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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먼트 - 복수를 집행하는 심판자들, 제33회 소설추리 신인상 수상작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동해복수법: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생명에는 생명으로
고바야시 유카가 만들어낸 일본 속 세상에 한 차례 파란이 인다. 아들을 죽인 깡패를, 어머니를 죽인 자신의 친딸을, 쇼핑거리에서 무작위로 행인을 살해한 사이코패스를, 아들을 죽인 아들 친구의 할머니를, 여동생을 죽인 의붓 아버지와 친어머니를 내가 내 손으로 보복하고 죽일 수 있는 동해봅수법이 제정된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이 원치 않을 시에는 기존의 법령으로 12년 정도의 구형을 받을 일도 피해자의 가족이 원할 경우에는 피해자가 죽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여 죽일 수가 있다. 내 소중한 가족이 죽었는데 누구는 10년만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에 나오게 된다! 정신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이가 어떤 처벌도 없이 치료 처분만을 받는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형이 감해진다!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양심적이지도 않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처분하겠다!는 다양한 피해 가족들의 사연과 선택을 작가는 보호감찰관 도리타니 아야노의 시선을 빌려 보여준다. 단, 형이 집행되는 복수실에 고문관은 없다. 사형감독관도 없다. 집행은 오로지 그 법을 선택한 자신의 손으로만 이루어진다. 피해자의 가족이 복수라는 미명 하에 다시 가해자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그들은 사디스트도 아니고 사이코패스도 아닌데 삽을 들었고 야구배트를 들었으며 칼을 쥐었다가 그 스스로 옥상에서 떨어져 내리기도 한다. 이미 가족을 잃은 피해자인데 복수라는 목적 아래 다시금 고통 받는 그들의 모습이 슬펐다. 그렇다고 그 고통스런 행위를 달리 누군가에게 전가할 수도 없다. 전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불티를 맞은 세상의 많은 이들은 할수만 있다면 나 대신 누군가가, 나라가, 법이, 집행관이 그 복수를 대신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가해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지만 과연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복수를 위해 상대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을 수 있을까.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복수를 완성할 수 있을까.
"정말로 무서운 것은 언제나 자기 마음 속에 존재한다." (페이크 중)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제인 하퍼의 <드라이>, 고바야시 유카의 <저지먼트>. 8월에 만난 이 세 작품의 충격적인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작가의 데뷔 작품이라는 것이다. 쓸쓸하고 황량하고 서글프고 화가 나고 무엇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분별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진 이 책들이 어느 누군가의 시작일 따름이라는 게 놀랍고도 감사하다. 특히나 천사의 나이프와 저지먼트는 너무나 상반되는 주제와 내용으로 작가들이 꼭 대련을 펼치는 것만 같은 느낌까지 주었는데 근간에 읽은 두 책이므로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천사의 나이프를 읽을 때는 살인자에 관한 법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과 인권이란 말이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와 가족을 농락한다는 느낌을 때때로 떨칠 수가 없었고 때문에 그들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높이고 상대가 촉법소년인 경우 한계연령을 더욱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지먼트를 읽고 난 후에는 모르겠다. 머릿속에 내가 올바르다고 믿고 생각해왔던 이제까지의 가치관이 온통 뒤섞여서 어느 판단에 손을 들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위치까지 감안하면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불티> 속 판사 가지마 이사오의 입을 빌어 재판관 입장에서 형을 언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한 적이 있었다. "범죄자를 엄하게 벌하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재판관은 양형을 1년 더하고 뺄 때도 끊임없이 번민을 거듭한다"/ "살인자든 누구든 더 이상 사람을 심판하는 일 따윌 할 수 없다. 나도 사람을 죽인 거다." 가지마 이사오는 범인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도 사형을 언도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으로 무죄를 판결했고 언젠가 피고인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그의 선배는 사람을 자신의 선고로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 채 판사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이 책 저지먼트의 보호감찰관 아야노 또한 결국 형을 집행하던 피해자의 선택을 막아선 대가로 옷을 벗게 된다. 불티를 읽을 때에 나는 그 판사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했었다. 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다. 집행자라고 해서, 제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해서, 제 입으로 언도한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는데 그들의 마음보다 가해자의 처벌에 더 큰 목적성을 두었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내가 짊어지지 않는 책임이라 하여 쉽게 재단하고 판단해서는 안되었음을 저지먼트로 깨닫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반드시 그들은 처벌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인데 당한 사람은, 의도치 않게 약자가 된 사람은, 그런 판결과 처분조차 없다면 대체 무엇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는데 그러나 처벌만이 또 능사라고 할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답으로 법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애초에 악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정도 이상의 위법 따위, 폭력이나 살의 같은 건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러나 그걸 강제하면 이번엔 또 이사카 코타로의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의 세상이 복제될 판이니 사방으로 길이 없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