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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와 함께한 산책
벤 섀턱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평점 :
괜히 누군가를 따라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보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해보기도 한다. 저녁에는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혹시 따라 해보고 싶은 이가 주위나 쉽게 발견할 수 없다면 먼저 살다 간 위대한 인물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배낭에 노트도 한 권 챙겨 넣었다. 내가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헨리가 그랬기 때문이었고, 나도 며칠이나마 다른 사람의 습관을 따라 해 보고 싶었다. (16쪽)
연일 계속되는 악몽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걸은 길을 따라 걷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 저자가 집을 나설 때 노트를 챙기며 쓴 글이다. 그는 소로의 습관을 따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쓴 에세이가 『소로와 함께한 산책』이다. 잠깐 언급이 되었듯이 저자 벤 섀턱은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린 그림이 자주 나온다. 그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에세이이다.
케이프코드의 해변가, 커타딘산, 와추셋산, 사우스웨스트, 알라가시, 케이프코드 이렇게 소로가 걸었던 여섯 곳에서 소로의 자취를 찾으며 걷고 또 걷는다. 재미있는 것은 1부와 2부로 나뉜 여정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사이에 저자의 신상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숲에서나 해변에서, 공동체 안에서,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가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남성이기 때문에 위협받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밟히고 있는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며 걷는다. 그 과정에서 낯선 이들과 만남도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행선지인 사우스웨스트를 걸을 때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헨리처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반드시 필요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 가족의 집도 아니었던 곳으로 가는 길에서 내가 만난 것은 그저 매일의 인간애일 뿐이었다. (175쪽)
사우스웨스트 뿐 아니라 소로가 걷고 머물었던 곳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 주며 처음 보는 저자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 가늘 길에서 ‘매일 만난 인간애’가 상실과 고통으로 불면의 시절을 보내며 소로를 따라 걷기를 결심한 저자를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걷는 다는 것’
어쩌면 이처럼 단순한 행위가 상실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벗 삼아 무한한 인류애를 느끼면서 걷다보면 고통과 상실이 치유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산책의 효과가 치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로도 언젠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두세 시간의 산책이 내가 기대하지조차 못했던 낯선 나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145쪽)
기대하지조차 못했던 낯선 나라의 경험을 남기기 위해 소로는 산책을 할 때 노트를 챙겨 나선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산책을 나설 때 나도 스마트폰의 노트앱이라도 활용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과 기록...
어쩌면 간단하다고 보이는 것이 삶에서 받은 고통과 상실을 치유해주고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2부의 시작을 알리는 소로의 일기가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하루의 경험을 그다음 날 글로 남기는 일에 어떤 장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더 이상적인 그을 쓸 수 있다. 마치 머리를 거꾸로 하고 바라보는 풍경이나 물에 비친 모습의 반영처럼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54년 4월 20일의 일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