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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발명 - 사후 세계, 영생, 유토피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
마이클 셔머 지음, 김성훈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평점 :
띠지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 인간의 죽을 운명은 천국을 낳았다." 천국도 발명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발상이 새롭다. 그러나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애초에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장수는 재앙이란 말 앞에 노후를 고민해 본 적은 있어도 죽음 이후를 고민해 본 적은 없던 나. 처음으로 천국의 과학적 이야기에 도전하는 독자를 주석을 빼고도 417 페이지에 이르는 마지막 단락까지 마이클 셔머는 무사히 이끌어갈 수 있을까? 설레는 한편으로 걱정을 가득 안고 첫 장을 연다.
1.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천국을 얘기하면서 죽음을 빼놓을 수는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게 사람이 죽어서 사후세계에 가야지 사후세계에 갔다가 죽는 것은 올바른 경로가 아니니까. 막연히 80세 안팎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어라? 나 정말 죽고 싶은 게 맞을까??를 두고 분명하게 고민하게 된 때가 있다. 안쓸신잡 1기. 주제는 "냉동인간". 냉동인간 기술이 보급되면 우리나라에서 1호로 신청을 하겠다는 정재승 박사와 품격있는 죽음을 얘기하는 유시민 작가의 갑론을박을 보면서였다. 처음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될 때만 해도 나는 유시민의 편이었다. 누군가의 부양을 받아야만 하는 몸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존엄을 유지한 채 끝내는 삶은 죽음에 거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리라. 그런 나에게 정재승 박사는 일격을 가한다. "진리가 영원하지 않듯이 과학의 발전이 품격있는 죽음의 의미조차 바꾸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초인적 인간>을 쓴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우리가 상상해야 할 장수는 생명 유지 장치를 건 채 침대에 누워있는 99세의 노인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이 노화과정을 역전시켜 우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사는 삶'이라고. 지금 내 모습으로 100년을 살 수 있는데도 80세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면 내 답은 "아니오"가 맞다.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시간이 흐르면서 믿기 어려운 변화와 혁신을 얼마나 많이 목격하게 될지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저는 어떻게든 이 세상에 남아 있고 싶습니다."(p222) 옛썰. 제가 뭘 좀 몰랐습니다. 냉동보존술에 의지해 액체질소통에 잠기기를 선택한 부유하거나 명예롭거나 똑똑한 많은 사람들의 생의 욕구를 비웃었는데 욕구 이전에 그들은 진심으로 과학의 진보를 믿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2. 죽음이 정말로 무서울까요?
흥미있는 연구가 있다. 대상을 생각하면 '흥미'라는 단어를 붙이기 좀 거시기한데 다름아닌 사형수 최후 진술에 대한 분석이다. 1982년에서 2016년 사이에 사형 집행된 텍사스주 수감자 537명 중 425명이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마이클 셔머와 여러 동료들이 이 진술에 사용된 단어들을 수치화해서 그들이 느낀 감정을 분석했다. 최후진술 속의 감정은 의.외.로 긍.정.적.이며 사.랑.으로 넘친다는 것. 이는 일반인들이 남긴 다양한 글의 긍정적 감정단어 지수를 수치화한 통계보다 높고, 유언수업을 받는 평범한 학생들보다도 긍정적이며,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사람들보다는 현저히 높은 수치다. 사형수가 죽음을 앞두고 막판에 뿜어내는 감정이 공포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 놀랍다. 죽음 앞에서 "나 사실 중국인이야"라는 미스터리하고도 유쾌한 유언을 남긴 사유리씨의 할어버지 사례는 의외로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두 번 죽기는 싫어. 정말로 지루하거든"(p39)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얘기는 담대하다 못해 유쾌하기까지 하다. 죽음 앞에서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까?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은 알아도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 대신에 생물학자 피터 메더워의 노쇠에 대한 인상적인 정의를 옮겨 본다. "나이가 듦에 따라 개체가 우발적 사고에 따른 우연한 원인으로 죽을 확률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신체능력의 변화, 감각능력의 변화, 에너지의 변화. 따라서 어떤 죽음도 전적으로 '자연적인 죽음'은 없다."(p371)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준비할 수 있는 사고, 가급적 고통이 적은 사고였으면. 되도록이면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기를. 두려움 없이 죽음을 포용할 수 있기를. 천국보다는 삶의 마지막 평화에 기대를 걸어본다.
3. 천국에 가고 싶으신가요?
<천국의 발명> 속에는 사후세계, 영생, 유토피아, 무엇보다 천국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철학적, 문학적 접근이 펼쳐진다. 천국의 모습은 문화에 따른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현대인의 가치 반영은 물론이다. "천국에도 테니스장과 골프장이 있을까?" 리처드 하디슨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천국에서도 취미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보다는 안정적인 취미생활이 내게는 더 중요한데 하늘나라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오로지 성경이고 영화나 드라마는 십계뿐이면 어쩌지? 미국의 코미디언 줄리아 스위니는 모르몬교 선교사의 천국 얘기에 학을 뗀다. 사제 왈 "자매님, 천국에서는 육신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줄리아 스위니의 말이 걸작이다. "오 마이 갓! 코 성형 수술을 받은 사람은 어떡해요? 수술한 코가 맘에 들면요? 그래도 꼭 옛날 코로 돌아가야 하나요?" 암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그녀는 딱 한 마디로 천국과의 고별을 택한다. "난 그거 돌려받기 싫어요!" 전지전능한 신과 영원히 함께 하는 천국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하늘나라의 북한"이라 비유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또 어떤가? 내게 강같은 평화를 24시간 부르기야 하겠냐만 신이 내려다보는 속에서 신실한 신자들과 함께하는 영생이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다. 소오름! 이슬람의 천국은 한층 신박해서 그쪽은 또 섹스를 보장한다. 이승에서 결혼한 상태라면 저승에서도 아내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영.원.히. 독신이라면 72명의 아름다운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처녀다;; 내가 이슬람 여자라면 죽어서까지 처녀인지 아닌지를 판별받고 싶을까? 전생의 남편과 영원히 섹스하고 싶을까? 과거의 인간은 필요에 의해 천국을 발명했다는데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 필요가 충분조건이 될까?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의 유무와 별개로 꼭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천국의 진위보다 친국의 필요를 두고 고민할 때에 우리가 현재에 더 충실해야 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