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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 해야지 하룻밤 죽음 공부 - 마지막을 마주하고 비로소 온전해지는 삶의 성찰
이원희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9월
평점 :
서평] 싫어도 해야지 하룻밤 죽음 공부/마지막을 마주하고 비로소 온전해지는 삶의 성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어느순간 나름 어른의 반열에 오르는 나이가 되자 이제는 내 삶에 흔적을 남기기 보다는 흔적을 지우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한예로 내가 읽은 책에 읽은 날짜와 이름을 기록하고, 이게 내거다 라며 빌려간 사람은 책을 반드시 돌려줘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약간의 내 나름의 내 욕심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제는 내걸 가져가서 좋으면 그거면 되었다 하는 내려놓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책에 기록하던 내거라는 표식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건너가 좋은 기분을 남겨주면 그것이 더 좋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거부하고 싶은 단어에 장례식에라도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르고,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니 이제는 나는 내 죽음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싫어도 해야지 하룻만 죽음공부]는 웰다잉에 대해 연구하는 이원희 작가가 죽음을 두려움, 혹은 회피하는 심리적인 부분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의료적인 측면의 임종과 호스피스에 대한 부분, 연명치료에 대한 부분, 철학과 종교적인 부분, 외국과 우리의 장례 사례등을 안내하고 이를 통해 죽음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것에서 마지막을 마주하고 비로소 온전해지는 삶의 성찰에 대해 안내한다.
도서에서 와닿았던 부분은 호주의 임종사례. 평소 정신이 맑을 때 충분히 사랑한다는 인사를 나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종을 함께 하지 않으면 불효라고 생각하는 부분과 차이가 있다. 물론 임종을 볼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계실 때 손 한번 더 잡아드리는 것.
현대는 의학적으로 마지막 남은 시간을 환자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내 남은 시간을 알게 되면 좀더 남아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싫어도 해야지 하룻만 죽음공부]에서는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릴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몽테뉴의 말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하는 것보다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내 죽음앞에서 나는 잘 살아냈다고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에서 안내하는 호스피스병동이나 연명치료, 존엄사까지 마지막 순간 죽음에 대한 존엄을 위한 분야도 안내하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죽음을 앞두고 정리해야 될 것에 대한 것들, 죽음이후 하고 싶은 장례까지 꽤 진지하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잘 잘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어가게 되는 시간이다.
<도서내용 중>
p90. 엘리아스를 포함하여 수많은 죽음 전문가는 이러한 죽는자의 고독의 해결책으로 결국 죽음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금기시 하지 말고 식탁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죽느냐는 곧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p96. 죽음 앞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사람은 남은 자식들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다.
p113. 호스피스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가 잘 몰랐던 이들의 얼굴이 비로소 보인다. 이들은 처방전을 쓰거나 주사를 놓지 않는다. 하지만 떠나가는 이의 손을 잡고 귀를 기울이며 삶의 마지막 여정을 외롭지 않게 동행한다.

p205. 다행스러운 것은 갑작스러운 사고사가 아닌 이상 우리에게는 죽어감이라는 과정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명사형의 죽음이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면, 동사형의 죽어 감은 우리가 통제하고 다듬을 수 있는 능동적인 시간이다.

p288. 좋은 죽음은 임종 직전이 아니라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연장선에서 완성된다,. 오늘 미루어 온 말 한마디를 건네고, 내 삶을 나의 뜻으로 채워가는 것, 그것이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내 삶의 주인공으로 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