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발명 - 사후 세계, 영생, 유토피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
마이클 셔머 지음, 김성훈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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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 인간의 죽을 운명은 천국을 낳았다." 천국도 발명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발상이 새롭다. 그러나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애초에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장수는 재앙이란 말 앞에 노후를 고민해 본 적은 있어도 죽음 이후를 고민해 본 적은 없던 나. 처음으로 천국의 과학적 이야기에 도전하는 독자를 주석을 빼고도 417 페이지에 이르는 마지막 단락까지 마이클 셔머는 무사히 이끌어갈 수 있을까? 설레는 한편으로 걱정을 가득 안고 첫 장을 연다.


1.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천국을 얘기하면서 죽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게 사람이 죽어서 사후세계에 가야지 사후세계에 갔다가 죽는 것은 올바른 경로가 아니니까. 막연히 80세 안팎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어라? 나 정말 죽고 싶은 게 맞을까??를 두고 분명하게 고민하게 된 때가 있다. 안쓸신잡 1기. 주제는 "냉동인간". 냉동인간 기술이 보급되면 우리나라에서 1호로 신청을 하겠다는 정재승 박사와 품격있는 죽음을 얘기하는 유시민 작가의 갑론을박을 보면서였다. 처음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될 때만 해도 나는 유시민의 편이었다. 누군가의 부양을 받아야만 하는 몸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존엄을 유지한 채 끝내는 삶은 죽음에 거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리라. 그런 나에게 정재승 박사는 일격을 가한다. "진리가 영원하지 않듯이 과학의 발전이 품격있는 죽음의 의미조차 바꾸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초인적 인간>을 쓴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우리가 상상해야 할 장수는 생명 유지 장치를 건 채 침대에 누워있는 99세의 노인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이 노화과정을 역전시켜 우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사는 삶'이라고. 지금 내 모습으로 100년을 살 수 있는데도 80세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면 내 답은 "아니오"가 맞다.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시간이 흐르면서 믿기 어려운 변화와 혁신을 얼마나 많이 목격하게 될지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저는 어떻게든 이 세상에 남아 있고 싶습니다."(p222) 옛썰. 제가 뭘 좀 몰랐습니다. 냉동보존술에 의지해 액체질소통에 잠기기를 선택한 부유하거나 명예롭거나 똑똑한 많은 사람들의 생의 욕구를 비웃었는데 욕구 이전에 그들은 진심으로 과학의 진보를 믿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2. 죽음이 정말로 무서울까요?


흥미있는 연구가 있다. 대상을 생각하면 '흥미'라는 단어를 붙이기 좀 거시기한데 다름아닌 사형수 최후 진술에 대한 분석이다. 1982년에서 2016년 사이에 사형 집행된 텍사스주 수감자 537명 중 425명이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마이클 셔머와 여러 동료들이 이 진술에 사용된 단어들을 수치화해서 그들이 느낀 감정을 분석했다. 최후진술 속의 감정은 의.외.로 긍.정.적.이며 사.랑.으로 넘친다는 것. 이는 일반인들이 남긴 다양한 글의 긍정적 감정단어 지수를 수치화한 통계보다 높고, 유언수업을 받는 평범한 학생들보다도 긍정적이며,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사람들보다는 현저히 높은 수치다. 사형수가 죽음을 앞두고 막판에 뿜어내는 감정이 공포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 놀랍다. 죽음 앞에서 "나 사실 중국인이야"라는 미스터리하고도 유쾌한 유언을 남긴 사유리씨의 할어버지 사례는 의외로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두 번 죽기는 싫어. 정말로 지루하거든"(p39)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얘기는 담대하다 못해 유쾌하기까지 하다. 죽음 앞에서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까?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은 알아도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 대신에 생물학자 피터 메더워의 노쇠에 대한 인상적인 정의를 옮겨 본다. "나이가 듦에 따라 개체가 우발적 사고에 따른 우연한 원인으로 죽을 확률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신체능력의 변화, 감각능력의 변화, 에너지의 변화. 따라서 어떤 죽음도 전적으로 '자연적인 죽음'은 없다."(p371)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준비할 수 있는 사고, 가급적 고통이 적은 사고였으면. 되도록이면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기를. 두려움 없이 죽음을 포용할 수 있기를. 천국보다는 삶의 마지막 평화에 기대를 걸어본다.


3. 천국에 가고 싶으신가요?


<천국의 발명> 속에는 사후세계, 영생, 유토피아, 무엇보다 천국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철학적, 문학적 접근이 펼쳐진다. 천국의 모습은 문화에 따른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현대인의 가치 반영은 물론이다. "천국에도 테니스장과 골프장이 있을까?" 리처드 하디슨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천국에서도 취미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보다는 안정적인 취미생활이 내게는 더 중요한데 하늘나라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오로지 성경이고 영화나 드라마는 십계뿐이면 어쩌지? 미국의 코미디언 줄리아 스위니는 모르몬교 선교사의 천국 얘기에 학을 뗀다. 사제 왈 "자매님, 천국에서는 육신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줄리아 스위니의 말이 걸작이다. "오 마이 갓! 코 성형 수술을 받은 사람은 어떡해요? 수술한 코가 맘에 들면요? 그래도 꼭 옛날 코로 돌아가야 하나요?" 암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그녀는 딱 한 마디로 천국과의 고별을 택한다. "난 그거 돌려받기 싫어요!" 전지전능한 신과 영원히 함께 하는 천국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하늘나라의 북한"이라 비유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또 어떤가? 내게 강같은 평화를 24시간 부르기야 하겠냐만 신이 내려다보는 속에서 신실한 신자들과 함께하는 영생이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다. 소오름! 이슬람의 천국은 한층 신박해서 그쪽은 또 섹스를 보장한다. 이승에서 결혼한 상태라면 저승에서도 아내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영.원.히. 독신이라면 72명의 아름다운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처녀다;; 내가 이슬람 여자라면 죽어서까지 처녀인지 아닌지를 판별받고 싶을까? 전생의 남편과 영원히 섹스하고 싶을까? 과거의 인간은 필요에 의해 천국을 발명했다는데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 필요가 충분조건이 될까?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의 유무와 별개로 꼭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천국의 진위보다 친국의 필요를 두고 고민할 때에 우리가 현재에 더 충실해야 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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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예언의 시작 편 3 : 비밀의 숲 전사들 1부 예언의 시작 3
에린 헌터 외 지음, 서나연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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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스트림이 죽었다.

굶주림 속에서도 날렵하고 아름답던 은색의 얼룩 고양이.

그레이스트라이프의 사랑이었던 그녀가 두 마리 새끼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인간으로 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 다름없는 이들의 인연은 애초에 끝이 정해져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토록 마음 아픈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을 줄이야.


먹이와 영역, 기타 다양한 갈등으로 시시때때로 전투를 치르는 숲 속의 네 종족들.

때문에 어떤 고양이들도 동족 밖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숲 속 고양이들에게 있어 혼혈은 있을 수 없다.

전투 속에서 패륜이 일어나선 안된다.

그게 숲의 법칙이다.


그레이스트라이프가 속한 천둥족도 실버스트림이 속한 강족도

불상사를 일으킨 전사들의 충성심을 믿지 않을 것이며

두 종족의 혼혈 새끼들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스트라이프는 천둥족의 영역에서 추방 당할 수도 있다.

젖조차 떼지 못한 두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앙상한 겨울, 종족의 영역을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슬픔에 빠져 울고 있는 그레이스트라이프의 털을 핥으며 파이어하트는

어째서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들의 등 뒤에는 어떻게도 진실을 숨길 수 없게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지켜본

천둥족의 부지도자 타이거클로까지 있었으니까.

그는 결코 이와 같은 사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그레이스트라이프나 그의 새끼들을 동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욱이 타이거클로는 이미 한번 파이어하트를 강물에 빠트려 살해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이번 일은 동족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려는 타이거클로에게 기폭제가 되리라.

보육실로 새끼를 물어나르는 파이어하트의 온몸으로 슬픔과 피로가 켜켜히 쌓여간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파이어하트야 말로 가지 많은 고양이였다.

고작해야 사계절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린 집고양이에서 전사 고양이가 된 파이어하트의 삶은 왜 이리도 파란만장한지.

밝혀지는 타이거클로의 음모 앞에서도 후련함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낀다.

그냥 콱 죽여버려야 후환이 없을 것 같은데 지도자 블루스타는 지나치게 공정하여

기세를 잃은 고양이의 목숨만은 결코 빼앗지 않으니까.

이를 아득바득 갈고 떠난 타이거클로가 점 찍고 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

강족으로 떠난 그레이스트라이프와 새끼들에 대한 걱정,

분열된 천둥족 사이에서 파이어하트가 제자리를 잡을 걱정,

말 안듣는 조카 클라우드킷이 사고칠까 걱정,

(이놈아 너도 이제 훈련병이니 제발 철 좀 들어라!)

각종 걱정거리를 한아름 안고 4권을 기다린다.

녀석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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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깊고 진하게 확장되는 책 읽기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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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까마득히 다른 세계에 살지만 이따금씩 언어의 지평 위에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이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아주 가끔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끝내 읽고 쓴다."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중)

저는 책 블로거입니다. 책은 당연히 많이 읽습니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18년 성인 평균 독서량입니다. 8.3 권. 또 하나의 취미는 책 리뷰 읽기입니다. 저보다 책 많이 읽는 분들은 많지만요. 책 리뷰 많이 읽는 걸로는 저, 어디가도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랑할 거리만 된다면야 이마에 써붙이고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누가 부러워하겠습니까?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 하겠죠ㅡㅡ;; 재미있는 책은 내 흥분을 공유하고 싶어서 리뷰를 읽고요. 재미없는 책은 같이 욕하려고 읽는 거 아냐 싶으시겠지만 저는 조금 더 변태거든요. 나랑 반대로 읽은 독자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취향의 다양성이란 ㅎㅎ), 중도 포기한 독자를 보며 느끼는 그래도 나는 다 읽었다는 성취감, 내 스타일은 아니야 라는 소심한 투덜투덜에 마음을 더하고파 읽습니다. 재미없다고 쏴붙이는 리뷰도 물론 통쾌하구요. 마음씨 좋은 독자들의 리뷰에는 어떻게든 장점을 쥐어짜려내고 애쓴 흔적들이 엿보이니까요. 그럴 때 상대는 모르는 나 홀로 전우애를 느끼며 흐뭇해합니다. 안읽은 책은 이런 책이 있구나 알게 되서 좋아요. 선호 장르가 아니라 결코 읽을 일이 없어도 그 마음은 똑같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우정이랄까요. 막연한 동료애를 느낍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사족이 기냐면 이 책이 그런 책이어서 그렇습니다. 리뷰어의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책을 읽고 책에 관해 말하는 게 직업인 김겨울이라는 사람이 특별히 좋아하는 인생책들을 골라 그 감상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깊고, 진하게, 책 너머까지 확장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그리고 저는 리뷰어면서 리뷰어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이쯤되면 읽지 않을 수가 없겠죠?

다양한 책들이 등장합니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그 밖으로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여성의 권리 옹호>, <실낙원>, <명상록> 이 잠깐씩 얼굴을 비춥니다. 유튜브를 보며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 겹치는 책이 없을까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빼고는 완독한 책이 없습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이라도 허락해 준다면 작년에 읽은 프랑켄슈타인까지는 생색을 내고 싶은데요. 그림책에는 괴물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무엇보다 실낙원을 읽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았다는 내용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까요. 결국은 완역본을 읽어야한다는 깨달음만 얻었죠 뭐. 겨울님은 자신의 인생책들을 운명과 고독, 시간과 상상의 챕터로 나누어 들려줍니다. 나치 시대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느 유대인. 그를 통해 운명과 우연과 필연의 세계를 넘어다봅니다. 고독을 안고 가는 괴물과 그의 창조주 인간을 보며 읽기를 통한 고통의 연대를 생각하죠. 책 너머의 작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대화하고 조심스레 위로도 전해요. 고독의 집성촌을 이룬 것만 같은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사에서 어디까지나 끝은 있으며 이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도 다집니다. 삶이 허무해져선 안되기에 로마 황제의 명상록도 가슴에 새기구요. 현실 너머의 상상, 그 상상으로 하여 다시금 중심을 잡아가는 오늘도 빼먹어선 안되겠죠. 네 권의 책만 보면 소설은 고독한 인간의 필요에 따른 발명품만 같습니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함께이고 싶어 글을 읽는 사람들. 활자 위에서 만나는 우리는 분명 무엇도 읽지 않을 때보다는 조금 덜 외롭겠지요.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이 여긴 내 땅! 하고 뇌에 표시 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천 권 책을 읽으면 천 개의 책들이 빡빡하게 머릿속에 집을 짓고 주인공 한 명 한 명이 제각기 방을 만들어 저의 뇌를 차지해서 저는 절대 그들을 잊지 않는 거에요. 특히나 저는 머리가 나빠서 며칠도 안되서 주인공 이름도 까먹고 그러니까요. 가끔은 읽는 게 허무할 때가 있거든요. 황무지 같은 내 머리도 책 한 권이 스쳐갈 때마다 개간이 되서 기어이 나는 똑똑한 독자가 되고 읽은 책에 대해서라면 막힘 없이 줄줄 말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꿈꾸곤 했는데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읽으며 이대로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애초에 방법적으로 틀려먹은 것 같아요. 주인공의 행위를 놓고 저는 이만큼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구요. 문장이 피고름을 흘리는 게 아닌가 싶을만큼 곱씹어 본 적도 없습니다. 책을 책으로 두지 않고 그를 삶으로 끌어온 적이 과연 있기는 했나 반성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백미터 경주하듯 달려간 저의 어떤 책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선 여전히 마라톤을 뛰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진 책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누가 더 옳은가를 두고 생존다툼을 벌입니다. 물론 답은 요원하죠. 그래도 계속해 고민합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고름도 살이 될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여러 많은 책들의 문장을 짚으며 작가의 흔적을 살피고 의미를 잃기 전에 기록하며 독자의 길을 꿋꿋이 찾아가는 그곳은 겨울서점입니다. 콕 집어 저한테 말한 건 아니지만 독자의 한 명으로 함께 읽자고 해줘서 고마워요. 이 리뷰를 읽기야 하겠습니까만 함께 헤엄칠 수 있어 기뻤다는 것도 꼭 말해주고 싶어요. 한껏 깊어진 호흡으로 더 오랜 시간 더 깊이깊이 유영할 다음의 독서노트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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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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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철학이 들어간 책이라니 평소라면 절대 들춰볼 일 없다. 그런데 철학 뒤에 만화를 의미하는 툰이 붙고 어딘지 초딩스러운 귀여운 인물 표지와 "끝까지 읽어 보실래요?"의 띠지까지 눈에 들어오고 보면 '어라? 이거 좀 시도해 볼만한가?' 라는 도전 의식이 부쩍 생기는 것이다. 그놈의 지적 허영이 뭔지. 소크라테스랑 플라톤 이외의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철학에 대해 한 줄 읊어보고 싶다는 숨은 욕망까지 눈을 뜨면 책을 읽고 싶다는 화급한 욕구를 더는 잠재울 수 없다. 이 때는 무조건 읽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끝까지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철학책을?? 쉬운 책만 골라보는 내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조지 버클리, 볼테르, 데이비드 흄, 루소,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 니체, 존 듀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칼 포퍼,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푸코, 자크 데리다,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에 소개된 총 22명의 철학자들이다. 철학과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하고 철학과 관련없는 만화만을 그려온 작가는 어째서 뜬금없이 철학을 공부하고 또 어째서 뜬금없이 철학툰을 그리게 되었을까? 책의 시작은 아이슈타인의 어찌보면 좀 재수없는 말로부터 시작을 한다. "모든 철학 서적은 잉크 대신 꿀로 써놓은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시 읽어보면 싸구려 감상밖에 남지 않는다." 작가님도 그랬다고 한다. 학창 시절엔 영 책에 관심을 붙이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책과 학문에 관심이 생겨났을 때에도 지식을 쌓는 일은 꿈을 꾸는 일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창 재미있게 꾸다가도 눈을 뜨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그라드는 꿈처럼 지식도 책도 읽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마니까. 내 안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미비해서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고. 그러나 멋있어 보인다는 허영으로 한 표, 완독 후의 흐뭇함에 또 한 표, 단기 기억이긴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짜릿함에 다시 한 표가 추가되며 거듭 철학책들을 읽다보니 무용한 지식의 즐거움을 깨달았단다. 철학자 버클리의 논리대로라면 "대상은 인식됨으로써 의미를 넓히고, 개인은 인식함으로써 내면을 넓혀"(p67)가는 걸테니까. 나라는 소우주가 새로운 인식만큼 확장되는 거라면 철학만큼 알맞은 소재는 없을지도 모르지. 욕망하는 철학자, 욕망을 벗어나려는 철학자, 은둔하려는 철학자,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철학자, 긍정하는 철학자, 회의하는 철학자, 유난히 인기있었던 철학자, 유난히 배척받았던 철학자 등 사실 나는 철학자들의 사상보다는 그들의 삶에 더 흥미를 느꼈는데 그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철학자는 두 명. 쇼펜하우어와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고뇌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였다며 일평생 사람을(특히 여자를) 멀리한 쇼펜하우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한, 20년을 기다려 여성인권 운동가 테일러와 결혼한 존 스튜어트 밀. 이 양극단의 철학자만 뚜렷이 기억에 남긴 나는 역시나 소설 편독녀. 철학자에게도 스토리를 원하는 이놈의 취향에선 벗어날 수가 없다ㅠㅠㅠ

책을 읽고 난 첫 감상도 마지막 감상도 퇴근길에 읽는 가장 편안한 인문 교양서라는 홍보 문구에 거짓이 없다는 거? 핵심만 철저하게 간추렸을 22명의 철학자들과 그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쉽고 명료하며 적절하게 짧다. 주로 읽는 책들이 소설이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인 경우 책을 끊어 읽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은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별로 읽고 덮기에 아주 편리한 분량으로 쪼개져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게 휴대폰이 아니라 책이라는 게 의식되지 않을 정도의 간편함이 있어서 책 읽을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한 사람에게 특히나 추천한다. 무엇보다 철학책임에도 완독이 가능하다는 거!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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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케어 바이블 - 원인 없는 트러블은 없다
안잘리 마토 지음, 신예용 옮김 / 윌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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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처음 읽어본 피부와 관련한 한 권짜리 책입니다. 잡지나 블로그 등에서 고현정의 솜털세안법이니 수지의 424 세안법이니를 찔끔찔끔 찾아본 적은 있지만요. 시도는 잠깐, 세수 한번 수건 하나 쓰는 일에도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려고 하니 이거 참 쉽지가 않더란 말이죠. 관심은 지대하나 몸이 안따라주는 전형적인 타입이거든요. 한마디로 게으름;;; 게다가 수건은 거칠어서 얼굴에 안쓴다고 알려졌던 수지가 실로 털털하게 세수하고 아무 수건으로 착착 물기를 닦아내는 것을 보고 나니 애초에 놀라운 세안법이랍시고 이를 소개한 전문가들에 대한 의심이 솟더군요. 대체 몇 명에게나 검증받은 방법일까? 피부가 좋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니라 좋아졌다는 팩트를 사실로써 증명할 수는 있는건가?고현정도 수지도 애초에 피부가 무지무지 아름다운 미인들인데 거기서 더 좋아질 게 있었다고?? 이런 고민을 짧게라도 하고 나니 메이크업 종사자들이 풀어놓는 각종 비법들이 민간요법들보다 의미가 없다 싶은거에요. 닥터 안잘리 마토의 책 <스킨케어 바이블>도 결국 이런 얘기로부터 시작을 한답니다.

언론으로부터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피부에 관한 여러 팁들. 세안에서부터 시작해 기초화장, 색조화장, 클렌징까지의 각종 루틴들에는 또 그에 걸맞는 제품군과 비법들이 소개되게 마련인데요. 이를 알려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매거진의 에디터들, 근래 부각되는 뷰티 크리에이터의 말들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나. 그들이 정말 전문가는 맞나 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죠. 과학적으로 탄탄하게 뒷받침 할 수 있는 지식을 의학전문기관에서 제대로 훈련받고 나온 사람들인가. 그게 아니라면 각종 뷰티 사업과 유무형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이 사람들의 말을, 때로는 정보가 지나쳐 마치 치료법처럼 과장되게 알려지는 소문을 어디까지 사실이라 믿고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분별해낼 것인가. 이를 위해서 우리 다 같이 기초지식을 쌓자는 거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뷰티팁의 허와 실, 천연과 유기농 또는 방부제처럼 화장품에 붙어나오는 각종 라벨들의 과학적 의미, 성분표에 대한 분석, 피부병의 종류 및 다수의 치료법,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피부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려주고요. 어떠한 조건의 피부이든 그에 상관없이 가져야 할 자기 긍정성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화장을 배워가는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부터 피부에 대한 상식을 한번 더 검토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이랍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피부의 거의 모든 것 <스킨케어 바이블>을 읽고 모두모두 꿀피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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