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예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로 ‘심야식당’이라는 것이 있다. 도쿄의 번화가 뒷골목에서 모두가 귀가할 무렵 문을 열어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을 하는 밥집으로 대표메뉴는 돈지루이지만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모두 해주는 곳으로 손님들의 그 음식을 먹고 허기기를 달래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만화가 원작이지만 원작 만화의 그림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재미있게 본 경우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 매개체가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음식’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피곤을 잊는 것은 문화와 사는 방식이 달라도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할머니와 나의 3천엔』이라는 소설로 돈을 쓰는 방법을 할머니에게 배우는 과정을 재미있게 알려준 작가인 하라다 히카가 이번에는 ‘술’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목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낮술』이다. 주인공은 지킴이 일을 하는 이누모리 쇼코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아이가 있는 엄마로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다. 그녀가 하는 지킴이라는 일은 소꿉친구인 다이치가 사장으로 있는 심부름센터의 업무이다. 심야에 누군가를 지켜봐주고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 외에 거의 일을 하지 않지만 밤에 새워 일을 해야 하기에 쇼코는 일을 마치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잠을 드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한다. 이때 먹는 하루 한 끼를 한 잔의 술과 함께 하기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처럼 차례도 독특하다. 첫 번째 술부터 열여섯번째 술까지 총 열여섯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은 차례는 술이지만 제목은 음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식당의 음식과 술이 소재로 사용되었기에 그 묘사가 더 구체적인 것이 큰 특징이다. 심지어 일본의 음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묘사만으로 군침이 도는 경험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음심과 술이라는 소재도 재미있지만 쇼코라는 캐릭터도 재미있었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쇼코에 대한 설명이다.
이누모리 쇼코에게는 점심 먹을 식당을 고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
그곳의 음식이 술과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 (11쪽)
식당에 들어가기 전 맛집 앱을 살펴보는 게 식도락 소설의 주인공이나 미식가로선 실격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쇼코에게 더없이 소중한 한 끼. 한 잔이다. 자신은 미식가가 아니므로 감에 의존하지 말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야 한다. (12쪽)
음식이 술과 궁합이 맞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맛집 앱을 애용하는 이가 술과 음식 소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쇼코라는 인물이 더 좋았던 것은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소쿄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쳐감으로써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점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딸을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맡기고 혼자 나와 살아가는 인물로 시작하지만 점차 딸에게 엄마의 역할을 다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열 두번째 술인 ‘프렌치 레스토랑’ 편에서는 전남편에게 재혼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딸과 함께 셋이서 하는 식사를 다루고 있다, 딸이 처음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소 가격이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선택한 쇼코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한다.
아, 맛있는 음식이란 건 정말 근사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포근하게 해주니까.
우리는 부족한 인간이고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분명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해냈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이후에도 문제는 얼마든지 생기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247쪽)
아... 낮술을 무리지만 밤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혼술이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