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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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상당한 수수께끼 같아."p.83

책을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안갈 때에는 어떤 감상평을 남겨야 하는걸까. 이게 뭔소리야 싶을 적에는 독자도 감상평을 알아들을 수 없게 야옹야옹왈왈으르렁 이렇게 써도 괜찮은걸까. 한글책을 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까마득하니 남의 나라 말 같을 수가 있는지, 1장에서 3장으로 넘어갈 때까지 어떻게 이 책이 단편집인 줄도 몰랐을 수가 있는지, 7장에 닿아선 또 어떤 식으로 단편들이 장편화 되는지 그 유기적 관계를 일일이 설명하려니 말문이 다 막히지만 결국 나는 한번 더 책을 읽음으로써 막힌 말문과 생각을 터보기로 했다. 소설 마니아들이 헌책방 순례를 하면서까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찾아나섰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지루하다, 재미없다 라는 말 이외의 무언가를 나도 이 책에서 건져올릴 수 있기를 바랬다. 1회독 때의 해독불능이 2회독 때엔 부디 만회가 되기를, 그러나 큰 기대는 갖지 않은 채 읽고 다시 읽다보니 새삼 독서의 재미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주의해. 귀를 기울여. 이 세상에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어" (p111)

제1장. 가짜 르나르의 야구 박물지. 2만권의 책과 함께 365일 반찬백과라는 고양이를 키우며 책에 나온 야구 이야기를 필사 중인 남자 "나"가 등장한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와 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야구선수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며 서부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시나리오를 두고 야구 경기의 해석본이라고 단 한번도 야구를 보지 못한 소년에게 설명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헛소리다. 제2장. 라이프니츠를 흉내 내어. 슬럼프에 빠진 주전 투수와 슬럼프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공을 치기 싫은 타자가 말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라이프니츠의 단자론과 키르케고르의 불안이론이 썩 그럴 듯해 보이는 것도 잠깐이고 그냥 헛소리다. 제3장. 센티멘털 베이스볼 저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큰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소년에게 야구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2시간 안에 야구시 900개 쓰기, 매일 100편 이상의 포르노 보기 등 맹훈련에 힘쓰며 소년을 야구선수로 키워냈고 소년은 훌륭하게 야구를 해낸 탓에 소년원행, 역시나 헛소리인게지. 제 4장. 일본야구창세기담.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책을 많이 읽는 배고픈 늑대와 보기 드물게 공정한 닭의 자본론으로부터 일본야구를 실현하는 감독님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교환일기를 쓰며 일본야구를 창조하는 에로신들이 등장하는 새삼 헛소리였다. (그래도 죽는 순간까지 야구만을 생각한 감독님은 살짝 찡하기도) 제5장. 코 푸는종이로부터의 생환. 제1장 야구 박물지에 등장했던 시나리오가 굳이 재등장해서 떠드는 언제까지고 헛소리다. 제6장. 사랑의 스타디움. 스타디움에 둘러앉은 선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의 수다, 그럼에도 시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헛소리다. 제7장. 일본 야구의 행방. 대망의 끝, 한신 타이거스 선수들이 모두 사라졌다. 일본야구도 사라졌다. 소설도 막을 내렸다. 모든 게 헛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헛소리를 한 그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 이것이 과연 헛소리가 맞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적어도 이 책 속에는 야구와 관계없는 건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멋진데?

"사랑은 사라져도, 야구는 남는다." (p221)

야구가 너무너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야구가 너무너무 좋아 야구를 찾으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카하시 겐이치로 작가의 여기도 야구 저기도 야구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야구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을 처음 읽을 적엔 95년과 2005년을 거쳐 2017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째서? 왜 또?? 이걸 누가 읽는다고???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만큼 갖가지 수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라는 걸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 줄거리의 줄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독서에 이토록 큰 괴로움을 선사할 줄이야. 그러나 재독 후의 감상은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 뭐라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만큼이나 좋아서 떠들어댈 수 있다니 작가도 등장인물들도 대단하네.. 이런 심경? 실존의 야구가 소멸한 세계에서 프란츠 카프카와 쥘 르나르와 월트 휘트니와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무수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 속에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한편의 시처럼 살아남게 된 어느 미래의 일본야구를 만나보시기를 기원한다. 나만 지루할 수 없다는 심보 가득한 추천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땀내나는 글러브와 묵직하게 공을 울리는 배트 소리와 함성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자리를 채우는 얄밉도록 해체된 말과 상황들이 어리둥절하게 여러분을 반길 것이다. 줄거리가 아니라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읽는다면 예상치 못한 흥미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일본에서도 재미없기로 악명 높다는 책을 어쨌든 읽어는 냈다는 기분을 덤으로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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