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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ㅣ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경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평점 :
젊은 날의 치기와 열정, 현명한 어른의 오랜 경험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언제쯤이면 알 수 있을까?
어린 처녀들은 무엇에 의지해 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27살의 앤 엘리엇은 8년 하고도 반년 전 사랑을 약속했던 웬트워스 젊은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어머니와도 같은 레이디 러셀의 설득과 준남작으로써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아버지와 언니의 반대 때문이지 결코 사랑이 식어서는 아니었다. 웬트워스는 귀족가의 사내도 아니었고 가진 바 재산도 없었으며 갓 입대한 해군으로 전장에서의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인생이 필리가 없는 남자였다. 레이디 러셀의 설득은 적어도 19살의 앤이 겪어야 할 현실을 생각하면 합당한 것처럼 보였다. 정작 8년이 지나 웬트워스가 여전히 아름답고 건강하며 곧 준남작으로 승급할 지위와 거대한 포상금과 함께 돌아왔을 때에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상냥하고 다정하지만 큰 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언니의 사치로 지참금을 기대할 수도 없는 빚쟁이 딸의 신세인데다 이제는 누가 봐도 나이 먹는 처녀인 앤의 신세만 처량해졌다. 빚을 갚기 위해 그들의 집을 웬트워스 누나에게 임대하지 않으면 안되던 때의 비참함이란!! 게다가 자신은 아직 8년전의 마음을 채 다 정리하지도 못한 상태인데 웬트워스는 앤의 동생 메리의 시누이 루이자와 헨리에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갖은 인기를 누린다. 처음 앤은 웬트워스의 성향상 이 처녀들과 사랑에 빠지기는 힘들 것이라 낙관했지만 운명은 기어이 앤의 앞으로 절망적인 번개를 내리꽂았으니 웬트워스의 책임 아래서 루이자가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다. 뭘 어떻게 뛰어내려야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자빠져 죽을 수 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들 모두가 루이자가 죽었다고 믿었다. 또는 죽을 거라고. 하다못해 해전에 나아가 십여 년을 싸우고 돌아온 대령조차도;;; 그리고 이 머리통이 부셔지는... 이라고 책에는 과격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정확한 병명은 뇌진탕의 결과로 루이자는 웬트워스 대령의 구애를 받게 된다. 박수칠 만한 책임감이다;;;; 앤은 다시 한번 마음을 접은 채로 가족들이 이사한 바스로 몸을 옮겨가고 이제는 완벽하게 그를 잊었다고,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웬트워스가 다시 바스로 오며 이 두 사람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뭐 뻔하지. 그냥 나도 네가 좋고 너도 내가 좋은 것 같고 이러구저러구 묻고 확인하고 결혼하면 됐을 걸 오해하고 질투하고 샘내다가 돌아서고. 그런데 이런 게 다 연애감성 넘치는 소설의 재미 아니겠는가. 이것들이 놀고 있네 싶으면서도 어딘지 흐뭇하고 장난치냐? 하면서도 더 쳐라 싶은 이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여튼 결과적으로는 다 잘됐다.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에 이어 이번 설득에서도 모든 이들이 그 나름으로 보답받고 한편으로는 합당한 벌을 받으며 모두 다 그럭저럭 잘산다. 미운 사람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라 참 다행이지 뭐.
설득은 작가가 투병 중에 쓴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책보다 얇고 다른 책보다 감정적 소모가 적다. 얄미운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아 진 빠짐도 없는 대신에 톡톡 튀던 개성의 일말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무한히 즐거우며 그래서 무한히 감사하다. 아프신 와중에도 이렇게나 행복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소설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을 작품을 남겨주셔서. 작가의 매력을 너무 늦게 알게 됐다는 처음의 아쉬움은 사라지고 아직 몇 편쯤 더 읽을 책이 남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작가의 또다른 책 에마를 꺼낸다. 이 책엔 또 어떤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고 기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