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의 정체 창비아동문고 343
전수경 지음, 김규아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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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수경 작가의 동화집 『허수의 정체』는 처음 책을 펼친 순간부터 마치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친구들을 바라보는 듯한 잔잔한 시선으로 우리를 이끈다.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따뜻한 동화집이었다.


제목이기도 한 「허수의 정체」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아이’ 허수를 중심으로,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단정짓는지 보여준다. 미스터리한 느낌이 나기도 하는 표제작이었는데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쿡쿡 찌르는 이야기였다.


또한 「무회전 킥」, 「서툰 등장」 등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의 순간들이, 어린이의 눈과 마음을 통해 얼마나 복잡하고 풍성한 감정으로 채워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결핍이 이야기 속에서 결코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읽는 내내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그땐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되돌아보기를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단순한 교훈이나 정답을 주기보다는,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성장의 거울이 되어줄 것 같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울림을 지닌 동화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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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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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서는 제법 집중이 필요한 취미다. 마음에 여유가 자리 잡아야 할 수 있다. 최근 각종 스트레스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혀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나를 단숨에 책 속으로 끌어들인 책을 읽었다.


아오사키 유코의 장편소설 《지뢰 글리코》는 여고생 '이모리야 마토'가 여러 게임을 통해 상대방을 박살 내는 이야기다. 두뇌 게임이 펼쳐치는 것인데 <오징어 게임>보다는 <라이어 게임>과 비슷한 결을 가졌다. 게임에 진다고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정치보다는 머리를 써야 하는 게임이라는 것도 라이어 게임에 가깝다.


머리 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사실 <데블스 플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게임이 많다.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재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뢰 글리코》는 정말 단순한 게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해가 쉬웠다. 규칙은 무척이나 간단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으니 그에 따른 간극이 커져 재미도 같이 따라왔다. 몇몇 게임은 교실에서 해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토는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들면서 자신은 무서울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 방식이 놀랍도록 설득력 있고 기상천외한 방식이라 좋았다. 한번 책을 펼치면 끝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게임에서 그전까지와 달리 막상막하의 상대와 하는 대결이라 긴장감과 짜릿함이 배가 되었다.


에피소드형 소설이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마지막의 여운까지 있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도 이 작품만은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읽은 아오사키 유고 작가였는데 -관의 살인이 그렇게 끌리지 않아 이제서야 읽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진다. 눈여겨볼 작가가 한 명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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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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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모사키 단로의 장편소설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을 읽었다. 한 살인 사건에서 현장이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이라는 이유로 용의자가 무죄판결을 받게 된 이후 세상에는 밀실 살인이 유행처럼 넘쳐난다. 소설은 주인공 '구즈시로'가 친구 '미쓰무라'와 함께 밀실 트릭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밀실 살인은 무죄 판결이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량의 피가 있는 경우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처럼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밀실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경우 무죄가 되는 것이다.


밀실이라고 다 같은 밀실이 아니라 완전 밀실, 불완전 밀실, 광의의 밀실처럼 여러 종류가 있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소설은 밀실에 대한 강의라도 하듯 하나의 저택을 가지고도 다양한 밀실 살인을 선보인다. 그리고 탐정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미쓰무라가 아주 간단하게 트릭을 해결해 버린다.

이 소설이 공정하다고 느낀 것은 미쓰무라가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 여러 개의 힌트를 나열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비밀로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보이는 추리소설도 있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 소설이 더 인상적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트릭을 맞추기는커녕 이해하는 것도 힘들지만 말이다.


사실 처음에 소설을 읽기 전에는 단편 소설일 줄 알았는데 하나의 배경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장편소설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전개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사람들, 기상천외한 트릭까지 소설에 즐길 거리가 참 많았다. 후속작도 한국에 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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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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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소설 《13 계단》을 읽었다. 작가의 데뷔작이 개정판으로 나온 것으로 2001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도서관에서 한창 추리소설을 빌려 읽을 때 13 계단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책이 너무 낡아서 건너뛰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이렇게 리커버판으로 만나게 되었다.


소설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 온 '준이치'와 교도관 '난고'가 사형수 '료'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교도소의 생활은 매체 말고는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상당할 것인데 이 소설도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담담한 어투로 현실적인 묘사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두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료는 사건 당시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 유일한 기억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인데, 준이치와 난고는 이 기억을 토대로 어딘가에 있을 진범을 찾아 나선다.


소설을 읽으면서 진범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이 벌이는 노력의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사형 제도에 대해 엇갈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특히나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이 받는 심적 부담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정말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을 어떻게 집행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본과 비슷하지 않을까.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우고 밧줄을 씌운 다음 버튼을 눌러 교수형에 처하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끔찍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형수들은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형의 집행관들은 어떤 잘못을 했길래 한 사람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앗아가야 할까. 자신이 누른 버튼으로 인해, 자신이 씌운 밧줄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엄청나게 괴롭힐 것이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성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 리커버판과 더불어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도 같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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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출근합니다 소원라이트나우 7
김선희 외 지음 / 소원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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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오후에는 출근합니다》를 읽었다.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하였으며, 인형탈부터 전단지, 편의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으며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날이 생각났다. 학생 때는 아니고 수능이 끝나고 졸업식 전까지 학원에서 보조 일을 했었다.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복사와 채점, 타이핑 등이 전부였다. 시급은 오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저시급이 오천 원이 채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 나름 괜찮은 아르바이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다녔던 텝스 학원 강사님의 보조 일을 했기 때문에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고 학원을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잘 챙겨주시던 그런 선생님이었다. 분명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라 답답한 일이 많았을 텐데 화내는 일 없이 알려주시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사회 초년생으로써 순간순간 움찔하던 기억도 같이 떠오른다. 종종 실수를 해서 눈치를 보던 그런 기억 같은.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청소년부터 일종의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면 남의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된다. 각자 사정과 이유는 다르지만 그렇게 사회의 쓴맛을 맛본다. 그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앞의 두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인형 탈을 쓰면]은 제목처럼 인형 탈을 쓰고 홍보하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다. 내성적인 성격도 인형 탈을 쓰면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 궁금했다. I 성향이 100프로인 나도 인형 탈을 쓰면 광란의 춤을 출 수 있을까. 눈에 뵈는 게 없을 것 같긴 하다. 탈을 통해 본 세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좋았다.


[마법소녀 계약주의보]는 통통 튀는 상상력도 좋았지만 꼬여있는 플롯이 마음에 들었다. 불공정한 계약을 무찌르고 응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불공정한 계약을 한다는 아이러니가 모순적으로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빌런조차 공정한 선 위에 놓여있지 못하다는 것까지 완벽했다.


큰 기대 없이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어느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청소년 때 일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멋지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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