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밍버드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나, 이 프랑켄슈타인의 영혼이 외쳤소. 그렇게 많은 진보가 이뤄졌다면, 나는 더 멀리 나아가 더 큰 진보를 이루리라.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며, 미지의 힘을 탐구할 것이고, 생명의 창조라는 그 심오한 비밀을 이 세상에 펄쳐 보이리라."(p85) 신과 같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켜 만물의 근원이자 창조주가 되고팠던 프랑켄슈타인. 그는 무덤의 시체들을 주워모읍니다. 사지육신에 눈동자와 이빨 하나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고른 것이 없습니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 진주알 같은 이빨, 비율이 알맞게 조절된 팔과 다리까지. 아름답도록, 오직 아름답도록 기우고 조립해 그만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숨을 불어넣은 창조물이 눈을 뜹니다. 살아있는 시체. 조각조각의 아름다움이 더욱 기형적으로 느껴지는 괴물의 모습에 프랑켄슈타인은 혐오감을 느낍니다. 두려움에 차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서 박사는 갓 태어난 괴물은 나 몰라라 자신의 숙소에서 달아납니다. 미숙한 과학자의 무책임한 도주 하에 괴물은 홀로 내팽개쳐져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2미터 40센치의 거인이었지만 갓난쟁이와 다름 없어 괴물은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으며 목구멍을 열어 말하는 법도 몰랐습니다. 일천한 지식은 해도 달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숲속에서 맞이한 11월의 밤은 얼마나 춥고 허기지고 고되었을까요. 괴물은 숲속에서 노숙하며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먹고 냇물을 마셔 배를 채웁니다. 버려진 망토를 뒤집어써 칼바람에 몸을 숨깁니다. 인간이 남긴 잔재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맛보고 추리하며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 갑니다. 불이 뜨거운 것을 몰라 모닥불에 대뜸 손을 집어넣었다 아픔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이제는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보관하는 지혜까지 터득합니다. 열매를 익혀먹을 줄도 알게 되구요. 그렇다해도 겨울은 길었고 숲속에서 언제까지고 버틸 수만은 없어 괴물은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인간의 놀라운 세상을 마주하며 경탄도 했지만 괴물이라 쫓기며 돌팔매질을 당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도 했습니다. 고인 물 속에 비친 제 얼굴을 마주한 후에야 괴물은 자신이 괴물인 이유를 깨닫습니다. 창조주에게 버림 받은 이유가 그 얼굴 가득 너무나 또렷해서 비통한 울음을 터트립니다.

 

괴물이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깨달은 것은 맹인 아버지와 오누이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가난한 어느 가정에 숨어 들면서부터입니다. 애정과 배려로 서로를 대하는 가족들을 훔쳐 보며 괴물은 말을 배우고 글을 깨쳐 책을 읽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루타르고스 영웅전, 실낙원은 그에게 죽음과 자살, 인간의 부도덕함, 아담에게 주어졌던 신의 보호와 행복, 번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품고 있던 박사의 일지를 읽게 된 것도 그 즈음입니다. 흉측한 꼴로 자신을 만들고는 어떤 아량도 없이 내다버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원망이 괴물의 가슴에서 끓어오릅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한줌 가능성을 믿었기에 괴물은 원망을 되새기지 않습니다. 맹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넌지시 제 이야기를 하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맹인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외출했던 오누이가 돌아와 괴물과 마주칩니다. 딸은 놀라 기절했고 아들은 괴물에게 덤빕니다. 몽둥이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던 괴물은 더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숲으로 달아나 처참한 현실을 깨닫지요. 나는 어떤 인간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나는 어떤 인간도 사랑하지 않겠다!

 

괴물은 이제 프랑켄슈타인을 찾습니다. 그의 막내 동생을 죽이고 그의 누이와도 같은 하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며 악의를 깨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앞에 나타나 협박도 서슴치 않습니다. "나를 위해 아내를 만들어주오. 그녀와 벗하며 살게 해주오. 나를 외로움과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오."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또다시 가족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괴물을 만들고 책임지지 않았다는 자책감, 죄 없는 생명이 자신으로 인해 덧없이 스러졌다는 죄책감이 혼탁하게 뒤섞인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약속합니다. "네 요구를 들어줄테니 인간이 있는 땅 어디에도 발 붙이지 마라." 허나 그렇게 만들어낸 괴물이 다른 괴물과 교감할 거라는 확신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그들이 인간에 대한 아무런 기대 또는 악심을 품지 않고 동토로 사라질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은 다시 한번 괴물을 배신합니다. 두번째 창조물을 갈갈이 찢어 바다 밑에 가라앉혀 버립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저버린 약속의 대가로 친구와 아내와 아버지를 잃었고 그때부터 한 인간과 한 괴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저 멀리 북극의 땅에 이르기까지요.

 

북극의 항로를 개척하던 선장 월턴은 빙하에 쓰러져 죽어가던 프랑켄슈타인을 구하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영국에 있는 누님께 전달하는 그의 편지들 속 믿을 수 없이 끔찍하고 잔인하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오롯이 박사 프랑켄슈타인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요. 절절이 저를 아프게 하는 것은 괴물의 사정이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외로우며 정을 모르는 괴물의 비참한 가슴 말입니다. 따뜻한 선실에서 월턴의 위로와 존경 속에 숨을 거둔 프랑켄슈타인과는 달리 괴물은 죽음마저 홀로이며 차갑고 비정했겠지요. 피가 얼어붙고 가슴이 두근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메리 셸리의 바램은 2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에도 유효합니다. 재독이었음에도 한 문장도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완독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