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부르주아적 성과학: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과학과 부르주아 도덕


정신의학자이자 의사인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1840~1902)에게 성은 과학이었다. (중략). 그 책은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03년에 마지막 판본이 출간될 때까지 모두 11개의 개정판이 발간되었고, 죽은 뒤에도 1924년까지 네 개의 판본이 출간되었다. 이는 인쇄 횟수를 포함하지 않고 순수한 판본만을 꼽은 것이다. 1937년에 발간된 열여섯번째 판본은 1962년까지 열 - P29

크라프트에빙은 성과학을 정초한 인물이다. 이는 그가 성에 대하여과학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연적인 성"은이미 18세기부터 논의되었고, 현재의 연구자들이 성과학으로 분류하는 저술들도 이미 1860년대부터 출현하고 있었다. 다만 크라프트에빙에 앞선 연구들은 동성애 같은 개별적인 성 병리를 논했다. - P30

성에 대한 크라프트에빙의 진술은 진정 과학이었을까? - P30

 사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성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언급되고 연구되었다. 17~18세기에는 자위행위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18~19세기에는 여자의 성이 편집증적으로 서술되었다. - P31

크라프트에빙이 『성 정신병리』에서 제시한 분류법은언뜻 과학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략).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국부신경증은 분류만 했을 뿐 단 한 줄도 서술하지 않았다. 척수신경증에 대해서도 딱 두 쪽만 서술했다.⁴ - P31

크라프트에빙의 주된 관심사는 뇌신경증이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살펴보면 그가 말하는 과학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 P33

여기서도 그는 분류한다.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유소아나 노인이 성욕을 느끼는 경우를 지칭하는 성욕설, 두번째는 성욕결핍증, 그리고 성욕과다증과 성감각 이상이다. 여기서도 그의 관심은 편향적이다.  - P33

 성감각 이상이야말로 크라프트에빙의 주된 관심사인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그는 무슨 기준으로 저런분류를 한 것일까? - P34

만일 각각의 신경증과 특정 부위의뇌 피질의 관련성이 함께 제시되었다면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고 말할수 있고, 우리는 자신의 논의가 과학이라는 크라프트에빙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35

그렇다면 크라프트에빙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준이 없다. - P35

(전략). 그는 그저 자신이 성 병리라고 규정한성 유형들을 나열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기준이 있다. (중략). 바로 과잉과 과소이다.  - P35

 크라프트에빙은 인간이 성교 중에 상대방을 꼬집거나 깨무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심리학적이기까지 하다. 쾌감과 폭력은 언제나 함께 가는 현상이란다. 그리고 덧붙인다. 사랑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 P35

과잉과 과소는 양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크라프트에빙의 분류법이 19세기 서양의학에서 발생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P36

그러나 문제는 양은 재기만 할 뿐만 아니라 평가도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과잉과 과소는 양이 아니다. 그것은 평가다. 따라서 여기에도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 P36

이 자리에서 크라프트에빙이 제시한 병리 전부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실망스럽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기준과 관련된 발언은 무수히 했다. - P37

크라프트에빙은 병리의 원인을 제시하면서 논의의 영역을 뜻밖의 장으로 전치시킨다. 바로 도덕과 윤리의 장이다. - P37

사실 크라프트에 도덕과 결부시키지 않고 성 병리를 논의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14세이하의 미성년을 탐하는 것도, 노출증도, 조각상과 유사 성교를 하는것도, 시간도, "도덕 감정이 원체부터 부재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순간적으로 흐려진 탓"이다. 성도착자는 모두 "윤리적 백치"이고 "도덕적 지진아이다.*

* 필자는 윤리와 도덕이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윤리는 인류의 규범이고 도덕은 특정 공동체의 규범이다. 따라서 윤리는 보편적인 것이고, 도덕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양자를 날카롭게 구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대의 성과학자들이 별다른 기준 없이 두 개념을 섞어 썼기 때문에 여기서 사후적으로 구분하자니 인용할 때마다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역사가란 당대인들의 사고 지평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신념도 한몫했다. 당대인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지 않을 경우에는 문맥에 따라윤리와 도덕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인들의 사유 지평을 분명히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이 인류의 윤리라고 믿었다. - P37

앞에서 우리는 당대의 성과학은 지식을 쌓기보다는 분류했다고 했는데, 그 분류 작업에서도 그들은 인과관계를 논하기보다 특정한 성 유형을 정의하고 있었다. 따라서 크라프트에빙의 갈지자걸음을 납득하려면 그의 성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 P38

19세기 말에 충동은 정신과 육체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되고있었다. 또한 크라프트에빙은 충동으로서의 성이 삶의 모든 영역, 즉 타인과의 관계, 노동과 성취, 예술적 취향, 종교적 경건성의 형태 등에 스며든다고 파악했다.¹¹ - P38

11 R. v. Krafft-Ebing, Psychopathia Sexualis, p.1 - P525

성이 개별적인 신체 내에 자리하되, 그 인간의 정신적 삶과 사회문화적 삶을 좌우한다는 발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성이 ‘자율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 P38

자율적인 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크라프트에빙의 책 곳곳에서 공포가 출몰한다.  - P39

 그러나 19세기 후반이라는 ‘해방된‘ 개인의 세상에서 무엇이 성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부딪친 크라프트에빙이 꺼내든 낡은 칼이 바로 윤리와 도덕이다. - P40

게다가 크라프트에빙이 지치지 않고 강조한 것처럼, 성이 노동과 경제적 성취, 예술적 취향, 종교성에 스며드는 것이라면, 그 윤리에는 당연히 노동, 재산, 미적 취미, 종교적 경건성이 포함된다. 이는 그러한 부르주아적 윤리와 문화 및 성취를 거부하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도착 혹은 잠재적인 성도착 혐의가 씌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 P41

크라프트에빙의 성 개념에는 또 한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도덕은 무릇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크라프트에빙이 성 개념을 논할 때 사회가 언급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 P42

크라프트에빙의 과학적 성에서 진화론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국가와 사랑이 그것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감각적인 성"의 창궐은 "국가의 파멸, 국가의 물질적·도덕적·정치적 파탄"을 낳는다. 따라서 성과 성 병리는 국가적인 문제다. - P42

(전략).
크라프트에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플라톤적인 사랑"이 "괴물"이자 "자기기만"이라고 단언한다. 사랑의 뿌리는 "감각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성 무능력자는 남성다운 특징을 상실해버리고 급기야 자신감마저 잃어버린다. 그런 남자는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무기력하고, 자존감과 명예심을 잃고, 타인과 불화하고, 우울한 인간이 된다.¹⁵ - P43

10 R. v. Krafft-Ebing, Psychopathia Sexualis, p.13 - P525

크라프트에빙에게 인간 진화의 역사란 동물과 다름없는 생식적인 성이 도덕과 낭만적 사랑에 의해 관리되는 단계로 진보하는 것으로, 그로부터 이탈하는 성은 의당 해당 공동체를 퇴보로 이끈다.  - P43

 퇴행론은 『성 정신병리』의 모든 맥락에서 튀어나온다. 그는 심지어 열정적인, 즉 "감상적인sentimental"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조차 "유전적으로 취약한 인물"로 평가한다. - P44

동성애와 성 인격

지금까지 우리는 크라프트에빙의 성 범주화가 과잉과 과소에 입각해 있었다는 점에서 시작하여 그 진화론적 함의까지 추적해왔다. 그러나 이 분석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성 유형을 건너뛰었다. 바로 우리의 주제인 동성애다. - P45

동성애에 대한 크라프트에빙의 설명은 아주 간명하다. 남성 동성애자는 신체는 남성인데 정신은 여성인 사람이다.  - P45

사상사적으로 보아, 크라프트에빙에게 젠더라는 기준을 전해준 사람은 카를 하인히리 울릭스Karl Heinrich Ulrichs였다. - P45

변호사였던 울릭스는 1864년부터 1879년에 이르는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총 열두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고, 동성애 처벌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쳤으며,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의 합법화까지 주장했다. - P46

젠더 문제, 특히 여성성 문제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인간과 세계를 관찰하는 지배적인 담론이었다. 물론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발상이 19세기에 와서 비로소 부각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전근대의 서양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 다른 존재였다.  - P47

(전략).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몸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발달이 상이하게 전개되어, 예컨대 여성의 자궁은 뒤집힌 페니스로 간주되었다.
또한 전근대 여성은 신의 뜻에 따라 출산을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되었으나, 여성성은 결코 생식 기능에 한정되지 않았다. - P47

흥미로운 점은 몸을 자연화한 그 과정을 이끈 것이 여성성 담론이었다는 사실이다. (중략), 묘하게도 의사들은 여자를 사랑과 모성에 국한시키면서도 동시에 자연적인 성에 좌우되는 존재로, 그것도 성기에의해 좌우되는 존재로 표상했다. - P48

크라프트에빙의 젠더는 19세기 후반의 성 담론 지형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남자의 성욕은 "공격적이고 질풍노도"와 같으며 "적극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이 남자의 전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 P49

그는 그 이분법을 그가 공들여 논한 모든 성 병리에 적용했다. (중략), 때리거나 깨무는 것은 남자의 속성인 "공격성의 표현이다. 바로 그 때문에 사디즘은 주로 남자에게서 나타나고 여자에게서는 드문 편이다. 마조히즘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것은 여자의 속성인 "수동성"이 병적으로 타락한 현상이다. - P49

페티시즘의 경우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젠더에 중립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50

남녀이분법의 역전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성 유형은 동성애다. 우선 지적할 점은, 그가 여자 동성애자를 별도로 논하지 않고 그저 남자 동성애자의 작은 일부로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전반적인 경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 P50

또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그가 동성애를 분류할 때 우리가 이제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기준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선천"과 "후천"이 그것이다. - P50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학문 내적 차원의 이유를 들 수 있다. 당시 정신의학은 생물학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중략).
인간의 외부가 인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또 다른 학문은 심리학이다. (중략). 예컨대 프로이트가 프랑스의 히스테리 연구를 둘러본 때가1880년대 중반이다. - P51

정치적이고 법률적인 이유도 있었다. 만일 동성애를 선천적인 것이라고만 규정하면 이에 대한 처벌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근대 서양의 형사법적 원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 P51

마지막으로 의료의 차원이 있다. 선천설을 택하면 의사에 의한 치유는 사실상 배제되고, 후천설을 택하면 의사에게 활동 공간이 열린다. 동성애의 의료적 · 법적 차원은 『성 정신병리』의 두 번째 부제가 "의료·법의학적 연구"인 것에서도 드러난다. - P52

(전략), 크라프트에빙이 선천적 동성애자의 경우 친인척들 역시 신경 정신병리를 앓는다고 주장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유전론이다. - P53

그러니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동성애자가 여성화된 남성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역전된 성 감각"을 크라프트에빙은 성도착으로 간주했다. - P53

(전략). 그러나 『성 정신병리에 담긴 크라프트에빙의 시선은 그 일반명제가 함축하는 것과 종류가 다르다. 크라프트에빙은 그 책에서 객관적인 진술 뒤의 구조로서만이 아니라, 환자들과 함께 직접 등장한다. 그는 그 책에 다른 연구자들이 공개한 환자에 대한 기록, 자신의 임상기록, 그를 찾아온 환자와의 대화 내용, 그에게 발송된 환자의 편지 등을 통째로 제시해놓았다. 사실 크라프트에빙의 책이 그토록 인기를 끌고 영향력을 발휘한 것도, 성 병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 외에 그러한 기록들, 즉 개별 사례들이 외치던 목소리 덕분이었다. - P54

당사자의 목소리가 책에 등장한 것에도 역사가 있다. 동성애로 국한시킬 경우 독일에서 그 시작은 크라프트에빙의 선배 법의학자인 카스퍼Johann Ludwig Casper가 했다. - P54

동성애를 하나의 인격으로 구성하려는 크라프트에빙의 시선은 광범하고 집요했다. 그는 부모의 신체, 직업, 병력, 특히 신경병의 유무, 사망원인, 특히 자살 여부를 물었고, 가능하면 조부모와 사촌들도 살펴보았다. 당사자 유년기에 대해서는 언제 처음 글을 배웠는지, 인형놀이를 했는지 병정놀이를 했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놀이 장소는 집안이었는지바깥이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자주 아팠는지, 학교 성적은 어떠했는지, 어떤 과목에 관심이 갔는지, 성에 대해서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몽정 혹은 자위는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경험했는지, 성교는 언제가 처음이었는지, 그 대상이 이성이었는지 동성이었는지, 그때 느낌은 어떠했는지 등등을 물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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