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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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1196. 5권에 들어가기에 앞서 페이지부터 확인했다. 과업을 완성한 헤라클레스의 기쁨만은 못하더라도 내 나름 5월 독서의 가장 큰 목표였던 그리스 로마 신화 완독을 코앞에 두고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드디어! 오늘! 마침표를 찍는구나 싶어서. 아침 일찍 눈을 떠 책을 읽으면서도 5권을 읽을 동안은 피곤을 몰랐다. 펠리온산에서 15년 간이나 활쏘기와 수금, 배 짓는 법, 뱃길 짐작하는 법, 쟁기질하는 법을 익히고 하산한 이아손도 아나우로스강 변에서는 나처럼 피곤을 몰랐으리라. 그 기분, 노파로 분장한 헤라의 엄청난 몸무게에 금방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 (역사가 아니라 신화이기에 시대 추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왠지 이 숫자 마음에 든다.) 그리스 북부의 야트막한 강변에 한 청년이 우뚝 섰다. 그 이름 이아손. 이올코스의 왕 아이손의 아들이다. 왕자가 어찌해 켄타우로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산에 숨어 살았는가. 아비는 무능하고 삼촌은 찬탈자라 불리며 왕위에 올랐을만큼 야욕이 넘쳤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무정한 이복 아우 손에 죽을까 그 부모가 일찌감치 어린 것을 빼돌린 탓이다. 말 탈 팔자가 아니라던 스승의 말이 꼭 들어맞아 이아손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배를 만든다.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흑해를 가로질러 머나먼 콜키스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를 피신시킨 금양의 가죽을 찾아 모험을 시작한 아르고 원정대.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헬라클레스와 50인의 영웅과 함께 떠난 이아손의 항해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다. 이아손을 사랑해 조국과 아버지와 형제를 버린 메데이아와 그녀가 당한 배신과 종말의 비극도 빼놓아서는 안되겠다.

 

사실 5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매 권의 처음에 등장하는 말머리가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5권의 들어가는 말은 유독 좋았다. 어떻게해서 이윤기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쓰기 시작했는지 그 여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작가가 쏜 화살에 제대로 맞은 독자로써 마냥 뿌듯해진 탓이다 . "나는 내 연하의 독자들을 향하여, 특히 좌절을 자주 경험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활을 겨누듯이 겨냥하고 쓴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p1033) 쉼플레가데스는 두 개의 충돌하는 바위섬이다. 두 개의 섬은 싸늘한 역풍과 물보라를 몰아 지나가는 배를 향해 맞부딪힌다. 이아손은 흰 비둘기를 날린 후 그를 쫓아 바위 사이를 지난다. 아르고호가 바위 사이를 지나고부터는 바위는 더는 배들을 부수지 않았다. 5월의 내게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수월하게 건너게 하는 한 마리 비둘기였다.

 

5월 7일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25일까지 끌고 오면서 참 징하게도 오래 읽는다고 생각했다. 주말이 없는 달이라 책 읽을 짬을 새벽에 겨우 내는 터라 속도는 더디고 피곤도 했다. 2000년에 1권이 출간되고 그로부터 10년 후 5권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런 생각이 쑤욱 들어갔다. 5권 분량이 유난히 작아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페이지가 줄수록 어라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데 걱정이 됐다. 아버지 페레우스로부터 받은 물푸레나무 창, 갑옷, 영원히 죽지 않는 말 크산토스와 발리우스를 타고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없었다. 아테네 최고의 영웅 테세우스는 독자를 놀리듯 간만 보고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도 안했다. 그런데 책이 끝났다. 잘 따라오느냐고 묻고 또 묻다 날빛 아래 채 나오기도 전에 에우뤼디케를 뒤돌아보고 말았던, 그리하여 저승에 또다시 아내를 빼앗기고 홀로 남겨진 오르페우스가 된 기분이었다. 혼란한 마음에 다 늦게서야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찾아 보고 연유를 확인했다. 2010년 8월에 선생님이 별세하셨단다. 이후 유족들이 짐을 정리하다가 이 원고가 든 파일을 발견했고 5권은 그로부터 한달 후인 9월에 출간되었다고. 서문의 글귀는 더욱 애달프고 5권의 마지막을 장식한 머물지 않는 영웅과 떠도는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에 대한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앞소리꾼이 불러주는대로 듣고 따르며 신화라는 바퀴를 굴렸는데 다 돌아보기도 전에 바퀴가 멈춰버렸다. 어느 날엔가는 나 혼자서도 신화 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닌데. 더 이어지지 못한 페이지가 아쉽고 그럼에도 1천쪽 신화의 바다를 누빌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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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캔디캔디 2020-05-31 22:39   좋아요 1 | URL
두께 정말 장난없쥬? ㅎㅎ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넘 재미나서 읽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더라구요.
벌써 이십년도 전에 출간된 책인데 신화책이라서 그런가요 아니면 작가님의 감각 탓인가요.
이십년 간극이 1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잼나게 읽으세요 딸기홀릭님~
 
초판본 작은 아씨들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디럭스 티파니 민트 에디션) - 합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박지선 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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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소녀들을 좋아한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비밀의 화원 메리, 소문난 천방지축 말괄량이 삐삐까지. 앨리스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읽은 책이라 앞서의 소녀들만큼은 내 마음 속에 자리잡지 못했다. 그때 그 시절 소녀들의 최애책이랄 수 있는 작은 아씨들은? 아뿔싸 어른이 되어서도 완독을 못하고 있는 책 중에 하나였다. 왜? 어째서?? 이유를 모르면서 막연히, 계속해 이 책을 멀리했다. 더스토리에서 출간된 민트색 초판본 그것도 은장!! 한정 에디션이 아니었다면 아마 여태까지도 이유를 몰랐을테다.

학급문고에서 도서관에서 몇번씩 작은 아씨들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책을 못만나서 못읽었던 게 아니다. 그때마다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책을 접었다. 도대체 작은 아씨들을 왜 완독하지 못했을까? 여태까지는 재미가 없었나보지, 취향이 아니었나봐 정도로 추측했다. 처음으로 작은 아씨들을 제대로 읽었고 그래서 알게 됐다. 어린 내가 네 자매를 부러워했었다는 걸. 가만 생각하면 앤도 주디도 메리, 삐삐까지도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힘들었던 내게는 그래서 철없게도 때때로 고아인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나는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노래하는 딸들과 든든한 품을 내어주는 존경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세상 어떤 동화보다 판타지 같았겠지. 아주 부럽고 못견디게 질투가 나고 세상에 이렇게 화목한 가정이 어딨냐고 부정하고 싶었을 거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는 웃으면서 그 시절을 상기한다. 배아파서 못읽겠다는 마음 없이 아주아주 재미있어서 페이지를 술술 넘겨가며 이렇게 복 받은 아이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어떤 책들을 어릴 때 만나지 못한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는데 이 책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 만나 더 좋았던 것 같다. 1, 2권 합본이라 작은 아씨들의 소녀 시절뿐만 아니라 연애시절, 결혼시절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더 그렇다.

읽지는 않았어도 자매들의 성격과 줄거리엔 벌써부터 빠삭했던 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매들 중 가장 말괄량이라는 조를 사랑하게 되겠지? 금발머리에 예쁘고 허영심이 많고 무엇보다 조의 소설을 불태웠다는 그리하여 언젠가는 조의 남자(라고 오해했다 ㅋㅋ)를 빼앗아간다는 에이미는 아주 꼴도 보기 싫을 거야. 편견을 어마무시하게 불태우며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조는 불뚝성질에 말본새가 예쁘지 않은 왈가닥 고집쟁이처럼 읽혔고 에이미는 마냥 부럽기만 한 금손의 재주꾼, 현실적이고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삶을 즐겁게 차곡차곡 넓혀가는 똑순이처럼 읽혔다. 내가 딸을 낳는다면 조보다는 에이미 같은 성격으로 자라기를 바랄 것 같애. 조는 완전 헛똑똑이. 홀로 외톨박이처럼 다락에 올라 외로움에 울고 쿠션을 적실 때는 왜 그리 속상하던지. 베어 교수와의 나이 차이 때문에 둘을 반대하는 마음이었지만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고 눈물 방울에서 무지개를 보는 장면에서 풋ㅡ웃음이 터지며 더는 반대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훗날 플럼필드에 학교를 세우는 두 사람이 그 시절 나의 소녀 중 한명인 왈가닥 작은 아씨 애니를 키우게 된다는 걸 아니까 더더욱 미워할 수가 없었다. 1권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다 병이 났던 베스는 2권에서 천사 같은 얼굴로 가족의 품을 떠난다. 네 자매가 다 건강하게 자라 가정을 꾸렸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훌쩍훌쩍 울었다. 유럽 여행을 자그마치 삼년이나 간 에이미와 할머니들의 여행 스케일엔 깜짝 놀라고 메그의 신혼생활과 사랑스런 쌍둥이들 얘기에 빵빵 터지면서 읽다 보니 어느 새 세 자매가 전부 애엄마가 되어있더라는 거. 책을 읽는 내내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마치 부인의 마지막 말로 리뷰도 끝을 내보련다. "우리 딸들, 너희들은 앞으로 얼마나 살든 지금만큼만 행복하면 소원이 없겠다!"(p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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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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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0주년,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기리기 위해 다섯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특별판이 출간됐다. 이름하야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 합본판".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들뜨기 시작한 마음은 거대하고 근사한 책을 직접 확인하며 팡 하고 터지는가 싶더니 매일의 아침독서로 함께 하며 깊게 정들고 있다. 언제 다 읽지 걱정하던게 무색하게 1196 페이지의 책이 점점 줄어가는데서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이 안되고 이윤기 선생님의 해석으로 만나니 익숙한 신화마저 새롭게 흥미진진하다. 합본판이지만 기존 시리즈의 권수와 차례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어서 권마다 리뷰를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섯 권 읽은 것으로 완독수를 표기하지는 못하겠지만 ㅎㅎ

1권 총 277 페이지에 해당하는 내용의 주제어는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다. 나는 여태까지 "이력서"의 한자가 뜻한 바를 몰랐다. 궁금하다고 찾아본 적도 없다. 내가 썼던 이력서의 양식에 한자가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하면 안되겠지? 주제어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아손의 가죽신 한짝이나 16세 소년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가기 전 무거운 섬돌을 들어 칼과 가죽신을 찾았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력서의 履(이)가 신발을 뜻하고 이력서가 "신발을 끌고 온 역사의 기록",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가 기록함"(p38)의 의미를 지녔다는 거였다. 제출할 곳도 없는데 뜬금 이력서 쓰고 싶어지는 이유는 뭔지. 꼴보기 싫다고만 생각했던 서류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신들의 이력서를 내가 대신 채워보리라는 엉뚱한 각오도 다졌다.

카오스, 혼돈으로 온통 먹먹하고 펑퍼짐했던 온 우주와 온 땅에서 자연이라는 신이 출연하고 어둠과 밤이 탄생하고 하늘과 땅이 떨어지며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진 신세계에서 우리의 신들이 노닌다. 사랑의 신 에로스 이전에 밤의 여신 뉙스가 낳은 거대한 알에서 태어난 그리움의 신 에로스가 있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생산하는 신 에로스는 이 땅에 살아갈 온갖 것들을 낳는데 인간이 밤에 잉태되는 것 또한 모두 이런 에로스 덕분이란다. 저승 주위에 강이 흐르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인가? 제우스와 신들이 티탄과 전쟁을 벌인 탓이다. 하데스의 손에 주석 사슬로 묶인 티탄들은 무한 지옥 타르타로스에 갇히지만 이에 안심하지 못한 제우스는 포세이돈에 명해 강을 저승 주위로 흐르게 한다. 포세이돈이 나선 김에 저승으로 바닷길이 열렸어도 좋았을텐데. 그랬으면 짠 망각의 물을 거부하는 혼령들로 저승이 소란스러웠을까? 왕뱀인 남편 퓌톤을 아폴론의 손에 잃은 왕뱀 아내 퓌티아를 인간으로 변신시킨 제우스는 그녀를 아폴론의 예언 사제로 만든다. 하여간에 배려라곤 모르는 신이다. 술의 신 뒤오니소스가 자란 뉘사산이 힌두스(인도) 땅에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의외로 이집트와 인도와 바빌로니아의 색이 섞여있는 경우가 있다. 저승왕 하데스의 별명인 플루토스에는 넉넉하게 하는 자, 뱃사공 카론의 이름에는 기쁨이란 뜻이 있단다. 그리스 사람들의 작명 센스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권을 끝내며 나오는 말에 앞서 작가는 리바디아를 방문했을 적의 추억 한자락을 꺼낸다. 트로포니오스의 신탁을 받기 위해 마셔야하는 샘물에 대한 이야기다. 레테의 샘물 = 망각의 샘물, 바로 옆에서 솟는 므네모쉬네의 샘물 = 기억의 샘물을 구경하는 중에 시내의 이름이 궁금해 지나가는 그리스인에게 물었더니 그가 짤막하게 대답했단다. "라이프(인생)." 나는 트로포니오스의 샘물 얘기를 듣자마자 이것이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본질이구나 싶었다. 읽을 때는 다 알 것고 다 외운 것 같은데 덮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고 가물가물해지는 신들의 이야기. 특히 이름들을 벌써 까먹어가고 있다. 신들의 이력서를 대필하기엔 아직 너무 부족해! 부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196 페이지를 완독할 즈음엔 부족함 없는 이력서들로 신들의 발자욱을 내 안에 기록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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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 평범한 여자의 두메산골 살림 일기
야마토 게이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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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집순이조차 집에 있는 게 갑갑할 즈음 출간된 책이다. 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6월부터 10월 초까지 깊은 산 야쿠시자와 산장에서 산장지기 생활을 하는 작가 야마토 게이코의 일상을 담았다. 29살 때 접한 산장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자그마치 12년이나 지속 중인 시즌제 산장 생활. 도대체 그 산장엔 무슨 매력이 넘치길래 컴퓨터도 안되고, 휴대폰도 못쓰고, 목욕은 일주일에 두 번, 밤 9시면 소등으로 강제 취침에, 자칫 문에 얼굴이 닿기도 하는 화장실을 쓰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드는걸까? 좀이 쓸까 걱정될 정도로 집 붙박이 아니 침대 붙박이인 나인데 호기심에 가득차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페이지를 펼친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미술 조형가인 작가가 직접 그린 산장 안팎의 풍경들이 소리친다. 어서와, 산장 일은 처음이지?

 

산 밑 평지에 더위가 찾아올 무렵이면 시작되는 산장 생활은 꼼꼼한 소지품 점검이 필수다. 작가는 개인 소지품 재고표까지 만들어 관리 중인데 석 달 하고도 반, 쇼핑을 일절 할 수 없는 환경이라서 양말이나 속옷은 필히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 산 생활에 양말과 속옷은 의외로 구멍이 잘나서 자칫 두 장 남은 속옷을 돌려입기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 년만에 문을 연 산장이 깨끗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담비와 쥐, 하다 못해 반달가슴곰까지 생존 중인 북알프스의 산장은 문을 닫는 겨울에 야생동물들이 때려부수고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기 일쑤니까. 오줌분말과 똥, 썩어문드러진채 널부러진 비축 식량의 잔해는 때때로 구토를 유발한다. 가끔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들이 산에 들어와 직업을 찾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이것이 사실은 아주 큰 착각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산이기에 앞서 산장은 폐쇄된 직장이다. 꼴보기 싫은 상사를 퇴근도 못하고 한 집에서 석달 내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캄캄한 앞날과 구만리 눈물을 쉬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쯧쯧, 생각보다 이거 낭만적이지는 않은걸 싶을 즈음에는 달콤한 이야기들도 하나씩 등장한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 맥주 짐짝을 나르다가 흥에 겨워 시작하는 맥주 파티, 시즌 중 단 세 차례만 방문하는 수송 헬기 소동, 산장 지붕에 핀 이불꽃, 장작으로 데우는 가마솥 목욕, 손님들이 가져오는 맛있거나 멋있는 선물들, 무엇보다 산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작가는 산장 생활이 여행 같다고 한다.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시즌이 되면 번갈아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 찾아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도 어려움도 고생스러움도 있었을텐데 시즌이 다하고 산 밑으로 내려오면 좋았던 일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글 몇 줄로 산사람들의 삶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12년간 쌓아온 작가의 알뜰한 추억들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 곧 있으면 야쿠시자와 산장이 문을 열겠구나. 작가님이 짐을 꾸리겠네. 올해는 또 무슨 일들을 겪으시려나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올 여름의 산장 생활도 부디 건강하고 즐거우셨으면. 내 여름도 마땅히 활기차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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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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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발칵 뒤집은 희대의 공룡 밀수 사건 추적기!! 라고 하는데 공룡도 모르고 시사에도 약한 나는 그래서 넌 뉴규? 하며 읽은 책이다. 공룡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공룡 사냥꾼 에릭 프로코피.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497 페이지의 책을 며칠에 걸쳐 읽은 지금도 에릭 프로코피였는지 프롤콜피였는지 프롤코피였는지 프록코피였는지 프록콜피였는지 헷갈려서 책을 다시 펼쳤다. 왜인지 프롤콜피가 입에 쫙쫙 붙었는데 프로코피였구나;;; 이 책의 주인공인 (그러나 비중은 얼마 안되는) 에릭 프로코피는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를 뉴욕시 경매에 내놓았다가 몽골 대통령 엘베그도르지의 긴급 호소문에 의해 뉴스에 이름을 올리고 곧 밀수 분쟁에 휘말린다. 평범한 공룡 사냥꾼(?)이 하루 아침에 무덤 도굴꾼, 탐욕스러운 악당, 과학의 파괴자로 손가락질 받으며 100만 달러의 벌금과 최대 17년의 징역형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에 처한 소식이 작가 페이지 윌리엄스의 영감을 자극한다. 페이지는 에릭이 화석을 발견하고, 화석을 좋아하고, 화석을 발굴하고, 화석을 수집하고, 화석을 소규모로 판매하고, 화석을 공부하고, 화석을 구매하고, 화석을 조립하고, 화석을 대규모로 판매하고, 드디어 재판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화석이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어디어디에 화석이 많고, 누구에 의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고, 어디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며, 어떤 사람들이 공룡 사냥 내지는 연구라는 모험에 뛰어들며고,누가누가 매물에 손을 대며, 어떤 사람들이 이 방면에 이름을 남겼고 또 계속해 떨치고 있는지, 누가 피해를 입고, 어떤 나라가 무슨 용무로 화석 위에 국기를 꽂았는지를 설명한다. 정말이지 방대하다. 담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요약은 무리 같고 인상적이었던 내용만 콕 집어 기록한다.

 

공룡은 1억 6,6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다가 대량 멸종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6,600만 년 후에는 문화적으로 재기해 명성을 누리고 있다(여전히 새들이 남아 있으니, 전부는 아니고 거의 멸종한 것이다.)(p27)

중국인들은 이 생물을 메이롱, 즉 '잠자는 용'이라고 불렀다. 롱구, 즉 '용의 뼈'가 치유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불면증에서 심장질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병에 그 뼈를 갈아서 섭취했다.(p77)

동물학자인 로이 체프먼 앤드루스(인디안나 존스가 앤드루스를 본 딴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는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정복"이라는 책을 썼다. 이 제목은 "우선 의식, 우월성 그리고 이러한 탐험을 특징짓는 지식을 장악할 권리"(p200)가 담겨있다는 게 비평가들의 말이다. 공룡 탐사를 위한 앤드루스의 원정대에는 아홉 명의 몽골인 조력자와 한 명의 몽골 정부 대표가 있었지만 앤드루스가 발견한 오비랍토르 알들을 설명할 때 그 얘기는 쏘옥 빠져있었다. 화석 발굴과 연구에서도 제국주의적 특징이 드러난다는 게 신기하다;;

앤드루스가 오비랍토르 알을 대영박물관에 100만 달러에 팔았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몽골 정부는 1924년 새로운 헌법에 "토양, 삼림, 물 및 그 안에 있는 자연 자원"은 모두 국가 재산임을 선언했다. (p203)

몽골 대통령 엥흐바야르는 2012년 부패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혐의는 다음과 같은데 "호텔을 부당하게 사유화하고, 어느 불교 사원에 들여놓을 예정이었던 TV 장비를 유용하고, 그의 자서전 여덟 부를 불법적으로 한국에 배송한 것이었다."(p331) 자서전을 잠수함으로 배송하기라도 했나?? 기사를 검색했으나 뜨는 게 없다. 아는 사람??

"판사는 에릭 프로코피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의 이름은 항상 혀를 약간 꼬이게 했다. 누구는 프로코페이, 누구는 프로스코피, 누구는 프로콥시 그리고 누구는 코프로스키라고 발음했다."(p353) 미국 사람하고 한국 사람하고 차이인가봐. 나는 헷갈려도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는데;;;;

"몽골에는 국립 고생물학의 날은 없지만, 국립 T.바타르의 날은 생겼다. 날짜는 에릭 프로코피의 체포일인 10월 17일이었다."(p406) 내가 체포된 날이 어느 나라의 기념일(?)인건 도대체 무슨 기분일까? 휴일 아닌 게 천만다행일 듯.

니컬라스 케이지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발음 진짜 ㅋㅋㅋㅋ)도 프로코피의 재판 이후 T. 바타르 두개골을 연방정부에 반납했다. 디캐프리오는 참고로 프로코피한테 공룡을 직접 샀다는 거! 프로코피가 디캐프리오네 대문 앞에서 사진도 찍어다는 거!

음메음메 우는 소는 소과 동물이 아니고 솟과 동물(p325)이었다. 솟과 동물이란 단어를 보고 맞춤법이 틀렸어, 흐름출판에 제보해야지, 제보 전에 검색 한번 가자 했는데 네이버 국어사전 들어갔더니 솟과 동물이 맞는거였다. 이럴 수가.

에릭 프로코피 사건은 우리나라 뉴스에도 나왔었다. 검색하면 뜬다. 이때 대한항공이 T. 바타르를 무료로 태워주겠다고 제안해서 대한항공 소유 제트 여객기로 바타르가 고향 간다. 이건 검색해도 안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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