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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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113쪽을 넘어갈 때까지 나는 이것이 작가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집인 줄을 몰랐다. 히스 레저(에니스), 제이크 질란헬(잭)의 뜨겁던 사랑, "난 동성애자가 아니야 / 나도 아니야" 하며 부정하던 두 사람의 대화, 끝이 분명한 미래에 돌아서던 두 사람의 발걸음,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는 아파트 문 앞에서 펼쳐진 욕망 어린 해후와 부정, 그 모습을 알고도 모르는 척 돌아서던 에니스의 아내와 일 년의 며칠을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 몸으로 부딪히던 기나긴 세월과 엔딩 속 겹쳐져있던 두 사람의 셔츠. 무엇보다 눈을 푸르게도 시리게도 만들었던 여름과 겨울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찾아 읽기 시작한 책 속에서 단편 1. <가죽 벗긴 소>를 지나 단편 2.<진흙탕 인생>을 넘어 단편 3. <경력>에 이르렀을 때에야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다급히 페이지의 끝으로 가 번역가의 말을 읽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애초에 장편소설도 아니었을 뿐더러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11개의 단편 중에서 내가 읽고 싶은 것은 꼭 한 편 뿐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브로크백 마운틴 보다 더 깊이 마음에 스민 이야기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별로였다는 것이 아니라 (고작해야 50에 가까운 페이지 속에 134분의 러닝타임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그만큼 다른 단편들의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좋았다. 폭설에 가로막힌 밤 가죽 벗긴 소의 저주를 깨닫게 되는 초로의 노인, 아버지에게 부정 당한 후 삶이 망가져버린 카우보이, 목장주와 카우보이와 창고지기의 직업을 거치고 거치다 아내가 죽은 뒤에야 요리의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홀아비, 외로움에 허덕이며 타인의 전화를 도청하는 처녀, 아내의 외도 후 혜성의 힘이 담긴 박차(카우보이 신발에 달려있는 톱니바퀴 같은 것)에 홀려버린 남자, 성기가 거세 당한 청년, 인디언 보호구역의 소년과 소녀, 푸른수염, 다시 만나는 잭과 에니스의 허망한 사랑과 삶. 이 이야기들이  금세기 최고의 단편인 줄은 모르겠지만 까끌까끌 메마른 이야기들을 읽어내리는 불편한 마음이 좋았다.  아마 가을이 다가와서인가보다. 와이오밍의 황량하고 삭막하고 가난하고 피폐한 사람들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마음에 스미는 거 보면. 정말로 가을이 다 되었나 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다. 바로 그거다. 오래 버티고 서 있다 보면 언젠가 앉을 때가 오는 법니다." (세상 끝자락의 레드월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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