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깊고 진하게 확장되는 책 읽기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모두 까마득히 다른 세계에 살지만 이따금씩 언어의 지평 위에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이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아주 가끔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끝내 읽고 쓴다."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중)
저는 책 블로거입니다. 책은 당연히 많이 읽습니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18년 성인 평균 독서량입니다. 8.3 권. 또 하나의 취미는 책 리뷰 읽기입니다. 저보다 책 많이 읽는 분들은 많지만요. 책 리뷰 많이 읽는 걸로는 저, 어디가도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랑할 거리만 된다면야 이마에 써붙이고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누가 부러워하겠습니까?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 하겠죠ㅡㅡ;; 재미있는 책은 내 흥분을 공유하고 싶어서 리뷰를 읽고요. 재미없는 책은 같이 욕하려고 읽는 거 아냐 싶으시겠지만 저는 조금 더 변태거든요. 나랑 반대로 읽은 독자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취향의 다양성이란 ㅎㅎ), 중도 포기한 독자를 보며 느끼는 그래도 나는 다 읽었다는 성취감, 내 스타일은 아니야 라는 소심한 투덜투덜에 마음을 더하고파 읽습니다. 재미없다고 쏴붙이는 리뷰도 물론 통쾌하구요. 마음씨 좋은 독자들의 리뷰에는 어떻게든 장점을 쥐어짜려내고 애쓴 흔적들이 엿보이니까요. 그럴 때 상대는 모르는 나 홀로 전우애를 느끼며 흐뭇해합니다. 안읽은 책은 이런 책이 있구나 알게 되서 좋아요. 선호 장르가 아니라 결코 읽을 일이 없어도 그 마음은 똑같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우정이랄까요. 막연한 동료애를 느낍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사족이 기냐면 이 책이 그런 책이어서 그렇습니다. 리뷰어의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는 책을 읽고 책에 관해 말하는 게 직업인 김겨울이라는 사람이 특별히 좋아하는 인생책들을 골라 그 감상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깊고, 진하게, 책 너머까지 확장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그리고 저는 리뷰어면서 리뷰어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이쯤되면 읽지 않을 수가 없겠죠?
다양한 책들이 등장합니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그 밖으로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여성의 권리 옹호>, <실낙원>, <명상록> 이 잠깐씩 얼굴을 비춥니다. 유튜브를 보며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 겹치는 책이 없을까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빼고는 완독한 책이 없습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이라도 허락해 준다면 작년에 읽은 프랑켄슈타인까지는 생색을 내고 싶은데요. 그림책에는 괴물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무엇보다 실낙원을 읽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았다는 내용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까요. 결국은 완역본을 읽어야한다는 깨달음만 얻었죠 뭐. 겨울님은 자신의 인생책들을 운명과 고독, 시간과 상상의 챕터로 나누어 들려줍니다. 나치 시대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느 유대인. 그를 통해 운명과 우연과 필연의 세계를 넘어다봅니다. 고독을 안고 가는 괴물과 그의 창조주 인간을 보며 읽기를 통한 고통의 연대를 생각하죠. 책 너머의 작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대화하고 조심스레 위로도 전해요. 고독의 집성촌을 이룬 것만 같은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사에서 어디까지나 끝은 있으며 이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도 다집니다. 삶이 허무해져선 안되기에 로마 황제의 명상록도 가슴에 새기구요. 현실 너머의 상상, 그 상상으로 하여 다시금 중심을 잡아가는 오늘도 빼먹어선 안되겠죠. 네 권의 책만 보면 소설은 고독한 인간의 필요에 따른 발명품만 같습니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함께이고 싶어 글을 읽는 사람들. 활자 위에서 만나는 우리는 분명 무엇도 읽지 않을 때보다는 조금 덜 외롭겠지요.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이 여긴 내 땅! 하고 뇌에 표시 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천 권 책을 읽으면 천 개의 책들이 빡빡하게 머릿속에 집을 짓고 주인공 한 명 한 명이 제각기 방을 만들어 저의 뇌를 차지해서 저는 절대 그들을 잊지 않는 거에요. 특히나 저는 머리가 나빠서 며칠도 안되서 주인공 이름도 까먹고 그러니까요. 가끔은 읽는 게 허무할 때가 있거든요. 황무지 같은 내 머리도 책 한 권이 스쳐갈 때마다 개간이 되서 기어이 나는 똑똑한 독자가 되고 읽은 책에 대해서라면 막힘 없이 줄줄 말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꿈꾸곤 했는데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읽으며 이대로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애초에 방법적으로 틀려먹은 것 같아요. 주인공의 행위를 놓고 저는 이만큼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구요. 문장이 피고름을 흘리는 게 아닌가 싶을만큼 곱씹어 본 적도 없습니다. 책을 책으로 두지 않고 그를 삶으로 끌어온 적이 과연 있기는 했나 반성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백미터 경주하듯 달려간 저의 어떤 책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선 여전히 마라톤을 뛰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진 책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누가 더 옳은가를 두고 생존다툼을 벌입니다. 물론 답은 요원하죠. 그래도 계속해 고민합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고름도 살이 될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여러 많은 책들의 문장을 짚으며 작가의 흔적을 살피고 의미를 잃기 전에 기록하며 독자의 길을 꿋꿋이 찾아가는 그곳은 겨울서점입니다. 콕 집어 저한테 말한 건 아니지만 독자의 한 명으로 함께 읽자고 해줘서 고마워요. 이 리뷰를 읽기야 하겠습니까만 함께 헤엄칠 수 있어 기뻤다는 것도 꼭 말해주고 싶어요. 한껏 깊어진 호흡으로 더 오랜 시간 더 깊이깊이 유영할 다음의 독서노트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