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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 평범한 여자의 두메산골 살림 일기
야마토 게이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자발적 집순이조차 집에 있는 게 갑갑할 즈음 출간된 책이다. 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6월부터 10월 초까지 깊은 산 야쿠시자와 산장에서 산장지기 생활을 하는 작가 야마토 게이코의 일상을 담았다. 29살 때 접한 산장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자그마치 12년이나 지속 중인 시즌제 산장 생활. 도대체 그 산장엔 무슨 매력이 넘치길래 컴퓨터도 안되고, 휴대폰도 못쓰고, 목욕은 일주일에 두 번, 밤 9시면 소등으로 강제 취침에, 자칫 문에 얼굴이 닿기도 하는 화장실을 쓰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드는걸까? 좀이 쓸까 걱정될 정도로 집 붙박이 아니 침대 붙박이인 나인데 호기심에 가득차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페이지를 펼친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미술 조형가인 작가가 직접 그린 산장 안팎의 풍경들이 소리친다. 어서와, 산장 일은 처음이지?
산 밑 평지에 더위가 찾아올 무렵이면 시작되는 산장 생활은 꼼꼼한 소지품 점검이 필수다. 작가는 개인 소지품 재고표까지 만들어 관리 중인데 석 달 하고도 반, 쇼핑을 일절 할 수 없는 환경이라서 양말이나 속옷은 필히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 산 생활에 양말과 속옷은 의외로 구멍이 잘나서 자칫 두 장 남은 속옷을 돌려입기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 년만에 문을 연 산장이 깨끗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담비와 쥐, 하다 못해 반달가슴곰까지 생존 중인 북알프스의 산장은 문을 닫는 겨울에 야생동물들이 때려부수고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기 일쑤니까. 오줌분말과 똥, 썩어문드러진채 널부러진 비축 식량의 잔해는 때때로 구토를 유발한다. 가끔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들이 산에 들어와 직업을 찾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이것이 사실은 아주 큰 착각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산이기에 앞서 산장은 폐쇄된 직장이다. 꼴보기 싫은 상사를 퇴근도 못하고 한 집에서 석달 내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캄캄한 앞날과 구만리 눈물을 쉬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쯧쯧, 생각보다 이거 낭만적이지는 않은걸 싶을 즈음에는 달콤한 이야기들도 하나씩 등장한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 맥주 짐짝을 나르다가 흥에 겨워 시작하는 맥주 파티, 시즌 중 단 세 차례만 방문하는 수송 헬기 소동, 산장 지붕에 핀 이불꽃, 장작으로 데우는 가마솥 목욕, 손님들이 가져오는 맛있거나 멋있는 선물들, 무엇보다 산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작가는 산장 생활이 여행 같다고 한다.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시즌이 되면 번갈아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 찾아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도 어려움도 고생스러움도 있었을텐데 시즌이 다하고 산 밑으로 내려오면 좋았던 일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글 몇 줄로 산사람들의 삶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12년간 쌓아온 작가의 알뜰한 추억들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 곧 있으면 야쿠시자와 산장이 문을 열겠구나. 작가님이 짐을 꾸리겠네. 올해는 또 무슨 일들을 겪으시려나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올 여름의 산장 생활도 부디 건강하고 즐거우셨으면. 내 여름도 마땅히 활기차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