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 산책
조성면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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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장르문학 산책이라는 교양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문학평론가 조성면이 2016년 7월 1일부터 2018년 1월 10일까지 연재한 총 101회의 연재글에 미처 발표하지 못한 열한 편의 글을 보태어 책으로 출간했다. 평론가의 글이라 어렵지는 않을까 지루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책머리에서부터 기우였을 뿐이라는 확신을 팍팍 준다. 삶이라는 여정에 문학이라는 반려를 갖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말하는 그.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의 말을 빌려 예술은 혼자 즐기기엔 삶에서 지나치게 중요한 일이며 그렇기 깨문에 꼭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그가 얘기하는 장르문학들을 살펴보자.

1. 장르문학의 법칙

작가에 따르면 라면에 스프가 있듯 장르문학에도 공식이 있단다. '악인은 처벌을 받고, 간절한 사랑은 이뤄지며, 미스터리는 해결되고 모험과 미션은 완수된다. 현실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장르문학에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것은 절대 없다.'(p24) 장르문학의 법칙을 읽으며 나 되게 몰개성한 독자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앞서 설명한 딱 저런 이유로 내가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탐정, SF, 기타 모험물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공식대로의 독자라니 나한테 실망이얏!

2. 중공군에 비유된 작품이 있었다?

"문화의 적이요, 문화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명에 대항다는 적군"이라는 비판을 받은 작품이 있었다. 정비석 작가의 자유부인(1954년).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의 발언이었는데 책의 내용이 어땠길래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알고 보니 유부녀의 일탈을 다룬 멜로물이었는데 (실은 에로물인가 했다;;) 막판엔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화장하고 춤추고 남자 만나는 유부녀에 대한 신문연재소설이 충격이었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3.sf, 과학과 자본의 결혼?

문학의 한 장르를 두고 어째서 동양보다 서양에서 먼저 등장했는가 하는 식의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SF가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이유는 장르사적 우연이 아닌 역사적 필연이라는 해석. 근대과학과 유럽 제국주의의 연대 속에 문화인류학과 진화론이 만들어진 것이 결국 SF 장르를 등장시키고 발전시켰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4. 톨킨과 판타지와 갈라파고스 증후군

톨킨의 작품을 한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영화만 봤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두고 가족 부재의 문학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결손 가정의 후예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얘기에 보통 판타지는 다 그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해리포터나 네버무어, 십이국기, 티어링의 여왕, 퇴마록 기타등등 생각해 보니 내가 읽은 판타지 소설 거의 다가 결손가정인데 이건 그냥 시작부터 주인공에게 고난을 주기 위한 장르적 장치 아닌가? 왜 자폐적 갈라파고스 문학이라고 하는 건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

5. 문장 부호와 장르문학

장르문학의 특성을 문장 부호를 통해 설명한 이가 있었다. 한국 추리소설의 신기원을 연 김내성의 논문을 보자. "탐성소설의 본질은 엉? 하고 놀라는 마음과 헉! 하고 놀라는 마음이며, 으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심리적 작용이다." (탐정소설의 본질적 요건) 해석하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퍼즐을 제시하는 도입부가 물음표(?)로 시작된다면, 조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밝혀지는 범인의 트릭과 탐정의 명쾌한 해명은 느낌표(!)로, 미스터리의 해결과 대단원은 통쾌한 마침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 추리에 약한 독자다 보니 물음표 두어개로 시작했다가도 각종 반전에 느낌표가 열두개 !!!!!!!!!! 붙는 식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느낌표가 다다다다다닥 붙어올 때 더욱 재미있는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는데 이밖으로 줄 쫙쫙 쳐가며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가 엄청 많다. 내가 몰랐고 앞으로도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해방 후부터의 장르문학 특히 무협지나 만화 같은 부분에 대한 설명들이 흥미로웠다. 무협지 같은 경우 독립운동가가 번역한 경우가 꽤 많다는 사실! 북한의 대중문학,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본의 장르문학, 세계문학 속에서 장르문학의 위치, 한중일의 삼국지 등등등. 논문 형식의 무거운 글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칼럼 형식의 글쓰기를 선택했다는 작가의 생각이 적중했달까. 워낙에 관심영역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편 한편이 간결하고 알차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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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고 미워했다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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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롤라인이 죽는 꿈을 자주 꾸었다. 때로는 캐롤라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캐롤라인과 엄마가 탄 연락선이 침몰했다거나, 더 자주는 택시가 충돌해 캐롤라인의 사랑스러운 몸이 불타서 한 줌 재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늘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이제 캐롤라인에게서 벗어났다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 그리고....... 지독한 죄의식." (p98)

루이스와 캐롤라인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몇 분쯤 먼저 태어난 루이스는 아주 건강하고 튼튼했지만 뒤이어 세상에 나온 캐롤라인은 제대로 울음을 터트리지도 못했고 체온도 낮았다. 모두가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아이 루이스가 존재감도 없이 바구니에 방치된 사이 어른들 모두가 야단법석을 떨며 캐롤라인에게 매달렸다. 성장하는 내내 그랬다. 캐롤라인이 얼마나 아팠고 어떻게 아팠고 언제 아팠는지는 꼬박꼬박 기억해도 캐롤라인과 같은 병에 걸려 옆자리에 누워있던 루이스를 기억하는 어른은 없었다. 루이스의 얼굴에 백일해로 얽은 자국이 뚜렷한데도 그랬다. 엄마는 칭찬처럼 말한다. 루이스는 일 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고. 루이스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일 분 정도는 온전히 나를 걱정해주면 안되는 거에요? 내가 언제나 엄마아빠 걱정이 먼저인 것처럼 일 분 정도는 캐롤라인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면 안되나요? 아픈 아이 캐롤라인, 아름다운 캐롤라인, 음악이라는 천재성을 가진 캐롤라인, 선택 받은 캐롤라인. 캐롤라인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잘난 동생의 존재가 루이스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캐롤라인에 대한 루이스의 열등감이 지나쳐 꿈 속에서 캐롤라인을 몇 번이고 살해할 지경이 되었지만 아무도 루이스의 고통을 몰랐다.

루이스는 캐롤라인과의 관계로 인한 반작용으로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쓴 게처럼 사람들을 피한다. 교회도 가지 않고 학교도 뿌리치고 뻘에서 게를 잡고 아버지의 배를 타고 게 저장소에서 손이 헐도록 일한다. 일한 만큼 분노하고 채워지지 않는 애정에 무너진다. 유일한 친구였던 콜은 소년 티를 벗자마자 캐롤라인을 원하고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준다 생각했던 선장 할아버지는 캐롤라인이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캐롤라인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한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성경 구절처럼 어쩌면 '나' 루이스는 태어날 때부터 에서와 같이 미움받는 존재로 운명지어졌는지 모른다는 생각. 루이스는 성경을 읽으며 어떻게해도 극복하기 힘든 좌절로 깊이깊이 빠져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깨물어서 내가 아픈 것과 손가락이 저 혼자 아픈 건 또 별개의 이야기인 것 같다. 완전히 다른 차원 다른 세상의 이야기 말이다. 아무도 루이스로 인해 아프지 않았건만 루이스는 모두로 인해 아팠다. 잘난 형제와 비교되는 고통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던 루이스. 바다가 있고 몰입할 수 있는 노동이 있었지만 회피는 치유의 요소로는 지나치게 연약한 방어막이었다. 루이스는 섬을 떠나서야 제 안에 자리한 열등감을 온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때로는 독립만이 독같은 가족관계의 답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신경쓰이는 것은 쌍둥이 어머니의 존재. 어부로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 수 밖에 없는 남편을 대신해 온전히 두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했던 여성의 고뇌였다. 아픈 자녀, 게다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녀와 평균 이상으로 똑똑하고 건강한 자녀를 양육하면서 공평하게 두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다는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한다. 쌍둥이의 어머니는 동화 속 계모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분별력 있고 감수성도 높았으며 때문에 루이스가 가진 열등감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교회와 학교를 빼먹고 게잡이를 하는 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입바른 소리에도 딸의 편을 먼저 들 줄 아는 엄마였고 캐롤라인에게만 주어진 기회를 두고 루이스에게 미안해할 줄도 아는 엄마였다. 루이스의 오해로 무산되었지만 엄마는 빚을 내어서라도 루이스를 본토의 학교로 보내려고도 한다. 캐롤라인이 없었다면 엄마의 그런 애정 정도로도 루이스는 충분히 만족하지 않았을까.

이 책이 스릴러물이었다면 루이스의 손에 살아남으려는 캐롤라인의 생존이 아니라면 캐롤라인을 죽인 루이스의 생존 이야기가 진행되었을을테다. 그러나 작가 캐서린 패터슨은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사랑했고 미워했다>로 뉴베리 상을 수상한 동화 작가다. 살인도 공포도 없이 뿌듯하게 성장한 루이스는 한때는 질색한 엄마와 비슷한 삶을 선택하고 섬 같은 산골짜기 트루이트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하늘 아래를 헤매며 헤아려 보는 옛시간들, 사랑하는 자리에서 루이스가 떠올리는 밤의 찬송가가 마음에 스민다. 행복해라 루이스.

#사랑했고미워했다

#캐서린패터슨

#에프

#성장소설

#뉴베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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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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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로키가 없었으면 북유럽 신화는 어쩔 뻔 했을까 하는 것 뿐. 오롯이 로키가 책임지는 재미의 분량이 많았습니다. 실은 로키가 등장하는 부분만 재밌었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로키는 오딘과 의형제 지간입니다. 마블 영화로만 북유럽 신들을 접한 저는 토르랑 로키가 형제인 줄만 알았는데요. 토르가 오딘과 대지 사이의 아들이므로 촌수로만 따지자면 로키가 삼촌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근데 책에서도 딱히 족보를 따져 묻지 않는 것 같고 둘이 형제처럼 원체 붙어다니긴 해요. 둘 다 세상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성미거든요.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니 오해는 금물! 사고뭉치 로키, 말썽쟁이 로키, 비열한 꾀보 로키! 한 다혈질 해서 화나면 신도 때려 죽일 지경인 토르를 무서워하면서도 깐족깐족 얼마나 시비를 거는지 몰라요. 토르가 화나면 뽀르르 도망갔다가 토르가 부르면 뽀르르 튀어오고의 반복. 자존심도 없나 싶지만 체면 차리기엔 토르가 신계에서도 신급 체급의 존재이다 보니 어떤 꾀로도 토르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걸요. 거인 왕과의 대결 속에 드러난 토르의 힘을 보자면요. 토르가 쇠망치 묠니르로 내려치면 산에 골짜기가 생길 정도이고 한쪽 끝이 바다로 이어진 술잔을 세 번만 꿀꺽해도 바닷물이 왕창 줄어든다지 뭐에요.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토르가 먹고 취한 것도 실은 술이 아니라 바닷물이었던 게 아닐까요??

1. 아스가르드 성벽의 재건과 로키

무지개 다리 비프뢰스트를 건넌 한 석공이 오딘과 신들에게 내기를 겁니다.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다시 세워줄테니 여신 프레이야와 해와 달을 주십시오. 신들 모두가 반대할 때에 로키가 나서서 신들을 회유합니다. 여섯 달 안으로는 결코 성벽을 완성할 수 없을테니 무조건 우리가 이득입니다. 잃을 게 하나도 없어요. 동의 안하는 신이 바보~ 그리하여 시작된 성벽 공사가 어떻게 되어가는고 하니 약속된 날짜를 사흘 남겨둔 때에 스바딜파리라고 하는 힘센 말을 이끈 석공이 성벽을 거의 완성해 놓고 있었다는 말씀! 신들은 아주 똥줄이 탔죠. 신계 제일 가는 미녀를, 거기다 해랑 달까지 족보도 없는 석공에게 내어놓게 생겼으니 이 사태를 책임지라며 로키의 목을 짤짤 흔드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쫄보 로키는 무슨 짓이든 해야만 했어요. 그날 밤, 한 아름다운 암말이 덤불 속에서 뛰쳐나와 스바딜파리에게 깡총깡총 뛰어갑니다. 꼬리를 휘젓고 유혹하는 목소리로 낮게 울고 스바딜파리 주변을 뱅글뱅글 맴도니 숫말이 발정이 나 주인 손을 빠져나가 암말을 쫓아달려요. 밤새 두 말이 숲 속을 거닐며 희롱하는 소리가 메아리를 쳤다는군요. 석공이 화딱지가 나서 뒤를 쫓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니 녀석들을 잡지도 못하고 씨근덕씨근덕. 그리하여 석공은 완공 날짜를 놓쳤고 위약금으로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이기만 하면 하나 놀라울 것이 없겠죠? 반전은 몇 달 동안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로키가 짠하고 등장할 때에 나타납니다. 로키가 끌고 오는 발이 여섯개나 달린 망아지 한 마리!! 실은 로키에게는 성별 무관 형태 무관 모습을 바꿀 능력이 있었는데요. 꼭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 밤 스바딜파리 앞에 나타났던 암말을 생각하니 동공에서 지진이..덜덜덜덜... 자신에게 바쳐진 망아지 슬라이프니를 보며 깊은 심경에 잠겨 로키를 응시하는 오딘을 보는 제 심정이 꼭 그와 같았습니다.

2. 로키가 신들에게 바친 보물

말썽쟁이 로키가 어느 한 날 토르의 아내 지프의 방에 물래 숨어듭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지프의 머리칼은 여신의 제일 가는 보물이었는데 그 보물을 한움큼 잘라버리는 로키!! 신계에서 이런 짓을 벌일 자는 로키밖에 없으므로 곧장 토르 손에 체포되고 난장이들을 찾아가 머리를 원상회복할 방법을 찾겠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장난을 치지 말지 로키는 아무리 봐도 톰과 제리 속 톰 같단 말이죠ㅠㅠ 화려한 말발로 황금 머리다발과 접을 수 있는 배 스키드블라드니르, 무엇이든 찌를 수 있는 창 궁니르를 받아낸 로키는 반짝 떠오르는 생각에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난쟁이 브로크와 에이트리의 집을 찾아갑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이렇게 훌륭한 작품 본 적도 없을거라며 장인들의 섬세한 자존심을 박박 긁은 로키는 결국 황금털이 달린 수퇘지 굴린수르스티와 9일마다 쌍둥이 팔찌 8개를 낳는 드라우프니르, 실수로 손잡이가 좀 짧아지긴 했지만 절대 부러뜨릴 수 없고 아무리 멀리 던져도 언제나 주인의 손으로 돌아올 망치 묠니느를 받아내 신들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이 선물에는 내기 하나가 걸려있었거든요. 전자보다 후자의 보물이 더 훌륭할 경우 난쟁이들이 로키의 목을 딸 수 있다는 그런 내기가 말이죠. 신들이 브로크와 에이트리의 손을 들어줬으므로 난쟁이들은 로키의 목을 따려고 하지만 로키의 꾀로 머리 대신 입술만 받아내기로 합니다. 송곳에 실을 꿰어 로키의 입술을 꿰매버리는 잔인함!! 로키 덕분에 보물을 받아놓고서는 로키의 꼴을 보고 좋다고 웃어대는 신들의 모습에 (이런 배은망덕한!!) 로키는 신들에게 복수를 하리라 맹세를 하죠. (짜란다짜란다짜란다!!!)

이 밖으로도 토르에게 여장을 시켜 신부로 만드는 로키나 목걸이 하나 때문에 네 난쟁이와 돌아가며 밤을 보내는 프레이야를 훔쳐보는 로키, 아스가르드 신들 앞에서 대놓고 앞담화를 해서 신들의 미움을 받는 로키, 사랑받는 신 발더를 질투해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나쁜 수를 쓰는 로키, 족쇄에 묶인 로키의 이야기 등 재미난 읽을 거리가 많아요. 자존심 강한데 능력치는 오딘이나 토르보다 딸리고 남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보고 누가 뭐 좀 칭찬받는다 싶으면 샘이 나서 훼방을 놓고 남자도 됐다고 여자도 됐다가 하며 이쪽저쪽으로 애들을 낳는 변신무쌍한 로키를 읽는 재미에 푸욱 빠졌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또다른 매력의 삽화들도 매력적이구요. 암소가 얼음을 핥아 생겨난 인간,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감싸고 있는 세 개의 수평면과 아홉 세상의 축, 많이 유실되어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다양하진 않았지만 캐빈 크로슬리-홀런드가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쓴 신화의 세계를 유영하는 시간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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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우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3
김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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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엄마는 구멍가게를 했다. 근방의 낚시터를 오며가는 낚시꾼들 말고는 손님이 없는 작고 구질구질한 가게였다. 점방에 붙어있는 방에서 미라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생긴 애인, 숫기없고 수줍은 아저씨를 미라는 천문대라 불렀다. 결혼식을 한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때에 천문대가 그가 일하는 천문대로 모녀를 초대했다. 미라의 마음이 벚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야말로 만개한 봄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미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천문대의 운전은 미숙했고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을 낭떠러지처럼 가팔랐다. 미라는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됐다.

성인이 된 미라. 한 때의 엄마와 천문대처럼 사랑에 빠졌다. 엄마의 사랑처럼 미라의 사랑도 소박했다. 잘난 남자, 잘생긴 남자, 부자에, 능력이 많은... 그런 남자를 미라는 한번도 꿈꾼 적이 없었다. 소박하고 사치를 모르고 특별한 순간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조차 멋쩍어 하는 그런 남자가 미라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폭풍처럼 쏟아붓는 사랑도 고백도 없었지만 미라는 민혁을 사랑했다. 29살, 결혼의 꿈이 만개한 밤에 그러나 민혁이 던진 것은 프로포즈가 아닌 고해였다. "나쁜 일이 있었어.", "그걸 털어놓지 않고는 너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하나가 죽었어..."

나쁜 새끼. 정말 나쁜 새끼. 아무 죄 없는 여자를, 제 자식 가진 여자를, 머나먼 과거의 공범으로 만든 정말정말 나쁜 새끼. 그리고 그 나쁜 새끼의 과거를 찢고 나와 미라의 주변을 맴도는 또다른 나쁜 새끼들. 미라 과거의 또다른 나쁜 새끼들. 때려 죽여 마땅한 새끼들. 그러다 진짜 맞아 죽는 새끼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소름이 끼쳐야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슬프기만 한지 모르겠다.

난분분, 벚꽃 지는 계절에 시작해 다시 난분분, 벚꽂이 다 지도록 계속되는 미라의 이야기 <벚꽃의 우주>. 꽂히는대로 순서 없이 모으고 순서 없이 읽는 중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손에 꼽게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살의를 꽃 피우고 살의를 열매 맺고 살의로 져버린 늙은 벚나무 같은 미라와 연인의 죽음 이후 비어버린 집에 피고 지는 꽃을 쉼없이 심고 가꾼 천문대를 생각한다. 살의를 꽃피운 연인의 딸조차 지키고 보호하려 한 어리석은 사내와 남편보다 더한 믿음으로 그 사내를 믿고 뒤를 맡긴 미라의 마음을 생각한다. 미라의 엄마가 이 두 번째 사내로 하여금 행복을 찾았던 것처럼 미라에게도 두 번째 삶이, 두 번째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것을 끝내버린 미라를 생각하면 한없이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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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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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구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이 되요. "밸린저 부인은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했다" 라고요. 저는 밸린저 부인과는 정 반대되는 사람이라 여럿이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꼭 혼자 하려 하고요. 취미랄 것도 거의 없지만 무슨 일을 하든 주변에 잘 알리지 않는 편이에요. 함께가 왜 혼자인 것보다 편하다는건지 당최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라 징구의 첫문장에 확 당기는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운 밸린저 부인의 욕망은 배움에 닿아있는데 그래서 여성 여러명을 모아 런치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어요. 클럽의 대장 격인 밸린저 부인은 재미 위주로는 결코 책을 고르지 않는 타입이에요.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인데 재밌다는 이유 하나로 책을 선택하는 로비 부인을 한심해 하지요. 플린스 부인은 책이 어떠냐고 가볍게 물어보는 질문에 질색팔색을 해요.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니 그냥 읽으면 될 것을 책 내용에 관해 왜 시시콜콜히 묻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로비 부인이 책 내용이 도대체 뭔가요? 라고 물었을 때 아주 정색을 하고 싫어해요. 레버렛 부인과 밴 블레이크 양은 이런 두 부인 사이에 끼여 눈치를 보고 낯선 책들에 공포를 느끼며 혹시라도 토론에 모르는 게 나올까봐 안절부절 책을 부둥켜 안고 살고요. 모르는 책이에요, 안읽은 책이에요, 꼭 그 책을 읽어야 하나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겟어요 라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은 로비 부인뿐인데 덕분에 자격미달로 부인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런치 클럽에 유명 작가 오즈릭 데인이 방문한 어느 오후. 뭐가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한지 팬들 앞에서 다소 예의가 없는 듯한 작가가 질문을 해요. 런치클럽에서 어떤 심리학을 공부했나요? 로비 부인의 질문이었으면 팽 무시하고 지나갔을텐데 권위있는 작가의 질문에야 그럴 수가 있나요. 모두가 기가 죽어 입술이 꼭 다물린 순간, 로비 부인이 치고 나와요. "징구 아니에요? 우리 그 때 다 같이 징구를 공부하지 않았어요?" 회원들이 화색을 띄며 맞아 징구! 하고 대꾸하지요. 누구는 징구로 인해 인생이 변한 경우를 봤다고 하고요. 누구는 너무 길어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게 흠이라 하네요. 또 누구는 절대 건너뛸 수 없다고 말하는 그것 징구! 수수께기 같은 징구의 정체는 도대체 뭐였을까요? 징구에 깔깔 웃다가 로비 부인의 대담함을 부러워하다가 책은 뭐니뭐니 해도 혼자 읽는 맛이라며 전 오늘도 혼독합니다 ㅎㅎㅎ

2. 로마의 열병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의 로마. 어린 시절 이웃으로 만나 성장한 두 여성이 이제는 사춘기가 된 딸을 데리고 여행을 옵니다. 우연한 만남에 젊은 날의 친근함을 되찾아 함께 하는 오후. 시작은 햇빛처럼 따사롭고 상냥했지요. 그러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합니다. '쟤한테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어! 바바라는 분명 일등 신랑감과 약혼하고 이리 돌아올 거야.' 친구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가 가슴을 이글이글 데우고 미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헛되이 흘러 기어코 젊은 날의 실수와 다툼까지 거론하게 되는데요. "넌 그이를 나한테서 뺏으려고 안감힘을 썼잖니! 결국에는 내가 그이를 차지했지만 말이야." 알고 보니 삼각관계였던 두 친구! 젊은 그 밤의 결말이 뺨 때리는 폭력 하나 없이도 어찌나 으시시 하던지 전설의 고향 저리가라였습니다. 단편이지만 어지간한 막장 허리도 분지를 것 같은 긴장감!! 이것이 질투의 힘인가 싶었습니다.

3. 다른 두 사람

"아내는 오랜 신발처럼 쉬웠다. 수없이 많은 발이 심어서 편해진 신발." 무슨 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웨이손의 아내는 웨이손과의 결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두 전남편이 있고 첫 남편과의 사이에는 자식도 있어요. 처음엔 그런 점따윈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 웨이손이었지만 피치 못하게 전남편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언제나 순종적이고 나긋나긋하게 맞춰오는 아내의 유연성에 지레 질려버려요. 두 번의 이혼으로 인한 결과물만 같아 찜찜하다는 거지요. 이야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거 비극이려나 싶었는데 반전 같은 결말로 끝을 맺는 소설이었습니다. 역자님이 웨이손과 앨리스의 화합(?)을 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주신 후기가 재미났어요.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그렇게도 해석되는구나 싶어 끄덕끄덕 했습니다.

4. 에이프릴 샤워

네 단편 중 가장 따뜻한 이야기에요. 아픈 어머니, 바쁜 아버지 대신에 집안일을 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만 하는 테오도라. 힘겹게 쓴 소설이 홈서클의 수상작이 된 날엔 하늘을 날아다닐 듯 기뻤습니다. 인세는 모조리 가족들을 위해 쓸 생각이었어요. 엄마의 휠체어, 아버지 병실의 새 벽지, 여동생들의 자전거, 말썽꾸러기 남동생은 기숙학교 ㅋㅋ 유명세를 타서 지역신문에도 실리고 친구들과 이웃들 모두가 축복하는 기쁜 나날이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 이어집니다. 긴장감으로 바들바들 떨며 받아든 테오도라 인생의 첫 책. 그러나 페이지를 펼치고 얼마되지 않아 테오도라의 손에서 책이 툭 하고 떨어집니다. 테오도라는 정신없이 집을 나와 낯설기만한 보스턴행 기차를 탑니다. 홈서클을 방문하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도 목도하지요. "유감", "오해". 17살의 소녀가 견뎌내기엔 벅차기만한 밤. 테오도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아버지의 품이 참 부럽더군요. 에이프릴 샤워의 여운을 길게 늘여 놓은 것만 같은 소설로 뉴베리 상을 수상한 클로디아의 비밀도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퓰리처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 이디스 워튼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상류 사회 속 뭇 여인들을 풍자하는 내용이고요. 가벼운 어투와 짧은 페이지로 쉽게 읽히고 재미가 톡톡 튀는 책이에요. 출판사 책읽는 고양이가 여행 같은 책을 추구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오며가며 읽기 참 좋은 책이었어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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