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설재인 작가의 장편소설 《뱅상 식탁》을 읽었다. 뱅상 식탁을 운영하는 '빈승'이 손님들과 벌이는 이야기다. 서로 벽이 있어 대화가 들리지 않는 네 테이블에 모인 여덟 명이 죽음 앞에서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빈승은 손님들의 대화를 몰래 들으며 이들이 어떤 추악함을 숨기고 있는지 은밀하게 캐낸다.


'수창'과 '애진'은 나이가 꽤 있는 대학원 동기로 소설가를 꿈꾼다. '정란'과 '연주'는 어딘가 일그러진 모녀 사이로 구속과 반항의 길목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상아'와 '유진'은 어릴 적 단짝으로 서로의 입장과 위치가 바뀐 채 만났다. '성미'와 '민경'은 직장 선후배로 가까운 듯 불편한 사이다. 대화가 무르익던 중 총성이 울리고 빈승이 테이블 당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였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편한 자리에서는 그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이 존재하는 한 모든 가식을 집어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는 어떨까. 그때도 최소한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생존을 향한 추한 발버둥을 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숙하기는커녕 퇴보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더 폐쇄적으로 변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도 작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각종 관계가 어떻게 분열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사람도 상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악인이 될 수 있다. 인간에게 가면이 그동안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체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 작품을 고르게 된 계기는 작가의 전작 《세 모양의 마음》을 너무 따뜻하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청소년 문학을 찾게 되어 기쁜 마음이었는데 작가가 이렇게 스릴러나 블랙코미디도 잘 쓰는지는 미처 몰랐다. 작가의 다른 얼굴을 본 기분이었다. 또 어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라인드 웨딩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이슨 르쿨락의 장편소설 《블라인드 웨딩》을 읽었다. 작가의 전작 《히든 픽쳐스》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프랭크'가 3년 만에 딸 '매기'에게 연락을 받고,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 프랭크는 부녀 관계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무엇이든 딸을 위해 행동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딸의 결혼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비밀을 오랫동안 숨기며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비밀은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고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며 소설의 긴장감을 높인다. 프랭크는 재벌가인 딸의 결혼 상대 '에이든'을 의심하며 그가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히 예측 가능한 비밀을 감추고 있지 않았다.


소설 중반까지도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서 읽는 내내 프랭크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위의 집안과 자신의 차이로 인해 자격지심을 느끼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다. 뻔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어떤 반전을 숨겨두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블라인드 웨딩》은 확실히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내가 프랭크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과 옳은 일을 하는 선택지가 충돌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묻는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에 최악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작가의 두 작품을 모두 흥미롭게 읽어서 그가 내놓을 다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일 사이에 베틀북 청소년 문학
김영혜 지음, 이윤민 그림 / 베틀북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영혜 작가의 《7일 사이에》를 읽었다. 주인공 '아룡'은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다리로 간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영정 사진이 없어 네 컷 프레임 사진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룡은 그렇게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7일을 보내게 된다.


자살은 무거운 소재지만 청소년 문학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해결은커녕 점점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아이들을 힘들게 했을까.


책을 읽으며 아룡이 목숨을 끊을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많은 아이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보다는 삶을 더 살아내도 희망이 없을 거라는 무기력함으로 인해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가정, 학교, 국가 등 다양한 곳에서 지원이 필요하다.


아룡은 사진관에서 희로애락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내 인생의 희로애락은 어떤 순간들일까 생각했다.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느라 시간을 들여 내 인생을 찬찬히 살펴볼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기쁜 순간도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 다 지나가서 지금이 왔다.


막장 드라마로 논란이 되었던 김순옥 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고 생각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가 됐든 책이 됐든 친구나 부모가 됐든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이들에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로이탈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깊은 밤 길을 잃어도
차라리 날아올라 그럼 네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로이탈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경희 작가의 성장 소설 《경로이탈》을 읽었다. 이렇게 짧고 작은 책은 처음 보는 것 같다. 68쪽의 분량이지만 책의 크기가 워낙 작고 글씨 크기는 작지 않은 편이라 단편 소설 중에서도 짧은 단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정국'과 '가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은 고등학생으로 게이라는 소문에 휩싸인 상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가을이 '다혜'를 쫓아다니기 시작하고 급기야 다혜 앞에서 자해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다혜는 가을의 모든 행동이 정국의 지시라고 말한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줄거리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며 과격한 전개에 놀란 가슴을 쓰려내려야 할 정도였다. 정국과 가을 모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라는 공간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같이 여러 행동 양식을 내면화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자칫 잘못하면 학교가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을 엇나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반 아이들과 함께 영화 <원더>를 보았다. 안면 장애가 있는 주인공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학생들은 어기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악의를 담아 그를 비아냥대고 놀린다. 학교란 참 정글 같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이기에 학교에 오지만 오히려 학교가 괴롭힘을 양성하는 공간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이 참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정국과 가을은 어기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에 설 정도로 상상 이상의 행동을 보여주며 상황을 역전시킨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이 아이들의 담임이라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말 부분에 접어들면 왜 이 소설의 제목을 경로이탈로 지었는지 알 수 있다. 결말을 읽으며 아이브의 노래 <I AM>이 생각났다. 깊은 밤 길을 잃게 된다면 내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떻게든 다른 길이 나오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