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정신머리였는지 식초를 장 봐온 봉투채로 냉장고에 넣어버리고 돌아서서 어라? 식초가 없네?? 하며 다시 마트에 내려가 식초를 사온 적이 있었다. 무슨 반찬을 해먹을 생각이었는지는 까맣게 생각이 안나는데 냉장고에 들어가있던 주황색 마트 봉투와 그 안에서 나온 식초는 잊을 수가 없다ㅡㅡ;; 조발성 치매까지야 생각도 못한 병명이지만 건망증 초기증상이 뭔지 네이버에 검색도 하고 그랬다. 하물며 식초 한 병을 잊은 나도 놀랍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금방 감출 수가 없었는데 그게 친구에게 주기로 한 선물이거나 내 집으로의 초대이거나 서랍에 넣어둔 돈, 아이는 커녕 임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문한 유모차, 각종 잡다한 홈쇼핑의 물건들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본 적도 없는 계약서에 내 서명이 되어있고 어제까지 잘 작동시켰던 렌지의 작동법이 오늘은 기억이 나지 않고 방금 전에 본 물건이 돌아서보니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약을 먹고 있다면. 그리고 도무지 어떻게 머리속을 헤집어도 그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도무지 어떻게 해도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내가 한 일, 들은 일, 약속한 일, 본 일이 아닌 것 같다면. 나는 그 불안과 무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매 같은 친구가 어느 덧 그런 나를 지긋지긋해 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척 살아갈 수 있을까.

넌 미쳐가고 있어 넌 미쳐가고 있어 넌 미쳐가고 있어


폭풍우 치는 밤. 쏟아지는 빗줄기와 트럭들의 위협 운전에 캐시는 위험을 감수하고 지름길로 차를 몰아간다. 남편 매튜는 그 길이 위험하니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오라고 했지만 운전이 무서워서 일반도로를 탈 수가 없다. 설마하니 지름길을 통과하는 15분의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으랴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모든 미스터리가 그러하듯 설마하는 그 일이 벌어져 버린다. 캐시의 앞에 정차되어 있는 차, 차 안에서 캐시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여성, 차에 문제가 생긴걸까 잠깐 멈춰 기다렸지만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은 차안의 정적. 별 일이야 있겠어 하며 그 차를 지나쳐 숲을 벗어날 때만 해도 캐시는 폭풍우를 무사히 헤쳐왔다는 안심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남편이 가져온 뉴스에 캐시는 혼비백산한다. 지름길의 그 차 안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어쩌면 살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캐시 자신이 그 차를 스쳐갈 적에만 해도 여성이 살아있었던 것만 같은 생각에 캐시의 죄책감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시작된 말이 없는 의문의 전화와 낯선 남자의 그림자, 시선 같은 것들이 캐시를 공포에 빠뜨리고 조발성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와 같은 증상의 조짐들이 캐시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전작 비하인드 도어 이상의 재미다. 비하인드 도어가 학대하는 남편과 감금이라는 상황 자체로 공포심을 높였다면 이번 소설엔 캐시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인물들의 행동이 의뭉스럽고 의심스러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모친의 병이 유전되어 자신도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그 의심을 다시 의심하는 캐시의 불안감에 나까지 전염되어 안절부절 못했고 남편 매튜는 그날 밤 어째서 지름길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걸까 왜 하필이면 그날 편두통이 와서 캐시와 다른 방에서 잔껄까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친구 레이첼이 처음부터 매튜를 꺼린 것에 이면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과 폭풍우 치는 밤 살해 당한 그녀 제인이 살아있을 때 매튜를 보고 놀란 까닭을 매우 막장 식으로 궁리하는 것도 빅재미. 특히 늘어지는 중반부에선 이런 상상력이 필수니 꼭 지참하시길. 대박 넘 잼있어 하며 페이지를 찢어져라 넘기기 시작한 건 결말 부분부터였는데 점박이 암소에서 발견한 그 휴대폰, 휴대폰 속의 무엇을 보며 느꼈던 심장이 발발발 떨릴 정도의 흥분이란!! 모모씨 시점의 에필로그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지의 여름밤 이 책 한 권이면 에어컨까지는 필요없을 거라 장담해 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춘자님(이라고 하면 가수 춘자를 떠올리시려나?? ㅋㅋ)의 예전 말씀이 참 명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에 덧붙여본다. "행복이 별 거냐. 잊었던 간장을 찾는 게 행복이지!!" (몽실북클럽, 춘자님 에피소드 "라이벌이 하나 둘 늘어간다" 중/ 춘자님 글을 안봐도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네. 이건 직접 글을 봐야 하는데 안타깝) 캐시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간장통 모두 찾아 앞으론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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