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빨강머리 앤 : 초록지붕 집 이야기 (오디오북) 오디오북 빨강머리 앤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엄진현 옮김, 이지혜 읽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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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가는 길 책 한 권 뚝딱!>

 

<빨강머리 앤>, 우리 시대 아니 전세계 소녀들의 레전드죠.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 어린 시절 <빨강머리 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의 주제가를 모르는 애들이 없었으니까요. 은연 중에  "앤"파와 "다이애나"파가 살짝 갈리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빨강머리 앤을 사랑했지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다이애나 집 화단에서 했던 우정의 맹세 기억하세요? 영원한 우정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저도 친구와 함께 서약을 하고 싶었는데 부끄럽다고 친구에게 거절당했죠. 크흥, 쿨한 척 돌아섰지만 정말 엄청 속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글오글 어쩜 그걸 따라할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그런게 바로 소녀의 낭만 아니겠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앤은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msg를 적절하게 뿌려 만든 티비 애니 빨강머리 앤이에요. 아마 세월이 지난대도, 설령 루시모드 몽고메리 작가님이 직접 빨강머리 앤을 읽어준다셔도 이건 바뀌지 않을 거에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앤 같은 건 없었어요. 책으로 몇 번을 읽어도 책 속 앤은 애니 속 앤만큼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매력을 못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앤은 싫어하기도 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려요. 앤은 너무 수다스럽고 다혈질이고 때때로 말도 함부로 하고 다이애나는 수동적이고 지루하고 풍경은 한숨처럼 흘러가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번역의 문제였지만 그땐 내가 너무 어른이 된 건가봐 서글퍼 한숨이 났어요. 그러다 이번 오디오북을 읽고 생각이 또한번 바뀌었죠. 앤은 여전히 그때의 사랑스러운 앤이고 저는 여전히 앤을 사랑해요. 빨강머리 앤이라는 같은 제목을 달았다고 해서 번역책 속의 앤들이 모두 똑같은 앤은 아니에요. 결코결코요. 그러니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앤을 찾아야 해요. 여기 오디오북 속 앤이야말로 그 시절 앤과 가장 닮은 모습으로 가장 닮은 애정을 품게 만드는 앤이라고 저 정말 자신있게 말씀드려요. 누구에게라도 두 번째로 좋아하게 된 앤이라고 손꼽을 수 있어요. 문제는 책은 못읽고 오디오북으로 듣기만 했다는 거지만요. 혹시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면 그때 가서 다시 알려드릴게요.

오디오북 빨강머리 앤의 가정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거에요. 1908년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번역이 현대적이고 상쾌해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 저는 가독성이 높은 번역이 좋아요. 필요하면 현대어로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로 크게 대체하는 것도 싫지 않아요. 번역가님이 처음 썼다는 담탱이는 좀 심한 것 같지만 (워워~ 진정하세요 예비 독자님들, 편집부에서 안된다고 잘랐어요 ㅋㅋ) 앤이 다이애나 엄마를 두고 똥고집이라고 마릴라한테 말하는 장면이나 누구더라 (길버트였나? 필립스 선생님? 조시 파이는 아닌데 누구였지??) 밥맛이라고 하는 거 저는 그런 게 재미나요. 애니에서도 앤이 "제가 너무 말이 많나요?"가 아니라 "제가 너무 많이 지껄였죠?"(정확한 워딩은 아니에요ㅡ.,ㅡ)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번역후기를 들으면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임을 특별히 염두했다고 하시는데 역자의 배려가 이런 명품 오디오북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해요. 정말정말 감사해요 번역가님! 

그리고 또 한분 이지혜 성우님이요. 애니 속 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목소리가 생생하고 똑부러져요. 앤의 수다가 귀아프거나 싫지 않고 엄청 사랑스러운데에는 성우님의 몫이 커요. 전문성우이고 배우여서 그런지 혼자 본문도 읽으시고 앤, 마릴라, 매슈, 린드부인, 다이애나, 길버트를 왔다갔다 하시는데 초반은 좀 어색할 수 있어도 듣다 보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딕션이 좋아서 말들이 귀에 또랑또랑 들리기 때문에 무슨 말이지? 하며 책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구요. 무엇보다 이지혜 성우님의 호흡 속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프린스 에드워드 섬과 인물들이 영화처럼 아니 애니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라 흘러가요. 앤을 책으로 읽으며 이렇게 모든 장면이 생생했던 적은 처음이에요. 엄진현님의 번역과 이지혜님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룬 정말정말정말정말 좋은 책, 앤을 좋아하는 모든 덕후분들의 필독서로 이 책을 강추합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다시 빨강머리 앤 애니를 보는 중인데요. 이제는 애니를 보며 <오디오북 빨강머리 앤>을 떠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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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능동태다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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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 한번 체크해 보시겠어요?

1) 남다른 여유 느껴지는(느끼는) 출근길
2) '리치맨' 종영 "공감하며 느껴 주신(느끼신) 분들 감사"
3) 선수들에게 던져지는(던지는/가하는) 야유와 조롱의 탓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4) "메시에게 가해지는(가하는) 압력 불공평해."
5) 다른 장르의 음악도 보여줄(보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6) 선수의 멘탈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지는데요(보이는데요).
7) 오늘날 먹어지는(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8) "무엇보다 기존보다 강화된 금융정책에 대한 세부적인 질의가 많아졌다(늘었다/증가했다).
9) 금전 지출이 많아지니(느니) 가능한 한 지갑 단속해야 한다.
10) 궁금증이 커져 가는( 커 가는) 한편,
11)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12) 금지법이 아직 만들어지지(금지법을 만들지/제정하지) 않은 상태이지 않습니까?
13) 부모님이 별로 신경 안 쓰는 아이라고 생각돼 버리면(생각하면) 선생님 관심에서도 멀어질 수 있습니다.
14) 휘어진(휜) 카드, 휘어지는(휘는) 배터리
15) 유로파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지는(주는/부여하는) 챔스 진출권은 어디로?
16) 박선수에게 남겨진(남은) 과제.
17) 중학교 때 골반뼈에 끼워져(끼어) 있는 허벅지뼈가 빠지는 '대퇴골두 골단 분리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았다.
18) 그 마을에는 은행나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전해온다/전한다).

p33-37/ 소제목 "수동태의 삶이 편하다" 중

김흥식 작가님이 신문기자, 방송기자, 아나운서, 사회자, 해설자, 작가 등의 말을 보고 아이고 하면서 선별한 문장들이에요. 아주 머리가 아플만큼 많은 수동태를 보고 듣고 있다세요. 전 의식을 안해서 책을 읽기 전까진 능동태/ 수동태 구분을 전혀 안하고 살았는데요. 당연히 제가 수동태 문장들을 과도하게 쓰는 줄도 몰랐습니다. 예전 리뷰들 몇 편을 읽으니 수동태 문장들이 구석구석, 고칠 엄두도 안나게 습관처럼 써져 있었어요. 솔직히 예시로 들어준 몇몇 문장 중에는 뭐가 틀렸다는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문장이 더 많아요. 어쩔ㅠㅠ 모든 문장이 모조리 가로 안이 정답입니다. 저처럼 과반수 이상을 가로 밖의 문장으로 고른 분들은 답도 없이 이미 수동태에 쩔은 거. 저 뿐인 거 아니죠? 다들 많이 헷갈리셨죠?

근데 우리말에는 엄밀히 말하면 수동태라는 용어는 없답니다. 사물과 사람이 다 주어가 될 수 있는 영어와는 달리 우리말은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이 주어이고 사람인 우리는 행위의 주체이기 때문에 행동을 당할 수 없대요. (맞게 이해한건지 모르겠어요 ㅋㅋ) 더 뒤에 나오는 예문 "자연 속에 나오니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등으로 작가님이 과다 수동태 사용의 출발을 추측하는데요. 화자들이 책임지기 싫다는 거에요. 그냥 내 감정이고 소소한 의견일 뿐인데도 단순히 "좋아요" 하는 것조차 강한 자기주장처럼 상대가 느낄까봐 피한다는 거죠. 목격자 중에 "내가 봤다"고 말하기 보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99배쯤 많은 것과 비슷한 이유래요. "무대가 다 채워졌다"도 무대를 주인공으로 보고 맞는 문장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무대가 스스로 채워질 수 있나요? 무대가 어떻게 주인공이죠? 하니 할 말이 없었어요. 걔가 자발적 의사를 가진 존재는 아니니까요.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리뷰 쓸 때마다 대면하는 문제인데 길게 쓰고 싶고 길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결과라네요. 똑똑해 보이는 효과를 중언부언으로 노리는 거래요. 제 경우에는 글자수를 채우고자 하는 이유가 크지만요. 어쨌든 수동태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우리말 속 수동태의 범람이 중국발 미세먼지만큼의 스트레스겠더라구요.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피부로 느껴야 할 문제인데 아유, 어쩌면 좋냐구요.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문제인 줄도 몰라요. 의식해도 솔직히 잘 안짚어져요. 미쳐요 정말ㅠㅠ

수동태의 문제와 더불어 제기된 건 2015년에 긍정적인 의미로까지 영역이 확장된 '너무'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단어인데요. 너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참'도 있고 '매우'도 있고 '무척'도 있고 '정말'도 있고 '대단히'도 있고 '굉장히'도 있고 '아주'도 있고 하여튼 정말정말 다양한데 '너무'가 인정되며 사람들이 다른 단어를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대요. 생각해보면 저도 너무를 너무 많이 사용하긴 하거든요. 굳이 다른 단어를 써야할 이유도 못느끼구요. 틀린 줄도 모르고 썼던 '너무'가 인정이 되서 좋다는 생각만 했지 우리말의 영역이 축소된다는 생각까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달리하게 됐어요. 백쪽도 안되는 무척 얇은 책이니 이리저리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리뷰 쓰면서 저도 모르게 또 수동태를 썼을 가능성이 높아요ㅠㅠ
책까지 읽고서! 라고 비웃지 마시고 너른 마음으로 봐주세요.
꾸준히 수동태를 의식하며 안 쓰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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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웃었으면 좋겠다 시바 -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아
햄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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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이런 공감.
"밤엔 잠들기가 싫고,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싫다."
한결같이 출근이 싫다 ㅎㅎㅎ
난 취직이 늦어서 아직 직장생활 8년은 안됐지만,
쓰고 보니 이것도 서러워! 난 왜 그때 취직도 못해서 나이가 몇 인데 아직 8년도 못채우고!
8년이 안되서 통장도 빵구고 그런거겠지?8년차들은 다 통장 두둑할거야 그럴거야ㅠㅠ

 

 

 

우리 시바님 목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
내가 잘 먹고는 되는데 밑의 두개가 요즘 잘 안되서 고민이다. 직장일 때문은 아닌데 직장일 때문이 맞기도 하고. 돌아오는 1월부터 각종 신고가 있을 예정이라 미리부터 겁 먹고 스트레스를 쌓아가는 중.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도 없겠다고 누구는 그랬지만 생각만큼 큰일은 잘 안일어난다고도 하지만 뭐랄까 걱정을 미리 해두며 예열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달까. 이런 걱정 없이 방귀 뀌고 싶을 때 시바처럼 북북 뀌고 눕고 싶을 때 주인님이 멱살을 잡아 얼굴이 빵떡처럼 터져도 눈 딱 깔고 눕고 이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벋뜨 이런 삶은 건물주여야 가능한 거, 아니면 백수거나.
그래서 시바님은 결심하셨지.
백수가 되기로. 

사표를 화끈하게 날리시고 룰루랄라 돌아오는 길의 장면.

살다 살다 시바가 부러워지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정말이지 이노무 개쉬퀴 너무너무 부러웟!!! 이라고 썼지만 실은 개쉬퀴 하면 안돼.
시바는 시바의 탈을 쓴 사람이니까. 바로 작가님 말이다 ㅎㅎㅎ
내가 쓴 사표도 아닌데 시바님의 그날을 영접하며 함께 콧노래를 부른다.
"그래 시바, 네 맘대로 살아라." 

 

 

백수의 삶은 시바님과 나의 것이 다를 바가 없음이다. 집순이의 삶에 정점을 찍은 나는 직장이라도 안나가면 백퍼 폐인이라 무조건 일을 해야한다(고 가족들은 주장한다.) 작가님 받은 문자가 나는 일상인데 뭐죠 이건?? 작가님 교통대금 6,750원. 내거랑 비교해 보려고 교통카드 문자온 거 열어보고 조용히 삭제한다. 내가 제일 안 나가, 나는 전국구로 탑을 찍을 거다. 시바님이 정리한 하루 일상, 이 스케쥴 나는 왤케 부럽죠? 아침이 없는 백수의 삶!! 아마 매일매일이 설날 같겠지.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한번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카드값이 잠깐.. 하여튼 계속 일하는 걸루. 용기를 내기엔 지갑 속이 지나치게 한파다

 

 

 

시계를 보니 책 한 권 못읽고 리뷰 두 편 쓴 게 다인데 어느 새 자정을 넘겼다.

바람은 쌩쌩, 내 마음까지 쌩쌩.
얼른 볕 좋은 주말이 돌아와 시바님과 함께 주말을 집구석 생활로 즐기고 싶다.
별 거 아닌 일에 마음 다치지 말고 걱정을 사서 하지도 말고 추위에 덜덜 떠는 일도 없이  
오늘도 내일도 건강하게 시바시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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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말이죠… - 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
심상덕 지음, 윤근영 엮음, 이예리 그림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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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난 책을 만났습니다. <서울은 말이죠...> 서울에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지방민인데 전생 추억이 되살아나듯 즐거워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입술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실없이 푸흐흐 푸흐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배꼽잡는 웃음은 아니니 오해하진 마시구요. 빙그레 미소짓게 되는, 그런 거 아시죠? 제게는 있지도 않은 서울의 기억에 가슴이 간질간질, 돌아가신 심상덕 작가님의 이야기가 마치 라디오를 타고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어요. 어라? 신간 아니야? 작가님이 돌아가셨다고? 좀 이상한 이야기 같은 가요? "서울 야곡", "부산 야곡" 등 그 시절 유명했던 작품의 방송 작가였던 작가님은 2010년 8월, 건강 악화로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책이 나오게 된 건 작가님의 며느리인 윤근영씨 덕분이었죠. 음악책을 제작하는 편집자가 남편과 결혼 후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라디오 원고를 보게 된 거에요. 단 한 번 뵌 적도 없지만 작가님의 녹음된 방송 테이프를 듣고 원고를 읽고 그러는 사이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출판사 편집자이니만큼 원고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야겠단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덕분에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독자인 저도 60년대 서울의 정취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1장. 그리운 서울, 2장. 맛있는 서울, 3장 서울의 그곳에서는", 책 가득히 도시를 채웠던 추억과 사람들이 회자됩니다. 그 시절 서울엔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도 식모를 써서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상경한 시골처녀들이 취직을 많이 했대요. 운이 좋으면 학교도 다니고 결혼 후에도 친정처럼 의지가 되었다네요.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 같은 분들이 많았구나 했습니다. 30년도 넘게 지속된 야간 통행금지는 82년에 가서야 풀렸는데요. 이후로는 통행금지 때문에 외박했다는 남편들의 변명은 씨알도 안먹혔겠죠? 약주 좀 하신 것 같은 작가님은 무슨 변명으로 아내의 분노를 통과하셨을지 궁금했습니다. 월부 양복이라는 게 있었다는데 입어보신 분 있으실까요? 계절이 바뀔 때면 미리 양복을 맞추고 매달 월급을 받으면 조금씩 갚았대요. 전집 살 때 이렇게 월부로 구매했는데 양복도 그랬다니 신기합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사람보다 산파 손에 아이받는 임산부들이 많아서 수제비도 많이 먹었다는군요. 목에서 쑤욱 넘어가듯 순산하라구요. 시험볼 때 미역국 먹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미신이지만 그렇게라도 불안한 마음 덜 수 있다면 저는 이런 미신도 좋아요.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어서 우표 안붙이고 빨간 우체동에 편지를 넣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에는 편지가 반송되거나 버려지거나 했을 것 같은데 웬걸. 안전하게 배송까지 완료! 집배원이 배달한 뒤 그 집에서 우표값을 받았답니다. 무척 신선하지 않나요?요즘도 이런지 시험해 보고 싶으신 분 저한테 편지 주세요. 우표값은 제가 지불할게요 ㅎㅎ 1962년 타이완에서 곡마단이 공연 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장마철이라 공연도 쫄딱 망하고 돌아갈 여비가 없어 창경원 동물원에 호랑이 한 마리 팔고 그 돈으로 집에 간 적도 있답니다. 이렇게 어이쿠한 사연도 하나둘이 아니에요^^

골목골목 울리는 아이들 고무줄 뛰기 노래, 11월 여학교에만 있었다는 김장방학, 천여그루 복숭아 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토독토독 꽃 피는 소리가 들렸다는 도화동, 서울 구경왔던 사람들이 멀미약 사먹고 올라갔다는 삼일빌딩, 아이들 있는 집엔 으레 있었다는 창경원 호랑이 우리 앞 사진 한 장, 가지가지 이야기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예전엔 그 서울도 눈 뜨면 코 베어 갔을 세상이었겠지만 야단법석한 풍경들만 접하다 어딘지 여유만만한 서울의 이야기를 접하니 너무 좋아요. 일러스트 이예리님의 삽화까지 더해져 더욱 아기자기한 서울의 기억들, 혹시 남은 이야기가 더 없는지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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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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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의 문제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몸이 너무 많은 것임을 코크니즈와서가 깨달았을 때 그는 새로운 진화를 꿈꾸게 되었다. 여기 박사의 일기 한토막을 끄집어낸다. "생물이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인 바다에서 나올 정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면, 이제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완전히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몸에서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 (p367) 설마하니 그 자신이 진화의 끝판왕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코크니즈와서는 어느 날 꿈결처럼 진화에 성공한다. 관절염, 두통, 치통, 궤양 기타등등의 병명으로 앓이하던 몸을 자유자재로 벗었다 입었다 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박애 정신이 뛰어났던 그의 책과 강의로 코크니즈와서와 같은 초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 초인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적대로 싸움이 벌어진다. 육체에 종속된 정부의 앞잡이들은 자신의 책임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종용한다. 초인들은 육체는 옷과 같아서 쓸모에 따라 입을 뿐 일용할 양식과 추위를 벗어난 잠자리와 사고와 장애 및 죽음을 걱정할 필요없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초인 부부를 앞에 두고 법정과 시민들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토머스 에디슨의 개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에디슨을 생각할 때 흔히 전구만 생각하지만 그의 발명품 중 실로 위대했던 것은 사람을 오렌지처럼 쉽게 분류하는 등급 측정기였다. 지능을 판별하는 이 기계로 에디슨은 자신의 털복숭이 개 스파키가 에디슨 자신보다 똑똑하다는 걸 밝혀낸 후 분노한다. "음식을 구하고, 집을 짓고, 따뜻하게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걱정하게 맡겨 두고 너는 난로 앞에서 잠이나 자고 여자애들 꽁무니나 쫓아다니거나 남자애들과 소동을 벌이고 다니는구나. 대출도, 정치도, 전쟁도, 일도, 걱정도 없고. 그냥 늙은 꼬리나 흔들면서 손이나 핥아 주기만 해도 넌 극진한 보살핌을 받지."(p175) 깜짝 놀란 스파키 왈, 이 일을 비밀로 해달란다. 인간과 개를 동시에 만족시킬 비밀을 폭로해서 뭐하겠냐고. 멍멍도 아니고 왈왈도 아니고 반듯한 영어로 에디슨에게 사정하는 스파키를 보며 든 호기심 하나. 미국에도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 같은 게 있을까?그 밖에도 미 국방성의 비축 무기 목록에서 스스로를 삭제한 최초의 인간 병기 반하우스 교수, 사랑하는 여자와 우정을 나눈 남자를 위한 결혼선물로 5백년치 분량의 시를 비축해주고 떠난 슈퍼 컴퓨터 에피각, 행복과 문명사회를 끝장낼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머나먼 우주의 소리, 수명연장이 일상이 된 사회의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이야기 등 몽키하우스에는 기발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작가 구병모는 <단 하나의 문장>에서 말했다. 이야기 너머의 기저에 닿고 싶다고. 현전의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잡히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고.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읽으며 나는 작가 커트 보니것이 구병모가 꿈꾸는 날의 저 꼭대기에 닿았던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이란 감옥에 갇혀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드레스덴 공습을 겪으며 도살장의 지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친숙한 이곳의 이야기 너머로 확장된 걸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를 벗어난 어딘가가 작가 자신의 몸처럼 또렷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유머를 삶의 처방전으로 썼던 작가가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시도했던 데에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환상통을 그의 영혼이 앓았던 결과는 아니었을까? 닷새 동안 몽키 하우스를 낱낱이 구경하며 커트 보니것이 더욱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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