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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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로키가 없었으면 북유럽 신화는 어쩔 뻔 했을까 하는 것 뿐. 오롯이 로키가 책임지는 재미의 분량이 많았습니다. 실은 로키가 등장하는 부분만 재밌었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로키는 오딘과 의형제 지간입니다. 마블 영화로만 북유럽 신들을 접한 저는 토르랑 로키가 형제인 줄만 알았는데요. 토르가 오딘과 대지 사이의 아들이므로 촌수로만 따지자면 로키가 삼촌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근데 책에서도 딱히 족보를 따져 묻지 않는 것 같고 둘이 형제처럼 원체 붙어다니긴 해요. 둘 다 세상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성미거든요.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니 오해는 금물! 사고뭉치 로키, 말썽쟁이 로키, 비열한 꾀보 로키! 한 다혈질 해서 화나면 신도 때려 죽일 지경인 토르를 무서워하면서도 깐족깐족 얼마나 시비를 거는지 몰라요. 토르가 화나면 뽀르르 도망갔다가 토르가 부르면 뽀르르 튀어오고의 반복. 자존심도 없나 싶지만 체면 차리기엔 토르가 신계에서도 신급 체급의 존재이다 보니 어떤 꾀로도 토르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걸요. 거인 왕과의 대결 속에 드러난 토르의 힘을 보자면요. 토르가 쇠망치 묠니르로 내려치면 산에 골짜기가 생길 정도이고 한쪽 끝이 바다로 이어진 술잔을 세 번만 꿀꺽해도 바닷물이 왕창 줄어든다지 뭐에요.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토르가 먹고 취한 것도 실은 술이 아니라 바닷물이었던 게 아닐까요??

1. 아스가르드 성벽의 재건과 로키

무지개 다리 비프뢰스트를 건넌 한 석공이 오딘과 신들에게 내기를 겁니다.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다시 세워줄테니 여신 프레이야와 해와 달을 주십시오. 신들 모두가 반대할 때에 로키가 나서서 신들을 회유합니다. 여섯 달 안으로는 결코 성벽을 완성할 수 없을테니 무조건 우리가 이득입니다. 잃을 게 하나도 없어요. 동의 안하는 신이 바보~ 그리하여 시작된 성벽 공사가 어떻게 되어가는고 하니 약속된 날짜를 사흘 남겨둔 때에 스바딜파리라고 하는 힘센 말을 이끈 석공이 성벽을 거의 완성해 놓고 있었다는 말씀! 신들은 아주 똥줄이 탔죠. 신계 제일 가는 미녀를, 거기다 해랑 달까지 족보도 없는 석공에게 내어놓게 생겼으니 이 사태를 책임지라며 로키의 목을 짤짤 흔드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쫄보 로키는 무슨 짓이든 해야만 했어요. 그날 밤, 한 아름다운 암말이 덤불 속에서 뛰쳐나와 스바딜파리에게 깡총깡총 뛰어갑니다. 꼬리를 휘젓고 유혹하는 목소리로 낮게 울고 스바딜파리 주변을 뱅글뱅글 맴도니 숫말이 발정이 나 주인 손을 빠져나가 암말을 쫓아달려요. 밤새 두 말이 숲 속을 거닐며 희롱하는 소리가 메아리를 쳤다는군요. 석공이 화딱지가 나서 뒤를 쫓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니 녀석들을 잡지도 못하고 씨근덕씨근덕. 그리하여 석공은 완공 날짜를 놓쳤고 위약금으로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이기만 하면 하나 놀라울 것이 없겠죠? 반전은 몇 달 동안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로키가 짠하고 등장할 때에 나타납니다. 로키가 끌고 오는 발이 여섯개나 달린 망아지 한 마리!! 실은 로키에게는 성별 무관 형태 무관 모습을 바꿀 능력이 있었는데요. 꼭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 밤 스바딜파리 앞에 나타났던 암말을 생각하니 동공에서 지진이..덜덜덜덜... 자신에게 바쳐진 망아지 슬라이프니를 보며 깊은 심경에 잠겨 로키를 응시하는 오딘을 보는 제 심정이 꼭 그와 같았습니다.

2. 로키가 신들에게 바친 보물

말썽쟁이 로키가 어느 한 날 토르의 아내 지프의 방에 물래 숨어듭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지프의 머리칼은 여신의 제일 가는 보물이었는데 그 보물을 한움큼 잘라버리는 로키!! 신계에서 이런 짓을 벌일 자는 로키밖에 없으므로 곧장 토르 손에 체포되고 난장이들을 찾아가 머리를 원상회복할 방법을 찾겠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장난을 치지 말지 로키는 아무리 봐도 톰과 제리 속 톰 같단 말이죠ㅠㅠ 화려한 말발로 황금 머리다발과 접을 수 있는 배 스키드블라드니르, 무엇이든 찌를 수 있는 창 궁니르를 받아낸 로키는 반짝 떠오르는 생각에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난쟁이 브로크와 에이트리의 집을 찾아갑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이렇게 훌륭한 작품 본 적도 없을거라며 장인들의 섬세한 자존심을 박박 긁은 로키는 결국 황금털이 달린 수퇘지 굴린수르스티와 9일마다 쌍둥이 팔찌 8개를 낳는 드라우프니르, 실수로 손잡이가 좀 짧아지긴 했지만 절대 부러뜨릴 수 없고 아무리 멀리 던져도 언제나 주인의 손으로 돌아올 망치 묠니느를 받아내 신들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이 선물에는 내기 하나가 걸려있었거든요. 전자보다 후자의 보물이 더 훌륭할 경우 난쟁이들이 로키의 목을 딸 수 있다는 그런 내기가 말이죠. 신들이 브로크와 에이트리의 손을 들어줬으므로 난쟁이들은 로키의 목을 따려고 하지만 로키의 꾀로 머리 대신 입술만 받아내기로 합니다. 송곳에 실을 꿰어 로키의 입술을 꿰매버리는 잔인함!! 로키 덕분에 보물을 받아놓고서는 로키의 꼴을 보고 좋다고 웃어대는 신들의 모습에 (이런 배은망덕한!!) 로키는 신들에게 복수를 하리라 맹세를 하죠. (짜란다짜란다짜란다!!!)

이 밖으로도 토르에게 여장을 시켜 신부로 만드는 로키나 목걸이 하나 때문에 네 난쟁이와 돌아가며 밤을 보내는 프레이야를 훔쳐보는 로키, 아스가르드 신들 앞에서 대놓고 앞담화를 해서 신들의 미움을 받는 로키, 사랑받는 신 발더를 질투해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나쁜 수를 쓰는 로키, 족쇄에 묶인 로키의 이야기 등 재미난 읽을 거리가 많아요. 자존심 강한데 능력치는 오딘이나 토르보다 딸리고 남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보고 누가 뭐 좀 칭찬받는다 싶으면 샘이 나서 훼방을 놓고 남자도 됐다고 여자도 됐다가 하며 이쪽저쪽으로 애들을 낳는 변신무쌍한 로키를 읽는 재미에 푸욱 빠졌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또다른 매력의 삽화들도 매력적이구요. 암소가 얼음을 핥아 생겨난 인간,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감싸고 있는 세 개의 수평면과 아홉 세상의 축, 많이 유실되어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다양하진 않았지만 캐빈 크로슬리-홀런드가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쓴 신화의 세계를 유영하는 시간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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