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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위태로운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록"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나쁜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회적 부패에 대항하기는커녕 사회적 부패를 더욱더 조장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 (힐빌리의 노래 중)
프롤로그대로라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1984년생 백인 남성 제이디 밴스의 자서전이지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들 이제 고작 서른 중반에 다다른 남자의 자서전이라는 것에 살짝 실망한 채로 책을 펼쳤는데 1편 힐빌리 마을 잭슨 편에서 실망은 곧장 기대감으로 만회가 되었습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거든요. 힐빌리라고 불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토박이들, 그 힐빌리의 일원으로 폐쇄성이 강한 문화 속 저소득 백인 가정의 자녀가 개천의 용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어려움과 고난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이렇게 잘 자랐다, 나만큼하면 성공한다 식의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하심 안되구요. 경제, 정치, 종교, 문화라는 다양한 방편으로 힐빌리들의 삶이 미국 안에서도 두드러지게 후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고 겪고 듣고 느낀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에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서술은 여기 힐빌리들에겐 통용되지 않습니다. 지역경제를 떠안고 있던 기업이 사향세로 접어들자 조부모와 부모와 자식으로 가난은 뿌리 깊게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슬럼화 되는 지역 주민들의 수치를 모르는 게으름, 배움에 대한 터부, 도둑질, 폭력, 마약 등이 지역사회를 좀 먹구요. 주민들의 집단 무기력이 커지며 회의와 절망과 좌절은 힐빌리 불행한 가정들의 공통적인 원인이 됩니다. 제이디 밴스의 부모와 조부모, 형제, 친구 등은 거의가 비슷한 환경에서 학대받아 성장해 그 학대를 고스란히 아랫세대에 되물리며 지속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유전자를 형성합니다. 제이디 밴스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알콜중독자였으며 할머니는 13세부터 임신, 유산, 출산을 반복하다 우울증에 걸립니다. 폭력적인 부모에 대한 도피의 일환으로 미성년에 결혼한 제이디 밴스의 어머니는 첫 남편에게서 딸을, 두번째 남편에게서 아들 제이디 밴스를 얻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남편과 애인을 갈아치우며 자녀를 불안 속에 방치합니다. 어머니는 간호사로 재직 중 마약 중독자가 되었으며 아동학대와 폭력으로 두어번 감옥까지 갈 뻔 합니다. 이 난잡한 어머니는 결국 자서전이 막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중독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새남편의 집에서 쫓겨나는데요. 아들 제이미 밴스가 그런 어머니를 모텔로 모시며 자서전이 끝이 나지요.
이 모든 고난들에도 불구하고 제이디 밴스는 탯줄에 기인한 불행을 성공리에 극복한 힐빌리의 보기 드문 남자입니다. 그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다르게 성실해서? 악착같은 성격으로? 특출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 것도 아니면 우월한 두뇌 때문에? 그 자신의 성공에 노력이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큰 줄기를 형성한 것은 부모를 대신해 양육해 준 조부모의 사랑, 우연과 운, 무엇보다 고향땅과 어머니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후천적인 노력보다 부모의 자질, 경제력, 그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더 많은 행복과 높은 수준의 삶의 질과 결과를 보장한다는 제이디 밴스의 말에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힐빌리뿐 아니라 다수 저소득층 아이들은 쓰레기 같은 부모를 대신해 정상적인 환경을 마련해 줄 어른을 만난다와 같은 운과 우연을 마주하기 힘듭니다. 백인 저소득 가정의 열두 명 중 한 명은 세 번 이상 아버지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또다른 다수의 아이들은 미성년의 나이에 출산과 마약과 범죄를 경험하며 학업을 중도 포기합니다. 그들은 멘토가 될만한 그 어떤 어른도 지역사회에서 접하기 힘들며 새로운 경험, 동기, 꿈을 가질 만한 무엇도 보고 듣지 못합니다.
젖병에 펩시를 담아 먹이는 어머니, 스물도 되기 전에 썩어 녹아내린 이빨, 팔에 주사위를 꽂은 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 법보다 가까운 폭력, 총기소지, 유리창이 깨어지고 녹슨 건물들이 즐비한 상가밀집구역. 믿기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일면을 접하며 이것이 실로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의 현실일 까 의아했지만 저자의 대학 은사인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가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아예 추천사를 꽝꽝 박아놓았더군요. 경제의 피폐가 얼마나 손쉽게 한 가족과 지역사회를 무너뜨리고 그 절망을 영속적으로 되물림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북돋아 주는 책이기도 하구요. 저자의 어린 시절, 올바르지 못한 부모로서 학대를 일삼던 이들이 손자를 마주해 그 과오를 씻어내려 노력하는 모습 등이 감동적이고 어린 누나가 그보다 어린 동생을 보호하려는 포옹이 가슴 찡한 성장물이기도 합니다. 제조업의 몰락, 불황, 불경기 등이 그들만의 이야기거리는 아니기에 힐빌리들의 녹록치 않은 아메리칸 드림을 보며 많은 생각할 거리를 갖게 될 겁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전지적 장르파의 취향에도 걸맞는 흥미로운 책이었다고 강조강조 하여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