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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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페이지를 매긴 이유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타당한 이유로 책 읽기가 중단되었을 경우, 그 지점을 찾기 쉽게 해주려고 말이다." (p381)


페이지의 존재 이유가 이와 같다면 이 책 모스크바의 신사야말로 페이지가 필요치 않은 책이다.
읽기 시작하면 어떤 이유로도 중단할 수 없을테니까.
적어도 내겐 그랬다. 


1. 메트로폴 호텔의 로빈슨 크루소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당신의 증언을 모두 고려해보면 우린 그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를 썼던 명민한 영혼이 자기 계급의 부패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굴복했으며, 지금은 한때 자신이 지지했던 바로 그 이상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소. 이를 근거로 한다면 우리로서는 당신을 이 방에서 내보내 수감하는 게 온당할 것이오. 하지만 당의 고위직 중에는 혁명 이전 단계 영웅의 범주에 당신을 넣는 사람들이 있소. 그래서 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p17)"

 

 

소설의 시작. 1922621일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하 백작)은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 땅에서 꽤나 온건한 형을 선고받는다. 메트로폴 호텔에서의 감금형. 그와 유사한 처지의 귀족들이 재산을 압류 당한 채 사형 당하거나 시베리아 유배형을 선고받는 것에 비한다면 천국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프랑스로 도피한 상태에서의 자발적 귀국이었다는 점에서 소설은 시작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쨌든 서른셋의 대귀족은 궁궐 같았던 자신의 거처에서 쫓겨나 하인들이나 쓰는 다락방에 기거하게 됐다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유물 중의 몇 가지ㅡ백부가 남긴 책상을 포함하여ㅡ 자존심과도 같은 책들과 위스키, 아버지의 시계, 여동생의 초상화와 함께. 그렇다면 다음 장면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하고 나는 아마도 다른 독자들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성 안드레이 훈장(러시아 최고 훈장, 시진핑이 푸틴에게 이 훈장을 받았다.) 수훈자이며 경마클럽 회원이고 사냥의 명인인 남자가 설마 단칸방에 가만히 앉았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는 가만히 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드러눕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 하고. 십년에 걸친 결심이지만 인생이 유혹이었기에 매번 성공하지 못했던 이 목표 앞에 드디어 책만 읽을 수 있는 온전한 시간과 고독이 주어진 것이다. 그는 의자의 뒷다리 두 개로만 균형을 이룬 채 책상에 발을 올리고 앉아 내내 책을 읽는다. (좋겠다!) 또한 책상 속에 숨겨진 예카테리나 대제의 황금주화를 이용해 질 좋은 침대시트와 백작이 가장 좋아하는 비누 네 개, 천개의 이파리라는 밀푀유도 하나 주문한다. (진짜 좋겠다!) 이뿐이랴. 다락방 옷장을 뚫고 지나가 (나니아 연대기냐!!) 누구도 모르는 비밀의 서재까지 한 칸 마련하고 보니 이 세상의 모든 로빈슨 크루소들이 꿈꾸는 완벽한 피난처와 깨끗한 물을 모조리 갖춘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짜진짜 좋겠다!!) 이제 남은 일은 15년의 고독과 25년 후 프라이데이와의 만남 뿐인가?


2.  메트로폴 호텔의 소공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 백작이 꽤나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호텔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장소에서 기거하는 것은 상당히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었다. 외향적인 그로써는 집돌이가 되는 것도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도 사교활동을 제한 당하고 귀족이 사라져버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일.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들이 꿈처럼 반복되는 때에 백작은 자살을 생각한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목표로 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가 호텔의 와인 저장고에서 가지고 온 샤토뇌프-뒤-파프 와인 (머리 나쁜 사람은 주문도 못할 듯)을 들고 다락방 보다 한칸 위 호텔의 지붕 위에서 만나게 된 꿀벌의 기적이 아니었다면 두개골이 깨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다음 날 호텔 앞에 추락해 있었을 테다. 그러나 어떤 기적이 그를 삶으로 불러들였고 직업을 가지는 것을 수치로 알던 유한계급의 백작은 웨이터들이 입는 흰색 재킷을 왼팔에 건 채 호텔을 오가는 현실을 선택한다. 마치 소공녀의 세라처럼. 기적은 또한 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다락으로 한정됐던 백작의 좁은 세계를 우주만큼 넓혀준 메트로폴 호텔의 만능키 니나, 다락방에 피는 사랑 안나, 칼을 지휘봉처럼 휘두르지만 실은 수줍음 많은 주방장 에밀, 피아니스트와 같은 손으로 주문을 도와주는 영민한 지배인 안드레이, 백작의 터진 바지와 용기를 함께 꿰매주는 재봉사 마리나, 카사블랑카를 좋아하는 의리있는 공산당 간부 오시프, 백작의 모든 특별한 시간이며 장소인 그녀 소피야와의 만남과 동거가 그의 인생에 풍족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때문에 메트로폴 호텔 사방 벽 안에서 만들어지는 32년에 걸친 백작의 삶은 단 한순간 어떤 장면 어떤 상황 어떤 인물 앞에서도 지루하지가 않다.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이라는 한 남자의 다정하고도 선량한 매력이 723 이라는 거대한 페이지조차 짧고 아쉽게 만든다. 러시아 역사를 몰라도 괜찮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추천작이라고 겁먹을 필요도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인생책들과 달리 이 책은 정말 재미있으니까.  메트로폴 호텔의 로빈슨 크루소였고 소공녀였던 모스크바 신사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의 우미함에 꼭 한번 빠져보시길!! 그가 과연 몽테뉴의 수상록을 다 읽었을까?? 이또한 책으로 확인해 보시라. 추천 쾅!!
 
"편리함이라는 게 뭔지 얘기해줄게요."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정오까지 잠을 잔 다음에 누군가를 시켜 쟁반에 받친 아침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 약속 시간 직전에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것. 한 파티장의 문 앞에 마차를 대기시킴으로써 얘기만 하면 즉시 다른 파티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 젊었을 때 결혼을 피하고 아이갖기를 미루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 (p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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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읽었거나 읽는 중이거나 읽으려고 목표하는 책들>

 


1. 해저 2만 리 : "진취적인 기상이 조금이라도 있는 소년이라면 누구나 노틸러스호에서 보내는 하룻밤과 궁전에서 보내는 100일 밤을 기꺼이 맞바꾸지 않겠는가?" (p31) 응, 난 아냐. 난 궁전으로 고고~ 반면에 백작은 자신의 다락방에 도착해 작은 침대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기어이 노틸러스호에 이르렀구나 하고. 그다지 절망조차 않고서.

 

2. 몽테뉴의 수상록 : 고독과 시간이 함께 하지만 읽기 쉽지 않은 책. 백작은 분노한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에요?"(p57) 방금 전에 읽은 부분조차 기억나지 않아서 하는 말. 귀족은 책을 집어던지지 않더라. 농 밑의 받침대로 쓸 지언정.

 

3. 안나 카레리나 :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모습이 제각각이다."멋진 말이야"(p106) 이외에 무슨 감탄사가 필요할까. 그러나 수상록에 이어 농의 받침대가 되어버린 책. 수상록과 두께가 비슷하다나?

 

4. 호두까기 인형 : 백작은 호두까기 인형의 1막 1작이 러시아가 서구사회에 기여한 두 번째 문물이라고 말한다. 서구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꿈 속에 호두까기 인형의 트리가 자라나고 있단다. 첫번째는?

 

5. 체호프와 톨스토이 : "정확하고 깔끔한 체호프의 작품들은 우리를 어떤 별개의 시간에 어떤 가정의 한 구석으로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적나라한 인간 조건이 갑자기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나게 되죠. 반면에 다른 극단에는 톨스토이가 있어요. 당신은 전쟁과 평화보다 시야와 범위가 더 큰 작품을 생각해낼 수 있나요? 배경이 응접실에서 전장으로, 다시 전장에서 응접실로 능란하게 옮아가는 작품을 생각해낼 수 있어요? 어떤 식으로 개인들이 역사에 의해 형성되고, 역사가 개인들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그토록 철저히 탐구한 작품을 생각해 낼 수 있느냐 말입니다." (p255)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싶은데 안읽어봤으니 알 수가 있나. 올해 전쟁과 평화는 꼭 읽어보자... 고 목표하지만 아마 십년을 오늘 같이 생각하겠지.   

 

6. 전쟁과 평화 : 이미 사랑에 빠진 남자와 호감을 드러내는 여자의 저녁. 호텔 식당의 청춘들을 보며 백작은 생각한다. 그들의 눈빛이 전쟁과 평화 속 나타샤가 피에르에게 보여준 부드러움과 같았다고. 읽었어야 알지. 덴장. (p158)

 

7. 크리스마스 캐럴 : 12시에 풀어보라는 니나와의 약속 때문에 선물을 코 앞에 두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는 백작. 한두 단락만 읽을 생각이었지만 어느 새 흥미를 느껴 책을 완독, 책을 덮고 불을 껐을 때 백작이 느낀 커다란 행복을 나도 이 책으로 느꼈다. 모스크바의 신사 말이다.

그밖으로 햄릿,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죽은 넋,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잭 런던의 야성의 외침, 체호프의 편지 등 다양한 책들이 잠깐씩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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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의 회고록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3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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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더운 여름, 된통 감기에 걸리고만 무민파파는 무민마마의 설득에 힘입어 회고록을 쓰기 시작합니다. 자그마치 머리말까지 있는 이 체계적인 회고록은 무민파파가 종이봉투에 담겨 헤물렌의 고아원에 버려졌던 시기로부터 시작을 하지요. 그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지 못한 것에는 큰 불만이 없었지만 그의 부모님의 부족한 낭만에는 조금쯤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바구니도 아니고 종이봉투라니! 그것도 신문지에 돌돌 말린 상태로 무성의하게 버리다니!! 하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썩 긍정적인 무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부족한 낭만을 자신의 탄생 별자리에서 찾아 매꾸는 기지도 발견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무민인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무민파파는 무민의 기질을 한껏 발휘해 사건을 일으키기로 결심합니다. 더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침대 위에서 시럽 샌드위치를 먹고 침대 밑에는 뱀이랑 스컹크를 놓아두는 자유를 찾아 얼음바다에 몸을 던진 거에요. 오로지 호박쨈 한통만 가지고서요!! 이 무대책의 낭만성이란!!

정말 푸르고 잔잔한데!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서 흔들흔들 잠이나 자고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았으면.
 


빙판을 붙들고 둥둥 떠다닌 끝에 도착한 어느 육지에서 밤새도록 낯설고 어두운 숲속을 헤맨 끝에 무민파파는 생에 처음으로 영혼의 단짝이랄 수 있는 친구를 사귀게 되어요. 발명왕 호지스, 그를 만남으로써 무민파파는 인생이 막 시작한 것만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되지요. 고아원을 벗어나는 것으로 족했던 무민파파의 항해 또한 호지스가 만든 바다 관현악단(이래뵈도 배 이름)에 오르면서 모험왕이라는 거대한 꿈으로 변모하게 되었죠. 자유와 낭만의 사나이 무민파파, 조용하고 침착한 공학자 호지스, 단추 및 각족 작은 용품들의 수집가 머들러, 게으르고 규율이라면 질색을 하는 방랑자 요스터가 함께 하는 항해에서 어떤 모험들이 펼쳐지게 될까요? 

짤막한 힌트를 드리자면 바다 관현악단의 귀퉁이에서 어느날엔가는 구름이 잠들기도 했고요. 거대한 폭풍우가 바다 관현악단의 현을 울리기도 했답니다. 거대한 몸체 때문에 때때로 숲속 친구를 깔아 뭉개는 용 부블 에드워드에 쫓기기도 하고 독재자가 벌이는 축제에 참여하기도 했었지요. "위험한 여름"에서도 한껏 발휘되었던 무민파파의 목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일화와 이보다 더 재밌는 모험담도 무수히 등장을 합니다. 소근소근, 무민파파와 무민마마가 만나게 된 그 첫만남의 수줍은 이야기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삽화와 함께 무민파파의 소녀시절도 살짝쿵 등장하니 기대해도 좋아요.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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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름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4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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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핀란드의 "하짓날 밤(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따루 당신이란 사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핀란드 사람!!)" 무민과 스노크메이든 그리고 새로운 친구 필리용크는 풀이파리 하나하나까지 모두 헤아릴 수 있는 밝은 땅 위에서 모닥불을 피운다. 짠짜라 짠짠짠~ 모닥불 주위를 돌며 춤추고 노래하고 꽃을 따는 축제의 시간. 여느 때라면 무민의 모든 가족이 모여 있었을 이 밤에 무민과 스노크메이든은 왜 무민 골짜기를 떠나 남모르는 숲에서 하지를 나게 된 걸까? 위험한 여름 그 시작은 이렇다.

 


제1장. 나무껍질 배와 불 뿜는 산

무민마마가 작은 배를 만드는 평화로운 오후 가족들의 귀에 쩌저적 소리가 들려온다. 불 뿜는 산이 움직이며 땅을 갈라놓은 것이다. 가족이 집으로 피신한 잠깐 사이 터지는 굉음, 산이 솟아오르고 뭉개뭉개 연기가 일더니 아뿔싸 폭풍이 몰아쳐 무민언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무민의 집이 물에 잠기고 수영에 능숙한 무민과 가족들이 집안 집기와 차와 쿠기를 건져내지만 또다시 차오르는 물길에 결국 떠내려온 배 한 척에 올라타고 만다. 

제3장. 흉가에 익숙해지는 방법

배가 이상하다! 주인도 없고 먹을거리인 줄 알고 잡은 사과도 빵도 각설탕도 모두 진짜처럼 만든 나무토막이다. 바닥이 뱅글뱅글 돌고 분명 배 안이건만 천정에는 하늘이 있다. 배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화창한데 배 안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이 치고 벼락이 인다. 소품실은 뭐고 의상실은 또 뭐람. 무민 가족들과 함께 피난온 새로운 친구들 훔퍼와 미자벨이 두려움에 빠지는 그 순간 들려오는 희미한 웃음소리. 장르가 동화 아니었나요? 왜 급 스릴러 느낌이지?

 

 

제5장. 위험한 하짓날 밤

휘파람을 불면 안되는 곳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킬킬킬 들려오는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나무 위에서 잠든 무민과 스노크메이든을 두고 떠나가는 배. 새앙쥐보다 조그마한 미이는 풍덩 물 속으로 빠지고 남은 가족들은 이들이 실종됐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쿨쿨 잠을 자고 있다. 결국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셈이다.

"여보, 우리가 대사를 외우고 공연을 하면 모두 보러 오겠지요. 점점 보러 오는 관객이 늘고 모두 우리 공연을 얼마나 잘했는지 여기저기 이야기하면, 끝내는 무민도 그 소석을 듣고 집을 찾아올 수 있을 테죠. 모두 집으로 돌아오고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고요!"

 가족을 찾기 위해 흉가라고 생각했던 극장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한 무민파파와 배우가 된 무민마마. 가족을 찾기 위해 낯선 숲을 가로지르며 모험을 시작한 무민이들. 이들이 맞이한 위험한 여름 끝 무민이들은 무사히 재회해할 수 있었을까? 물에 잠긴 무민 언덕이 다시 파릇파릇한 행복으로 돋아날 수 있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책으로 만나보자.

덧)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였던 핀란드인 따루씨가 번역한 책이라 더욱 호기심이 갔다.  교열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읽혀서 놀랐다. 투르쿠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신다니 나보다 한국어를 더 잘 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 음메 기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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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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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신머리였는지 식초를 장 봐온 봉투채로 냉장고에 넣어버리고 돌아서서 어라? 식초가 없네?? 하며 다시 마트에 내려가 식초를 사온 적이 있었다. 무슨 반찬을 해먹을 생각이었는지는 까맣게 생각이 안나는데 냉장고에 들어가있던 주황색 마트 봉투와 그 안에서 나온 식초는 잊을 수가 없다ㅡㅡ;; 조발성 치매까지야 생각도 못한 병명이지만 건망증 초기증상이 뭔지 네이버에 검색도 하고 그랬다. 하물며 식초 한 병을 잊은 나도 놀랍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금방 감출 수가 없었는데 그게 친구에게 주기로 한 선물이거나 내 집으로의 초대이거나 서랍에 넣어둔 돈, 아이는 커녕 임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문한 유모차, 각종 잡다한 홈쇼핑의 물건들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본 적도 없는 계약서에 내 서명이 되어있고 어제까지 잘 작동시켰던 렌지의 작동법이 오늘은 기억이 나지 않고 방금 전에 본 물건이 돌아서보니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약을 먹고 있다면. 그리고 도무지 어떻게 머리속을 헤집어도 그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도무지 어떻게 해도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내가 한 일, 들은 일, 약속한 일, 본 일이 아닌 것 같다면. 나는 그 불안과 무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매 같은 친구가 어느 덧 그런 나를 지긋지긋해 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척 살아갈 수 있을까.

넌 미쳐가고 있어 넌 미쳐가고 있어 넌 미쳐가고 있어


폭풍우 치는 밤. 쏟아지는 빗줄기와 트럭들의 위협 운전에 캐시는 위험을 감수하고 지름길로 차를 몰아간다. 남편 매튜는 그 길이 위험하니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오라고 했지만 운전이 무서워서 일반도로를 탈 수가 없다. 설마하니 지름길을 통과하는 15분의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으랴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모든 미스터리가 그러하듯 설마하는 그 일이 벌어져 버린다. 캐시의 앞에 정차되어 있는 차, 차 안에서 캐시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여성, 차에 문제가 생긴걸까 잠깐 멈춰 기다렸지만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은 차안의 정적. 별 일이야 있겠어 하며 그 차를 지나쳐 숲을 벗어날 때만 해도 캐시는 폭풍우를 무사히 헤쳐왔다는 안심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남편이 가져온 뉴스에 캐시는 혼비백산한다. 지름길의 그 차 안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어쩌면 살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캐시 자신이 그 차를 스쳐갈 적에만 해도 여성이 살아있었던 것만 같은 생각에 캐시의 죄책감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시작된 말이 없는 의문의 전화와 낯선 남자의 그림자, 시선 같은 것들이 캐시를 공포에 빠뜨리고 조발성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와 같은 증상의 조짐들이 캐시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전작 비하인드 도어 이상의 재미다. 비하인드 도어가 학대하는 남편과 감금이라는 상황 자체로 공포심을 높였다면 이번 소설엔 캐시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인물들의 행동이 의뭉스럽고 의심스러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모친의 병이 유전되어 자신도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그 의심을 다시 의심하는 캐시의 불안감에 나까지 전염되어 안절부절 못했고 남편 매튜는 그날 밤 어째서 지름길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걸까 왜 하필이면 그날 편두통이 와서 캐시와 다른 방에서 잔껄까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친구 레이첼이 처음부터 매튜를 꺼린 것에 이면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과 폭풍우 치는 밤 살해 당한 그녀 제인이 살아있을 때 매튜를 보고 놀란 까닭을 매우 막장 식으로 궁리하는 것도 빅재미. 특히 늘어지는 중반부에선 이런 상상력이 필수니 꼭 지참하시길. 대박 넘 잼있어 하며 페이지를 찢어져라 넘기기 시작한 건 결말 부분부터였는데 점박이 암소에서 발견한 그 휴대폰, 휴대폰 속의 무엇을 보며 느꼈던 심장이 발발발 떨릴 정도의 흥분이란!! 모모씨 시점의 에필로그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지의 여름밤 이 책 한 권이면 에어컨까지는 필요없을 거라 장담해 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춘자님(이라고 하면 가수 춘자를 떠올리시려나?? ㅋㅋ)의 예전 말씀이 참 명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에 덧붙여본다. "행복이 별 거냐. 잊었던 간장을 찾는 게 행복이지!!" (몽실북클럽, 춘자님 에피소드 "라이벌이 하나 둘 늘어간다" 중/ 춘자님 글을 안봐도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네. 이건 직접 글을 봐야 하는데 안타깝) 캐시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간장통 모두 찾아 앞으론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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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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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호랑이가 되우 살았대요, 그래서 범골이지요.
귀하디귀하다는 백호랑이도 살았대요, 그래서 백호리지요. (p195)"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을 훌쩍 지나 호랑이고 백호랑이고 씨가 마른 호구시에는 인제 이빨 빠진 어르신들만 바글바글하다. 아차, 호구시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하지는 말자. 나이 많은 어르신들 호구라고 욕하는 거 아니다. 범골 백호리가 호구시라 그렇다. 성격과 직업으로 호구조사 하듯 썰을 푸는 작가님의 단편들을 보아 집집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호구시라 명명한 듯도 하고 실은 자식 호구 잡히는 노인들이 많아 호구시라고 한 듯도 하지만 대한민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래 이름이 그렇다. 범골 백호리는 하마 둘러봐도 젊은이들은 씨가 바짝바짝 마른 낡고 닳고 허물어져가는 시골이다. 소똥 냄새 지그시 풍겨오는 풍경과 아고아고 앓는 할머니할아버지 소리를 듣다 보면 요새것들이 왜 시골을 떠나는지 알 것도 같은 답답함과 한숨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른다. 젊음이 척박하니 페이지 낱장낱장도 스산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라고 쓰니 되게 큰 사건이 있을 것만 같구만) 공기마저 정체된 듯한 이 시골 마을에 뜻밖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수화기를 깨운다.
"놀러 가자고요!"
범골 회장님네 오지랖댁의 목소리다. 실은 뜻밖은 아니었다. 미스터리처럼 리뷰를 써보고 싶었다ㅡ.,ㅡ 놀러 가자고요! 이백번도 넘게 전화기를 돌리는 오지랖댁. 놀러 좀 가세요 제발! 나도 같이 맘 속으로 소리를 질러본다. 아따 노친네들 놀러 한번 가자는데 구구절절 뭐 이렇게 사연도 많고 따지는 것도 많은지. 지청구가 늘어지신다 다들. 그냥 싸게싸게 놀러 가시라고요! 인생 뭐 있냐고요!! 그런데 보다보니 인생 뭐가 많기는 많다;; 말 많고 탈은 더 많은 이곳 범골 백호리의 어르신네들이 과연 이번 봄 놀러 갈 수 있었을까나??내가 다 걱정이 된다.

장기 호랑이

장기사랑에 푹 빠진 초딩 "나"가 장사모 어르신들과 장기를 둔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들 너무 짜증나. 장기 두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훈수로 대여섯이 붙어있다. 6:1이라니 배구경기야 뭐야? (배구 여섯명 맞나요? 스포츠 잘알못) 실력으로 보면 내가 우위인데 할아버지들 잔소리 땜에 졌어! 졌다고!! 떼굴떼굴 구르고 울고 불고 할아버지들한테 삿대질 하고 장기알을 집어던지는 극악무도한 개초딩....을 둔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애가 크면 갈게요. 싸가지가 좀 생길 나이에. (p39)" 그래서 초딩은 싸가지가 생겼을까나?

범골사 해설

출판인 성염구가 모아모아 쓴 범골사에 대한 해설과 그 내력이 시작될 즈음.......의 이야기랄까? 제목은 해설인데 해설은 없달까? 왜냐? 해설이 아직 쓰이기 전이니까!! 말은 나쁘게 할 수 있어도 글은 (특히 고향 글은) 나쁘게 쓸 수가 없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면 여기 작가님은 작가의 숙명에서 약간 빗겨간 것이 틀림없다. 범골사 해설은 과연 완성될 수 있었을까나?

범골 달인 열전

범골 달인들이 모였다. 11:1 모내기 전투에서 내가 1이었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나이 모심지, 무보수 견인꾼 김천소, 부업의 달인 청올치댁(지금은 마늘댁), 바둑의 달인 호신선. 한때 범골을 주름 잡았던 달인들의 젊은 손 위에 켜켜히 내려앉은 세월들이 서글프다.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었던 시골의 달인들이 나이 먹은만큼 시골도 함께 늙어버렸다. 범골에 새로운 달인이 생기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놀러 가자고요

놀러 좀 가면 어때서. 모내기 철이라 안돼 주말에 자식들 내려올거라 또 안돼. 누구네는 남편이 아프고 누구네는 마누라가 드러눕고 누구네는 잘난 자식 자랑거리가 줄줄이라 고깝고 내가 왕딴데 왜 가냐는 사람도 있고. 이래서 안가고 저래서 못가는 어르신들 투정 사이로 남편 고생이 안쓰러운 그 아낙 오지랖댁과 아내 무릎 수술로 노후자금 다 닦아쓴 남편의 노심초사가 따사롭다. 다들 놀러 좀 가시지. 과연 이 어르신들 놀러 갈 수 있었을까나?

김사또

뱀골 노총각 중에 처음으로 외국인 처자와 혼인하는 사내가 생겼다. 남 보기 부끄럽고 돈도 아까워 집에서 돼지 잡는 노총각 잔치집에서 김사또가 갈비짝을 얻어오는데. 자식손주(가 바로 장기호랑이 초딩과 그 아버지 판돈) 먹일 돼지갈비찜이 과연 무사히 완성되었을까?      

봇도랑 치기

시골의 하릴없는 젊은이들 이야기. 시골서 그나마 있는 집 자식들은 다 외지 나가 사는데 어떻게 농사라도 지어보려는 친구들은 정작 집에 땅뙈기도 없다. 서울이든 외지든 나가 살고자 해도 밑천이 있어야 말이지. 고시원 월세 낼 돈도 없는데 나가면 뭐하나. 방구석 죽치고 앉아 온동네 어르신들의 뒷담화나 될 밖에.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이야기가 맞겠지?

산후조리

며느리, 딸자식 산후조리로도 부족해 이제는 어미소 산후조리까지 드는 내 팔자야ㅠㅠ 창자가 쏟아진 얼간년이(소이름이다) 송아지를 낳자 할마씨(책 속 표현이다)는 얼간년이랑 새끼소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릎도 아프고 삭신이 쑤시는 와중에 남편이라는 작자는 술 푸러 다니기 바쁘고 할머니는 소똥에 자빠지기까지 하고ㅠㅠㅠㅠ 얼간년이도 송아지도 오래오래 살아라. 할머니도 건강하시고요. 내가 참 짠해서ㅠㅠㅠㅠㅠㅠ  

만병통치 욕조기

싸가지 초딩과 아버지가 또 나온다. (아마 맞을거다. 아닐 수도 있지만;;) 시골에 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만병통치 욕조기 외판원과 함께 가족을 찾아온 친척 아주머니. 자식 며느리는 400만원이라는 욕조기 가격 앞에 얼굴이 새파래지는데 한 다리 건너 친척 아주머니와 외판원은 아픈 어머니가 애닳다는 듯 온갖 위로를 다건낸다. 그리하여 만병통치 욕조기를 사라는 외판원과 욕조기를 거부하려는 며느리 사이에서 세계대전급 전투가 발발했으니... 그냥 사는 게 다 뭔가 싶다. 늙는 것도 서럽고 자식 키우는 것도 서럽고 다 큰 자식 보는 것도 서럽고 자식이 부모 보는 것도 서럽고 그 서러운 중에도 나는 또 자식을 낳는 인생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아이씽, 눈물 나ㅠㅠㅠㅠ 

아홉 살 배기의 한숨

싸가지 초딩이 아홉살 적의 일인가 보다. 이 녀석이 한숨병이 생겨서 하루 웬종일 한숨을 쏟아내는데 부모 입장에선 그 한숨 소리가 어찌나 크고 무거운지 대학병원에 각종 병원을 넘나들이 하며 진료를 받고 다닌다. 어느 병원을 가든 그냥 스트레스성이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는데 안심이 안되어 부모와 조부모의 근심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근데 그랬던 부모가 내 부모가 아플 적엔, 내 엄마가 지끈지끈 앓는 두통으로 살이 쏙 패이게 앓아도 고작 신념 하나 (굿은 못한다!!)는 굽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들 하는가보지. 휴... 나는 또 왜 이렇게 한숨이 나나 몰러.

 

사는 날 동안 얼굴 붉히면서 살 거 뭐 있나.
같이 놀러나 댕기자"

 

 

 

나도 그렇다. 정말 놀러나 댕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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