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화의 무지개 - 자연과 인간의 다양성, 젠더와 섹슈얼리티
조안 러프가든 지음, 노태복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어떤 보수단체에서 게재한 비난성 광고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들은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가 된 내 아들이 에이즈로 죽으면 방송사가 책임져라'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 드라마에 외설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성정체성이 드라마 하나 본다고 그렇게 간단히 변하는 것이 아니며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 비해 에이즈에 걸리는 비율이 더 높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아직 사회에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고,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나라에서 동성애를 법적으로 처벌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문필가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고 2년간의 강제노동형에 처해졌으며 20세기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역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받고 자살했다.
얼마 전, 무지개 색상의 띠지가 인상적인 조안 러프가든의 책 <진화의 무지개(원제 Evolution's Rainbow : Diversity, Genter, and Sexuality in Nature and People)>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1998년 52세의 나이에 여성으로 성을 전환했다. 그는 성전환을 함으로써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계속 교수로 재직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이, 어떤 개인의 학문적 성취, 업무수행 능력과 성적 정체성은 전혀 연관이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동시에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수정한다. 수컷은 활동적이고 암컷은 수줍으며,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암컷은 우수한 수컷의 씨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이론을 그는 반박하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우선 진화에는 다양성이 좋은 것이라는 '다양성 긍정 이론'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범주인 암컷과 수컷을 사회적 범주인 젠더와 구분한다. 암수의 구분은 생식세포의 크기 차원에서 끝나지만, 젠더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좀 복잡하다. 이 책에 예로 등장한 생물들 중 선피시(sunfish)라는 물고기는 큰 수컷, 중간 크기의 수컷, 작은 수컷, 그리고 암컷의 네 가지 젠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몸의 크기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형과 성 역할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많은 젠더를 가지고 있는 종은 옆줄무늬도마뱀으로 수컷 세 젠더와 암컷 두 젠더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젠더를 가지고 있는 종들은 암컷다운 수컷, 수컷다운 암컷 등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이분법적 성역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또한 동성 간의 구애와 짝짓기도 의외로 자연에는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큰뿔양은 거의 모든 수컷이 동성애적 구애와 교미를 시도하는데, 이러한 동성간 구애와 교미는 사육 양에서도 발견된다. 오랫동안 이런 행동은 다른 수컷을 암컷으로 착각했거나 암수 간의 교미 전에 행하는 일종의 연습이라고 설명되었으나, 동성애 숫양은 그냥 게이일 뿐 게이인 척 하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 반응 등으로 보면 다른 수컷을 암컷으로 여기고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 중 수컷을 선택해서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또한 보노보는 거의 모든 암컷이 동성간 성 접촉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인 연합체를 구축하여 생존에 유리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재생산할 수 없는 관계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도태되어야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적 선택'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정자를 배달하는 것보다 번식 기회의 획득과 거래,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고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2부에서는 인간의 젠더가 언제 어떻게 결정되며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불확실한 편견들이 실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XX/XY 성염색체 시스템은 이분법적이지만, 몸의 형태는 젠더들 간에 상당히 겹치고 교차하기도 한다. 또한 두 성 모두가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가졌으며 단지 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성적 지향은 단일한 주요 유전자에 의해 유전되거나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성적 이형성에 관계된 세 가지 신경세포 다발은 서로 독립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양한 성적 정체성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트랜스젠더만 해도 이미 1000명 중에 한 명 이상의 비율로 존재하며, 남녀 동성애자들의 비율은 더 높다. 그렇기에 이러한 다양한 젠더들은 돌연변이나 기형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다양성의 일부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이분법은 이들의 상태를 일종의 질병으로 여겨 전형에 끼워맞추고자 하는 사회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것 역시 편견으로, 성행위를 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의 수도 상당하다.
3부에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젠더를 보는 관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 사회에나 성소수자들은 존재했고 때로 이들은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두 영혼' 사람들, 종교의식을 맡았던 인도의 히즈라, 고대 로마의 거세한 남성들, 인도네시아의 레즈비언 공동체, 멕시코시티의 베스티다, 고대의 남성간 성행위, 그리고 남성의 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던 잔 다르크 등의 예를 통해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잔 다르크가 트랜스젠더 남성이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은 좀 비약이 지나친 듯 하다. 잔 다르크는 스스로를 남성으로 생각해서 남성의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격렬한 전투에 편리하도록 기사의 복장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한 가톨릭의 성녀 테클라와 에우제니아가 남장을 하고 살았던 것 역시, 당시에는 여성이 혼자 은수생활을 하기에 위험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는 복장도착(transvestite)과는 무관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물학자로써 진화 과정에서 성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나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성 다양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제는 다수 혹은 표준과 다르다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며(사실 동성간 성폭력의 경우에도, 가해자가 이성애자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친구, 이웃, 동료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의 다양한 젠더들에 대해 나오는 부분은 학술적인 편이라 읽기가 녹록치 않았지만(나는 과학에 약하다), 인간의 젠더와 문화사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면 훨씬 읽기가 수월해진다. 또한 더 자유롭고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용기있는 외침에 기꺼이 찬사를 보낸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1/0607/pimg_746119193671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