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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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구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이 되요. "밸린저 부인은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했다" 라고요. 저는 밸린저 부인과는 정 반대되는 사람이라 여럿이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꼭 혼자 하려 하고요. 취미랄 것도 거의 없지만 무슨 일을 하든 주변에 잘 알리지 않는 편이에요. 함께가 왜 혼자인 것보다 편하다는건지 당최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라 징구의 첫문장에 확 당기는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운 밸린저 부인의 욕망은 배움에 닿아있는데 그래서 여성 여러명을 모아 런치클럽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어요. 클럽의 대장 격인 밸린저 부인은 재미 위주로는 결코 책을 고르지 않는 타입이에요.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인데 재밌다는 이유 하나로 책을 선택하는 로비 부인을 한심해 하지요. 플린스 부인은 책이 어떠냐고 가볍게 물어보는 질문에 질색팔색을 해요.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니 그냥 읽으면 될 것을 책 내용에 관해 왜 시시콜콜히 묻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로비 부인이 책 내용이 도대체 뭔가요? 라고 물었을 때 아주 정색을 하고 싫어해요. 레버렛 부인과 밴 블레이크 양은 이런 두 부인 사이에 끼여 눈치를 보고 낯선 책들에 공포를 느끼며 혹시라도 토론에 모르는 게 나올까봐 안절부절 책을 부둥켜 안고 살고요. 모르는 책이에요, 안읽은 책이에요, 꼭 그 책을 읽어야 하나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겟어요 라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은 로비 부인뿐인데 덕분에 자격미달로 부인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런치 클럽에 유명 작가 오즈릭 데인이 방문한 어느 오후. 뭐가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한지 팬들 앞에서 다소 예의가 없는 듯한 작가가 질문을 해요. 런치클럽에서 어떤 심리학을 공부했나요? 로비 부인의 질문이었으면 팽 무시하고 지나갔을텐데 권위있는 작가의 질문에야 그럴 수가 있나요. 모두가 기가 죽어 입술이 꼭 다물린 순간, 로비 부인이 치고 나와요. "징구 아니에요? 우리 그 때 다 같이 징구를 공부하지 않았어요?" 회원들이 화색을 띄며 맞아 징구! 하고 대꾸하지요. 누구는 징구로 인해 인생이 변한 경우를 봤다고 하고요. 누구는 너무 길어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게 흠이라 하네요. 또 누구는 절대 건너뛸 수 없다고 말하는 그것 징구! 수수께기 같은 징구의 정체는 도대체 뭐였을까요? 징구에 깔깔 웃다가 로비 부인의 대담함을 부러워하다가 책은 뭐니뭐니 해도 혼자 읽는 맛이라며 전 오늘도 혼독합니다 ㅎㅎㅎ

2. 로마의 열병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의 로마. 어린 시절 이웃으로 만나 성장한 두 여성이 이제는 사춘기가 된 딸을 데리고 여행을 옵니다. 우연한 만남에 젊은 날의 친근함을 되찾아 함께 하는 오후. 시작은 햇빛처럼 따사롭고 상냥했지요. 그러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합니다. '쟤한테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어! 바바라는 분명 일등 신랑감과 약혼하고 이리 돌아올 거야.' 친구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가 가슴을 이글이글 데우고 미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헛되이 흘러 기어코 젊은 날의 실수와 다툼까지 거론하게 되는데요. "넌 그이를 나한테서 뺏으려고 안감힘을 썼잖니! 결국에는 내가 그이를 차지했지만 말이야." 알고 보니 삼각관계였던 두 친구! 젊은 그 밤의 결말이 뺨 때리는 폭력 하나 없이도 어찌나 으시시 하던지 전설의 고향 저리가라였습니다. 단편이지만 어지간한 막장 허리도 분지를 것 같은 긴장감!! 이것이 질투의 힘인가 싶었습니다.

3. 다른 두 사람

"아내는 오랜 신발처럼 쉬웠다. 수없이 많은 발이 심어서 편해진 신발." 무슨 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웨이손의 아내는 웨이손과의 결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두 전남편이 있고 첫 남편과의 사이에는 자식도 있어요. 처음엔 그런 점따윈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 웨이손이었지만 피치 못하게 전남편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언제나 순종적이고 나긋나긋하게 맞춰오는 아내의 유연성에 지레 질려버려요. 두 번의 이혼으로 인한 결과물만 같아 찜찜하다는 거지요. 이야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거 비극이려나 싶었는데 반전 같은 결말로 끝을 맺는 소설이었습니다. 역자님이 웨이손과 앨리스의 화합(?)을 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주신 후기가 재미났어요.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그렇게도 해석되는구나 싶어 끄덕끄덕 했습니다.

4. 에이프릴 샤워

네 단편 중 가장 따뜻한 이야기에요. 아픈 어머니, 바쁜 아버지 대신에 집안일을 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만 하는 테오도라. 힘겹게 쓴 소설이 홈서클의 수상작이 된 날엔 하늘을 날아다닐 듯 기뻤습니다. 인세는 모조리 가족들을 위해 쓸 생각이었어요. 엄마의 휠체어, 아버지 병실의 새 벽지, 여동생들의 자전거, 말썽꾸러기 남동생은 기숙학교 ㅋㅋ 유명세를 타서 지역신문에도 실리고 친구들과 이웃들 모두가 축복하는 기쁜 나날이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 이어집니다. 긴장감으로 바들바들 떨며 받아든 테오도라 인생의 첫 책. 그러나 페이지를 펼치고 얼마되지 않아 테오도라의 손에서 책이 툭 하고 떨어집니다. 테오도라는 정신없이 집을 나와 낯설기만한 보스턴행 기차를 탑니다. 홈서클을 방문하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도 목도하지요. "유감", "오해". 17살의 소녀가 견뎌내기엔 벅차기만한 밤. 테오도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아버지의 품이 참 부럽더군요. 에이프릴 샤워의 여운을 길게 늘여 놓은 것만 같은 소설로 뉴베리 상을 수상한 클로디아의 비밀도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퓰리처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 이디스 워튼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상류 사회 속 뭇 여인들을 풍자하는 내용이고요. 가벼운 어투와 짧은 페이지로 쉽게 읽히고 재미가 톡톡 튀는 책이에요. 출판사 책읽는 고양이가 여행 같은 책을 추구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오며가며 읽기 참 좋은 책이었어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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