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회도 살인사건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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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화사인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이나 마누라보다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하는 남자. 가진 재능으로 높은 지위를 성취하거나 금전이라도 모았으면 또 몰라. 한성부 서리들의 퇴역자리나 환갑잔치, 동네 장정들의 복날 모임, 서당의 책거리를 쫓아다니며 계회도나 그리는데 돈이 될 리가 없다. 능력없는 지아비 밑에서 아내는 골병이 들 지경이고 아들은 귀에 딱지가 앉게 아버지에 대한 푸념과 욕을 듣고 자랐다. 절대 아버지 같은 환쟁이는 되지 않겠다며 진수는 벼슬자리에 나갈 수도 없는데 글공부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사춘기 반항이자 현실도피쯤 되려나? 

그러던 어느 날 진수의 아버지 조만규가 죽는다. 여느 날처럼 계회도 한 장을 그렸을 뿐인데 늑골 아래를 찔린 채 광통교 아래에 버려졌다. 아버지가 들고 나갔던 계회도가 사라졌고 계회도 안에 자리했던 두 화원이 사망하고 봉사가 됐다.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범인을 잡겠다거나 원한을 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진수는 장화원의 아래에 들어가 아버지를 잇듯 그림을 그리는 화사가 되었다. 이 후 삼년의 시간은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치는 시간이었다. 진수 자신까지 포함하여 아버지의 그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잠깐은 무사히 달아났다고도 믿었다. 형님처럼 아버지처럼 진수 모자를 보살펴주고 장화원의 집에 다리까지 놓아준 인국이 조만규의 살해범으로 고발 당하기 전까지는.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인국은 무고를 주장한다. 고발과 살해의 진범으로 다름 아닌 장화원을 지목하면서.

“화원으로서의 명성도, 부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알았고, 평생 그것을 지키면서 사셨어요. 아버지는 양반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도, 벼슬아치들의 권세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어요.” (p294)

진수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양자로까지 받으려는 장화원, 진수가 마음 깊이 존경하여 믿고 따랐던 인국, 인국과 장화원의 무죄를 밝히겠다는 생각으로 두 남자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나서는 진수. 죽은 자가 산 자를 덮치고 있다는 원망이, 죽을 때도 죽어서도 자신을 헤치는 것만 같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진수의 가슴을 오래도록 들끓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쫓으며 마주하게 되는 양반들의 알량한 욕심, 어진화사를 둘러싼 화사들의 경쟁, 열두겹 탈을 쓴 것만 같은 인간들의 이면에 돌아서 울고 좌절할 때에 그의 길을 밝혀준 것이 다름아닌 아버지의 계회도였음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진수의 면면이 기특한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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