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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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다운 소설에서 일단 무기가 등장하면 그것은 사용되어야만 해."

22구경 롱 라이플을 들고서 셋째딸 세리외즈(심각한 여자)의 머리통을 박살내려는 느빌 백작의 대사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무렴. 그런 소설은 있을 수 없지. 제목에 범죄까지 등장하는데 사냥총을 꺼내놓고 그냥 손 놓는다는 건 미스터리 독자에 대한 우롱이다. 그렇담 왜 평범한 파산가 느빌 백작은 평생 사용해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총을 모퉁이 탑 창고에서 꺼내와야 했는가. 어째서 셋째딸 세리외즈를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는가. 이야기는 우울한 청소년 세리외즈의 한밤의 외출로부터 시작한다. 9월 벨기에 숲의 추위를 예상하지 못하여 오들오들 떠는 모습으로 발견된 세리외즈, 세리외즈를 발견하여 느빌 백작가에 전화한 예언가 포르탕뒤에르 부인, 딸을 데리러 가서 "초대된 손님 하나를 죽이게 될 겁니다"하고 예언 받는 느빌 백작. 초반의 갈등이 점쟁이와 백작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게 시작되었다면 중반의 갈등은 죽음을 원하는 세리외즈와 딸의 호소에 휘둘리는 심약한 아버지 느빌 백작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여신처럼 아름다운 어머니, 요정처럼 사랑스러운 언니 엘렉트르(아가멤논 딸의 이름), 귀족가의 선망받는 예비 사위감 오빠 오르세트(아가멤논 아들 이름) 사이에서 성장하며 세리외즈는 아가멤논에게 살해된 어린 딸 이피제니의 운명에 매료된다. 존재감 없는 제 이름이야 어떻든 언니오빠의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을 때부터 운명은 작동하여 예정된 수순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십대의 숙명론자는 아버지의 손에 죽기로 결심하고 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들 부녀에 대한 다섯 가지 사안을 궁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 우리로 치자면 2017년도 즈음하여 태어난 남매들 이름을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으로 지은 건데 자식 이름 가지고 장난 치는 아버지의 심상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2. 딸의 염원이 중요하기로서니 느빌 백작이 너무 쉽게 살해 욕망에 굴복된 게 아닐까?
이 비정상적인 욕망은 실로 운명의 힘일까? 아니면 지옥같은 불면증의 여파일까?

3. 아버지를 유혹하여 너를 살해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세리외즈는 꿈처럼 무사히 죽음에 도착할까?
세리외즈는 진정으로 깨진 수박처럼 머리가 터져나가는 죽음을 바라는걸까?

4. 아가멤논의 수레바퀴가 느빌 백작가를 치받기로 결심한 게 맞다면 느빌 백작 또한 아가멤논의 전철을 밟게 될까? 딸을 죽인 남편에게 아내가 복수하고,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다시금 그 딸이 복수하는 아가멤논과 엘렉트르의 신화가 이곳 2014년의 벨기에에서 완성되기에는 쪽수가 너무 적지 않나?

5. 느빌 백작가의 남자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 준비해 온 플리뷔에성의 마지막 대잔치는 그리하여 커튼콜을 받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을까?

신화적 이름과 연결되어 느끼는 운명에 대한 강렬한 충동, 성장이 피곤한 사춘기 소녀의 우울, 벨기에 귀족의 허례의식, 적의 숨통을 끊는 저격수처럼 군데군데 숨어서 독자의 웃음 과녁에 텐텐을 쏘아대는 유머감각. 이렇게 재밌는데 137 페이지 밖에 안되다니!! 이거야 말로 느빌 백작가의 진정한 비극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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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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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후드의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 1월의 명작으로 뽑힌 책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습니다. "독신남이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아내를 얻고 싶어 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는 첫문장을 읽자마자 주인공 에이바는 오만과 편견을 못읽을 책으로 정의하고 읽기를 포기합니다. 다른 여자가 생겨 집을 나가버린 남편을 둔 그녀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아내를 원한다는 내용만으로 삼백 쪽이 꽉 채워진 책을 읽기가 싫었던거죠. 독서클럽에 나간 에이바는 오만과 편견을 읽은 척 하다 두 가지 실수를 해버려요. 영화 속 엘리자베스(이하 리지)의 성격과 소설의 성격이 같을 거라고 가정한 것이 1차 실수, 첫눈에 그들 두 사람이 끌렸다고 착각한 것이 2차 실수였죠. 소설 속에선 다아시와 리지가 첫번째 무도회 때 아예 춤을 추지도 않거든요. 제가 오만과 편견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결심한 이 장면에서 주인공 에이바는 수치심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모두가 그녀가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으니 창피할 만도 했죠. 에이바가 새해를 맞아 결국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저는 시공사의 책을 잡아 그간의 호기심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시공사의 오만과 편견은 첫문장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을까. 이 책이 온통 결혼 이야기로 꽉 차있는 그저 그런 로맨스라면 어째서 고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소녀 감성 넘치는 핑크빛 표지를 펼쳐 첫 문장만큼은 손으로 집어가며 읽었습니다. 첫 문장에 나 또한 실망할 것인가, 그게 궁금했거든요.

"부유한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그런가요? 18세기 영국의 남성에게 아내가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 느낌이 없네요. 그 필요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이 문장 다음에 제가 원하는 설명이 없어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잘난 남자가 동네에 입성해 딸을 둔 가정이 난리가 났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더라구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니 아내가 없어도 하인만 있으면  부유한 남성의 평볌한 삶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는데 말이죠. 별다르게 평판이 하락하는 느낌도 아니었구요. 어찌됐든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만남 다아시와 친구에게 휘둘리는 순진무구 빙리의 이사로 리지가 둘째로 있는 베넷가도 난리가 난답니다. 분별없는 주책 욕망녀인 베넷 부인은 딸들을 부유한 남성과 혼사시키지 못해 안달이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베넷 집안의 재산은 아내나 딸들에겐 상속권이 없는데다 가난한 집안이라 딸들의 혼인이 아니면 부인 스스로를 부양할 방도가 없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길거리에 나앉을 미래가 예비되어 있지요. 거기다 그 시절에는 지참금 문제로 재산과 배경이 없는 처녀는 거의 결혼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어요.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국 첫 문장은 그저 가난한 집안 여자들의 강렬한 소망이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가난한 여성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라고 써뒀다면 더 이해가 갈만한 실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펼쳐지니까요. 노동할 수 없는 여성의 삶, 삶에 선택권이 없는 여성의 삶, 좋아하는 남성이 있어도 먼저 고백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남성의 고백이 있기만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삶, 상속재산과 남편이 아니라면 미래와 노후를 대비할 수도 없는 삶. 그런 삶들의 단면이 노골적인 욕망과 속물적인 태도로 표현됩니다.

리지와 다아시 또는 빙리와 제인의 절절한 로맨스는 어떻냐구요? 콧방귀도 안나올 정도로 별 거 없습니다. 영화쪽이 소설보다 훨씬 낭만적이에요. 리지와 다아시가 춤을 추던 그 무도회 장면의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고 빗 속의 꺅~ 소리 절로 나던 고백씬도 없습니다. 다아시와 리지의 대화 어느 한 구석에서도 뭔가 그럴 듯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너무 냉담한 감성의 독자여서 그들의 은은한 로맨스를 비껴간 걸수도 있겠지만요. 비율로만 따져도 아름답고 가슴 뛰는 로맨스로 가득할 것이라던 저와 에이바의 생각은 영화로 인한 완벽한 착각이자 편견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사랑보다는 이들의 결합, 배경과 재산을 뛰어넘는 결혼이 한꺼번에 두 쌍, 자매와 절친한 두 남자 사이에 이뤄졌다는 게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적어도 제 기준에선, 남녀의 사랑보다는 짝짓기에 목숨 걸 수 밖에 없는 그 시절의 영국 현실과 허점 가득하고 터무니 없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인물들, 그리고 모두까기의 달인처럼 느껴지는 제인 오스틴의 비판적인 시각과 부유한 장원에 대한 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다아시 영지에 대한 묘사요. 전 이 성실하고 빽빽하고 공들인 묘사를 보면서 작가 제인 오스틴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로맨스나 다아시 같은 남자가 아니라 조랑말을 타고 다니며 돌아다녀야 할 정도의 넒은 장원과 역사와 문화와 예술로 가득한 주택과 신실한 하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사실 그건 저의 바람이기도 하답니다. 부유한 독신 여성!! 그러나 그 때에도 지금도 독신은 쉽지만 부유는 쉽지가 않아 서글퍼지는 오만과 편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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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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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록"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나쁜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회적 부패에 대항하기는커녕 사회적 부패를 더욱더 조장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   (힐빌리의 노래 중)

프롤로그대로라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1984년생 백인 남성 제이디 밴스의 자서전이지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들 이제 고작 서른 중반에 다다른 남자의 자서전이라는 것에 살짝 실망한 채로 책을 펼쳤는데 1편 힐빌리 마을 잭슨 편에서 실망은 곧장 기대감으로 만회가 되었습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거든요. 힐빌리라고 불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토박이들, 그 힐빌리의 일원으로 폐쇄성이 강한 문화 속 저소득 백인 가정의 자녀가 개천의 용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어려움과 고난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이렇게 잘 자랐다, 나만큼하면 성공한다 식의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하심 안되구요. 경제, 정치, 종교, 문화라는 다양한 방편으로 힐빌리들의 삶이 미국 안에서도 두드러지게 후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고 겪고 듣고 느낀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에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서술은 여기 힐빌리들에겐 통용되지 않습니다. 지역경제를 떠안고 있던 기업이 사향세로 접어들자 조부모와 부모와 자식으로 가난은 뿌리 깊게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슬럼화 되는 지역 주민들의 수치를 모르는 게으름, 배움에 대한 터부, 도둑질, 폭력, 마약 등이 지역사회를 좀 먹구요. 주민들의 집단 무기력이 커지며 회의와 절망과 좌절은 힐빌리 불행한 가정들의 공통적인 원인이 됩니다. 제이디 밴스의 부모와 조부모, 형제, 친구 등은 거의가 비슷한 환경에서 학대받아 성장해 그 학대를 고스란히 아랫세대에 되물리며 지속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유전자를 형성합니다. 제이디 밴스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알콜중독자였으며 할머니는 13세부터 임신, 유산, 출산을 반복하다 우울증에 걸립니다. 폭력적인 부모에 대한 도피의 일환으로 미성년에 결혼한 제이디 밴스의 어머니는 첫 남편에게서 딸을, 두번째 남편에게서 아들 제이디 밴스를 얻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남편과 애인을 갈아치우며 자녀를 불안 속에 방치합니다. 어머니는 간호사로 재직 중 마약 중독자가 되었으며 아동학대와 폭력으로 두어번 감옥까지 갈 뻔 합니다. 이 난잡한 어머니는 결국 자서전이 막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중독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새남편의 집에서 쫓겨나는데요. 아들 제이미 밴스가 그런 어머니를 모텔로 모시며 자서전이 끝이 나지요. 

이 모든 고난들에도 불구하고 제이디 밴스는 탯줄에 기인한 불행을 성공리에 극복한 힐빌리의 보기 드문 남자입니다. 그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다르게 성실해서? 악착같은 성격으로? 특출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 것도 아니면 우월한 두뇌 때문에? 그 자신의 성공에 노력이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큰 줄기를 형성한 것은 부모를 대신해 양육해 준 조부모의 사랑, 우연과 운, 무엇보다 고향땅과 어머니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후천적인 노력보다 부모의 자질, 경제력, 그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더 많은 행복과 높은 수준의 삶의 질과 결과를 보장한다는 제이디 밴스의 말에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힐빌리뿐 아니라 다수 저소득층 아이들은 쓰레기 같은 부모를 대신해 정상적인 환경을 마련해 줄 어른을 만난다와 같은 운과 우연을 마주하기 힘듭니다. 백인 저소득 가정의 열두 명 중 한 명은 세 번 이상 아버지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또다른 다수의 아이들은 미성년의 나이에 출산과 마약과 범죄를 경험하며 학업을 중도 포기합니다. 그들은 멘토가 될만한 그 어떤 어른도 지역사회에서 접하기 힘들며 새로운 경험, 동기, 꿈을 가질 만한 무엇도 보고 듣지 못합니다.

젖병에 펩시를 담아 먹이는 어머니, 스물도 되기 전에 썩어 녹아내린 이빨, 팔에 주사위를 꽂은 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 법보다 가까운 폭력, 총기소지, 유리창이 깨어지고 녹슨 건물들이 즐비한 상가밀집구역. 믿기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일면을 접하며 이것이 실로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의 현실일 까 의아했지만 저자의 대학 은사인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가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아예 추천사를 꽝꽝 박아놓았더군요. 경제의 피폐가 얼마나 손쉽게 한 가족과 지역사회를 무너뜨리고 그 절망을 영속적으로 되물림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북돋아 주는 책이기도 하구요. 저자의 어린 시절, 올바르지 못한 부모로서 학대를 일삼던 이들이 손자를 마주해 그 과오를 씻어내려 노력하는 모습 등이 감동적이고 어린 누나가 그보다 어린 동생을 보호하려는 포옹이 가슴 찡한 성장물이기도 합니다. 제조업의 몰락, 불황, 불경기 등이 그들만의 이야기거리는 아니기에 힐빌리들의 녹록치 않은 아메리칸 드림을 보며 많은 생각할 거리를 갖게 될 겁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전지적 장르파의 취향에도 걸맞는 흥미로운 책이었다고 강조강조 하여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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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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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 [명사] <법률>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 형사 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를 하였어도 처벌을 받지 않으며 보호 처분의 대상이 된다. <지식백과>

히야마 다카시는 촉법소년들에게 아내를 잃었습니다. 커터칼, 공업용 칼로 수십 차례 베이고 찔려 살해 당한 이 가엾은 여성의 원한을 씻을 길도 없이 세 명의 중학생들은 법의 보호 아래 이름과 나이와 거주지,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경력조차 숨긴 채 사회로 다시 발돋움 할 기회를 얻습니다. 피해자들은 가해 어린이나 그 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사과나 반성도 듣지 못했는데 법은 어떤 처벌도 없이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 감쌉니다. 아내가 죽었는데 아내를 죽인 놈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받는 재판을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원한이 가해 어린이들의 재활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은 철저히 그들을 분리시킵니다. 이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요.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죄를 저지른 것은 아이들인데 일본의 법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예비 범죄자처럼 취급한다는 느낌을 소설을 읽는 내내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화가 나고 화가 나고 또 화가 났습니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 가족에게 이런 일들이 생긴다면? 용인캣맘사건처럼 아무 죄없는 이들도 어린이들의 악의와 서슴없는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죽였는데 '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갈음되는 사회라는 것이 저는 끔찍합니다. 저도 아이였던 적이 있기로 그들의 범죄에 고의성이 없다는 말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의 분노와는 별개로 소설 속의 일본은 살해조차도 용서할 수 있는 잘못으로 용인합니다. 가해자들이 아이들이기만 하다면 그 범죄가 얼마나 악랄하고 끔찍하든 재기의 여지를 남겨두니까요.

어린 딸이 있기로 그 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묻은 채 히야마는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또다시 소중한 것을 잃을 수는 없다며 충실한 가장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그를 자극한 것은 바로 촉법소년 b에 대한 살해 사건이었습니다. 아내를 죽였던 아이가 살해 당했다. 천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궁금해지기 시작하죠. 그 아이들이 반성을 하기는 했을까. 법이 지침하듯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올바른 청년으로 성장해 사회에 기여 중일까. 그 사이 바뀐 일본의 법으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직계는 가해자에 대한 자료 열람이 가능해졌기로 히야마는 촉법 소년 a 등을 찾아나섭니다. 보호감호소의 교장과 선생, 가해자들의 부모, 이웃, 언론인,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촉법소년을 만나며 히야마가 느끼게 되는 부조리한 사회의 일면들이 뼈아픕니다. 법령을 위반한 범죄좌들에 대한 과잉된 인권 의식, 고통 속에 허덕이며 몸부림 치는 피해자 가족과 대비되는 가해자들의 뻔뻔함과 망각, 가해 어린이 재활을 위한 비용과 비교하자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대한 지원과 보호. 그리고 그런 부조리를 파헤치고 부르짖다 발견하게 된 히야미 아내의 원죄. 그리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처분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그들 "촉법소년".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했다더니 그럴 만도 하네 하고 인정하게 되는 책입니다. 공감가는 소재로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구요. 책을 읽고 난 후 저의 기존의 생각에 변경된 부분은 없습니다만 (촉법소년의 연령을 대폭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촉법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 조금쯤 시야를 넓힌 기분이긴 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 <천사의 나이프>를 추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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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 우주, 지구, 생물의 탄생
옌스 하르더 지음, 멜론 편집부 옮김 / 멜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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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지구, 생명의 탄생으로 가득한 140억 년의 어마어마한 시간을 368 페이지의 간략한 구성으로 그려낸 멋진 책을 만났습니다. 옌스 하르더의 ALPHA. 독일 작가가 바라본 지구의 시간들이 과학, 신화, 종교적 그림들로 표현된 305*190mm 의 백과사전 같이 거대한 크기의 그래픽 노블입니다. 빅뱅이라고 하는 시공의 시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가 만들어지고 지구와 달이 생성되고 지구에 최초로 비가 내리고 그 안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생명들이 탄생, 순환, 멸종하는 과정이 현생인류가 등장하는 인류대에 오기까지 반복되다 막을 내리는데요. 우주ㅡ 은생누대ㅡ고생대ㅡ중생대ㅡ 신생대의 시기마다 지구가 어떤 형태의 변화를 이룩하지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기마다 되풀이되는 혹독하고 잔인한 지구 환경의 변화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일보하는 생물들에 대한 감탄, 구간반복처럼도 느껴지는 거대한 종의 멸절이 상세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으로 표현되어 약간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예언이랄 것도 없이 우리 인류의 멸종도 결국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결국 어떻게 하여 모든 것은 시작된 것인가, 어떻게 하여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인가 라는 두 개의 의문만이 인간의 근심의 씨앗이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 책은 그래픽노블이기 때문에 글밥 보다 그림이 훨씬 많습니다. 우주, 지구, 다양한 종과 관련한 각종 그림이 어마어마하게 등장합니다. 우주의 탄생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던가 지구 탄생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나온다던가 우성생식에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이 그려진 벽화가 얼굴을 들이민다던가 하는 등으로요. 처음 몇 페이지는 이런 그림의 구성들로 약간 난해하게도 느껴지지만 금방 적응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 사실 공룡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라 기대하며 읽기 시작한 책인데 우주 연혁의 공평한 할당으로 최초의 공룡이 등장하는 고생대 폐름기나 중생대, 신생대 이야기는 그리 길지가 않은 점 참고 하시구요. 새로운 형태의 지구과학책, 우주의 신비와 어린 지구 속을 항해하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게 하는 책을 원하신다면 그래픽노블의 신기원 ALPHA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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