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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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버드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나도 종종 그러고 싶다. 핏줄을 열어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다."(p127)

이백 남짓한 페이지인데 인덱스를 스무개도 넘게 붙인 것 같다. 밑줄은 곳곳에 빼곡하다. 공감가서, 웃겨서, 재미나서, 설레어서, 문장이 예뻐서,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자꾸만 생각이 나서 되돌아가 표시를 하다 보니 이 상태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거북한 느낌 때문에 여태껏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울하고 심약하며 광적인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이야기라고 제멋대로 판단해 버렸던 거다. 고전과 친분이 없던 시절이라 찬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탓도 있고 뭣보다 작가 이름이... 괴테라니 꼭 무슨 철학자 이름 같지 않은가(¬_¬ ). 읽을 책이 못된다고 판단했었다.

허밍버드 클래식M의 윤도중 역자님 번역으로 직접 만남을 가져 보니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맞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자유로운 성품하며 어린애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장난에 선뜻 어울려주는 태도, 넉넉한 주머니로 주변 사람들을 돕고, 호메로스의 시에 흠뻑 빠진 채로 직접 수확한 완두콩을 버터에 볶아먹는 걸 보노라면 베르테르가 열린 영혼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된다. 관직에 나가라는 친구와 어머니의 제안을 거듭 물리치며 한적한 장원에서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베르테르는 누구라도 선뜻 친구가 되고 싶은 호감형의 남자다. 일상을 받아들이는 감성이 예술가처럼 기민하고 섬세하다 보니 때때로 말과 감정이 과잉되며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달까.

5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서 시골 생활을 즐기는 베르테르는 봄의 환희에 한껏 젖어 있었다. 생명력이 넘쳤다. 시골 무도회에 가기 위해 마차를 타는 순간까지도, 아니 샤를로테 S란 아가씨를 만나 첫눈에 반해 열렬한 사랑을 품고 나서도 행복은 깨어질 기미라고는 없이 무르익어만 갔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나타난 이후에도 베르테르는 그들 커플과 어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족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깊어만 가는 사랑의 갈망, 유부녀가 된 로테와 완전히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에 대한 로테의 사랑을 확신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더는 세상에 머물러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베르테르에게 있어 죽음은 자기 파괴가 아닌 고통 없는 기다림이다. 생에 못다한 인연을 사후로 기약하려는 집념이기도 하다. 총알은 베르테르의 오른쪽 눈 윗부분으로 들어가 뇌를 관통한다. 뇌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 신음하는 베르테르. 하인이 가져다 준 포도주 한 잔을 마신 후 당일 정오가 되어서야 사망한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썼던 편지들을 출판사의 편집자가 다시 정리하는 형태로 쓰여진 소설이다. 로테에게 남길 유서를 쓰며 사후 만남을 기약하는 베르테르가 무섭기도 하고 끔찍찌질하게 느껴져야 맞는 것 같은데 책을 읽는 순간에는 1분 1초도 그런 생각을 못했다. 사춘기 갬성의 파편이 남은 탓인지 너무 어리고 너무 순진하고 너무 뭣도 모르는 청년이 고약한 사랑에 빠진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릴 때 읽었으면 몇날며칠 잠도 못자고 마르고 닳도록 재독했을 것만 같은 책. 심각하게 취향이어서 읽는 내내 설렜다(≧◇≦) 괴테처럼 사랑의 괴로움에 베개 밑에 단도를 품고 자본 적도 없고 괴테의 친구처럼 권총 자살을 할 생각은 꿈에도 품어본 적 없이 청춘을 흘려보낸 냉막한 독자인데도 이럴 정도이니 사랑의 열병으로 죽다 살아난 독자들은 숨도 못쉬며 베르테르를 읽어내릴지도. "베르테르와 똑같은 충동을 느끼는 그대 착한 영혼이여, 그의 고뇌에서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운명에 의해서나 자신의 잘못으로 가까운 친구가 없다면 이 작은 책을 친구로 삼기 바란다." 편저자의 서문에 뼈 맞으면서 결심한다. 출판사별로 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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