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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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버드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나, 이 프랑켄슈타인의 영혼이 외쳤소. 그렇게 많은 진보가 이뤄졌다면, 나는 더 멀리 나아가 더 큰 진보를 이루리라.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며, 미지의 힘을 탐구할 것이고, 생명의 창조라는 그 심오한 비밀을 이 세상에 펄쳐 보이리라."(p85) 신과 같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켜 만물의 근원이자 창조주가 되고팠던 프랑켄슈타인. 그는 무덤의 시체들을 주워모읍니다. 사지육신에 눈동자와 이빨 하나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고른 것이 없습니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 진주알 같은 이빨, 비율이 알맞게 조절된 팔과 다리까지. 아름답도록, 오직 아름답도록 기우고 조립해 그만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숨을 불어넣은 창조물이 눈을 뜹니다. 살아있는 시체. 조각조각의 아름다움이 더욱 기형적으로 느껴지는 괴물의 모습에 프랑켄슈타인은 혐오감을 느낍니다. 두려움에 차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서 박사는 갓 태어난 괴물은 나 몰라라 자신의 숙소에서 달아납니다. 미숙한 과학자의 무책임한 도주 하에 괴물은 홀로 내팽개쳐져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2미터 40센치의 거인이었지만 갓난쟁이와 다름 없어 괴물은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으며 목구멍을 열어 말하는 법도 몰랐습니다. 일천한 지식은 해도 달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숲속에서 맞이한 11월의 밤은 얼마나 춥고 허기지고 고되었을까요. 괴물은 숲속에서 노숙하며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먹고 냇물을 마셔 배를 채웁니다. 버려진 망토를 뒤집어써 칼바람에 몸을 숨깁니다. 인간이 남긴 잔재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맛보고 추리하며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 갑니다. 불이 뜨거운 것을 몰라 모닥불에 대뜸 손을 집어넣었다 아픔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이제는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보관하는 지혜까지 터득합니다. 열매를 익혀먹을 줄도 알게 되구요. 그렇다해도 겨울은 길었고 숲속에서 언제까지고 버틸 수만은 없어 괴물은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인간의 놀라운 세상을 마주하며 경탄도 했지만 괴물이라 쫓기며 돌팔매질을 당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도 했습니다. 고인 물 속에 비친 제 얼굴을 마주한 후에야 괴물은 자신이 괴물인 이유를 깨닫습니다. 창조주에게 버림 받은 이유가 그 얼굴 가득 너무나 또렷해서 비통한 울음을 터트립니다.

 

괴물이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깨달은 것은 맹인 아버지와 오누이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가난한 어느 가정에 숨어 들면서부터입니다. 애정과 배려로 서로를 대하는 가족들을 훔쳐 보며 괴물은 말을 배우고 글을 깨쳐 책을 읽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루타르고스 영웅전, 실낙원은 그에게 죽음과 자살, 인간의 부도덕함, 아담에게 주어졌던 신의 보호와 행복, 번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품고 있던 박사의 일지를 읽게 된 것도 그 즈음입니다. 흉측한 꼴로 자신을 만들고는 어떤 아량도 없이 내다버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원망이 괴물의 가슴에서 끓어오릅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한줌 가능성을 믿었기에 괴물은 원망을 되새기지 않습니다. 맹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넌지시 제 이야기를 하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맹인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외출했던 오누이가 돌아와 괴물과 마주칩니다. 딸은 놀라 기절했고 아들은 괴물에게 덤빕니다. 몽둥이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던 괴물은 더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숲으로 달아나 처참한 현실을 깨닫지요. 나는 어떤 인간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나는 어떤 인간도 사랑하지 않겠다!

 

괴물은 이제 프랑켄슈타인을 찾습니다. 그의 막내 동생을 죽이고 그의 누이와도 같은 하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며 악의를 깨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앞에 나타나 협박도 서슴치 않습니다. "나를 위해 아내를 만들어주오. 그녀와 벗하며 살게 해주오. 나를 외로움과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오."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또다시 가족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괴물을 만들고 책임지지 않았다는 자책감, 죄 없는 생명이 자신으로 인해 덧없이 스러졌다는 죄책감이 혼탁하게 뒤섞인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약속합니다. "네 요구를 들어줄테니 인간이 있는 땅 어디에도 발 붙이지 마라." 허나 그렇게 만들어낸 괴물이 다른 괴물과 교감할 거라는 확신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그들이 인간에 대한 아무런 기대 또는 악심을 품지 않고 동토로 사라질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은 다시 한번 괴물을 배신합니다. 두번째 창조물을 갈갈이 찢어 바다 밑에 가라앉혀 버립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저버린 약속의 대가로 친구와 아내와 아버지를 잃었고 그때부터 한 인간과 한 괴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저 멀리 북극의 땅에 이르기까지요.

 

북극의 항로를 개척하던 선장 월턴은 빙하에 쓰러져 죽어가던 프랑켄슈타인을 구하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영국에 있는 누님께 전달하는 그의 편지들 속 믿을 수 없이 끔찍하고 잔인하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오롯이 박사 프랑켄슈타인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요. 절절이 저를 아프게 하는 것은 괴물의 사정이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외로우며 정을 모르는 괴물의 비참한 가슴 말입니다. 따뜻한 선실에서 월턴의 위로와 존경 속에 숨을 거둔 프랑켄슈타인과는 달리 괴물은 죽음마저 홀로이며 차갑고 비정했겠지요. 피가 얼어붙고 가슴이 두근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메리 셸리의 바램은 2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에도 유효합니다. 재독이었음에도 한 문장도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완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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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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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종종 그러고 싶다. 핏줄을 열어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다."(p127)

이백 남짓한 페이지인데 인덱스를 스무개도 넘게 붙인 것 같다. 밑줄은 곳곳에 빼곡하다. 공감가서, 웃겨서, 재미나서, 설레어서, 문장이 예뻐서,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자꾸만 생각이 나서 되돌아가 표시를 하다 보니 이 상태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거북한 느낌 때문에 여태껏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울하고 심약하며 광적인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이야기라고 제멋대로 판단해 버렸던 거다. 고전과 친분이 없던 시절이라 찬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탓도 있고 뭣보다 작가 이름이... 괴테라니 꼭 무슨 철학자 이름 같지 않은가(¬_¬ ). 읽을 책이 못된다고 판단했었다.

허밍버드 클래식M의 윤도중 역자님 번역으로 직접 만남을 가져 보니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맞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자유로운 성품하며 어린애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장난에 선뜻 어울려주는 태도, 넉넉한 주머니로 주변 사람들을 돕고, 호메로스의 시에 흠뻑 빠진 채로 직접 수확한 완두콩을 버터에 볶아먹는 걸 보노라면 베르테르가 열린 영혼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된다. 관직에 나가라는 친구와 어머니의 제안을 거듭 물리치며 한적한 장원에서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베르테르는 누구라도 선뜻 친구가 되고 싶은 호감형의 남자다. 일상을 받아들이는 감성이 예술가처럼 기민하고 섬세하다 보니 때때로 말과 감정이 과잉되며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달까.

5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서 시골 생활을 즐기는 베르테르는 봄의 환희에 한껏 젖어 있었다. 생명력이 넘쳤다. 시골 무도회에 가기 위해 마차를 타는 순간까지도, 아니 샤를로테 S란 아가씨를 만나 첫눈에 반해 열렬한 사랑을 품고 나서도 행복은 깨어질 기미라고는 없이 무르익어만 갔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나타난 이후에도 베르테르는 그들 커플과 어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족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깊어만 가는 사랑의 갈망, 유부녀가 된 로테와 완전히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에 대한 로테의 사랑을 확신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더는 세상에 머물러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베르테르에게 있어 죽음은 자기 파괴가 아닌 고통 없는 기다림이다. 생에 못다한 인연을 사후로 기약하려는 집념이기도 하다. 총알은 베르테르의 오른쪽 눈 윗부분으로 들어가 뇌를 관통한다. 뇌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 신음하는 베르테르. 하인이 가져다 준 포도주 한 잔을 마신 후 당일 정오가 되어서야 사망한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썼던 편지들을 출판사의 편집자가 다시 정리하는 형태로 쓰여진 소설이다. 로테에게 남길 유서를 쓰며 사후 만남을 기약하는 베르테르가 무섭기도 하고 끔찍찌질하게 느껴져야 맞는 것 같은데 책을 읽는 순간에는 1분 1초도 그런 생각을 못했다. 사춘기 갬성의 파편이 남은 탓인지 너무 어리고 너무 순진하고 너무 뭣도 모르는 청년이 고약한 사랑에 빠진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릴 때 읽었으면 몇날며칠 잠도 못자고 마르고 닳도록 재독했을 것만 같은 책. 심각하게 취향이어서 읽는 내내 설렜다(≧◇≦) 괴테처럼 사랑의 괴로움에 베개 밑에 단도를 품고 자본 적도 없고 괴테의 친구처럼 권총 자살을 할 생각은 꿈에도 품어본 적 없이 청춘을 흘려보낸 냉막한 독자인데도 이럴 정도이니 사랑의 열병으로 죽다 살아난 독자들은 숨도 못쉬며 베르테르를 읽어내릴지도. "베르테르와 똑같은 충동을 느끼는 그대 착한 영혼이여, 그의 고뇌에서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운명에 의해서나 자신의 잘못으로 가까운 친구가 없다면 이 작은 책을 친구로 삼기 바란다." 편저자의 서문에 뼈 맞으면서 결심한다. 출판사별로 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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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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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버드 출판사의 지원 도서입니다.

변호사인 어터슨은 친구 엔필드에게 그가 겪은 기묘한 사건에 대해 듣게 됩니다. 급하게 길을 건너던 여자아이가 성인남자와 부딪혔는데 글쎄 그 남자가 넘어진 아이를 태연하게 짓밟고서 지나가더라는 겁니다. 엔필드가 화가 나서 남자를 붙드는데요. 남자는 놀라지도 않고 무슨 문제냐는 듯 엔필드를 쳐다봤대요. 길길이 날뛰는 여자들과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남자들에 둘러 싸이자 그제야 뜨끔했는지 금전적 보상을 제안하며 어느 건물의 뒷문으로 엔필드를 이끄는데요. "그 남자가 우리를 데려간 곳이 어디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저 문이었습니다."(p4) 엔필드가 가리킨 문을 보고 어터슨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내 한 가지만 묻겠네. 아이를 밟았다는 남자 말이야. 그 사람 이름이 궁금하군."(p15) 엔필드가 기억하는 남자의 이름은 하이드. 어터슨은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어터슨의 고객이자 친구인 박사 지킬의 유언장에 난데없이 등장한 이름이 바로 "하이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엔필드가 가리킨 그 문의 주인도 다름아닌 지킬 박사였지요.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젊은 시절 어떤 죄를 저질렀고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정확히는 하이드라는 남자에게 협박을 당하는 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땅에서 솟기라도 한 듯이 하이드는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남자였거든요. 피붙이도 아닌 그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지킬 박사의 유언은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결정이 아니었어요. 작정하고 하이드를 뒤쫓다 그와 마주친 순간 어터슨의 추측은 확신으로 변모합니다. 하이드의 작은 키, 불균형적인 체형, 털이 많은 창백한 얼굴, 무엇보다 대담함과 소심함이 섞인 기묘한 표정에서 드러나는 악의가 충격적일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지킬 박사에게 사실을 털어놓게 하고 싶어도 묵묵부답으로 회피하니 어터슨으로서도 뾰족한 도리가 없습니다. 모쪼록 그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던 때 하이드가 사람을 때려 죽이고 도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망자가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그의 거처부터 시작해 탈탈 털어내지만 머리카락 한 올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이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하늘로 솟구치기라도 했을까요?

사실 우리 모두 정답을 알고 있죠. 읽지는 않았어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단순히 얼굴 표정이나 분위기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키와 체구, 피부색, 털의 유무마저 달랐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신비의 소금을 발견해 환상적인 둔갑술을 갖게 된 지킬박사. 두 눈으로 직접 그의 변신을 목격한 래니언 박사가 충격으로 앓아 누워 사망한 것도 이해가 되요. 녹아내린 얼굴이 순식간에 다른 얼굴로 구축되는 모습을 봤다면 저라도, 우욱 (⊙x⊙;) 외향적인 차이보다 실은 내적인 차이가 더 컸는데 하이드는 지킬 박사가 그의 본성으로부터 분리해낸 또다른 자아, 악으로 똘똘 뭉친 그의 이중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일탈에 대한 풀길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던 지킬 박사는 착한 나와 악한 나를 분리하며 죄책감 없이 하이드의 악행을 즐깁니다.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가던 하이드가 기어코 살인을 저지르고 약 없이도 지킬 박사의 몸과 정신을 빼았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기까지요.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 받으며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인간의 몰락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줄거리를 알고 봐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해 단숨에 완독했어요. 고전 초보 독자님들께 특히나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 사실 이 책을 읽고 받은 제일 큰 충격은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보물섬의 작가와 동일인이라는 거였습니다. 대박!!! 이라고 진짜 입으로 말했어요. 설마 저만 몰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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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씨의 식탁 - 개정판 사계절 만화가 열전 15
홍연식 지음 / 사계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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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사계절 출판사 만화가 열전 마당씨 시리즈 1편 <마당 씨의 식탁>입니다. 엊그저께 나온 신간인데 어째 제목이 익숙하죠? 우리나비 출판사에서 15년도에 출간됐던 책이 개정판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나와서 그래요. 문화체육부장관상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작품이구요. 프랑스, 미국, 중국에까지 판권이 팔린 책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진 작품이기에 수많은 나라에서 러브콜을 받고 개정판까지 출간될 수 있었던 걸까요? 마당씨가 차려놓은 건강한 식탁, 얼른 시식해 보자구요.

2009년 9월,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파주. 아담한 독채에 텃밭이 딸린 얌전한 주택으로 마당씨와 아내, 생후 6개월인 아들 이완이 이사를 합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눈, 우다다다 천장 위를 뛰어다니는 서생원(쥐), 우풍이 영 어렵긴 하지만요. 부부는 파주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이 정말이지 만족스럽습니다. 마당씨가 차도 못다니는 눈길을 따라 봐온 장으로 차려내는 밥상은 얼마나 꿀맛 같아 보이던지요. 언몸을 사르르 녹였을 어묵탕 그림에 침이 꿀떡 넘어갔어요. 가족과 단꿈에 젖은 마당씨는 마냥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데요. 그런 그에게도 실은 한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마당씨의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를 정말이지 커다란 고민이에요.

부모님. 서울의 지하방에 살고 있는 마당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어른이 마당씨 인생의 제일 큰 걱정거리입니다. 알콜 중독자나 다름없는 아버지는 삼시세끼 밥처럼 술을 들이키는 양반이에요. 아픈 무릎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해 매일 같이 아내에게 술심부름을 시키구요. 어머니의 몸이라고 멀쩡한 건 아닙니다.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에 시달린 탓인지 너무 일찍 너무 젊어서부터 몸이 망가져 버렸거든요. 또래의 부모님들과 비교해봐도 마당씨의 부모님만큼 아프고 몸을 못쓰게 된 어른들은 흔치 않아요. 한 달에 두 번 있는 어머니의 외례 진료를 위해 서울길에 오르는 마당씨의 시름은 깊기만 합니다.

여느 남편 같으면 부모님을 우리가 모시자고 아내를 설득했을지 모릅니다. 순순한 마당씨의 아내는 남편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먼저 그 말을 꺼내기도 해요. "시골에서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면 어때요?" 그 말을 들은 마당씨, 어땠을 것 같나요? 아내의 손을 잡고 열두번 고맙다 한 후 부모님을 데리고 왔을 것 같나요? 아들과 며느리의 효를 받으며 시골에서 건강을 회복한 부모님과의 해피엔딩. 평범한 만화였다면 이런 식의 전개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당씨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막 독자 가슴 답답하게 하는 캐릭터 아닙니다. 만화가로써 마당씨가 일군 성공은 부모님에게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입니다. 아내와 아들이 있는 안정적인 세계를 부모님의 세계와 절대 섞이게 할 수 없다는 게 마당씨의 생각이었어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는 별개로) 가장이 된 지금 아내와 아들의 삶을 우선으로 하여 울타리를 치는 마당씨는 참으로 든든한 남편이요 아버지더군요. 그러니 펄쩍펄쩍 뛰며 아내의 권유를 만류하지 않았겠어요? 마당씨는 제 몸이 더 고될지언정 아내와 아들에게는 어떤 고통도 되물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동시에 부모님이 겪고 있는 신체적 고통을 물려받는 것도 거부해요. 건강한 몸으로 나이를 먹겠다는 각오. 마당씨의 자연식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요리 솜씨를 아내와 아들에게 힘껏 발휘하며 가정이라는 작지만 소중한 세계를 평화롭게 가꾸어가는 마당씨의 이야기. 마당씨가 차려내는 소담하지만 풍성한 식탁에서 솔직하고 담백하고 슬프지만 감동적인 이야기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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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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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아무런 두려움이나 혐오감 없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될 때야 비로소 완전히 끝나는 거야."(p145)

사랑이 도대체 뭘까요? 줄리언 반스가 <연애의 기억>에서 그랬지요.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레누는 절대적으로 전자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가 어쩌면 이다지도 자기 파괴적일 수 있는지 전 도통 레누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내와 이혼하겠다는 니노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서 레누는 피에트로와 이혼합니다. 알고 보니 모두 니노의 개수작이었지만요. 이혼은 커녕 니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구요. 니노는 장인어른의 비호 속에 나폴리에서 승승장구 중이랍니다. 사실을 들키고 난 후에도 너무너무 당당해요. 레누가 화를 내서 자기가 슬프대요. 왜 자기 사랑을 몰라주녜요. 자기 뜻을 왜 그렇게 곡해하냐며 너 때문에 속상해, 나 좀 돌봐줘, 징징대는 니노 때문에 독자인 저는 치가 떨렸는데 레누는 니노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을만큼 니노를 사랑하니까요. 제 속으로 낳은 아이들 전부와 니노를 바꾸자 해도 그러겠다 할만큼 니노 밖에 모르는 바보니까요. 초반만해도 우리 레누,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망가진건가요? 레누의 사랑은 욕실에서 벌어진 니노와 가정부의 추잡한 짓거리를 목격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좋은 감정은 연약한 거야. 내게는 사랑조차 오래가지 못해.

남자에 대한 사랑도 자식에 대한 사랑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구멍이 나버려."(p242)

레누가 니노와의 불륜으로 커리어와 가정생활을 망가뜨려 갈 때 릴라는 컴퓨터 사업가로 고향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습니다. 그즈음 두 사람 다 임신을 하게 되는대요. 첫 아이 젠나로를 임신했을 때와 달리 릴라는 기쁜 마음으로 둘째 아이를 받아들여요. 티나의 탄생은 릴라에게 커다란 안정감을 주었고 니노와 헤어져 거지꼴이 되고 만 레누와도 아래윗집에 살면서 전에 없이 공고한 우정을 다지게 되요. 이 때의 4년이 아마도 릴라의 일생 중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딸 티나가 실종되면서 릴라의 인생은 다시 지옥으로 굴러 떨어져요. 영원히 빛 하나 들지 않을 것 같은 릴라의 우울을 마주하며 지쳐버린 엔초는 릴라를 떠나게 되요. 레누 또한 릴라의 곁에서 머무르기를 포기해 릴라는 고향집에 홀로 남게 됩니다. 접점없이 멀어진 두 사람은 이후 과거와 같은 우정을 절대 회복하지 못해요. 릴라가 실종되었다는 젠나로의 전화를 받고서 레누는 화가 납니다. 이름 한 자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려는 릴라에 대항해 레누는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소설을 집필해요. 릴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평생 나폴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릴라가 나폴리 밖에서 새로운 삶 새로운 길 새로운 끝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리나답게 어디선가 기발하고 똑똑한 일을 하고 있겠지."(p659) 꼭 파스콸레의 말과 같기를. 고난에 부치고 힘겨웠던 릴라의 인생이 이제는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나 자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던 이야기를 끝마친 것이다."(p657)

2020년 12월 13일부터 시작한 나폴리 4부작의 여정을 해를 넘긴 2021년 1월 10일에 종료합니다.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까지 총 2436쪽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어요. 이탈로 칼비노 외에는 알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도 없고 작가의 후속작인 어른들의 거짓된 삶이 취향과 비취향 사이를 어중간하게 오간 터라 살짝 걱정을 했는데요. 가독성이 워낙에 출중해서 낯선 이름, 낯선 지명, 무엇보다 낯선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이탈리아 전경을 무리 없이 소화한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접하는 여성 서사, 여성 성장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아, 이렇게 쓰니까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익숙한 영미식 여성 서사, 성잘 소설 느낌이 아니다 라고 하는 편이 더 분명하겠습니다. 고난 중에도 가슴 따뜻한 이웃, 친구, 동료를 만나 유쾌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러시아식? 프랑스적인? 막장 고전 느낌이에요. 결말까지도 독자에 따라서는 좀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판 여자의 일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 나 자신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아."(p638) 어쩌면 좋죠. 활자로 남아버린 릴라의 일생, 저는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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