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야간 경비원의 일기 2018.1.3. 02:51 :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떠돌게 내버려둬야 한다."(p9-10)

2018년 1월 3일부터 2018년 3월 24일까지. 새해가 시작하고 아마도 의기양양 블로그를 시작했을 등단을 꿈꾸는 한 학생이 블로그에 올린 습작물의 형태를 띄고 있다. 어떤 날은 일기 같고 어떤 날은 소설 같고 어떤 날은 기사를 옮겨 붙이기 한 것 같은 게시글들이 연속된다. 글의 성격을 잘 구분 짓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가 이웃이 되어 아마 댓글도 달았던 것 같다. 글에 등장하는 시인 이성복이 우리가 아는 그 분 맞아요? 아니라면 이 글 내려주세요. 오해하잖아요. 출간된 책을 두고 작가의 피드백을 받기는 어려운데 블로그에 올라온 게시글은 좀 다르다. 피드백도 금방금방. 작가는 "1. 글에 등장하는 이성복은 실제 시인 이성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이런 걸 굳이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3. 관련이 있다 한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4. 이제 그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p111)라고 공지를 띄운다. 급 궁금해진다. 이 블로그의 방문객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 밑에 댓글은 몇 개쯤 달렸을까? 댓글의 내용은 어땠을까? 블로그로 보면 종이책과 느낌이 좀 달랐을까? 좀... 덜 난해했으려나??

이것은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이고.(p9)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시인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 에이치에게 자정 넘어 셀카를 찍어 보내고 술을 먹자고 꾀어내고 허접한 그녀 작품에 말도 안되는 찬사를 날린다. 누가 봐도 자고 싶어서 그러는건데 본인만 모르는 줄 안다. 알아도 아무 상관없던지. "나"는 나이 먹고 헛짓거리 좀 하지 말라고 했다가 시인과 몸싸움을 벌일 뻔 한다. 에이치는 두 달 사귀었던 남친에게 스토킹도 당하는 중인데 소설 첫머리에 있었던 "이것은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이고" 는 이 부분을 말하는걸까? 남자가 자기 입으로 한남 한남 거리는 건 비꼬기인가 자기비하인가? 희롱이나 추행도 혐오의 일환에 속하는건가? 궁금하고 갑갑하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누가 밑줄 쫙쫙 그어가며 설명 좀 해줬으면 싶다.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p9), 라는 부분은 다행히 곧장 알 수 있다. 습작물의 제목이 야간 경비원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적별색 빌딩 서울스퀘어에서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의 아시아지부장인 조지(훈)과 건물에 입주한 벤츠 코리아에 여자친구가 있는 송 주임과 함께 근무 중이다. 투명인간이라는 경비원의 현실과 정규직이라는 경비원의 비현실 속에서 가능성 없는 미래 '에콜42 입학 + 등단 + 사랑 + 떼돈'을 꿈꾸다 꿈꾸는 것에 지쳐서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가 "임의로 꿈이라고 치는 이야기의 문을 닫고 나와"(p128) 오늘을 산다. 미치지 않고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감방에 가지 않는 방법은 그뿐인 것 같으니까. 도피도 물론 한 방편이겠으나 그건 정지돈이 아닌 박솔뫼의 이야기다. 얘기 같다. 실은 잘 모르겠다. 내게는 이 소설이 읽으라고 주어진 글이 아니라 깨어진 퍼즐처럼 한번 맞춰보라고 내밀어진 그림 같았다. 매일 밤 도로 위에 떠도는 그림자는 어디있지? 가난은? 어떻게 아무 것도 아닌 얘기지? 어디서 다 끝났을까? 무엇이 돈 때문일까? 실현은 어디 있고 하는 건 뭘까? 소설 첫단락을 힌트 삼아 키워드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꿰고 주워 담는다.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밑줄을 그으며 쓰는 일에도 읽는 일에도 이해하는 일에도 점수를 매기지 말고 잠깐 묵혀 보자 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그림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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