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에 수반되는 부조화의 크기

(전략).
의사결정의 중요성(importance)이 의사결정이 종료된 후에 존재하는 부조화의 크기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그 결정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에 따른 부조화의 크기는 더 커질 것이다. - P65

의사결정 후 부조화 (postdecision dissonance)의 크기를 결정짓는 또 다른 요인에는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상대적 매력도(relative attractivenessof the unchosen alternative)가 있다. - P65

<그림 2-1>은 선택 행동의 중요도와 선택된 선택지의 매력도를 고정시켰을 때 예상되는 의사결정 후 부조화의 크기와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상대적 매력도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 P66

갈등과 부조화가 미치는 영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논의를 계속 진행하기 전에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 좋겠다. (중략).
이제는 더 이상 두 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방향으로 동시에 내몰리지않는다. 다만 지금부터는 부조화가 존재하게 된다. (중략).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두 용어의 구체적 용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갈등‘이라는 말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너무 넓게 사용되었다.  - P67

의사결정 후 부조화의 크기를 결정하는 세 번째 요인은 그 결정에 관련된 대안들 사이의 인지중첩도(the degree of cognitive overlap)라고 이름 붙일수 있겠다. 어느 한 선택지에 대응하는 인지묶음 속의 요소들이 다른 선택지에 대응하는 인지묶음 속의 요소들과 많이 일치할수록 중첩도는 높아진다. - P69

그러면 어떻게 인지 중첩도가 인지부조화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가? - P69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5달러와 4.99달러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그는 주저 없이 첫 번째 선택지를 택할 것이다. 비록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매력도가 선택된 선택지 못지않게 높지만, 이 의사결정의 결과로 부조화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 P70

부조화 감소 압력의 표출

(전략). 부조화 감소에는 크게 3가지의 방법이 있다. 즉, ① 의사결정을 바꾸거나 취소하기, ② 선택과 관련된 선택지들의 매력도 변경하기, 그리고 ③ 선택과 관련된 선택지들 간의 인지적 중첩 형성하기 등의 방법이다.  - P71

의사결정을 바꾸거나 취소하기

지금 우리가 분석하려는 것은 어떤 결정을 한 직후이면서 그 결정의 결과나 그에 따른 행위와 관련된 새로운 경험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임을 주지해야 한다. - P71

어떤 정보나 경험이 추가적으로 제공된 후에는 부조화가 증가하여 그전의 결정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심리적으로 그 결정을 취소하는 방법은 부조화를 줄이거나 심지어 부조화를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 이 방법으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다른 선택이 정말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72

선택지에 대한 인지 바꾸기

(전략). 우선 부조화가 발생하는 것은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매력적 특성과 선택된 선택지의 부정적 특성에 대한 인지요소들 때문이다. - P73

이 방법으로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데 성공할 것이냐 아니냐는 부분적으로는 그 개인의 지적 민첩성에, 부분적으로는 이 지적 변화를 지지해줄 자원을 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P73

물론 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 P74

인지적 중첩 형성하기

기억나겠지만 어떤 결정의 과정에 개입된 서로 다른 선택지에 관한 인지요소들이 서로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부조화는 더 작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인지적 중첩 (cognitive overlap)을 형성하거나 만들면 의사결정 후 부조화를 줄일 수 있다. - P74

달리 말하면, 인지적 중첩을 형성하는 한 가지 방법은 각 선택지와 관련된 인지요소를 뽑아내어 동일한 최종 결과를 유도하는 맥락 속에 넣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몇몇 인지들은 넓은 맥락에서 일치하게 되고 부조화는 줄어든다. - P75

제3장

의사결정의 결과: 경험적 연구자료

(전략). 의사결정 후에 발생하는 부조화에 종속된 영향의 크기는 이론적으로 부조화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 즉 의사결정의중요도,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상대적 매력도, 그리고 인지도 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다. - P77

광고 읽기에 관한 연구자료


의사결정 후 부조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압력이 표출되는 방식의 하나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과 조화를 이루리라고 기대되는 인지요소를 제공하는 정보를 찾는 것이다.  - P78

만약 이 이론이 정확하다면 최근에 어떤 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그 구매가 중요한 것이었을 경우에 자신이 구매한 상품을 생산한 회사의 광고는 읽고 경쟁회사의 광고를 읽는 것은 피해야 한다. - P79

분명히 지금까지는 부조화 이론으로부터 나온 하나의 예측과 일치한다. 의사결정 후에 부조화가 있으면, 새 자동차 소유자들은 최근 구입한차에 대한 광고물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부조화를 감소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이론은 그들이 구입하려고 고려하였으나 구입하지 않은 차에 관한 광고를 읽는 것에 관해서도 말할 것이 있다.  - P82

결국, 부조화의 존재는 광고를 읽는 것과 같은 행동을 유발하는 많은 결정인자 중 단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때때로 부조화 감소 압력보다 이 같은 다른 요인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83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오래된 자동차 소유자들을 그들이 진지하게 다른 차를 구입하려고 고려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이 연구에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나타났다. - P83

의사결정에서의 확신에 관한 실험


지금 논의할 의사결정 후 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압력의 또 다른 효과는 부조화 감소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다. 이를 위해서 특정한 의사결정후에 즉시 나타나는 부조화의 크기에 관한 자료가 필요할 것이고, 현재 남아 있거나 유지되는 부조화의 크기에 관한 자료 또한 필요할 것이다. - P85

우리는 우리가 실시한 실험의 결과를 간략히 보여 줄 텐데, 이 실험에서 사용된 실제 측정법은 피험자가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이었다고 어느 정도 확신하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 P85

자료를 수집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연구설계에서의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부조화 감소 과정이 시작되기 전과 시작된 직후는 시간적으로 매우 가까운데 이 연속적인 두 시점의 확신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이다. - P86

이 문제는 피험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한 쌍의 의사결정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 두 의사결정 중에 하나는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저 일시적 추측이었다. - P86

인덱스카드 한 장에 숫자 10개를 적어 하나의 숫자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 세트를 모두 7개 준비하였다. (중략).
모든 숫자 세트에서 사용된 실제 숫자들은 매우 근소한 차이만 있게 해서 피험자들은 그 두 세트가 짝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했다. - P86

또한, 피험자들은 결정을 물어보기 전에 어떤 경우에는 숫자 샘플을 10개만 볼 것이고 다른 경우에는 20개의 숫자들을 볼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중략).
피험자는 결정을 내린 후에 자신의 결정이 정확하다는 것을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0에서 100까지의 척도를 사용했는데 0은 그 결정이 그냥 추측한 것을 뜻하고, 100은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완전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 P87

초기 숫자 세트들과 관련된 경험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을 영향을 통제하기 위해 피험자의 절반에게는 첫 번째 카드에 근거하여 내린 결론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두 번째 카드가 주어졌다. 나머지 절반의 피험자들은첫 번째 카드에 근거해 내린 결론에 크게 반대되는 두 번째 카드를 받았다. 전체 137명의 피험자들의 자료가 수집되었다. - P89

<표 3-2>는 이 실험에서 얻은 자료를 최종 결정에 대한 피험자들의 확신과 잠정적 결정에 대한 확신을 비교해서 최종 결정에 대한 확신이 더 큰 사람의 수, 두 경우에 대한 확신이 동일한 사람의 수, 최종 결정에 대한 확신이 더 적은 사람의 수로 나타낸 것이다.  - P90

전체적으로 볼 때, 70명의 피험자들이 잠정적 결정보다 최종 결정에서 더 높은 확신을 보였다. 42명의 피험자들은 그 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표 3-2>에서 보면 동일한 정보(10개의 숫자들)에 근거해서 결정할 경우, 잠정적 결정에 대한 확신보다 최종적 결정에 더 높은 확신을 보이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 P90

위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을 찾는 사람의 경우, 최종 결정에 관한 확신과 잠정 결정에 대한 확신 간의 차이가 잠정적 판단을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실험방식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 P91

선택지의 매력도 변화에 관한 실험


의사결정 후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주요 방법의 하나로 선택지의 매력도를 변화시켜 선택된 선택지와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 사이의 차이를 증가시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적어도 단순한 상황 속에서는 확실히 이러한 종류의 변화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 P92

(전략).
유감스럽게도 연구자가 그 당시에 가난한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피험자는 고가의 선물을 집에 가져 갈 수 없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모든 피험자들은 이것을 양해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들은 연구에 참여한것으로 인해 심리학개론 수업에서 실험참여 점수를 받았다. - P94

이 연구는 상품에 관한 정보의 활용가능성이 부조화가 감소되는 정도와 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 P95

<표 3-3>의 자료를 부조화 이론에서 나온 예상들과 비교해서 살펴보자. 의사결정에 뒤따르는 부조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압력이 실제로 작용한다면 그 압력은 선택한 대상에 대한 매력도는 증가하고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매력도는 감소하는 방향으로 반영될 것이다.  - P95

부조화 이론에서는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의 매력적 요소에 부합하는 인지요소들이 많을수록 의사결정에 따르는 부조화가 더 커질 것이고, 그 결과 부조화를 감소시키려는 압력은 더 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P96

요약하면, 실험상황에서 만들어진 부조화가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부조화의 감소도 크다는 것이다. - P97

높은 부조화 조건과 낮은 부조화 조건 사이에서의 총부조화 감소 차이는 선물 선택에 사용된 선택지와 관련된 연구 보고서를 본 피험자들에게서 크고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 P97

(전략).
예를 들면, 하이더(Heider, 25)는 "만약 우리가 지금 소유하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소유한다면 그 상황은 균형이 유지된다(Part 2)"라고 말했다. 하이더는 더 나아가 만약 그 상황에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과정이 뒤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 P99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종류의 영향을 확실히 보여 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즉, 단순히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호감의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 P99

이와 같이 소유하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무엇이든, 브렘의 실험에서 대상들에 대한 매력도의 변화는 단순히 소유권을 가진 것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 P100

브렘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논의할 만한 결과가 하나더 있다. 이 실험에서 어떤 피험자에게는 비슷한 요소들이 많은 두 가지 대상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고, 그런 까닭으로 두 대상들에 부합하는 상당한 인지적 중첩요소들이 생겼을 것이다. - P101

(전략). 이러한 대상들 중에서 선택한 피험자들의 경우에는 부조화가 더 적게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부조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압력이 많다는 증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피험자의 경우 실험결과는 꽤 분명하다. 인지적 중첩이 있을 때에는 실험 조건과 관계없이 부조화 감소의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없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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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를 찾아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때까지 의식을 잃고 있었던 모양이다.
뺨에 닿는 바닥은 서늘하니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다. - P185

한 번 더 시험해보았지만 붉은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치접착제로 붙여놓은 것 같다.
‘누가 일부러 가둬둔 거면 어쩌지?‘
불안해하며 반대쪽 파란 문 손잡이를 돌려보니 이쪽은 아무 저항 없이 움직였다. - P186

옆방이나 복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눈앞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있었다.
"아니, 잠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질문은 허공으로 사라졌고 대답해줄 사람은 없다. - P187

천장은 없다. 벽과 벽 사이에 낀 하늘이 길고 가늘게 펼쳐져 있었다. 아침노을인지 저녁노을인지 희미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다.  - P187

(전략). 내가 있는 게 어떤 곳인지 깨달았다. 이곳은 미로 속이다.
아니, 아직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틀 - P188

나는 미로가 싫다. 몇 년 전 여행지에서 친구와 함께 갔다가 지독한 꼴을 당한 적이 있다. "빠져나오지 못하면 곳곳에비상 출구가 있으니 그곳으로 탈출하세요"라고 직원이 말했는데 그 비상 출구를 찾지 못했을뿐더러 친구까지 놓쳐서즐겁기는커녕 패닉에 빠질 뻔했다. - P188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리가 아파서 도중에 하이힐을벗고 맨발로 다녔다. 하늘 색깔은 여린 오렌지빛 그대로 태양이 하늘의 한 지점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 P189

얼어붙은 채로 우뚝 서 있는데 그림자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보다 조금 연상, 30대 초반쯤 되는 남자였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고 온화한 생김새였다. 거친 분위기는 없었다. - P190

"오른쪽이면 오른쪽, 왼쪽이면 왼쪽 벽에 손을 짚고 걸어가면 언젠가 미로에서 나갈 수 있다던데요.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볼까요?"
내 제안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탈출법이 다 통하는 건 아니야.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이 미로 바깥쪽에 접해 있으면 괜찮지만 어느 한쪽이 안쪽에 있으면 통하지 않아." - P191

또 한참 헤매면서 나는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해보았다.
"벽 바깥을 볼 수는 없을까요? 출구가 어느 쪽인지 알 수있을지도 몰라요." - P192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미로에서 빠져나갈 실마리조차찾을 수 없다. 파트너를 만난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지만 내정신은 이 고문에 한계에 달해 있었다. 어떻게 해도 나갈 수없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신 차려. 잠깐 쉴까?"
다정한 말조차도 짜증스러웠다. - P194

(전략).

그렇게 외친 순간, 잠에서 깼다. 나는 내 방 침대에 있었고눈에 익은 가구와 장식품에 에워싸여 있었다. - P194

꿈은 이틀만 지나면 잊는다.
미로의 악몽에서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
(중략).
꿈에 나왔던 그 남자와 판박이였던 것이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보자마자 그 사람인 줄 알았다. - P195

이제야 생각해본다. 그 남자는 내게 소중한 운명의 상대였던 게 아닐까? 그것을 신이 꿈속에서 가르쳐주었는데, 두눈을 멀뚱히 뜨고 놓친 게 아닐까?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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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머리말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 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 P19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 P19

. 한 나라 안에서 약자들이 이런저런 강자들의 침탈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를 제압할 수 있을만큼 힘이 센 최고 강자가 하나 있어야 했다. (중략). 따라서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기나라를 온전히 지탱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고자 했다. - P20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정치적 자유 또는 권리라고 하는 어떤 불가침 영역을 설정한 뒤, 권력자가 이를 침범하면 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서, 피지배자들의 국지적 저항이나 전면적 반란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둘째,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통용된 것이지만, 국가가 중요한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 또는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의동의를 얻도록 헌법으로 규정한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유럽 - P21

 민주 정부를 세우는 것이 꿈속에서나 가능하거나 까마득한 옛날에나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질 때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명했을 것이다. - P23

(전략), 다시 말해 민주적 기관이 인민의 뜻을 받들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중략).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상의 큰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한 나라에서 민주 공화정democratic republic이 세워졌고, 그 나라는 국제 사회의 열강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³ - P23

3) 미국을 말한다. - P240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자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스스로를 지배government of each by himself 하기보다.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 체제government of each by all the rest가 되고 있다. - P23

(전략). 따라서 인민이 자신들 가운데 일부를 억누르고 싶은 욕망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다른 권력 남용 못지않게 이에 대한 주의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P24

이제 정치영역에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⁴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해악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 P24

4)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자신의 명저<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에서 썼던 말이다. 밀은 토크빌의 책이 출판되자마자 장문의 논평을 발표하여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시했다. - P240

(전략).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다수의 삶의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개별성individuality도 발전하지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그 싹조차 트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키려고 한다. - P25

원론적으로 보자면 이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 P25

그러나 아주 명백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이 문제의 정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시대에 따라서 답이 항상 다르다. - P26

관습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행동 규칙의 타당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관습은 이성적인 토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인식때문에 이런 속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 P26

(전략).
따라서 사회 또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세력이 좋아하는것과 싫어하는 것이 규칙의 실질적 원천이 된다.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을 때 따르는 처벌이 두려워, 또는 여론의 힘에 밀려 그 규칙을 준수한다.  - P28

그러나, 어디나 있기 마련인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만은 한마음으로 꾸준히 지켜왔다. 이 문제는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른바 도덕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더 없이 중요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 P29

종교의 자유를 신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위대한 저술가들은 특히 양심의 자유가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 될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각개인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해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만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P30

영국에서는 독특한 정치사의 영향 때문에 여론의 구속력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법의 간섭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적은 편이다.  - P30

 대다수 인민들이 아직은 정부가 자신들의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정부의 힘이 곧 자신의 힘이 되고 정부의 생각이 곧 자신의 생각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 P31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법에 따른 물리적 제재 또는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P32

이 원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P33

같은 이유에서 미개 사회backward states of society에 사는 사람들도 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미성년자nonage 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 P33

. 우리가 여기에서 검토하고 있는 자유의 원리는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시대에나 성립되지, 그런 때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P34

효용utility과 무관한 추상적인 권리에 관한 생각이 이러한나의 주장에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나는 효용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 P34

마땅히 해야 할 이런 일들을 하지 않는 개인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또 살다보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지 않음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 P35

대외적으로 모든 개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보호자인 사회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 P35

(전략). 다시 말해 이웃 사람들의 판단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만큼 자신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 P36

 지금까지 말한 이런 것들이 인간 자유의 기본 영역이된다.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다음의 셋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내면적 의식의 영역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 · 도덕· 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
(중략).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중략).
셋째,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받는 결사의 자유가 도출된다. - P37

어떤 정부 형태를 가지고 있든 이 세 가지 자유가 원칙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사회라면 결코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 P37

지금 우리는 사회가 설정한 성공의 기준에 맞춰 살도록 강하게 종용받고 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든것으로서 우리와 무관하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 P-1

오늘날에는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진데다무엇보다도 세속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가 분리된 까닭에 (다시 말해 인간의 양심을 다루는 권력과 일상의 삶을 다스리는권력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법이 지나치게 관여할 수 없다. - P38

 도덕 감정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종교이다. 그러나 종교는 지금까지 거의 언제나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려 하는 야심만만한 고위 성직자 또는 청교도 정신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 P39

이런 예외적 성향의 개별 사상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여론, 심지어 법의 힘을 통해 개인에대한 사회 통제를 과도하게 확대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 P39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개하자면, 전폭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측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하나의 항목에 집중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한꺼번에 펼치는 것보다 더 나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자유이다.  - P40

 지금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300년 동안 끊임없이 논의되어온 주제에 대해 새삼스럽게 사족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 P40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정부의 타락이나 전횡(專橫)을 막아주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해야 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사실 그렇게 믿어도 될 것이다.  - P43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국가든 아니든 인민의자유를 전면 억압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가끔씩 사람들의 의사 표현을 통제하려한다고 해서 특별히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 P43

나는 인민이 스스로든 정부를 통해서든 그렇게 강제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 P43

 여론을 빌려 자유를 구속한다면 그것은 여론에 반해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나쁜 것이다. - P44

첫째, 권력을 동원해서 억누르려는 의견이 사실은 옳은 것일 수 있다. 그 의견을 짓밟으려는 사람들은 물론 그것을 부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 P45

스스로 완전하다infallibility고 전제하지 않는 한 일체의 토론을차단해버릴 수는 없다. 사람들이 흔히 이런 착각에 빠진 탓에자기와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 P45

인간의 양식(良識)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사람들은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현실 문제에 부딪히면 좀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P45

즉 인간의 판단이 잘못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P45

사람들이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에 자신감이 없으면 없을수록 일반적인 의미의 ‘세계‘ 의 완전함에 암묵적인 믿음을 가지고 더욱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것, 즉 정당, 집단, 교회, 계급 등이 모여 이 세계를 구성한다. - P46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자신이 항상 옳다는 판단과 책임감 아래 다른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전파할지도 모른다고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 아마도 공권력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 P47

 우리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각자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P47

의식이 아직 개화되지 못했던 과거 어느 때에, 지금은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어떤 생각을 펼친다는 이유로 탄압을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 P48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어떤 목적을 향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 판단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 P48

인류가 발전시켜온 생각이나 일상적인 행동의 역사를 놓고볼 때, 우리의 삶이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 속에 들어 있는 그 어떤 힘 덕분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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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부르주아적 성과학: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과학과 부르주아 도덕


정신의학자이자 의사인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1840~1902)에게 성은 과학이었다. (중략). 그 책은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03년에 마지막 판본이 출간될 때까지 모두 11개의 개정판이 발간되었고, 죽은 뒤에도 1924년까지 네 개의 판본이 출간되었다. 이는 인쇄 횟수를 포함하지 않고 순수한 판본만을 꼽은 것이다. 1937년에 발간된 열여섯번째 판본은 1962년까지 열 - P29

크라프트에빙은 성과학을 정초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성에 대하여과학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연적인 성"은이미 18세기부터 논의되었고, 현재의 연구자들이 성과학으로 분류하는 저술들도 이미 1860년대부터 출현하고 있었다. 다만 크라프트에빙에 앞선 연구들은 동성애 같은 개별적인 성 병리를 논했다. - P30

성에 대한 크라프트에빙의 진술은 진정 과학이었을까? - P30

 사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성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언급되고 연구되었다. 17~18세기에는 자위행위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18~19세기에는 여자의 성이 편집증적으로 서술되었다. - P31

크라프트에빙이 『성 정신병리』에서 제시한 분류법은언뜻 과학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략).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국부신경증은 분류만 했을 뿐 단 한 줄도 서술하지 않았다. 척수신경증에 대해서도 딱 두 쪽만 서술했다.⁴ - P31

크라프트에빙의 주된 관심사는 뇌신경증이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살펴보면 그가 말하는 과학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 P33

여기서도 그는 분류한다.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유소아나 노인이 성욕을 느끼는 경우를 지칭하는 성욕설, 두번째는 성욕결핍증, 그리고 성욕과다증과 성감각 이상이다. 여기서도 그의 관심은 편향적이다.  - P33

 성감각 이상이야말로 크라프트에빙의 주된 관심사인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그는 무슨 기준으로 저런분류를 한 것일까? - P34

만일 각각의 신경증과 특정 부위의뇌 피질의 관련성이 함께 제시되었다면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고 말할수 있고, 우리는 자신의 논의가 과학이라는 크라프트에빙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35

그렇다면 크라프트에빙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준이 없다. - P35

(전략). 그는 그저 자신이 성 병리라고 규정한성 유형들을 나열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기준이 있다. (중략). 바로 과잉과 과소이다.  - P35

 크라프트에빙은 인간이 성교 중에 상대방을 꼬집거나 깨무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심리학적이기까지 하다. 쾌감과 폭력은 언제나 함께 가는 현상이란다. 그리고 덧붙인다. 사랑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 P35

과잉과 과소는 양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크라프트에빙의 분류법이 19세기 서양의학에서 발생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P36

그러나 문제는 양은 재기만 할 뿐만 아니라 평가도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과잉과 과소는 양이 아니다. 그것은 평가다. 따라서 여기에도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 P36

이 자리에서 크라프트에빙이 제시한 병리 전부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실망스럽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기준과 관련된 발언은 무수히 했다. - P37

크라프트에빙은 병리의 원인을 제시하면서 논의의 영역을 뜻밖의 장으로 전치시킨다. 바로 도덕과 윤리의 장이다. - P37

사실 크라프트에 도덕과 결부시키지 않고 성 병리를 논의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14세이하의 미성년을 탐하는 것도, 노출증도, 조각상과 유사 성교를 하는것도, 시간도, "도덕 감정이 원체부터 부재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순간적으로 흐려진 탓"이다. 성도착자는 모두 "윤리적 백치"이고 "도덕적 지진아이다.*

* 필자는 윤리와 도덕이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윤리는 인류의 규범이고 도덕은 특정 공동체의 규범이다. 따라서 윤리는 보편적인 것이고, 도덕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양자를 날카롭게 구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대의 성과학자들이 별다른 기준 없이 두 개념을 섞어 썼기 때문에 여기서 사후적으로 구분하자니 인용할 때마다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역사가란 당대인들의 사고 지평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신념도 한몫했다. 당대인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지 않을 경우에는 문맥에 따라윤리와 도덕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인들의 사유 지평을 분명히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이 인류의 윤리라고 믿었다. - P37

앞에서 우리는 당대의 성과학은 지식을 쌓기보다는 분류했다고 했는데, 그 분류 작업에서도 그들은 인과관계를 논하기보다 특정한 성 유형을 정의하고 있었다. 따라서 크라프트에빙의 갈지자걸음을 납득하려면 그의 성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 P38

19세기 말에 충동은 정신과 육체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되고있었다. 또한 크라프트에빙은 충동으로서의 성이 삶의 모든 영역, 즉 타인과의 관계, 노동과 성취, 예술적 취향, 종교적 경건성의 형태 등에 스며든다고 파악했다.¹¹ - P38

11 R. v. Krafft-Ebing, Psychopathia Sexualis, p.1 - P525

성이 개별적인 신체 내에 자리하되, 그 인간의 정신적 삶과 사회문화적 삶을 좌우한다는 발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성이 ‘자율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 P38

자율적인 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크라프트에빙의 책 곳곳에서 공포가 출몰한다.  - P39

 그러나 19세기 후반이라는 ‘해방된‘ 개인의 세상에서 무엇이 성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부딪친 크라프트에빙이 꺼내든 낡은 칼이 바로 윤리와 도덕이다. - P40

게다가 크라프트에빙이 지치지 않고 강조한 것처럼, 성이 노동과 경제적 성취, 예술적 취향, 종교성에 스며드는 것이라면, 그 윤리에는 당연히 노동, 재산, 미적 취미, 종교적 경건성이 포함된다. 이는 그러한 부르주아적 윤리와 문화 및 성취를 거부하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도착 혹은 잠재적인 성도착 혐의가 씌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 P41

크라프트에빙의 성 개념에는 또 한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도덕은 무릇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크라프트에빙이 성 개념을 논할 때 사회가 언급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 P42

크라프트에빙의 과학적 성에서 진화론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국가와 사랑이 그것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감각적인 성"의 창궐은 "국가의 파멸, 국가의 물질적·도덕적·정치적 파탄"을 낳는다. 따라서 성과 성 병리는 국가적인 문제다. - P42

(전략).
크라프트에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플라톤적인 사랑"이 "괴물"이자 "자기기만"이라고 단언한다. 사랑의 뿌리는 "감각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성 무능력자는 남성다운 특징을 상실해버리고 급기야 자신감마저 잃어버린다. 그런 남자는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무기력하고, 자존감과 명예심을 잃고, 타인과 불화하고, 우울한 인간이 된다.¹⁵ - P43

10 R. v. Krafft-Ebing, Psychopathia Sexualis, p.13 - P525

크라프트에빙에게 인간 진화의 역사란 동물과 다름없는 생식적인 성이 도덕과 낭만적 사랑에 의해 관리되는 단계로 진보하는 것으로, 그로부터 이탈하는 성은 의당 해당 공동체를 퇴보로 이끈다.  - P43

 퇴행론은 『성 정신병리』의 모든 맥락에서 튀어나온다. 그는 심지어 열정적인, 즉 "감상적인sentimental"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조차 "유전적으로 취약한 인물"로 평가한다. - P44

동성애와 성 인격

지금까지 우리는 크라프트에빙의 성 범주화가 과잉과 과소에 입각해 있었다는 점에서 시작하여 그 진화론적 함의까지 추적해왔다. 그러나 이 분석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성 유형을 건너뛰었다. 바로 우리의 주제인 동성애다. - P45

동성애에 대한 크라프트에빙의 설명은 아주 간명하다. 남성 동성애자는 신체는 남성인데 정신은 여성인 사람이다.  - P45

사상사적으로 보아, 크라프트에빙에게 젠더라는 기준을 전해준 사람은 카를 하인히리 울릭스Karl Heinrich Ulrichs였다. - P45

변호사였던 울릭스는 1864년부터 1879년에 이르는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총 열두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고, 동성애 처벌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쳤으며,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의 합법화까지 주장했다. - P46

젠더 문제, 특히 여성성 문제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인간과 세계를 관찰하는 지배적인 담론이었다. 물론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발상이 19세기에 와서 비로소 부각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전근대의 서양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 다른 존재였다.  - P47

(전략).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몸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발달이 상이하게 전개되어, 예컨대 여성의 자궁은 뒤집힌 페니스로 간주되었다.
또한 전근대 여성은 신의 뜻에 따라 출산을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되었으나, 여성성은 결코 생식 기능에 한정되지 않았다. - P47

흥미로운 점은 몸을 자연화한 그 과정을 이끈 것이 여성성 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중략), 묘하게도 의사들은 여자를 사랑과 모성에 국한시키면서도 동시에 자연적인 성에 좌우되는 존재로, 그것도 성기에의해 좌우되는 존재로 표상했다. - P48

크라프트에빙의 젠더는 19세기 후반의 성 담론 지형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남자의 성욕은 "공격적이고 질풍노도"와 같으며 "적극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이 남자의 전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 P49

그는 그 이분법을 그가 공들여 논한 모든 성 병리에 적용했다. (중략), 때리거나 깨무는 것은 남자의 속성인 "공격성의 표현이다. 바로 그 때문에 사디즘은 주로 남자에게서 나타나고 여자에게서는 드문 편이다. 마조히즘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것은 여자의 속성인 "수동성"이 병적으로 타락한 현상이다. - P49

페티시즘의 경우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젠더에 중립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50

남녀이분법의 역전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성 유형은 동성애다. 우선 지적할 점은, 그가 여자 동성애자를 별도로 논하지 않고 그저 남자 동성애자의 작은 일부로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전반적인 경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 P50

또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그가 동성애를 분류할 때 우리가 이제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기준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선천"과 "후천"이 그것이다. - P50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학문 내적 차원의 이유를 들 수 있다. 당시 정신의학은 생물학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중략).
인간의 외부가 인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또 다른 학문은 심리학이다. (중략). 예컨대 프로이트가 프랑스의 히스테리 연구를 둘러본 때가1880년대 중반이다. - P51

정치적이고 법률적인 이유도 있었다. 만일 동성애를 선천적인 것이라고만 규정하면 이에 대한 처벌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근대 서양의 형사법적 원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 P51

마지막으로 의료의 차원이 있다. 선천설을 택하면 의사에 의한 치유는 사실상 배제되고, 후천설을 택하면 의사에게 활동 공간이 열린다. 동성애의 의료적 · 법적 차원은 『성 정신병리』의 두 번째 부제가 "의료·법의학적 연구"인 것에서도 드러난다. - P52

(전략), 크라프트에빙이 선천적 동성애자의 경우 친인척들 역시 신경 정신병리를 앓는다고 주장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유전론이다. - P53

그러니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동성애자가 여성화된 남성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역전된 성 감각"을 크라프트에빙은 성도착으로 간주했다. - P53

(전략). 그러나 『성 정신병리에 담긴 크라프트에빙의 시선은 그 일반명제가 함축하는 것과 종류가 다르다. 크라프트에빙은 그 책에서 객관적인 진술 뒤의 구조로서만이 아니라, 환자들과 함께 직접 등장한다. 그는 그 책에 다른 연구자들이 공개한 환자에 대한 기록, 자신의 임상기록, 그를 찾아온 환자와의 대화 내용, 그에게 발송된 환자의 편지 등을 통째로 제시해놓았다. 사실 크라프트에빙의 책이 그토록 인기를 끌고 영향력을 발휘한 것도, 성 병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 외에 그러한 기록들, 즉 개별 사례들이 외치던 목소리 덕분이었다. - P54

당사자의 목소리가 책에 등장한 것에도 역사가 있다. 동성애로 국한시킬 경우 독일에서 그 시작은 크라프트에빙의 선배 법의학자인 카스퍼Johann Ludwig Casper가 했다. - P54

동성애를 하나의 인격으로 구성하려는 크라프트에빙의 시선은 광범하고 집요했다. 그는 부모의 신체, 직업, 병력, 특히 신경병의 유무, 사망원인, 특히 자살 여부를 물었고, 가능하면 조부모와 사촌들도 살펴보았다. 당사자 유년기에 대해서는 언제 처음 글을 배웠는지, 인형놀이를 했는지 병정놀이를 했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놀이 장소는 집안이었는지바깥이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자주 아팠는지, 학교 성적은 어떠했는지, 어떤 과목에 관심이 갔는지, 성에 대해서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몽정 혹은 자위는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경험했는지, 성교는 언제가 처음이었는지, 그 대상이 이성이었는지 동성이었는지, 그때 느낌은 어떠했는지 등등을 물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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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임금이 듣고 나서 감동하여 즉시 홍 아무개를 풀어주고 인형을 경상감사로 임명하며 말했다.
"그대가 만일 감사의 지위를 가지지 않으면 길동을 잡지 못할 것이다. 일년 기한을 줄 테니 속히 잡아들이라." - P29

"길동아, 네가 한번 집을 떠난 뒤 생사를 알지 못하여 아버지께서는 깊은 병을 얻으셨다. 너는 갈수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나라에 큰 근심이 되니, 무슨 마음으로 불충불효를 하고 도적이 되어 세상에 비할 데 없는 죄를 짓느냐? 이 때문에 임금께서 진노하시어 나를 시켜 너를 잡아들이라 하셨다. 이는 피치못할 일이니 너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왕명을 따르도록 하라" - P30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
하며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 P31

내어 입에 넣으니 홍공이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여덟 길동이 임금께 아뢰었다.
"저의 아비가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사온데 제가 어찌 감히 나쁜 짓을 하오리까마는, 저는 본래 천한 종의 몸에서 났기로 그 아비를 아비라 못 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 하와 평생한이 맺혔기에 집을 버리고 도적의 무리에 참여하였사옵니다. (후략)."
하고 말을 마치자 여덟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기에 자세히 보니다 초인이었다 - P32

하니 임금이 옳게 여기고 경상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니감사가 왕명을 받고는 황공하고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루는 길동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절하고,
(중략).
하니 감사가 이 말을 듣고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 철없는 아이야. 너도 나와 형제인데 부형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니 어찌 애달프지 않으랴. (후략)."
하고 급히 길동의 왼쪽 다리를 보니 과연 사마귀가 있었다. 즉 - P33

 여러 날 만에 서울에 다다라서는 대궐 문에 이르러 길동이 한 번 몸을 솟구치니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공중으로 오르더니 나는 듯이 구름에 싸여 가버렸다. - P33

이때 여러 신하 중 한 사람이 아뢰기를,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한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겠다하옵고, 한번 제 소원을 풀면 제 스스로 인사를 드리러 올 터이니 그때를 타 잡는 것이 좋을까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겨 즉시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하고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다. - P34

길동이 제 거처에 돌아와 부하들에게 명하기를,
"내가 다녀올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아무 데도 출입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즉시 몸을 솟구쳐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그곳은 율도국이었다. 사방을 살펴보니 산천이 깨끗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편안하게 살 만한 곳이었다. - P35

소년은 땅에 엎드려,
"저는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이옵니다."
(중략)
"제가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했으나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문(文)으로는 벼슬길이 막혀 있고 무(武)로는 추천받을 길이 막혀 있습니다. (중략)."
말을 마치고 공중으로 올라가 나는 듯이 가니 임금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였다. 그 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니 사방이 태평하였다. - P36

하루는 길동이 화살촉에 바를 약을 구하러 망당산으로 가다가 낙천 땅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백룡이라는 부자가 딸 하나를 두었는데 재질이 비상하여 애중하게 여겼으나 어느 날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면서 그 딸이 없어져 버렸다. (중략). 부부는 슬퍼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누구라도 내 딸을 찾아주면 재산의 반을 주고 사위를 삼으리라."
하였다. 길동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측은하였으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 P37

 길동이 약주머니에서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타서 먹이니 한참 만에 큰 소리를 지르고 죽었다. 모든 요괴가 일시에 달려들었으나 길동은 신통술을 부려 모든 요괴를 물리쳐 나가는데 문득 젊은 여자 둘이 애걸하였다.
"저희는 요괴가 아니라 세상 사람으로 잡혀 왔사오니 가여운 목숨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해주셔요."
길동은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그들이 사는 곳을 물었더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요, 또 하나는 조철의 딸이었다. - P38

길동이 탄식하면서,
"내가 하늘의 별을 보고 부모의 안부를 짐작해 왔는데, 지금 하늘을 보니 부친의 병세가 위중하게 되신 것 같다. 그런데도 내 몸이 먼 곳에 있어 가 뵙지를 못할 듯하구나."
하니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 P39

이때 홍 판서가 문득 병을 얻어 위증하게 되자 부인과 인형을 불러 당부하기를,
"내가 죽어도 다른 한이 없으나 길동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제가 살아 있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서를 구분하지 말고 제 어미를 잘 대접해라."
하고 숨을 거두었다.  - P39

"형님께서 어찌 아우를 몰라보십니까?"
하기에 상주가 자세히 보니 바로 길동이었다. 붙잡고 통곡하며,
"아우야, 그사이 어디 갔더냐? 아버지께서 평소에 유언이 간절하셨는데 이제야 오니 어찌 자식의 도리이겠느냐?" - P40

길동이 부친 제사를 극진히 받들어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 모든 장수들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에 힘쓰니 병사는 잘 조련되고 양식도 풍족하였다. - P41

인형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너의 재주 기이한지라, 좋은 터를 구했다니 무슨 염려가 있으랴."
다음 날 길동이 부친 시신을 운구하여 제 모친을 모시고 서 강가에 이르니 미리 지시해 놓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 P40

여러 날이 되자 인형은 길동과 춘섬을 이별하면서 산소를 극진히 모시라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 인사를 드리고 출발하였다. 본국에 이르러 모부인을 뵈옵고 전후 사실을 말씀드리니부인이 신통하게 여겼다. - P41

남쪽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기름진 평야가 수천 리나 되어 실로 살기 좋은 나라였고 길동이 마음속으로 늘 그리던 곳이었다. 모든 사람을 불러 당부하기를,
"내가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그대들은 최선을 다하라."
하고는 그날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 P41

 길동이 성안에 들어가 백성을 달래어 안심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 율도왕을 의령군에 봉하였다. 마숙과 최철을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삼고나머지 여러 장수에게도 각각 벼슬을 내리니 조정 신하들이 만세를 불러 하례하였다. - P42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십 년 만에 갑자기 병이 들어 별세하니 나이 일흔둘이었다. 왕비도 이어 죽으니 선산에 안장한 후 세자가 즉위하여 대대로 이으면서 태평스럽게 지냈다. - P43

작품 해설

정하영

1. 문제 작가의 문제 작품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한국고소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의 작품이다. 최초의 국문소설이고, 허균의 창작소설이며, 민감한 사회문제를 제기한 사회소설이라는 평가가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작품이다. - P107

「홍길동전」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작자 허균(許筠, 1569~1618)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107

허균은 자유분방하고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 때문에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한때는 당시의 집권 세력인 대북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나 마지막에는 역적모의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저잣거리에서 사지가 찢기는 참형(斬刑)을 당했다. 그는 생전에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비참한 죽음으로모두 사라지고, 그 가운데 일부만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 P108

허균과 「홍길동전」의 관계는 실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가 이 작품을 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허균이 지었다는 「홍길동전」의 원본은 현재 남아 있지않고, 그가 이 작품을 지었다는 증거 또한 허균 자신의 문집이나 관련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다. - P109

택당의 증언을 근거로 초창기 국문학 연구자들은 허균을「홍길동전」의 작자로 확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였다. 그러나 허균을 작자로 단정한 데는 택당의 증언 이외에도 허균 자신의 행적이나 사상이 작품의 내용과 부합한다는 점이 함께 고려되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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