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야 한다는 훈령은 역설적으로 실패했다는 실망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또 다른 불행을 생산하고, ‘나는 행복한가?"라며 끊임없이 자기 감시 행위를 하도록 만든다. - P192

 심리학자들은 행복이 직업적 성공이나 높은 소득, 좋은 인간관계,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결과물이 아니라 원인이 된다고 주장³⁰함으로써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이중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 P192

30 Cabanas, Rekindling Individualism, Consuming Emotions: Constructing ‘Psytizens‘in the Age of Happiness", Culture & Psychology, pp. 467-480.  - P367

그러나 행복을 절대시하는 사회에서는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은 절대다수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정과 유대의 정의가 함께함으로써 행복한 것‘으로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 P193

이 행복관의 문제는 불행의 타자화에 그치지 않는다. - P193

우리의 내적 삶은 쾌와 불쾌, 세로토닌과 세로토닌의 부재, 무언가의 빈도와 강도로 환원할 만큼 단순하지 않으며,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인, 나아가 공동체나 사회와 맺는 관계의 양상에 좌우되는 대단히 복잡한 사회적 경험이다.  - P194

철학자 마크 피셔는 현대 젊은이들 다수가 우울증적 쾌락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 P194

 흔히 ‘돈 많은 백수‘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들 한다. - P195

그렇다면 감정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재정의하면 어떨까? 다시 말해 타인을 단순히 행복의 한 구성 요소로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과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면 어떨까?  - P195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는 별개로, 우리는 근본적 차원에서 행복을 절대적 가치로 떠받드는 문화 자체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행복을 충만한 삶의 필연적 부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는 문화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비롯해 다양한 가치를 도구화하는 문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196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빈곤이 부정의가 아닌 것은아니다. - P196

존엄할 권리 대신 행복해질 권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는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능력, 타인과 사회를 염려하는 인간의 능력을 심각하게 손상한다. - P196

투옥당하고 고문당하는 것을 자아실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타인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P197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행복은 좋을수록 달아나는 역설적 성질이 있는 것만 같다. 행복 비결을 판매해야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다.  - P198

개인을 철저한 소비자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시장 논리로 포섭하는 신자유주의의 주된 특징 중 하나다. - P199

소비주의적 생활 방식을 장려하고 강요하는 소비자 사회에서 소비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 P199

모든 것을 경제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 지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 경제 정책의 주된 목적이 된다.³⁸ - P199

38 Jeremy Gilbert, "Against the Commodification of Everything: Anti-ConsumeristCultural Studies in the Age of Ecological Crisis, Cultural Studies, 22(5), 2008, pp.
551-566. - P369

고작 몇 달간 유행하는 음식들, 1년도 안 되어 유행에 뒤처지는옷과 화장품, 2년이면 수명이 다하도록 설계한 전자 제품, 고작 몇 년 만에 ‘퇴물‘이 되는 아이돌과 캐릭터 상품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반강제로, 돈을 빌려서라도 소비해야 한다.  - P200

모든 어린이가 갈 수 있는 장소인 놀이터는 줄어들고, 키즈 카페나 드러그 스토어처럼 상업화된 장소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은 소비주의 문화의 영토 확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중략). 저출생 시대라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그렇다기에는 키즈카페시장은 성장세에 있다.⁴¹ - P200

41이해진, "키즈카페 2시간 3만원・・・ 돈 없으면 못 놀아요", <머니투데이>, 2018.11. 13,
https://news.nate.com/view/20181113n03526. - P369

소비는 성인들만의 의무가 아니다. 요즈음에는 열 살 남짓 되는어린이들이 올리브영에 삼삼오오 모여 화장품을 쇼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P200

사회학자질 리포베츠키가 지적하듯이 오늘날의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욕망은 지위재를 차지하려는 욕망보다도 정서적 차원의 욕망,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을얻고자 하는 욕망이다.⁴⁶ - P201

46 질리포베츠키, 《행복의 역설》, 정미애 옮김, 알마, 2009, p. 103 (Gilles Lipovetsky, Lebonheur paradoxal: Essai sur la société d‘hyperconsommation, Gallimard, 2006). - P370

셀프케어라는 단어의 현대적 용례에 내·외면을 가꾼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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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댈러스에 살았던 고든 콘웨이 Gordon Conway는 젊고, 부유했고, 인기인이었으며, 시크했다.²¹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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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여기서 기술한 고든 콘웨이와 그의 어머니 토미 콘웨이에 대한 모든 정보의 출처는 다음 책이다. Raye Virginia Allen, 《Gordon Conway: Fashioning a NewWoman》(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7). 이 책은 콘웨이 모녀를 다룬훌륭한 전기로서, 이 장에서 묘사한 고든 콘웨이의 일러스트 여러 점이 실려있다. - P375

그런 콘웨이 모녀는 생김새만큼은 서로 딴판이었다. 토미는 고전적인 벨 에포크 시대 미인으로서, 시대에 완벽히 부합하는 예쁘장하고 곡선미 있는 몸과 부드러운 얼굴을 지녔다. - P135

어머니와 정반대로 각진 몸매를 지닌 고든 콘웨이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턱이 두드러졌다.  - P135

어린 시절 고든은 가족 스크랩북에서 자기 얼굴을 가위로 잘라내곤 했다. 어머니와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면서 꽤 고뇌했던 것 같다. - P136

고든 콘웨이의 삶을 다룬 유일한 전기에는 파티·패션·연애에 관련된 여러 일화가 실려 있다. - P136

(전략).
그러나 고든 콘웨이는 분별없이 마냥 놀기만 하는 여성은아니었다. 노력파에 뚝심 있는 야망가였던 그에겐 진지한 직업적 목표가 있었다. - P137

뉴욕에 도착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고든은 엄청난 사람을 멘토로 모시게 된다. 그의 멘토는 나스트 최초의 아트 디렉터, 일러스트레이션을 편집· 광고 분야의 필수 요소이자 수익성 요소로 편입하는 시대적 변화를 주도한 예술가 헤이워스캠벨 Heyworth Campbell 이었다. - P137

콘웨이가 만들어낸 스타일은 과감하고 참신했으며, 패션과 여성성에 관해 과거 몇 세기 동안 굳어졌던 규칙과 선호를 전복시켰다. - P138

하지만 일러스트 속 여성들이 콘웨이를 닮은 건 신체만이아니었다. 그들은 옷을 입고 행동하는 방식도 콘웨이와 같았다. - P138

고든 콘웨이의 여자들은 그냥 사교계 여자가 아니라, ‘플래퍼Flapper‘였다.²³ - P139

23 이 장에 담긴 플래퍼에 대한 정보는 따로 표시하지 않은 이상 다음을 출처로 한다. Linda Simon, 《Lost Girls: The Invention of the Flapper》 (London: ReaktionBooks, 2017); Joshua Zeitz, 《Flapper: A Madcap Story of Sex, Style, Celebrity, and the Women Who Made America Modern》 (New York: Three Rivers Press,
2006). - P375

플래퍼라는 개념은 빠르게 퍼져나가 성인 여성이 어떤 모습을 지니는지, 나아가 성인 여성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규정지었다.  - P139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다. 고작몇 년만에 곡선미 있는 여성들은 패션 잡지 페이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P139

어느 학자는 말했다. "플래퍼가 스커트를 무릎 위로 올리고 스타킹을 그 아래로 말아 내렸을 때, 로마 제국의 함락 이래 최초로 점잖은 여성의 하체가 맨살로 노출되었다. 두 사건의 관계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²⁵ 곡선이 있던 자리를 각이 차지했다. - P140

25 Kenneth A. Yellis, "Prosperity‘s Child: Some Thoughts on the Flapper," (American Quarterly 21), no. 1 (1969): 46. - P375

‘플래퍼‘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적어도 두 개의 가능성이있다. - P140

누군가는 플래퍼가 1890년대에 영국에서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실제로도 주로 미성년자였던) 아주 어린 성노동자를 일컫는 속어로 처음 쓰였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가 아직 신체가 성숙하지 않은, 십대 초반의 서툰 소녀를 일컫는 단어로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 P140

 과거 수십 년 동안 중산층·부유층 여성들은 몸을 지나치게 많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인기를 끈 《훌륭한 여자의 힘과 아름다움 The Power and Beautyof Superb Womanhood》 같은 책에서는 여성이 "남자와 거의 동등한 정도로 운동과 스포츠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²⁷ - P142

27 Bernarr Macfadden, (The Power and Beauty of Superb Womanhood) (New York:The Physical Culture Publications Co., 1901). - P375

이런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의류 혁명이 일어났다. 시작은 폴 푸아레였다.²⁸ (중략).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가 빅토리아 시대의 속옷을 내버린 것, 특히 코르셋에경멸을 공표했다는 점이다. (후략).²⁹ - P142

28 푸아레와 샤넬에 대한 정보는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Linda Simon, 《LostGirls); Joshua Zeitz, Flappers; Harold Koda and Andrew Bolton, "Paul Poiret(1879-1944)," (The Costume Institute), September 2008, https://www.
metmuseum.org/toah/hd/poir/hd_poir.htm; Hollander, (Seeing ThroughClothes), 156.
29 Port. Zeitz, (Flapper), 150. - P375

하지만 곧 패셔너블한 여성들은 통치자를 갈아치웠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1910년에 여성 모자 가게를 열었고, 이윽고 노르망디에 부티크를 열어서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고유한 스타일의 의류를 팔기 시작했다. - P143

샤넬의 디자인은 제1차 세계대전 내내 인기를 이어나갔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 대신 이런저런 작업을 맡은 여성들이 입기에 실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P144

물론 마을 농장을 떠나 도시의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나 전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샤넬 진품을 입었던건 아니다. 그들은 ‘짝퉁‘을 입었다. - P144

플래퍼 패션은 분명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대중에게 널리 수용된 것은 아니다.  - P144

당대 문화에서는 의상이든, 그 아래의 몸이든,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신체적 표지에 저항할 때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고든 콘웨이는 이런 여성들을 그렸다. - P145

(전략).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패션 지형을 살펴보면, 여전히 플래퍼 스타일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넘도록, 패셔너블한 여성의 몸매는 날씬한 몸매였다.³² - P146

32 Hollander, «Seeing Through Clothes》, 155-56. - P375

패션 역사학자 앤 홀랜더 Anne Hollander는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여성의 몸이 시각적 공간을 차지할 방법은 오로지 지방과 의복을 겹겹이 쌓는 데에 있었다고 적는다. "그렇 - P147

설령 엉덩이 없고 패셔너블한 여성에 관한 전형적인 이야기가 진짜로 해방을 암시했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은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³⁴ - P147

34 해당 문단에 나온 정보는 다음 책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Valerie Steele, 《TheCorset: A Cultural Histor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7); ValerieSteele, (Fashion and Eroticism: Ideals of Feminine Beauty from the VictorianEra Through the Jazz Ag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 P376

뉴욕 패션기술대학교Fashion Institute ofTechnology, FIT 박물관의 관장인 밸러리 스틸Valeric Steele은 1920년대에 복잡하고 역설적인 혁명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중략). 스틸이 보기에, 1920년대의 새로운 스타일은 사실 하나도 자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마조히즘적인 자기 통제를, 심지어 자기혐오를 요구했다. - P147

 1912년의 한 연구에서 여성 99명에게 자기 몸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³⁵ 그중 자신의 체중에 만족하는 이는하나도 없었으며 대부분이 자기가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건강이 아니라 외모였다. - P148

35 "Dieting, Swaying, Hopping to Make Over the Hip Line," (Washington Post), December 4, 1910. - P376

1917년에 발명된 화장실용 체중계는 곧 체중을 감시하는 대중적인 방법으로 등극했다.³⁶ - P148

56 여성이 스스로 몸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 대중적인 신체 감시 및 다이어트에 관련한 정보는 다음 책에서 발췌했다. Simon, 《Lost Girls》, 205-6. - P376

푸아레가 특히 많이 참고한 건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
의 의상(오토만 제국과 아랍 디자인을 양식화한 것)과 상상 속 일본의 개념이었다.³⁷ 19세기 중반에 서양 정부들이 일본과 무역 및 외교 관계를 맺은 뒤 모든 일본적인 것에 열광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여기에 ‘자포니슴japonism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P149

37 Nancy Hass, "How Japonisme Forever Changed the Course of Western Design,"
(New York Times), February 11, 2021, https://www.nytimes.com/2021/02/11/t-magazine/japonisme-paris-western-design.html. - P376

푸아레와 (어느 정도까지는 샤넬의 작업 덕분에 자포니즘은 20세기 초에도 커져나갔다.³⁸ - P149

38 Adam Geczy, (Fashion and Orientalism: Dress, Textiles and Culture from the17th to the 21st Century) (London: Bloomsbury Academic, 2013), 134. - P376

그런데 1920년대 패션이 아시아 모티프를 채택한 데에는또 다른 행간의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초 대중의 인식 속에서 동아시아 여성들이 고도로 섹슈얼한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 P150

(전략).
플래퍼는 이렇듯 다면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코코 샤넬의환상 속 엉덩이 없는 여성들이었다. 덕분에 실제로 1920년대의 많은 여성이 곡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과 수술을 동원했다.  - P157

실루엣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룩한 버슬이든, 직선으로 떨어지는 플래퍼 스타일이든) 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제스처다. - P157

4장

평균의 탄생

노마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탈의실은, 내가 어릴 적 자란 동네에서 중산층 사람들이 "괜찮은"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었던디트로이트 허드슨 백화점의 탈의실이다. - P161

거기에 더해, 옷 자체도 ‘올바름‘을물질적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바지는 우리가 두 손으로 쥘 수 있는 물리적 사물인 한편, 우리 몸에 말그대로 ‘적합하지 않은 부위가 있다고 상기시키는 상징적 도구다.  - P164

노마의 엉덩이¹는 둘레가 29인치다.² - P164

4장. 평균의 탄생

노마

1. 나는 미시간주 내 우생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미시간 대학 박사과정 학생케이트 오코너와 대화하던 중에 노마와 노먼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마와 노먼 동상을 조사하면서 다음 출처를 참고했다. Peter Cryle and Elizabeth Stephens, (Normality: A Critical Genealog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Press, 2018); Julian B. Carter, (The Heart of Whiteness: Normal Sexuality andRace in America), 1880-1940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7);Dahlia S. Cambers, "The Law of Averages 1: Norman and Norma," (CabinetMagazine 15) (2004): Mary Coffey, "The Law of Averages 2: American Adonis."
(Cabinet Magazine 15> (2004),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의 기록학자 조 테이트Joe Tait는 이 장에서 참고한 많은 1차 자료를 발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메리코피Mary Coffey와 그의 에세이 "American Adonis," 《Popular Eugenics: NationalEfficiency and American Mass Culture in the 1930s) (Athens: Ohio UniversityPress, 2006)에 관해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2 Measurements of Normman and Norma, 1943, Dickinson-Belskie Files, HealthSpace Cleveland Collection, Cleveland Museum of Natural History Archives, Cleveland, Ohio. - P377

노마는 엉덩이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부분이 ‘골딜록스goldilocks‘ 지점에, 그러니까 과하지 않은 최적점에 있다. 그는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딱 적합하다. 적어도 그를 설계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노마는 1945년 6월에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전시장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 P165

그런데 정상이라는 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을까?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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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비극도 채프먼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그가 개발한 초고속 레이스카를 기꺼이 몰고자 하는 드라이버들의 열망도 잠재우지 못했다. - P42

1976년 어느 날, 안드레티와 채프먼은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한 호텔 식당에서 각각 따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중략).
채프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리오, 내가 자네에게 줄 딱맞는 차가 있다면 좋을 텐데." - P43

채프먼은 안드레티에게 "내년에는 런던 버스와 같은 외관의 신차를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물론 버스와는 전혀 닮지 않은 이 신차는 이후 포뮬러 1의 방향을 영원히 바꿔놓게 된다. 그것은 이른바 그라운드 이펙트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레이스카의 첫 모델이었다. - P43

채프먼은 1977년형 신차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타이어를 지면에 최대한 밀착할 아이디어를 샘솟듯 떠올리며 다시 활력을 얻었다. (중략). 채프먼은 1975년 말 로터스팀의 연구 부서에 보낸 27페이지분량의 서신에서 자신의 모든 구상을 밝혔다. - P44

로터스는 쐐기 모양의 차체 하부에 슬라이딩 스커트sliding skirts*를 달아 노면과 유연하게 밀폐되도록 설계했다. 

* 말 그대로 차체 하부 가장자리에 달린 움직이는 ‘치맛단‘으로, 그라운드 이펙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차 아래의 공기가 옆으로 빠져나가는것을 막는다 - P44

이 개념은 워낙 극적인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1976년 말어느 대회에서 안드레티가 한번 사용해 봐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채프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 P45

안드레티의 입장에서 그건 너무 아슬아슬한 도박이었다. 그래서 그는 출발하기 직전에 메카닉에게 몰래 연료를 반 갤런(약 2리터) 정도 더 채워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 P45

그라운드 이펙트로 무장한 레이스카가 마땅히 거머쥐었어야할 월드 챔피언 타이틀은 결국 이듬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안드레티는 시즌 초반까지 로터스 78을 몰았지만, 한층 더 개선된 로터스 79가 곧 출시될 예정이었다. - P46

하지만 축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로터스팀의 동료 드라이버였던 로니 피터슨Ronnie Peterson의 차가 출발선을 떠나자마자 화염에 휩싸였고, 결국 그날 밤 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 P46

이제 이야기에 들로리언이 등장할 차례다.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제너럴모터스GM의 임원을 지낸 들로리언은 말솜씨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채프먼에게 찾아가 두 가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하나는 로터스팀 전체를 인수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중략). 다른 하나는 영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유치해 북아일랜드에 들로리언 자동차 공장을 짓자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 P47

이 계획에서 로터스는 1,767만 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차량의 섀시 설계를 돕기로 했다.
그러나 이 돈 중 단 한 푼도 로터스의 자동차 개발에는 흘러가지 않았다. - P47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1982년 가을에 찾아왔다. (후략).
10여 년의 징역형을 앞두고 있던 채프먼은 당시 54세였다.
당시 항간에는 그가 사망으로 위장한 채 돈을 가지고 어디론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 P48

그가 남긴 유산은 단순한 성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그의뒤를 이은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포뮬러 1의 모든 규칙을 한계까지 비트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단련된 그들의 집요함은 이 스포츠를 자동차 기술 창의성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렸다. - P48

레이싱을 아는 이들이라면, F1의 한계를 밀어붙인 이들을 확실한 천재라고 인정할 것이다. (중략). 빨간 레이싱카를 만드는 그들이 보기에 영국 엔지니어들은 결코 찬사를 받는 예술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가라지스타garagistas, 즉 기름때에 찌든 정비공들일 뿐이었다. - P49

3장

프랜싱 호스

(전략).
엔초는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아름답다고 믿은 레이싱카를 생산하는 데 바쳤다. 비록 그가 페라리라는 회사를 설립할 때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 P52

1950년, 포뮬러 1이 출범한 첫 시즌부터 페라리는 자기 팀이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에 빠지는 일만큼은 없도록 하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이후 70여 년이 흐른 지금, 페라리는 이 대회의 모든 시즌에 빠짐없이 참가한 유일한 팀으로 남아 있다.  - P53

페라리는 TV 광고도 하지 않고, 연간 판매 대수도 약 1만대에 불과하다. 페라리가 파는 모든 것은 F1 서킷 위에서 쌓아 올린 역사에 기대어 거래된다.  - P53

페라리는 그런 ‘감성‘ 위에 세워진 제국이었다. - P54

그러나 자신의 역사를 기반으로 브랜드 가치를 이어온 페라리이지만, 정작 포뮬러 1 무대에서는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성과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P54

(전략). 그는 언제나 이탈리아인이 페라리의 운전대를 잡기를 선호했지만, 1958년 그에게 F1 타이틀을 안겨준 것은 요크셔 출신의 마이크 호손Mike Hawthorn이었고, 1964년 또 다른 타이틀을 선사한 것은 모터사이클 챔피언 출신의 존 서티스John Surtees였다. - P55

페라리가 전 세계 왕족들에 힘입어 어느 정도 당당한 기풍을 갖출 무렵, (중략). 그들은 지위를 중시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았으며, 남성성을극도로 존중하는 마초 집단이었다.
바로 미국인들이었다. - P57

 그들은 차를 사는데 들인 돈보다 오히려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대서양 건너편의 페라리 대리점들이 부품값과 정비료로터무니없는 값을 불렀기 때문이다. (중략). 페라리 부품은절대 고장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다시 페라리를 선택했다. - P57

사실 엔초 페라리는 자국민이라고 딱히 더 나은 대우를 해주지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월급을 주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 P58

(전략).
피로 얼룩진 시즌들을 겪으며 페라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집단을 정면으로 상대하게 되었다. 스포츠 언론과 가톨릭교회였다. 엔초가 아무리 이탈리아의 빛나는 상징을 일궈냈다고 한들, 그것이 이탈리아 젊은이들을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가라면 모든 업적은 허사로 돌아갈 터였다. - P60

레이싱은 결국 파괴적인 집착임이 틀림없었다. 동시에 매우 많은 돈이 드는 중독이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로드카를 팔아도 페라리는 늘 자금이 부족했다.  - P61

결국 문제의 핵심은 레이싱이었다. 스쿠데리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중략).
상대방은 "출전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로써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되었다. - P61

페라리가 실제로 포드에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진짜로 관심을 두고 있던 상대, 이탈리아 대기업 피아트Fiat를 염두에 두고 미리 몸값을 올리려는 제스처였다는 것이다.  - P62

계약을 마무리하는 데는 무려 2년이 걸렸다. 결국 페라리는 포드가 제시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피아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P62

이 협약으로, 홀로 빛나던 페라리의 위상은 이탈리아 최대 수출 기업과 완벽한 한 몸이 되었다. - P63

197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가 그려낸 페라리는 현실과 사뭇달랐다. 스크린 밖에서 스쿠데리아의 F1 카는 맛이 간 키안티 와인한 병보다 못한 처지였다.
더 심각한 것은 페라리는 이제 이탈리아 차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후략). - P63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마라넬로라는 거대한 종교 집단의 내부인들은 감히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 P64

니키 라우다Niki Lauda는 1973년 테스트 트랙에서 페라리를 처음 몰아본 후 삐걱거리는 스쿠데리아의 모든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 P65

라우다는 자서전에도 썼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뭐가 잘못됐죠? 이 차는 언더스티어가 심하고, 코너링은 형편없어요. 도저히 운전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요."
라르디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 역시 곤란했다. 노인이 라우다가 차를 칭찬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챘다고 해도 말이다.  - P65

엔지니어가 일주일이라고 답하자, 엔초는 신입 드라이버를 향해 약속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했다. 차를 고칠 테니, "다음 주 이 시간까지 정확히 1초를 단축하지 못한다면 해고"라는 것이었다. - P66

라우다는 엔초가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P66

라우다는 그때부터 한 주 내내 엔지니어들과 함께 차에 매달렸다. 다루기 힘든 그 기계의 모든 디테일에 개입하며 하나하나 통제했다. 그리고 엔초가 요구한 대로 일주일 만에 정확히 1초를 단축했다. - P66

(전략).
반면 라우다는 그다지 감상에 젖지 않았다. 그해 시즌 열린13번의 레이스에서 다섯 번 우승하고 세 번 포디움에 올라선 그는 한 아름 쌓인 트로피를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여기며 오스트리아의 한 정비소에 넘겼다.
그 대가로 라우다가 받은 것은 평생 무료 세차권이었다. - P67

그러나 페라리의 행복한 승리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P68

4명의 드라이버가 즉시 차에서 뛰어내려 불길로 달려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탈리아인 아르투로 메르자리오Arturo Merzario가 안전벨트를 뜯어내고 라우다를 끌어냈다. (중략).
라우다는 이 모든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 - P69

독일의 「빌트Bild」는 "도대체 그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에서 라우다가 최소 6개월 동안은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리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라우다는 단 6주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 P69

라우다는 수술로 재건한 눈꺼풀 사이로 앞을 보며 테스트 트랙을 맹렬히 질주하더니 레이스 복귀를 선언했다. - P70

그가 복귀전에서 보여준 가장 놀라운 대목은, 그가 여전히 월드 챔피언십 우승에 근접해 있었다는 점이다.  - P70

마치 노아의 시대가 되돌아온 듯 계속되는 비를 바라보며 라우다는 후지 스피드웨이 Fuji Speedway 에서의 레이스가 너무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경기가 강행되자 그는 몇 바퀴만 돈다음 아예 피트로 들어와 차를 세워버렸다. - P71

그해 라우다는 거의 앙심 하나로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엔초는 물론이고 팀 동료 카를로스 로이테만Carlos Reutemann도 싫어했다.  - P71

라우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팀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
페라리는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 P72

페라리는 F1에 수많은 유산을 남겼지만, 거기에 ‘질서‘와 ‘체계‘가 포함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드라이버와의 건전한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 P73

 F1의 계획이 엔초의 마음에 차지 않을 것임은 자동차광이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에걸맞지 않은 초라한 엔진이라니, 그의 상식에는 맞지 않았다. - P73

그래서 엔초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엔진 합의가 되지 않으면 F1을 떠나겠다고 한 것이다. 모나코도 몬차도 다 필요 없고 인디카INDYCAR 레이스에나 나가겠다는 협박이었다.  - P74

그러나 1988년이 되자 마라넬로에는 엔초의 시대가 막바지에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략).
엔초는 그해 8월에 세상을 떴다. - P74

에클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단언컨대 포뮬러 1은 페라리이며페라리는 곧 포뮬러 1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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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친구보다 좋은?
소비주의와 친밀성의 상품화


6장

너 자신을
돌보라



심리학 문화 외에도 MZ 세대*를 중심으로 부상한 또 다른 유행이 있었으니 바로 K뷰티‘다. 


* 셀프MZ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Z세대Generation 2를 뜻한다. - P174

2025년 기준 한국 화장품은 미국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있다.² 영국에서는 한국화장품만 취급하는 K뷰티 전문 매장이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늘려가고 있다.³ - P175

3부 : 친구보다 좋은?


2 이민아, ‘[단독] K뷰티, 美수입시장서 첫 1위 ・・・ 강적 프랑스 제쳤다". <동아일보>, 2025...
3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50101/130769659/2윤은영, "한국 화장품만 팝니다‘ 영국에 등장한 K-뷰티 전문매장, <리테일톡>, 2025.
6.11.https://www.retailtalk.co.kr/Global/?jdx=165219792&bmode=view. - P367

이처럼 이른바 ‘한국식 스킨케어‘라는 것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 P176

. 오늘날의 문화에서 자기를 돌보는 것은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각종 ‘루틴‘을 통해 자신의 내·외면을 돌보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 P176

셀프케어는 단순히 자기 관리를 넘어 과로와 노동 강박으로 인한 번아웃, 힘겨운 육아, 인플루언서로서 겪는 외모 강박이나 완벽강박 등 각종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제시되기까지 한다. - P177

이때 외면을 돌보고 능력을 함양하는 행위는 내면 돌보기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어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 P177

자기 돌봄에 집중하는 문화는 ‘힐링‘이라는 키워드와도 밀접한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꼭 힐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여야자기 돌봄 행위인 것은 아니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는 것, 샤워나 세안, 연락하지 않기, 심지어 손절을 하는 행위조차 자기 돌봄으로 개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78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에서 멈춤과 고독을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78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을 돌보는 행위를 꼭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목적이단지 나 한 사람의 정신적 ‘웰빙‘ 향상을 위한 것일 필요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돌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 P179

자기 돌봄 개념의 역사는 이 개념이 본래 훨씬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었음을 보여준다. (중략). 그러던 중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민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부상하면서 자기 돌봄은 훨씬 정치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 P179

페미니즘 운동 또한 당대 민권 운동의 이러한 행보에 영향을 받아 대대적으로 여성 건강 운동을 펼쳤다. (중략), 남성과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는 의료 지식 체계에 도전하고자 했다.⁹ - P180

9 Jennifer Nelson, More Than Medicine: A History of the Feminist Women‘s HealthMovement, 2015. - P367

.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에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기 돌봄의 ‘자기‘란 억압받는 이들의 자결권을 의미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기 돌봄은 무엇보다 서로를 돌보는 것에 관한 개념이기도 했다. - P180

끊임없는 생산과 가속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휴식과 충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 돌봄은 현기증 나는 속도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일종의 대항문화처럼 보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 P180

(전략).
그러나 스스로를 돌볼 것만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돌봄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노오력‘해야만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되기 쉽다. - P181

1948년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은 단순한 질병이나 질환의 부재가 아닌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웰빙의 상태"라고 정의한 바있다.¹⁰ - P181

10 Gloria L. Krahn, Ann Robinson, Alexa J. Murray and Susan M. Havercamp, "It‘sTime to Reconsider How We Define Health: Perspective from Disability and ChronicCondition", Disability and Health Journal, 14(4), 2021, pp. 1~5. - P367

 오늘날 웰빙과 자기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만들기보다는 집에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 P182

. 고통과 불행이 개인적 행동을 통해 ‘치료‘되어야 하는 문제가될 때, 우리가 택하는 개인적 행동은 대개 소비이기 때문이다. - P182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홧김에 쓰는 돈을 뜻하는 이른바 ‘X발 비용‘이나 ‘금융치료‘ 혹은 ‘소비치료‘로 번역할 수 있는 ‘리테일 테라피 retailtherapy 같은 단어들의 유행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인 소비가 불행에 대한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 P183

우리가 자기 돌봄을 통해 치유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번아웃과 혼자살기의 어려움 같은 문제들은 68혁명 시대에 자기 돌봄을 외친 사람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만큼이나 사회적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이며, 타인의 지지와 유대감 없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 P183

자기 돌봄의 현대적 버전은 고통만을 마비시키고 고통받는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별문제가 없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해로운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 P183

 유튜브와 인스타, 틱톡에서 유행하는 각종 루틴 비디오들이 때로는 ‘생산적인 하루productive day‘나 버리는 시간 없이 자기 계발에몰두하는 인생을 뜻하는 ‘갓생‘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하는 제목으로 나온다는 사실만 보아도, (후략). - P184

행복을 연습하세요!

(전략). 단순히감정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감정 상태, 즉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축약한) ‘소확행‘이라는 말의 유행은 잠시 커피를 마시거나 ‘덕질‘용 굿즈를 사는 것 같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을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에 우리 문화가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84

다수의 평자가 관찰하듯이, 사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단순히 성취될 수 있는 것을 넘어 거의 강박에 가까운 의무가 되어버렸다.¹² ¹³ ¹⁴ - P185

12 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행복해질 권리>, 김수진 옮김, 21세기북스, 2025. 1장 참조(Zygmunt Bauman, The Art of Life, John Wiley and Sons, 2013).

13 에바 일루즈 에드가르 카바나스, <해피크라시: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이세진 옮김, 청미, 2021 (Eva Illouz and Edgar Cabanas,
Manufacturing Happy Citizens: How the Science and Industry of Happiness Control ourLives, Polity, 2019).

14 탁석산, 《행복 스트레스》, 창비, 2013. - P367

그런 면에서 행복 강박은 건강에 집착하는 건강주의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 P185

오늘날의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인화된 경힘이 되어버렸다 - P185

언제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한다는 강박을 뜻하는 ‘해로운 긍정성 toxic positivity‘ 개념이 화두에 오르기도 한다.¹⁷ - P186

17 Tasha Bailey, "Toxic positivity‘: Why #GoodVibes Only can Leave You Feeling Bad", BBC News, 2021.4, https://www.bbc.co.uk/bitesize/articles/z64yn9q. - P368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 강조되다 못해 강박에 가까운 이상향이 된 것은 복잡한 사회적 변화의 결과이다. - P186

긍정심리학의 최고권위자인 마틴 셀리그만이 1997년 미국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회장이 되면서 유행하게 된 긍정심리학은 심리학이단순히 인간의 병리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 더 행복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P187

국내에서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으로 번역된 셀리그만의 《진정한 행복 Authentic Happiness》의 캐치프레이즈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을 배워라!"이다. - P187

(전략) 셀리그만은 그 유명한 ‘행복 공식‘을 제안한 바 있다. 이공식에 따르면 행복의 50%는 유전이 결정하고, 40%는 자발적 노력이 결정하며, 행복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10%도 되지 않는다.¹⁹ - P187

19 마틴 셀리그만,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개정판), 김인자·우문식 옮김, 물푸레, 2014, 4장 참조(Martin E. P. Seligman, Authentic Happiness: Using the New PositivePsychology to Realize Your Potential for Lasting Fulfillment, Simon & Schuster, 2002). - P368

(전략). 애초에 노력을 통해 행복을 달성할 수 없다면 이 모든 자기 계발 매체와 상품들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188

그러면 어떤 노력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 P188

연구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행복과 웰빙에 관한 주류 심리학 담론은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²¹ - P188

21 Glenn Adams, Sara Estrada-Villalta, Daniel Sullivan and Hazel P. Markus, *ThePsychology of Neoliberalism and the Neoliberalism of Psychology", Journal of SocialIssues, 75 (1), 2019, pp. 189-216. - P368

정확히 과학적으로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는 학자마다 견해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긍정적 경험 대 부정적 경험의 비율이 1:1인 사람은 건강하지 않다고 여긴다.²⁵ - P188

25 Barbara Fredrickson, "Updated Thinking on Positivity Ratios, American Psychologist,
68 (9), 2013, pp. 1~9. - P368

긍정적으로 살면 암도 극복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 P189

좋은 삶을 도덕이나 선과 연관 짓는 전통적 관점이나 철학적 관점과는 달리, 긍정적 감정의 우위라는 기준은 가치 중립적일 뿐만아니라 측정 가능성, 즉 추적과 관리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 P189

. 자아를 실현해서 진정한 내가 되어야 행복하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문화적전제들이다. - P190

우울증적 쾌락

긍정적 감정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러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190

불안정한 고용 전망, 치솟는 생계비, 억압과 불평등, 빈곤과 폭력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마음가짐을 갖고, 감사 일기를 쓰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해 보라는 조언은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 P191

(전략). 행복 개념이 정치적인 개념인 첫 번째 이유다. - P191

 사회학자들은 행복이라는 개념이 신자유주의가옹호하는 각자도생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²⁸ - P191

28 일루즈·카바나스, 《해피크라시》, 2장 참조(Illouz and Cabanas, Manufacturing Happy Citizens).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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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대한 글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그걸 살리는 것과 살려진 것을 보면서 분석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감만이 든다.

큰 줄기가 없는 만화지만, 나중엔 이야기가 생길지 모르겠다.
작 중 이야기는, 회상을 제외하곤 시간 순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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