘 모르겠다. 내게는 이 소설이 읽으라고 주어진 글이 아니라 깨어진 퍼즐처럼 한번 맞춰보라고 내밀어진 그림 같았다. 매일 밤 도로 위에 떠도는 그림자는 어디있지? 가난은?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얘기지? 어디서 다 끝났을까? 무엇이 돈 때문일까? 실현은 어디 있고 하는 건 뭘까? 소설 첫단락을 힌트 삼아 키워드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꿰고 주워 담는다.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밑줄을 그으며 쓰는 일에도 읽는 일에도 이해하는 일에도 점수를 매기지 말고 잠깐 묵혀 보자 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그림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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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명화 플레이북 - 불멸의 명화로 경험하는 세상 모든 종이 놀이 명화 플레이북 시리즈 1
오르세 미술관.에디씨옹 꾸흐뜨 에 롱그 편집팀 지음, 이하임 옮김, 이자벨 시믈레 디자인 / 이덴슬리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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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릴 적엔 문방구나 동네 작은 구멍 가게에서 종이 인형을 팔았는데 요즘은 아예 책처럼 나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르세 미술관 명화 플레이북도 그런 종이 놀이 세트 도서입니다. 표지 속 멋쟁이 신사들 옷에 어깨걸이(?)가 보이시나요? 그 시절에는 공주님 드레스가 한껏 유행이었는데 이 책에는 명화 속 의상들이 남여 가리지 않고 종이 인형으로 비치되어 있어요. 책 소개에 따르면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말에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 만들어진 회화, 조각, 사진, 가구 등 다양한 프랑스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인데요.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아주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 명화 플레이북에도 그 시대 예술가들이 화폭에 옮겨놓은 일상의 모습들이 한가득 담겨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즐거웠어요.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딱 이랬겠지요? 명화 플레이북 속 처음 만나는 그림은 루브르 백화점입니다. 실크, 맞춤 와이셔츠, 사냥복, 부인복, 머리장식품, 기성 원피스, 코트, 각종 모자들을 보며 쇼윈도 안에 따라 그릴 수 있는 칸이 만들어져 있구요. 각 인물들에게 어울리는 품목들을 연결시키는 미로찾기도 있습니다. 인상주의 스타일로 남자를 직접 그려볼 수도 있구요. 무도회를 그린 명화를 보고 판화에 색칠하는 것도 가능해요. 마네의 그림 속 여성에게 안성맞춤인 드레스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점선을 따라 오린 후 인형 놀이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처럼 패턴을 만들기도 하구요. 다른 그림 찾기 같은 게임도 실려있네요. 퍼즐조각 맞추기와 종이관절인형은 있을거라고 상상도 못한 항목이라 가위를 데기 아까워 여태 손을 못댔답니다. 실은 다른 많은 인형들도 책에서 오려내려니 마음이 아파서 또 잘못 오려서 책을 망칠까봐 걱정이 되어 눈으로 구경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제 기준 가장 만만한 건 점선 잇기! 이건 손재주 없는 사람도 별 부담없이 슥슥 할 수 있는 놀이라 편안하더라구요.

종이로 할 수 있는 각종 다양한 놀이를 명화와 함께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같구요. 무엇보다 예뻐서 그냥 바라만 봐도 좋아요.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르누아르, 제임스 티소, 장 베로, 에드가 드가의 작품들을 내 손으로 오리고 그리고 입히는 즐거움! 아이들과 함께 하면 더 재미난 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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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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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p9)

대지진, 허리케인, 핵 누출, 경제 재앙, 쓰나미, 대홍수, 화산폭발, 시위. 전세계 이곳저곳에서 발생하는 재난이 축복인 회사가 있다. "정글", 타인의 불행 정도가 아니라 한 지역구 한 국가의 불행을 여행 상품으로 만드는 회사다. 십 년 째 정글에서 근무 중인 수석 프로그래머 요나는 그러나 대지진도 쓰나미도 신경쓸 겨를이 없다. 오죽하면 별명까지 김좆광인 팀장놈이 요나의 엉덩이를 주물럭대는 것으로 삶을 밑바닥부터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이 늘 퇴물만을 성추행 한다는 사실은 회사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요나는 자신에게도 퇴물이라는 옐로카드가 붙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추행을 당했다는 충격에 앞서 퇴물로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감정을 지배했다. 김 팀장의 피해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설 때 요나가 그들을 피한 것도 그 때문이다. 추레한 패배자로 낙인 찍히는 수치를 감당하지 않겠다는, 이제와 회사 밖에서 삶을 재정립할 자신도 없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내려온 한달여의 휴가. 퇴사를 언급한 그녀에게 내려진 휴가 결정이 요나는 회사의 인정처럼 느껴져 안심이 된다. 출장 명목의 휴가에서 요나는 무이를 선택한다. 카누족과 운다족의 학살, 이제는 호수가 된 사막의 싱크홀, 무엇보다 프로그램 중 가장 값비싼 여행이라는 것이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요나는 곪아터지기 직전의 현실을 이 여행으로 떨쳐낼 수 있을까?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p122)

일견 잔인하게도 느껴지는 재난 여행의 목적은 분명하다. "충격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내 삶에 대한 감사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p61) 무이에서의 5박 6일 일정도 그 목적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음주와 숙취로 요나가 비행기를 놓치고 여권도 잃어버린 채 떠났던 무이로 돌아오지만 않았다면, 가이드와 제대로 연락이 닿았다면, 도움을 구하기 위해 전화한 대상이 김 팀장이 아니었다면, 요나는 이상한 나라와도 같은 무이의 재난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발 좀. 우리도 휴일은 필요하다고."(p9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루밤도 안되는 시간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무이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해있었다. 재난으로 두 다리를 잃은 아코디언 연주자가 멀쩡히 서서 골프를 치고 있다.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관광객을 엄마로 착각한다던 여자애는 해맑게 놀다가 요나를 보고 달아난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수상가옥을 관광객들의 홈스테이로 제공하던 슬프고도 억척스러운 삶의 여자는 멀쩡히 대문 달린 집 안에서 텔레비젼을 시청 중이다. 정글의 프로그램 개발자인 요나조차 놀라버린 재난 테마파크의 다양한 풍경들이 나는 이 소설의 핵심인 줄 알았다.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남은 페이지가 너무 많은 것에 의아해하다 폴사의 노란트럭이 노인을 치는 장면을 마주한다. 트럭은 쓰러진 노인을 다시 타 넘어간다. 요나가 그 모습을 목격했고 운전자의 일행은 그런 요나를 목격한다.

"북상하는 것. 저기압, 장마,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파업, 쓰레기, 이야기."(223)

무이는 재난체험센터가 아니었다. 놀이공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아닐 예정이다. 사람들의 흥미로부터 완전히 멀어져버린 옛 재난을 버리고 더 큰 재난으로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무이의 음모를 마주한 요나. 요나 앞에 갈래길이 나타났다. 떠나거나 무이의 새 재난 프로그램에 몸담고 정글에서 기상회생 하거나.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원하는 결말이 뭔지 알지 못했는데 결말을 보고서 이게 내가 딱 바랬던 결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 안에서도 문 밖에서도 정글을 마주하는 쓸쓸하고 서글픈 인간군상, 나는 그들을 동정하는 이상으로 분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윤고은의 채찍 같은 결말이 이토록 아픈 것은 내가 그 군상의 일원이어서일테고. 이제까지 만난 모든 재난물들과 다른 결로 율동하는 소설이다. 인생이란 재난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독자라면 요나의 험난한 여정 앞에 이기적이지만 충분한 위안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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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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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시가 로흐두로 돌아왔다!! 시노선에서 외지인의 죽음을 해결한 공로로 새하얀 신형 랜드로바까지 받고 로흐두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할 해미시의 마음에 먹구름이 끼었다. 해미시에게 이 정도의 좌절감을 안기는 건 세상에 딱 하나 뿐이다.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 해미시 맥베스가 짝사랑 하는 지주의 딸, 그녀는 해미시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연애라도 할 생각인지 이번에도 새 애인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일주일째 해미시에게 연락하는 걸 까먹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늘, 해미시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한 채 성으로 무작정 찾아가 보기로 한다. 사랑에 빠져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것만 같아 보이는)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의 모습이라니. 오, 맙소사! 3권까지만 해도 프리실라를 응원했지만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해미시가 제니 러브라이스와 함께 있는 모습에 질투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또 다른 남자냔 말이다. 전형적인 나 가지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까운 남자가 되어 버린 해미시에게 동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의 사랑이 차츰차츰 색깔을 달리하는 게 용납이 되다 못해 프리실라가 큰 코 다쳤으면 좋겠다는 게 지금 내 솔직한 심정이다.

아차, 추리 소설인데 너무 연애 얘기만 했다. 피해자를 소개한다. 이번 사건에서 죽은 사람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외지인이다. 트릭시 토머스. 모기와 각다귀, 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로흐두의 여름 한가운데로 트럭을 몰고 온 40대의 건강한 여성이다. 시노선만큼은 아니라해도 외지인에게 마냥 개방적인 로흐두가 아닌데 어쩐 일인지 거의 모든 여자들이 트릭시 앞에서 흐물흐물 해진다. 직업이 없어서 실업급여를 받고 있고 가난해서 가구 살 돈도 없다는 이 여인은 주부로서의 삶에 아무 보람도 느끼지 못하던 마을 부인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안정, 목표를 제시한다. 금연, 민들레 커피나 뮤즐리 같은 건강식, 조류 보호 운동 같은 투쟁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말이다. 부인들은 트릭시의 옷차림, 트릭시의 살림법, 트릭시의 식단에 환호하며 너나할 것 없이 그녀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트릭시는 아첨하는 말로 가난을 홍보하며 그녀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고가구들을 공짜로 얻어 간다. 로흐두의 남자들은 급변하는 식사와 금연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차라리 트릭시가 죽어버리기를 바라고 완벽한 가정주부를 꿈꾸는 부인들은 그런 남편과 적대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런 와중에 비소에 살해 당한 트릭시. 아내들은 남편을 의심하고 로흐두에는 흉흉한 바람이 불어닥친다.

트릭시는 겉보기만큼 완벽한 가정주부였을까? 트릭시가 공짜로 얻어간 가구들은 어디를 가고 조립가구들이 민박집을 가득 채웠을가? 재수없는 여자기는 했지만 살해 당할만큼 나빠보이지는 않았는데 대체 누구의 손에 죽임을 당한 걸까? 트릭시의 무기력한 남편 폴 토머스? 게으르고 서투른 살림 솜씨의 아내를 사랑했던 의사 존 브로디? 트릭시에게 공짜 물고기를 건냈다가 온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어부 아치 매클래인? 트릭시의 조류 보호 운동 덕분에 땅을 놀리게 된 농장주 이언 건? 이혼 변호사들이 로흐두를 점령하기 전에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해! 의무감에 불타는 해미시는 오늘도 달린다!! 그때까지 프리실라 넌 잠깐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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