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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이 세상의 문제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몸이 너무 많은 것임을 코크니즈와서가 깨달았을 때 그는 새로운 진화를 꿈꾸게 되었다. 여기 박사의 일기 한토막을 끄집어낸다. "생물이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인 바다에서 나올 정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면, 이제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완전히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몸에서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 (p367) 설마하니 그 자신이 진화의 끝판왕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코크니즈와서는 어느 날 꿈결처럼 진화에 성공한다. 관절염, 두통, 치통, 궤양 기타등등의 병명으로 앓이하던 몸을 자유자재로 벗었다 입었다 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박애 정신이 뛰어났던 그의 책과 강의로 코크니즈와서와 같은 초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 초인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적대로 싸움이 벌어진다. 육체에 종속된 정부의 앞잡이들은 자신의 책임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종용한다. 초인들은 육체는 옷과 같아서 쓸모에 따라 입을 뿐 일용할 양식과 추위를 벗어난 잠자리와 사고와 장애 및 죽음을 걱정할 필요없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초인 부부를 앞에 두고 법정과 시민들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토머스 에디슨의 개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에디슨을 생각할 때 흔히 전구만 생각하지만 그의 발명품 중 실로 위대했던 것은 사람을 오렌지처럼 쉽게 분류하는 등급 측정기였다. 지능을 판별하는 이 기계로 에디슨은 자신의 털복숭이 개 스파키가 에디슨 자신보다 똑똑하다는 걸 밝혀낸 후 분노한다. "음식을 구하고, 집을 짓고, 따뜻하게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걱정하게 맡겨 두고 너는 난로 앞에서 잠이나 자고 여자애들 꽁무니나 쫓아다니거나 남자애들과 소동을 벌이고 다니는구나. 대출도, 정치도, 전쟁도, 일도, 걱정도 없고. 그냥 늙은 꼬리나 흔들면서 손이나 핥아 주기만 해도 넌 극진한 보살핌을 받지."(p175) 깜짝 놀란 스파키 왈, 이 일을 비밀로 해달란다. 인간과 개를 동시에 만족시킬 비밀을 폭로해서 뭐하겠냐고. 멍멍도 아니고 왈왈도 아니고 반듯한 영어로 에디슨에게 사정하는 스파키를 보며 든 호기심 하나. 미국에도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 같은 게 있을까?그 밖에도 미 국방성의 비축 무기 목록에서 스스로를 삭제한 최초의 인간 병기 반하우스 교수, 사랑하는 여자와 우정을 나눈 남자를 위한 결혼선물로 5백년치 분량의 시를 비축해주고 떠난 슈퍼 컴퓨터 에피각, 행복과 문명사회를 끝장낼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머나먼 우주의 소리, 수명연장이 일상이 된 사회의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이야기 등 몽키하우스에는 기발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작가 구병모는 <단 하나의 문장>에서 말했다. 이야기 너머의 기저에 닿고 싶다고. 현전의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잡히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고.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읽으며 나는 작가 커트 보니것이 구병모가 꿈꾸는 날의 저 꼭대기에 닿았던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이란 감옥에 갇혀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드레스덴 공습을 겪으며 도살장의 지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친숙한 이곳의 이야기 너머로 확장된 걸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를 벗어난 어딘가가 작가 자신의 몸처럼 또렷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유머를 삶의 처방전으로 썼던 작가가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시도했던 데에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환상통을 그의 영혼이 앓았던 결과는 아니었을까? 닷새 동안 몽키 하우스를 낱낱이 구경하며 커트 보니것이 더욱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