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 후드의 <내 인생 최고의 책>에서 1월의 명작으로 뽑힌 책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습니다. "독신남이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아내를 얻고 싶어 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는 첫문장을 읽자마자 주인공 에이바는 오만과 편견을 못읽을 책으로 정의하고 읽기를 포기합니다. 다른 여자가 생겨 집을 나가버린 남편을 둔 그녀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아내를 원한다는 내용만으로 삼백 쪽이 꽉 채워진 책을 읽기가 싫었던거죠. 독서클럽에 나간 에이바는 오만과 편견을 읽은 척 하다 두 가지 실수를 해버려요. 영화 속 엘리자베스(이하 리지)의 성격과 소설의 성격이 같을 거라고 가정한 것이 1차 실수, 첫눈에 그들 두 사람이 끌렸다고 착각한 것이 2차 실수였죠. 소설 속에선 다아시와 리지가 첫번째 무도회 때 아예 춤을 추지도 않거든요. 제가 오만과 편견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결심한 이 장면에서 주인공 에이바는 수치심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모두가 그녀가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으니 창피할 만도 했죠. 에이바가 새해를 맞아 결국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저는 시공사의 책을 잡아 그간의 호기심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시공사의 오만과 편견은 첫문장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을까. 이 책이 온통 결혼 이야기로 꽉 차있는 그저 그런 로맨스라면 어째서 고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소녀 감성 넘치는 핑크빛 표지를 펼쳐 첫 문장만큼은 손으로 집어가며 읽었습니다. 첫 문장에 나 또한 실망할 것인가, 그게 궁금했거든요.

"부유한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그런가요? 18세기 영국의 남성에게 아내가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 느낌이 없네요. 그 필요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이 문장 다음에 제가 원하는 설명이 없어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잘난 남자가 동네에 입성해 딸을 둔 가정이 난리가 났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더라구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니 아내가 없어도 하인만 있으면  부유한 남성의 평볌한 삶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는데 말이죠. 별다르게 평판이 하락하는 느낌도 아니었구요. 어찌됐든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만남 다아시와 친구에게 휘둘리는 순진무구 빙리의 이사로 리지가 둘째로 있는 베넷가도 난리가 난답니다. 분별없는 주책 욕망녀인 베넷 부인은 딸들을 부유한 남성과 혼사시키지 못해 안달이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베넷 집안의 재산은 아내나 딸들에겐 상속권이 없는데다 가난한 집안이라 딸들의 혼인이 아니면 부인 스스로를 부양할 방도가 없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길거리에 나앉을 미래가 예비되어 있지요. 거기다 그 시절에는 지참금 문제로 재산과 배경이 없는 처녀는 거의 결혼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어요.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국 첫 문장은 그저 가난한 집안 여자들의 강렬한 소망이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가난한 여성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라고 써뒀다면 더 이해가 갈만한 실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펼쳐지니까요. 노동할 수 없는 여성의 삶, 삶에 선택권이 없는 여성의 삶, 좋아하는 남성이 있어도 먼저 고백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남성의 고백이 있기만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삶, 상속재산과 남편이 아니라면 미래와 노후를 대비할 수도 없는 삶. 그런 삶들의 단면이 노골적인 욕망과 속물적인 태도로 표현됩니다.

리지와 다아시 또는 빙리와 제인의 절절한 로맨스는 어떻냐구요? 콧방귀도 안나올 정도로 별 거 없습니다. 영화쪽이 소설보다 훨씬 낭만적이에요. 리지와 다아시가 춤을 추던 그 무도회 장면의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고 빗 속의 꺅~ 소리 절로 나던 고백씬도 없습니다. 다아시와 리지의 대화 어느 한 구석에서도 뭔가 그럴 듯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너무 냉담한 감성의 독자여서 그들의 은은한 로맨스를 비껴간 걸수도 있겠지만요. 비율로만 따져도 아름답고 가슴 뛰는 로맨스로 가득할 것이라던 저와 에이바의 생각은 영화로 인한 완벽한 착각이자 편견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사랑보다는 이들의 결합, 배경과 재산을 뛰어넘는 결혼이 한꺼번에 두 쌍, 자매와 절친한 두 남자 사이에 이뤄졌다는 게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적어도 제 기준에선, 남녀의 사랑보다는 짝짓기에 목숨 걸 수 밖에 없는 그 시절의 영국 현실과 허점 가득하고 터무니 없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인물들, 그리고 모두까기의 달인처럼 느껴지는 제인 오스틴의 비판적인 시각과 부유한 장원에 대한 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다아시 영지에 대한 묘사요. 전 이 성실하고 빽빽하고 공들인 묘사를 보면서 작가 제인 오스틴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로맨스나 다아시 같은 남자가 아니라 조랑말을 타고 다니며 돌아다녀야 할 정도의 넒은 장원과 역사와 문화와 예술로 가득한 주택과 신실한 하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사실 그건 저의 바람이기도 하답니다. 부유한 독신 여성!! 그러나 그 때에도 지금도 독신은 쉽지만 부유는 쉽지가 않아 서글퍼지는 오만과 편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