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멀게는 약 2,800여 년 전부터 여러 시인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들 속에 다양한 신화들이 보전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데, 그 시인들은 스스로 무사의 대변인을 자처했습니다. 다시 말해 무사 여신의 신비로운 언어를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해 주는 이들이 시인이란 말입니다. - P126

옛 그리스의 시인들은 주로 영웅들의 이야기를 노래했는데,
영웅들은 신들의 자식들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신들의 이야기가 곁들어졌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을 노래한 호메로스가 대표적인 시인이지요. 호메로스가 탁월한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남긴 것과 달리, 인간들의 탄생을 노래하면서도 이전 신들의 탄생과계보만을 따로 모아 노래한 시인도 있습니다. - P126

 짧은 삶을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영원한 신들을 노래하고 영웅들의 불멸하는 업적들을 이야기할 수있었을까요? 그들의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 진실성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 P127

 최초의 시인이라 알려진 호메로스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무사 여신에게 노래해 달라고 명령하면서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마치 하늘 높이 치솟은 올림포스산에서 무사 여신들이 시인의 외침을 듣고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곧바로 땅으로 내려와 시인과 하나가 되더니, 시인의 목소리로 노래를 해 주는 것 같지요. - P127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이아손의 모험을 노래한 아폴로니오스(Apollonios Rhodios)도 그랬고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트로이아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는 아이네아스 (Aenes)의 모험을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P127

왜 그랬을까요? 그냥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지어낸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내면될 텐데, 왜 그리스와 로마의 시인들은 무사 여신을 불렀던 걸까요? 정말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들을 불렀던 것일까요? - P127

 아마도 그런 청중을 단숨에 침묵시키기 위해 시인은 무사에게 도움을 청한것 같습니다. 무사 여신들이 시인에 빙의되어 입을 빌어 노래한다면, 청중은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곧 무사의 이야기라고 믿을 테니 말입니다. - P128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신들도 많은데, 왜 하필 무사 여신들을 부를까요? 어째서 무사 여신들은 시인들의 노래에 진실성을 보증하는 힘을 가진 걸까요? 무사 여신들은 모든 것을 아는 기억의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시인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지요. - P129

제우스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와 싸워 승리를 거두고 권좌에 올랐습니다. 제우스는 권력의 기반을 잘 다져 놓은 후, 자신의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고 노래할 수 있는 신들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 P129

앞서 말했듯, 무사 여신들의 기술을 ‘무시케‘, 즉 ‘뮤직‘, ‘음악‘
이라고 합니다. 문자가 없었던 시절, 인간들이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심장의 박동 수에 어울리는 운율에 따라 노래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 P130

역사는 한 공동체가 꼭 간직해야 할 집단의 기억이라 할 수 있으니, 무사 여신들이 관장하는 것이 맞겠지요. 무사의 기술인 무시케, 즉 음악은 정보를 담는 수단임과 동시에 그 내용이기도 했고,
그를 통해 쌓이는 교양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 P130

2부 14장

디오뉘소스,
포도주의 신이 되다 - P209

 그 박카스(바쿠스)가 사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포도주의 신 디오뉘소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디오뉘소스는 제우스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헤라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었던 세멜레였죠. 세멜레는 원래 제우스 신전의 여사제였습니다. - P209

제우스는 독수리의 모습을 벗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인간의모습이지만 사실은 제우스다 밝히니, 그녀도 자기가 모시던 제우스를 맞이하며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P209

그러나 이걸 본 헤라는 질투심에 불타올랐죠. 세멜레를 없애버리고 싶었습니다. 헤라는 세멜레의 유모였던 늙은 베로에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세멜레에게 다가갔습니다. 세멜레는 그녀에게모든 것을 털어놓았죠. "유모, 저는 지금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고있어요. 제우스의 아이까지 가졌어요." 임신을 직접 확인한 헤라는 더욱더 화가 났습니다. - P210

헤라는 흔들리는 세멜레의 마음에 의심의 불을 질렀습니다. "세멜레, 아이를 낳기 전에 당신이 만나는 그 청년이 진짜 제우스인지 꼭 확인해보세요. 다음에 만나면 진짜 모습을 보여 달라고하세요. 만약 그 남자가 거절한다면, 그건 그가 제우스가 아니라는뜻이죠. 제우스를 사칭한 사기꾼 난봉꾼인 거예요" - P210

맹세를 확인한 세멜레가 말했죠.
"제 소원은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는 거예요. 당신이 헤라 여신을 만날 때의 모습 그대로 저에게도 나타나 주세요" 제우스는 깜짝놀라서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엎질러진 물처럼 흘러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었죠. - P210

 인간 여자가 제우스의 모습을 직접 보면, 홀랑 타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우스가 평범한 인간의 몸을 벗어 버리고 벼락을 가진 채 번쩍이고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세멜레는 제우스의 뜨거운 열기와 눈부신 광채를 이기지 못하고 타 버렸습니다.  - P211

헤라는 세멜레를 죽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이를 없애는데에는 실패한 것 때문에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여전했습니다.
그녀는 디오뉘소스를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제우스는 아이를 새끼 염소 모양으로 만들어 헤라의 눈길을 피했다고 합니다.  - P211

그가 자란 사산은 그의 이름에 들어 있죠. ‘디오-(Dio)‘는 ‘제우스의 다른 이름인데, 거기에 ‘사(Nussa)‘
산 이름이 붙어서 ‘디오뉘소스‘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겁니다. 헤라는 디오뉘소스가 청년이 될 때까지도 계속 괴롭혔지요. - P211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여정이 나중에 동방 원정을 갔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의 여정과아주 비슷하고,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알렉산드로스는 폭음을하면서 디오뉘소스 코스프레를 했다고 합니다. - P212

세계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디오뉘소스는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의젓한 신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마침내 헤라의 영향에서도 벗어납니다. 승리자가 된 그는 올림포스로 돌아왔습니다. - P212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낙소스섬에 버려두고 간 아리아드네 (Ariadne)를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 행렬의 도중이었다.
고 합니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디오뉘소스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아내로 맞이해서 올림포스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 P212

부활한 어머니의 이름을 튀오네(Thuāne)라고 바꾸고, 함께 올림포스로 승천합니다. 이때는 헤라도 옛일을 잊고 디오뉘소스와 튀오네를 환영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제우스가 모든 역경을 이겨 내고 돌아온 디오뉘소스를 보고기뻤했죠. - P212

이렇듯 디오뉘소스는 자수성가형 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P214

우리는 디오뉘소스를 단순히 포도주의 신으로만 알고 있는데, 포도의 재배, 농업과 생산의 신이라는 게 더 중요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죽음의 땅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새롭게 태어나는 봄은 부활의 계절인데요, 바로 디오뉘소스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 P214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에 한번 실컷 놀아 보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놀기만 한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풍요를 준비하는 진지하고 경건한 태도도있었던 것이죠.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 그리스로마 신화 음악을 들었다.
좀 많이 달랐다.


그리스어 중에는 발음 때문에 우리에게 오해를 일으키는 말이 있습니다. ‘무시케 (Mousike)‘가 대표적입니다. 아저씨 개그 같지만,
우리말 ‘무식해‘와 똑같이 들리기 때문에 원래 뜻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무시케는 원래 ‘무식‘을 벗어나기 위한 ‘교양‘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 P125

 영어로 읽는다면, 오해는 단숨에 사라집니다. ‘뮤즈(Muse)‘ 여신이니까요. 우아한 자태에 신비롭고 흥겨운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지요. 그들의 기술이 바로 ‘뮤직 (Music)‘입니다. - P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기와 질투라는 이 감정은
어디서 온 걸까요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Mensonge romantiqueet vérité romanesque》, 1961년 - P315

아주 많이 읽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설도 읽습니다. 전 사회학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문학 전문가는 아닙니다. 문학비평관련 책이나 문학 작품은 어디까지나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읽습니다. 저는 자신의 직업적 범주를 넘어선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교양독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P317

지금 함께 책상 위에 펼쳐놓은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전공 분야의 틀로 분류하자면 문학비평서입니다. 그렇지만 사회학자인 제가 볼 때 르네 지라르를 그저 문학비평가라고 부르면 왠지 그를 다 포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사회학적 색채도 강합니다. - P318

사회학적 글쓰기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이 많이 사용되기에 사회학 전공책은 읽기에 살짝 뻑뻑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점철되어 있는 텍스트에서는 학문과 삶의 구체적인 연관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P318

소설을 통해 사회학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 관한 탐구를 배우고 익히고 엿보고 따라하고 싶은 거죠. 제게 소설 읽기는 교양독서이지만, 교양독서는 제 전공독서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 P318

사회 현상은 맥락 없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시간을 경과하며 형성된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과정을 되살펴보는 건 사회학 연구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사회학 책을 통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 P319

예를 들어서 한국의 1970년대를 사회학적으로 기술하면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서구적라이프 스타일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대‘라고 기술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정서를 상상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요. 1970년대를 다루고 있는 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다릅니다. - P319

교양독서를 통해 역으로 제 전공 공부에 도움을 많이 받은소설의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주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 의 <눈먼 자들의 도시》입니다.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맹목니다. 맹목은 사회학뿐만 아니라 철학에서도 중요한 비유로 사용됩니다. - P320

 실제로 사람이 맹목적이 되었을 때 그리고 맹목적인 현상이 한 개인에게서만 나타나지 않고 집단으로 나타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해괴함을 정말 섬뜩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 P321

입에 넣으면 거칠어서 도저히 씹을 수 없었던 바짝 마른 미역과 같았던 ‘맹목과 이성의 쇠퇴‘라는 사회학의 개념은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거쳐 입에서 보들보들한 식감과 바다 냄새를 풍기는 미역으로 바뀌었습니다. - P321

사회학은 논픽션이고 소설은 픽션입니다. 글을 쓸 때 사회학에서는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는 명사가 중요하지만 문학에서는 정서를 빚어내기 위해 부사와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지요. - P321

사회학과 문학의 연결을 강조하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과 후배 사회학자가 나누었던 대담을 엮은 《사회학의 쓸모》라는 책이 있습니다. 후배 사회학자가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문학과 사회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입니다. - P322

 이 질문에대해서도 바우만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의 소설 《커튼》을 예로 들어 답합니다. 소설 속에 마법의 커튼이 등장하죠. 마법의 커튼은 현실을 가리는 커튼이에요.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만들기 위해 커튼은 지켜보는 눈을 가리죠. - P322

이 마법의 커튼에 지속적으로 ‘구멍 내기‘라는 행위는 매우 용기있는 사람의 소명인데요, 이 소명을 사회학과 문학이 공유한다는 게 바우만의 생각입니다. - P322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들어가기 전 해야 할 예비 작업이 있습니다. 누구나 시대를 살고있잖아요. 호흡으로 시대의 공기를 마시죠. 호흡을 할 때 산소를 마시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대적 분위기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 P323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사회적 성격은 1950년대의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데이비드 리스DavidRiesman이 쓴 《고독한 군중》에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 P323

데이비드 리스먼은 칸막이 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개인을 관통하는 공통적 요소에 주목하고 그걸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합니다. - P3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연 독서는 좋은 것인가?
이 책이 교양을 줄 순 있지만, 직접적인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데는 부적합하니,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만이 도출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태초에 가장 먼저 카오스가 생겨나고, 이어 가이아, 타르타로스, 에로스가 줄줄이 태어나고 그들이 자식들을 낳으면서 세상은 온통 신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신들의 세상에 인간들이 나타난 걸까요? - P287

최초의 인간은 황금 종족이었습니다. 크로노스가 천하를 지배하던 시기 그러니까 아마도 제우스가 크레타섬 동굴에서 숨어지낼 때, 아니면 제우스가 태어나기 이전에 생겨난 것이겠지요? - P287

낙원에 지내듯이 매일을 축제처럼 즐겁게 지냈습니다. 몸도 건강해서 노년을 비참하게 보낼 일이 없었고, 죽을 때도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드는것 같았다고 합니다. - P288

두 번째 인간은 은의 종족이었다고 합니다. 올림포스의 궁전에 사는 신들이 이들을 만들었다고 하니, 크로노스의 시대가 저물고 제우스가 권좌에 오른 시기에 태어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들은 황금 종족처럼 신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 P288

 특히 신들에게 불경스러웠는데, 제물 바치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하네요.
제우스가 마침내 안하무인으로 제멋대로였던 은의 종족들에게 노여움을 폭발시켜 이들을 땅 위에서 감춰 버리자 가이아 여신이 그들도 받아 땅 아래로 숨겨 버렸다고 합니다. - P288

세 번째 인간은 청동 종족이었는데, 청동 무기와 농기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청동 종족이었지만, 제우스가 이들을 직접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 P288

이들은 은의 종족보다 훨씬 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고, 그에 따라 성품도 거칠고 난폭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적대감이 생겼고, 서로 싸우며 죽이는 잔혹함이 용맹스러움으로 찬양되기도 했습니다. 탐욕과 폭력에 물든 그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는데, 이는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 P289

네 번째 인간은 영웅 종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웅은 반신반인의 존재였으니,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났던 겁니다. 제우스가 이 영웅 종족을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 P289

그런데 왜 올림포스의 신들은 갑자기 인간들에게 매력과 욕정을 느끼고 잠자리를 같이해서 영웅 종족을 낳았을까요?
하지만 영웅 종족도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테베와 트로이아에서 전쟁이 일어난 후 영웅 종족이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일부는 죽고, 일부는 세상의 끝에 있는축복의 섬 엘리시온 들판으로 가서 아무 근심 없이 살고 있다고하네요.  - P290

청동 종족과 영웅 종족이 사라지자, 철의 종족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사악했고, 삶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부모에게 은혜도 갚지 않고, 폭행을 일삼으며 힘센 사람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 P290

그런데 가만 보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바로 우리가 철의 종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도 이전 종족의 인간들처럼 신들의 저주를받아 이 땅에서 사라져 지하 세계로 삼켜져 버리진 않을까요? - P291

플라톤에 따르면, 황금을 품고사는 사람은 외부의 황금에 초연하며, 쇠와 청동을 가진 사람은 황금을 갖고 싶은 탐욕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타고난 품성이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 P292

그런데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웅 종족의 본성도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으로서 명백한 한계를 품고 살지만, 그 한계 너머로 신들과도 같은 무한한 힘과 능력, 공간을 생각하고 영원한 시간과 존재도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초월적인 열정에 몸살을 앓곤 하니까요. - P292

1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1장

카오스,
천지 창조의 하품을 하다 - P19

 카오스가 생겨나기 전엔 아무것도없었죠. 카오스는 최초의 존재였고, 최초의 신이었습니다. 누가 그를 낳은 것도, 만든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혼자서 생겨난 겁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P19

실제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카오스‘라고 부르기도 했죠. 원래 이 말은 ‘하품‘이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품을 하면 입안이 넓게 벌어지면서 텅 비게 되지요. 바로 그런 공간을 카오스라고 불렀던 겁니다. - P19

‘태초‘라는 말도 흥미롭습니다. 그리스어로는 ‘아르케 (arkhē)‘
인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렇게 정의했죠.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뒤로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너무나도 명쾌한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카오스가 생겨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나?"라고 물을 수 없습니다.  - P20

뭐라도 있어야 ‘상태‘라는 말을 쓸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상태‘라는 말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요? 좀 더 쉽게 비교를 해 보죠. 내가 살고싶은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그러려면 일단 집을 지을 땅이 있어야겠죠. 텅 빈 터가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을 테니까요. - P20

비슷한 논리로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ěs)는이런 말을 했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며,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 P20

그런 점에서 보면, 그리스 신화의 첫 구절은 매우 논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신화도 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고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니, 존재를 논하려면 먼저 존재가 자리 잡을 공간을 깔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P21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물을 겁니다.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기 전에 먼저 하늘과 땅이 자리 잡을 공간부터 펼쳐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태초에 신이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던 거지?" 성경은 이렇게 답했을지 모릅니다. "공간은 태초부터 그냥 있었던 거야. 마치 신이 그랬던 것처럼!" - P21

 세상에, 카오스로부터 신화를 시작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존재의 전제로서 공간을, 세상에 관한 이야기의 전제로서 카오스를놓는다는 발상 말입니다. - P22

 이런 생각만 해도 그리스 신화의 첫 구절, 기가 막힙니다. 제가 인생에서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을 때, 제 아내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어." 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이유는 결국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놓지 못하고 아까워하며 집착했기 때문이었죠.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실험이 전부라면 수리물리학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실험물리학은 쓸모없어 보이고 심지어 위험할지도 모르는 수리물리학이라는 조수를 데리고 무엇을 해야 했을까? - P165

관측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측을 이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반화가 필요하며, 늘 이렇게 이루어져 왔다. - P165

매 시대마다 이전 시대는 조소의 대상이 되고, 일반화가 너무 성급히또 너무 미숙하게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데카르트는 이오니아인을 측은히 여겼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그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 P166

과학자는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집이 돌로 지어지듯이 과학은사실로 세워지지만, 돌무더기가 집이 아니듯 사실의 축적이 과학은 아니다. - P166

그러한 것을 백 번, 천 번 해 보았자, 예를들어 파스퇴르와 같은 진정한 거장의 작업 단 한 번이면 그것들을 영원히 잊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베이컨은 이를 완전히 이해했을 것이다. - P167

사실은 사실이다. 한 학생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온도계의 눈금을 읽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는 그것을 읽었고, 오로지 사실만이문제라면, 이는 무지왕 존의 편력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재다. - P167

 단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유사한 환경에서 유사한 사실이 발생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유사성을 내세워야 하며, 이는 이미 일반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 P167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질서 정연한 과학, 혹은 차라리 조직화된 과학이 필요하다. - P168

만일 우리가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선입견까지 들여놓는다면 사태를더 악화시키기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해독제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