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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평점 :
서평] 우주를 듣는 소년
우주를 듣는 소년이라는 제목과 마법같은 대화라는 소개에 나는 SF 혹은 판타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이소설은 두께만큼이나 무거운 주제로 나를 이끈다. [우주를 듣는 소년]은 아버지를 잃고 나서 주변의 온갖 사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소년과 말하는 책이 나누는 이야기이다.
686페이지에 달하고 작가의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다해 695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이다. 책이 너무 두꺼워 읽는데 조금 버거운 느낌을 받기도 했다. 책을 2권으로 나누었으면 읽는데 훨씬 편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 루스 오제키는 소설가이자 영화 제작자, 문예 창작과 교수로 [우주를 듣는 소년]으로 2022년 여성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선불교 승려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에 등장시켰다. 더불어 철학적인 의미들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다.
어떤 큰 상처가 주는 아픔을 극복하는데 있어 수월하게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책의 초반부에는 아빠의 죽음이후 다가온 소리들이 베니가 겪은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것일거란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갔다.
시든상추가 한숨을 짓는다던가 유리창에 새가 부딪히자 유리창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을 전하고, 가위가 빈정거리고, 진공청소기는 청소하고 싶지 않다. 운동화는 달리고 싶고, 방망이는 치기를 원하는 등등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베니의 정신적인 면에서 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거라는 결론.
베니의 주변 인물들 역시 베니의 세상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저 베니의 세상은 오류투성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러나 베니에게 들리는 우주의 소리는 실제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도 아님을 말하는 책이 베니를 따라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한다. 이 것은 [우주를 듣는 소년]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베니의 세상은 진짜라고.
[우주를 듣는 소년] 베니가 마주한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또다른 세상이다. 베니에게 다가온 책이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다른 생각의 시점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우리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살피게 한다. 더불어 내가 내리는 섣부른 결론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될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베니와 같은 소년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도 해본다.
베니와 대화를 나누는 책이 전하는 “또다른 세상을 줄 수 있지만 깨어나는 것도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주는 의미는 크다.
베니가 듣는 온갖 사물들이 내는 소리들, 그 소리들이 베니를 위태롭게 하거나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년을 위로하는 소리였으면 좋겠다. [우주를 듣는 소년] 베니에게 들리는 목소리들, 책과의 대화,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베니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특별하고, 작가가 풀어내는 섬세함들이 한번더 감탄하게 된다.
<줄거리 일부>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인 베니의 아빠 켄지, 술인지 마약인지에 취해 거리에 쓰러져 까마귀로 덥혀 있는 것을 쓰레기로 오인한 트럭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켄지의 화장장에서 베니는 자신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후 베니에게는 어떤 목소리들이 들린다. 베니는 그것이 주변의 사물들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이고, 그것들의 기분을 느낄수 있다고 말한다. 이후 학교에서 베니가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지속되는 이상 행동으로 병원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가위가 선생님을 찌르라고 했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어 자신의 다리를 찌르기도 하고, 시계가 분노를 표현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베니의 이상 행동은 점점 과해지게 되자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치료를 하고 퇴원을 하지만 사물들은 여전히 베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날 도서관으로오라는 쪽지를 발견한 베니. 도서관에서 책을 만나게 되는 베니는 책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도서내용 중>
p64. 다른 목소리들은 꿈 속에서도 나타났어. 그렇게 시작된 거야. 마치 한 목소리가 문을 열자, 나머지가 따라 들어온 것 같았어. 꿈은 문과 같아.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거지. 그리고 일단 그 문이 열리면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p191. 보도를 걸어 내려가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그는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기분, 책들이 그의 주변에서 펼쳐내는 조용한 이야기의 안락한 누에고치 속에서 안전하게 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p286. 그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한 문장에 ‘말했다’와 ‘말하고 있다’가 너무 많아서 참기 힘들었다. 각각이 뒤에 오는 것에 의해 삼켜지는 방식이 마치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고 작은 물고기가 더 작은 물고기를 먹는 것 같이 무한히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서웠다.
p360. 나는 목소리가 들릴 때면 대체로 목소리를 차단하거나 대처카드를 이용해 쫓아버리려 했어,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내가 목소리를 듣는 것은 재능이라고ㅡ, 그것들을 차단하거나 쫓아버리려 하면 안된다고 말했어.- 그래서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몰라. 너는 알거야. 너는 책이니까. 아는게 마땅하지.
p582.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한 망상의 풍선 속에 갇혀 있고, 거기서 탈출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인생과제야.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우린 과거를 현재로 만들 수 있지, 너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네가 기억하도록 도울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너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시간을 경험하는 순서를 바꾸고 너의 세계를 넓혀 줄 수 있지. 하지만 깨어나는 건 오롯이 너에게 달려있어, 준비 됐니?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