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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ㅣ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에 철학이 들어간 책이라니 평소라면 절대 들춰볼 일 없다. 그런데 철학 뒤에 만화를 의미하는 툰이 붙고 어딘지 초딩스러운 귀여운 인물 표지와 "끝까지 읽어 보실래요?"의 띠지까지 눈에 들어오고 보면 '어라? 이거 좀 시도해 볼만한가?' 라는 도전 의식이 부쩍 생기는 것이다. 그놈의 지적 허영이 뭔지. 소크라테스랑 플라톤 이외의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철학에 대해 한 줄 읊어보고 싶다는 숨은 욕망까지 눈을 뜨면 책을 읽고 싶다는 화급한 욕구를 더는 잠재울 수 없다. 이 때는 무조건 읽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끝까지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철학책을?? 쉬운 책만 골라보는 내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조지 버클리, 볼테르, 데이비드 흄, 루소,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 니체, 존 듀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칼 포퍼,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푸코, 자크 데리다,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에 소개된 총 22명의 철학자들이다. 철학과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하고 철학과 관련없는 만화만을 그려온 작가는 어째서 뜬금없이 철학을 공부하고 또 어째서 뜬금없이 철학툰을 그리게 되었을까? 책의 시작은 아이슈타인의 어찌보면 좀 재수없는 말로부터 시작을 한다. "모든 철학 서적은 잉크 대신 꿀로 써놓은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시 읽어보면 싸구려 감상밖에 남지 않는다." 작가님도 그랬다고 한다. 학창 시절엔 영 책에 관심을 붙이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책과 학문에 관심이 생겨났을 때에도 지식을 쌓는 일은 꿈을 꾸는 일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창 재미있게 꾸다가도 눈을 뜨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그라드는 꿈처럼 지식도 책도 읽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마니까. 내 안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미비해서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고. 그러나 멋있어 보인다는 허영으로 한 표, 완독 후의 흐뭇함에 또 한 표, 단기 기억이긴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짜릿함에 다시 한 표가 추가되며 거듭 철학책들을 읽다보니 무용한 지식의 즐거움을 깨달았단다. 철학자 버클리의 논리대로라면 "대상은 인식됨으로써 의미를 넓히고, 개인은 인식함으로써 내면을 넓혀"(p67)가는 걸테니까. 나라는 소우주가 새로운 인식만큼 확장되는 거라면 철학만큼 알맞은 소재는 없을지도 모르지. 욕망하는 철학자, 욕망을 벗어나려는 철학자, 은둔하려는 철학자,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철학자, 긍정하는 철학자, 회의하는 철학자, 유난히 인기있었던 철학자, 유난히 배척받았던 철학자 등 사실 나는 철학자들의 사상보다는 그들의 삶에 더 흥미를 느꼈는데 그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철학자는 두 명. 쇼펜하우어와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고뇌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였다며 일평생 사람을(특히 여자를) 멀리한 쇼펜하우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한, 20년을 기다려 여성인권 운동가 테일러와 결혼한 존 스튜어트 밀. 이 양극단의 철학자만 뚜렷이 기억에 남긴 나는 역시나 소설 편독녀. 철학자에게도 스토리를 원하는 이놈의 취향에선 벗어날 수가 없다ㅠㅠㅠ
책을 읽고 난 첫 감상도 마지막 감상도 퇴근길에 읽는 가장 편안한 인문 교양서라는 홍보 문구에 거짓이 없다는 거? 핵심만 철저하게 간추렸을 22명의 철학자들과 그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쉽고 명료하며 적절하게 짧다. 주로 읽는 책들이 소설이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인 경우 책을 끊어 읽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은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별로 읽고 덮기에 아주 편리한 분량으로 쪼개져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게 휴대폰이 아니라 책이라는 게 의식되지 않을 정도의 간편함이 있어서 책 읽을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한 사람에게 특히나 추천한다. 무엇보다 철학책임에도 완독이 가능하다는 거!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