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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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에서 스물이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 100이었다면 스물에서 서른이 될 때까진 딱 절반인 50쯤이 걸렸던 것 같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밟아가는 과정은? 절반이 아니다. 절반의 절반보다도 더 적은 10 정도?? 나이 먹어 봐라 시간 금방 간다는 말을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그 말을 실감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산다는 건 나이를 먹는 일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조숙한 아이들이 그래서 십대 때 그렇게 죽고 싶다 안달을 했던걸까?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게 최고 행복이고 어차피 태어난거면 빨리 죽는 게 그 다음 행복이라고 했다는데 난 빨리 죽고 싶진 않은데 나이는 먹고 싶지 않다는 모순 오류에 직면에 있다. 나이 드는 것, 늙고, 쇠약해지는 단계로 나아가는 일. 그런 일이 익숙해지는 때가 과연 오기는 할까?

1. 뺄셈이 아니라 덧셈으로 살아라.

기시미 이치로 작가는 아들러의 말을 빌어 나이 먹는 일 또한 진화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르막길의 청춘을 지나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일은 얼마나 손쉬우냐 하고. 대신에 진화의 방향성만큼은 달리해야 한단다. 타인과 비교하여 위 또는 아래로 우월성을 측정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에는 젊은 신체를 소유했던 나 자신까지 포함이 된다. 가장 활력있고 건강하고 에너지 넘쳤던 그 때의 나와 비교해 그때보다 아프다 그때보다 느리다 그때보다 기억력이 떨어진다 하는 식으로 뺄셈 같은 사고를 하게 되면 나이 먹는 일이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 집중해서 현상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한걸음을 목표로 한다면 마흔 그리고 이후의 삶이 편안해질거라는데 조금 수행이 필요할 것 같다.

2.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놉! 

작가가 정신과 클리닉 데이케어 센터(심신허약 어른신들의 요양소 같은 곳)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이 사례로 나와있다. 센터 이용자들과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었는데 "재료 사러 갑시다~" 하면 육십명 중 대여섯명이 일어난단다. 장 다 보고 "요리 합시다~" 하면 그나마 좀 더 많은 열댓 명 정도가 일어나 참여를 했다고. 순간  디게 얄밉겠는걸? 하고 생각했는데 웬일. 아무도 일하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단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을 때 일한다"라고 생각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단다. 맛있게 먹는 일 또한 만든 사람에 대한 공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건지 아니면 데이케어 센터 교육의 일환이었는지가 궁금했다. 박사님뿐만 아니라 정말로 그곳의 어르신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나이가 드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는 사회와 가정에서 내 역할이 미비해지는 걸 넘어 내가 나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일하지 않고도 사회 안에서 당당하게 먹고 기대고 휴식하고 치료받는 것. 그게 노년이 된 나의 자연스런 역할이고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확실히 나이 먹는 일이 덜 두려울 것 같았다.   

3. 시간과 인생은 한 줄의 직선이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생각하지 않을까. 인생은 시작과 끝, 종점을 향해가는 편도선 같은 거라고. 괴롭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야 하는 마라톤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삶을 춤으로 엮으라고 한다. 순간순간이 즐겁고 도중에 멈추더라도 문제될 게 없는 춤 같은 인생을 춰보라고. 춤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추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순간 춤이나 춰볼까 싶어 벌건 대낮에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보는 이 하나 없음에도 민망해 다시 앉아 남은 페이지를 읽었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나이를 먹는 일은 여전히 막연하고 많이 두렵다. 그러나 늙어가는 용기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해보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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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ming 경주 - 천년의 마음 천년의 노래 humming 허밍 시리즈 1
허선영 지음, 김동율 사진 / 아이퍼블릭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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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의 걸음걸음을 돌이키게 만드는 책이다.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각양각색의 경주와 경주 사람들을 커다란 사진으로 마주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작은 책의 더 작은 사진이 아니라 200*245mm 사이즈를 꽉 채워서 한 바닥 또는 양면 가득가득 채워진 사진이라 더 좋았다. 익숙한 오릉과 불국사, 설국암, 동궁과 월지뿐만 아니라 경주의 숨겨진 낙원 같다는 진평왕릉, 내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예쁘게 찍혀있는 핑크뮬리, 봄의 경주를 방문한 적이 없어 여태 보지 못한 김유신 묘역의 벚꽃과 대릉원 목련 , 350년의 역사를 품은 운곡서원 은행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종합버스터미널과 대릉원 방향의 주유소 앞으로 가짜나무가 하나둘씩 보였는데 대릉원 목련 사진을 보고서야 아하! 했다. 그 가짜나무가 목련나무였구나 싶어서. 봄이 아니어도 목련을 보라는 시민들의 배려였던가 보다. 책 속의 목련나무 사진도 정말 예쁘고 그 예쁨에 찾아본 대릉원 목련 나무 뷰포인트도 황홀. 한복 입은 친구들이 유독 많은 곳이 있었는데 그쯤인가 하면서도 소란스런 곳을 그저 스쳐지나간 나는 여전히 긴가민가 하다. 

허밍 경주를 읽다 생각난 별 거 없는 에피소드 하나. 버스 타고 불국사로 가던 길. 안내멘트에 불국사역이 나와서 내림벨을 누르고 섰는데 누가 봐도 불국사에 갈 것 같은 외국인들이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상했다. 마음속으로 갸웃하며 창 위에 붙은 노선도를 보니 아뿔싸! 불국사역과 불국사 사이에는 몇 개의 정류장이 더 있었던 것!! 평일 낮이라 버스 안은 한산하지 내릴 낌새가 보이는 사람도 없지. 어쩌지? 눌렀으니 내려야 하나? 같은 소심한 생각으로 고민을 했다. 다행히 어떤 할아버지가 조용히 내리시길래 도로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데 그 불국사역이 허밍 경주의 "나무와 숲"편에 소개되어 있었다. 1918년부터 운영되어 36년에 현재의 역사로 지어졌다는 유서깊은 장소. 역사 주변의 범상치 않은 향나무들이 단단한 체구로 여전히 손님들을 맞는다는 간이역의 소박한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땐 목적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당황하기만 했는데 어차피 혼자 여행인데 실수로 내려 잠깐 쉬어가도 좋았을 걸. 향나무 사진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페이지를 넘겼다. 이듬해 봄 목련과 벚꽃, 향나무를 보러 꼭 경주에 가야지 마음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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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회도 살인사건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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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화사인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이나 마누라보다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하는 남자. 가진 재능으로 높은 지위를 성취하거나 금전이라도 모았으면 또 몰라. 한성부 서리들의 퇴역자리나 환갑잔치, 동네 장정들의 복날 모임, 서당의 책거리를 쫓아다니며 계회도나 그리는데 돈이 될 리가 없다. 능력없는 지아비 밑에서 아내는 골병이 들 지경이고 아들은 귀에 딱지가 앉게 아버지에 대한 푸념과 욕을 듣고 자랐다. 절대 아버지 같은 환쟁이는 되지 않겠다며 진수는 벼슬자리에 나갈 수도 없는데 글공부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사춘기 반항이자 현실도피쯤 되려나? 

그러던 어느 날 진수의 아버지 조만규가 죽는다. 여느 날처럼 계회도 한 장을 그렸을 뿐인데 늑골 아래를 찔린 채 광통교 아래에 버려졌다. 아버지가 들고 나갔던 계회도가 사라졌고 계회도 안에 자리했던 두 화원이 사망하고 봉사가 됐다.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범인을 잡겠다거나 원한을 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진수는 장화원의 아래에 들어가 아버지를 잇듯 그림을 그리는 화사가 되었다. 이 후 삼년의 시간은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치는 시간이었다. 진수 자신까지 포함하여 아버지의 그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잠깐은 무사히 달아났다고도 믿었다. 형님처럼 아버지처럼 진수 모자를 보살펴주고 장화원의 집에 다리까지 놓아준 인국이 조만규의 살해범으로 고발 당하기 전까지는.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인국은 무고를 주장한다. 고발과 살해의 진범으로 다름 아닌 장화원을 지목하면서.

“화원으로서의 명성도, 부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알았고, 평생 그것을 지키면서 사셨어요. 아버지는 양반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도, 벼슬아치들의 권세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어요.” (p294)

진수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양자로까지 받으려는 장화원, 진수가 마음 깊이 존경하여 믿고 따랐던 인국, 인국과 장화원의 무죄를 밝히겠다는 생각으로 두 남자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나서는 진수. 죽은 자가 산 자를 덮치고 있다는 원망이, 죽을 때도 죽어서도 자신을 헤치는 것만 같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진수의 가슴을 오래도록 들끓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쫓으며 마주하게 되는 양반들의 알량한 욕심, 어진화사를 둘러싼 화사들의 경쟁, 열두겹 탈을 쓴 것만 같은 인간들의 이면에 돌아서 울고 좌절할 때에 그의 길을 밝혀준 것이 다름아닌 아버지의 계회도였음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진수의 면면이 기특한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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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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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12명의 사람을 죽인 남자, 총으로 칼로 현직 국회의원들과 총재와 보좌관과 일반인들을 죽이고 유혈낭자한 탕 안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는 남자, 아무 저항없이 고요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는 남자를 생각합니다. 실개천처럼 흐르는 피의 물결을 앞에 두고 냉탕 대리석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는 아홉살 난 아이도 함께요.

남자는 자신이 도구였을 뿐이라고 말해요. 자신에겐 죽이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지 않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죽고 싶지 않다고 하는 어떤 의지가 없다구요. 의도가 죄이지 어째서 결과가 죄가 되냐고 오히려 되묻네요. 겁쟁이의 도구가 되어 그를 강인하게 만들어주었을 뿐이고 원한 가진 이의 흉기가 되어 상대를 찔렀을 뿐인데 왜 자신이 죄책감을 가져야 하냡니다. 사형수 474의 괴변에 교도관 윤은 일순 대꾸하지 못한 채 감옥을 나옵니다.

윤은 사형수 474가 궁금해요. 출생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은 신분, 민증도 없이 유령처럼 러시아와 한국을 떠돌아다닌 삶, 부모는 있는지 가족은 무얼 하는지, 어째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렇게 저지른 범죄는 몇 건쯤 되는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이토록 태연한 이유는 무엇이며, 도통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가 정말 사이코패스이며 악마인 건지. 투명한 갈색 눈 뒤로 심연처럼 가라앉은 474의 내밀한 속내를 알기 위해 끈기있게 기다리고 숨죽이며 다가갑니다. 사형수 474는 말하죠.

" 담당님. 삶의 작은 비밀을 지키려는 건 본능입니다. 누군가 그걸 강제로 엿보려고 하면 공격할수밖에 없어요. 왜냐고 묻고 싶으시겠죠. 그건 답할 수가 없어요. 답이 없습니다. 본능이거든요.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담당님, 궁금하시다는 것 잘 압니다. 나도 담당님이 호기심에 이끌려 서서히 다가오는 거 좋아요. 재밌기도 하고요. 그런데 각오하셔야 합니다...... 난 그걸 아는 사람을 반드시 죽였거든." (p51,p115)

어느 날 문득 무의미한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는 남자 해준, 딱히 죽고자 하는 의지 없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형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형수 474와 접견하려는 여자 해경, 사수자리의 운명을 지닌 남자 해준을 죽이게 될 화살은 결국 자신이 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형수 474의 비밀에 한발한발 다가간 교도관 윤은 그 모든 비밀을 떠안고도 내일을 살 수 있을까요?

정면으로 마주한 악의 정체 앞에서 혼란함을 느끼며 책을 덮습니다. 이 마음이 동정인지 분노인지 판가름이 가지 않아요. 악의 이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피의 홍수 속에서 울고 있던 그 아홉살밖이는 어떻게 되는것인가. 그 아이의 삶은 무엇으로 해석되어 결정지어 질 것인가. 속이 끓고 눈이 따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별은 이 여운이 가신 뒤에야 가능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슬프고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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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빈 공간 - 영혼의 허기와 삶의 열정을 채우는 조선희의 사진 그리고 글
조선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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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글, 그림은 모두 '긁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어떤 생각이나 풍경을 마음 속에 긁는 것이 그림이고, 글자로 새기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굵게 긁힌 그날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고 사진을 찍게 했나 보다." (p138)

 

 

 

한 영역에 정통하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말도 글도 다 잘 하고 잘 쓰시는 걸까요? 사진에 집중해서 읽게 될 거라 생각했던 사진작가 조선희님의 에세이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사진보다 글에 더 감탄하고 집중하며 읽는 시간이었어요. 영원히 이십대이고픈 그가, 때때로 그 괴리 안에서 고통받는 그가, 삶의 전장에서 전장 밖으로 나간 또다른 터전에서 읽고 대화하고 깨우치고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참 소탈하게 적어놓았습니다. 길지 않은 문장 사이사이로 그녀 마음의 빈 공간을 느껴요. 그 공간 사이로 스며든 감정들을 사진과 글과 함께 내 것인양 공감하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이렇게나 대단해보이는 사람도 보잘 것 없는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는구나, 고민하고 신경쓰는구나, 조금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마라케시의 책을 언급하며 '마음껏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를 통한 치유'를 알려줬을 땐 그의 친구 효원과 같은 이가 내게도 있는지 돌이켜 보았구요. 부정적으로만 느꼈던 "애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품은 날로부터 시작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력들에 감동하고 결심도 했어요. 한두달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어시스턴트 친구들의 "자기 자리"를 얘기할 땐 저도 함께 낯이 뜨거워지더군요. "사람의 역량이나 크기만큼의 자기자리라는 공간, 그 공간을 가지는 데에는 약간의 흔들림과 뒤틀림이 필요하다.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자리를 찾듯, 그들의 뒤틀림과 방황을 보살펴 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옳았다." (p41) 선배된 이로 그들의 무책임함을 탓했으면 했지 이런 식의 고민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헤어진 이들이 그에 걸맞은 좋은 자리를 찾았기를 문장을 더듬으며 바래봅니다.

조선희의 지나간 날들 남은 날들 그리고 오늘. 그가 성취한 일과 하지 못한 일 여전히 욕심내고 꿈꾸는 일들을 읽는 것은 그것이 내것이 아님에도 많이 설레고 기분 좋은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진 좋은 글로 앞으로도 꾸준히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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