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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 종활 사진관
아시자와 요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17년 11월
평점 :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드라마와 수수께끼가 있다. 후회 없는 엔딩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것도 '종활'이지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고 배웅하는 것, 그리고 그 후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역시 '종활'이다. 바라건대 이 소설이, 혹여 소중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도, 당신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ㅡ 아시자와 요
1. 첫 번째 유언장
"마지막에 가족에게 퀴즈를 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죽는 건 두렵다. 하지만 죽으면, 할머니에게 퀴즈 정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런 기대감을 가족들에게 안긴다면, 죽음이 조금은 즐거워질거라고."
하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실연의 상처와 실직으로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던 하나에게 더할 수 없는 충격을 준 사건이었지요. 그러나 그런 충격과는 별개로 하나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친으로부터의 배신감에 잠도 들지 못하는 어머니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죠. 하나의 외할머니가 큰딸인 하나의 엄마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자식에게만 재산이 돌아가게끔 한 유언장의 공개는 유산의 많고 적음과는 별개로 엄마의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상처였으니까요. 할머니의 장례 사진을 찍어주고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었다는 아마리 종활 사진관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하나의 용기는 유언장의 비밀을 푸는 것으로 보답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나 가족을 사랑했던 하나의 외할머니는 어째서 큰딸에게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던 걸까요?
2. 십이 년 만의 가족사진
"오해가 풀렸다고 떠난 가족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멈춰 있던 시간은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이치로 할아버지의 가족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의문투성이 색깔로 그려낸 무섭도록 괴이한 손자의 그림, 며느리가 손주를 학대하고 있다는 소문, 바쁜 일과로 집안 문제에 무심한 아들, 학교장으로서의 체면 때문에 소문을 무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고이치로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며느리의 추락사였어요. 경찰의 조사 끝에 손자인 가이토가 어머니의 추락을 목격하고도 구조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고이치로 가족은 죄책감과 의심 속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지만 십이 년 만에 고이치로 할아버지는 용기를 냅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유일하게 남은 소망인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서였지요. 고이치로 할아버지는 아마리 종활 사진관의 멤버들과 함께 장례 사진 한 장으로 해체된 가족을 다시금 모을 수 있었을까요? 가족들의 오해는 또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하십쇼. 제발요! ㅋㅋ
3. 세 번째 유품
"아빠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면, 분명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줬을 것이다.
아빠 딸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아빠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홀로 큰 교코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교코로 하여금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전화를 건 곳은 다름아닌 아마리 종활 사진관으로 사진관이 전파를 타게 되면서 그 사연 중의 하나로 교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진이 선택된 것이었어요.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는 젊은 부부와 부부가 함께 받쳐들고 있는 볼록 튀어나온 배. 그러나 일찌감치 헤어졌던 부부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요? 방송을 위해 사진의 사연을 파헤쳐 보려는 아마리 멤버들은 과연 교코의 아버지를 찾아 엄마의 세 번째 유품을 확인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미 뱉어낸 말을 줏어담지 못해 내내 후회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4. 두 번째 영정사진
"병에 걸리기 전까지 나는 내 생각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내 삶의 방식이 가장 옳다고 믿었고, 행복하다고 믿었고, 아니 굳게 믿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죠. 내가 죽은 후,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가장 소중한 게 뭔지도 몰랐던 때보다는 머리칼이 빠졌어도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 레이카와 종활사진을 찍으러 왔던 중년의 남자 오에씨. 아마리 사진관 사람들은 당연히 레이코가 오에의 딸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에씨의 집에 방문해 그의 아내와 함께 두 번째 종활 사진을 찍으며 그들에겐 아들만 있을 뿐 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찍이 유부남에게 속아 그에게 프로포즈까지 받았던, 그리하여 결혼준비를 위해 자발적 퇴사까지 감행했으며 이제는 아마리 종활 사진관의 또한명의 직원이 된 하나는 오에의 행각으로부터 한가지 사실을 유추하며 분노와 충격으로 부들부들 하지요. "배송지 주의!!"라는 강력 문구까지 넣은 오에의 주문서와 젊은 애인 레이카와 오에의 아내에게 각각 보내게끔 되어 있는 사진이 들어있는 택배 두 상자. 하나는 제 손에 쥐어진 두 상자의 택배를 무사히, 안전하게, 정확한 주소로 배송할 수 있었을까요? 유부남 전 애인으로부터 당도한 여전히 좋아해 라는 유혹의 문자는 그녀로 하여금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인생을 마무리 짓기 위한 활동 "종활"을 위해 아마리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거대한 요크셔테리어 같은 인상의 사진사 아마리, 돈에 목숨 건 사진관의 코디네이터 유메코, 본적을 알 수 없는 사투리로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조수 도톤보리, 할머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방문했다 직원으로 입사해버린 헤어 디자이너 하나의 앙상블로 엮어진 코지 미스터리입니다. 기대감을 갖기에는 좀 낯선 제목, 낯선 작가, 애매한 표지의 책이었습니다만 제가 느낀 감동은 요몇년간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 이상이었어요.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남은 가족을 배려하는 어른들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지만, 또는 죽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또다른 행복으로 전진하는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미스터리는 거들 뿐 실상은 성장물 같은 느낌이기도 하구요.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 하고 마음 졸이는 일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전형적인 일본감성의 책이라 많은 분들이 잡기만 한다면 아주 재미나게 술술 읽을 책임이 확실한데 이 좋음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요. 제가 리뷰를 더 잘 썼더라면 몇 명쯤은 유혹을 했을 터인데!!!!!ㅠㅠㅠㅠ 타인의 죽음이 곧 내 행복인 삭막하지만 카타르시스 넘치는 미스터리도 물론 좋지만요. 이렇게 가끔은 함께 애도하고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하고픈 주인공들과의 작은 추리도 즐거운 것 같아요. 호빵 같이 훈훈한 책 아마리 종활 사진관과 함께 올겨울 따뜻하게 나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