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캣 식당
범유진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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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무엇을 택할까. 나는 호두파이를 먹고 싶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자주 해주었다. 달콤한 충전물을 만들 때 집안에 퍼지는 향기, 오븐에 들어가 기다리면 부풀어 오르는 호두파이가 기억난다. 갓 나온 호두파이는 정말 맛있다. 그동안 내 입에 들어간 호두파이만 해도 수천 판이 되지 않을까.

 


이제 내 음식과 이야기를 알았으니 나의 인생을 훔칠 수 있을 것이다. 범유진 작가의 카피캣 식당에 따르면 말이다. 소설 속에는 남의 인생을 훔치고 싶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자신과 달리 잘생기고 일 잘하는 직장 동료부터 히트작이 많은 드라마 작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욕망을 드러낸다.

 

카피캣 식당이 재밌는 이유는 무작정 인생을 훔치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식당의 주인 로키는 상황에 따라 다른 결말을 제공한다. 이 이야기들에는 인생을 훔치는 데 성공한 이야기도, 실패한 이야기도, 도둑맞는 이야기도 고루 등장한다. 함부로 뒷이야기를 상상하기 어려운 점이 참 좋았다.

 


누구나 실패했다고 느낄 때가 있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잘 꼬집어 멋진 이야기를 만들었다. 남의 인생으로 살아가면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우리가 모르는 그 사람의 고충이 있지는 않을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재미있게 읽었다.

 

예전에 외모 대여점이란 소설을 읽을 때는 서강준 배우의 얼굴을 갖고 싶다고 적었는데, 이번에도 서강준 배우의 인생을 훔치면 행복할까. 무작정 인터뷰를 찾아보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찌개라고 한다. 이제 카피캣 식당만 눈에 나타나면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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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드링크 서점
서동원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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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년도 아직 세 권의 책밖에 읽지 않았는데 올해의 책 후보가 등장했다. 서동원 작가의 장편소설 달 드링크 서점이다. 술집인지 서점인지 모를 이곳에서는 이야기를 주문하면 술이 나온다. 술을 마시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힐링 소설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사람 좋은 푸근한 주인공이 세심함과 친절함으로 고민을 해결해주는 유형이다. 그리고 조금은 까칠하고 무뚝뚝한 주인공이 무심하게 챙겨주는 유형도 있다. 달 드링크 서점은 두 번째 특징을 가진 소설이다. 사장 은 친절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손님을 만족시키고 마는 매력을 지녔다.


처음에는 표지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럭저럭의 힐링이 들어있는 소설이 아닐까 예상했다. 그러나 첫 번째 손님의 이야기를 읽고 깨달았다. 이 소설은 만만한 힐링 소설이 아니라, 내가 찾고 찾던 소설이라는 것을!


많이 보는 소년이라는 이야기를 주문한 손님은 층마다 알록달록 색이 나누어져 있는 칵테일을 받는다. 그는 한 모금을 마시고 쓴맛에 너무 놀란다. 쓰디쓴 이야기 다음은 다행히 달콤한 이야기다. 과연 그 끝은 어떤 맛이었을까. 그리고 술을 다 마신 후 손님은 어떤 선택을 할까. 너무 말하고 싶지만 스스로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1월 초부터 이런 멋진 작품을 만나 좋았다. 좋은 책 한 권을 만나면 그 기운이 오래 가는 것 같다. 한동안 이 소설 덕분에 행복할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달 드링크 서점에 무척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어떤 맛일까. 중간에 쓴 맛이 있더라도 부디 끝에 달콤한 맛이 들어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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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애들 모두가 망했으면 좋겠어 - 제12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0
이도해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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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이도해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 반 애들 모두가 망했으면 좋겠어였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청소년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와 제목이 귀여운 느낌이라 가벼운 내용일 거라 짐작했고,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주인공은 화가 많은 학생이다. 복수 모임에 들어오게 된 것도 분이 안 풀려 문제집에 낙서하다 서점 할머니에게 걸려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로 사는 데 익숙했던 는 오로지 복수만을 위한 모임에 신선함을 느끼고 자신의 복수 역시 다짐한다. 나를 제외한 우리 반 모두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그 발칙한 목표는 점차 구체성을 띠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결국 성공한다.

 

청소년 소설의 탈을 쓰고 있으면서 도저히 아이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말을 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 이 소설의 좋은 점은 정말 고등학생이 할 법한 생각과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허무맹랑함이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공부밖에 하지 않은 탓에 그 외의 면에서는 허술함을 보이는 것이 타당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상처를 점차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뻔하지 않고 이야기가 커브를 확 꺾기도 해서 신선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괜한 염려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 또 한 번 깨달아간다.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두 명 된다는 이야기는 잠깐 접어두자. 슬픔이 반이 된다는 것이 더 아름답고 이상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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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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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최석규 작가의 장편소설 《마그리트의 껍질》이 되었다. 주인공 '규호'는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2년 간의 기억을 잃는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마그리트의 껍질》은 스릴러 소설로써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책이 끝까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규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 보였다. 회사 직원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수림, 도서 대여점 직원부터 정신과 의사까지 무언가 수상한 면모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규호의 편집증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어떤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기억 조작이나 세뇌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악을 강제로 선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방법은 과연 옳은 것일까? 모두가 선이 된다면 그 중 약한 선이 악이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소설이 그리는 미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의 장점은 강렬한 결말에도 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만 대략적으로 기억나고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많은 시간이 흘러도 또렷하게 기억날 서 같다. 결말이 이 소설의 호감도를 한층 끌어올려주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시작으로 팩토리나인에서 출간되는 소설이 모두 기본적 재미를 보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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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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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의 가족>이라는 웹툰을 일부 본 적 있다. 웹툰에서 다루고 있는 도박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카지노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주식’이었다. 주식에도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단요의 장편소설 《인버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스물셋의 나이지만 청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선물 옵션으로 큰돈을 벌었다가 다시 큰돈을 잃은 그녀에게는 무기력만 남아있다. 주식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정운채’에게 돈을 빌린 그녀는 다시 한번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남아있었다면, 이 작품은 그 찝찝한 부분을 끝의 끝까지 파고든다. 주식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어떤 원리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잘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절박함과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언제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그릴 수 있는 시장 앞에서 주인공은 아파트라는 꿈을 위해 밥도 잠도 포기한 채 매달린다. 그 끝에서 주인공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조마조마하면서도 너무 궁금해 쉼 없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기억에 담아두고 싶은 좋은 문장이 많았음에도 그것들을 필사하거나 표시하는 시간이 아까워 계속해서 다음 장을 넘기고 말았다. 차근하게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거북이의 노래 <빙고>의 가사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쉽게 사는 것이 제일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돈을 버는 데에는 역시 적당한 어려움은 필요해 보인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 ‘나’는 정말 위험한 도박을 그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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