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발적인
도입부 만들기


1장

프롤로그는
예고편이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지는 작가로서 내려야 하는 가장중대한 결정 중 하나다. (중략). 이야기를 어떻게 여는 것이 좋을지는 아무래도 문체, 장르, 작가의 창조적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 P23

프롤로그 매혹하기 활용법


프롤로그도 쓰고 첫 번째 장도 쓴다면 이야기의 도입부에매혹하기 수단을 두 번 배치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커다란 질문을 두 가지 던질 수 있다. 다만 이때 프롤로그가 첫 번째 장에서 끌어올릴 긴장을 반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작품의 미스터리 요소를 프롤로그에서 밝혀버리는 - P24

이중 매혹하기 구조를 사용할 때는 각각의 매혹하기 내용이 ‘서사에 필요한 서로 다른 질문‘을 겨냥하도록 해야 한다. - P25

어떤 종류의 매혹하기를 활용할지도 중요하다. 프롤로그의 이점은 프롤로그가 있으면 다른 인물의 시점이나 다른 시간 또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심 서사의 흐름상 인물들은 결코 알 수 없으나 작품의 긴장을 구축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장면을 프롤로그에서 보여줄 수도 있다. - P25

없느니만 못하다면 쓰지 말자

프롤로그는 독자가 작품을 처음 만나는 부분이다. 따라서작가는 독자에게 이 부분이 왜 필요한지 더욱 빈틈없이 따져봐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따져보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 P26

그렇다면 인물의 전사를 중심으로 쓴 프롤로그는 언제 필요할까? 인물에게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 독자가 미리 알아야 할 것 같아 프롤로그에 집어넣으려는 작가들이 많다. 하지만 인물의 전사는 대체로 나중에 회상 장면을 통해 제공하는 편이 낫다 - P28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요소를 설명보다 훨씬효과적으로 전달한다면 ‘필요한‘ 프롤로그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인물의 전사 중심으로 쓸 때는 독자가 ‘첫 장‘의 내용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사항만 담는 편이 적절하다. - P29

독자가 싫어하는 설명 끼워팔기

프롤로그에 대해 편집자나 에이전트, 출판사, 독자들로부터 가장 쉽게 날아드는 비판은 설명만 줄줄 늘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SF나 판타지 작품이 이런 비판을 자주 받는다. - P30

미스터리 활용하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장‘이 1장이라기보다 프롤로그에 가깝다. (중략). 이 설명들이 모여 반쯤 완성된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만들어내고, 이때 독자는 주어진 ‘설명‘ 자체보다 새로 드러난 ‘질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 P31

감정에 호소하기

(전략).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드래곤과의 춤》에서 알 수있듯, 두 소설의 작가들은 서사의 틀을 짜는 데 필수적인 설명만을 전달한다. 즉, 1692년에 제정된 마법사 비밀 법령에 관해 털어놓지 않는다. - P32

짧을수록 좋다

프롤로그의 길이에 관한 한 대다수 편집자와 에이전트가짧은 것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바타:아앙의 전설>은 프롤로그가 1분 17초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평균 22분인 데 비하면 무척 짧은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다. - P34

프롤로그를 망친 명작

크리스토퍼 파올리니가 쓴 《유산》 시리즈의 《에라곤》은 드래곤 라이더와 매력적인 요정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그린 작품으로 이 책의 독자 가운데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 P34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판타지 부문의 장르를 정립했기에, 독자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판타지 소설에 대해 당연히 톨킨 풍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36

바쁜 작가를 위한 n줄 요약

1

서사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매혹하기 내용을 프롤로그와 첫 번째 장에 배치하라. (후략).

(중략).

5
무엇보다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라. 작가의 유일한 책무다. - P37

3장

설명은 필수,
방법은 선택


설명을 전달하는 것은 형제자매의 결혼식장에서 그들에게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척 까다롭지만, 꼭 해야 한다. 지금부터 설명에 대해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 P55

설명이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뜻한다. 인물의 전사, 작중 마법 체계의 작동 방식, 또는 어쩌다 반동 인물이 권력을 손에 쥐게 됐는지, SF 작품이라면 어떤 기술이 상용화된 세상인지, 그리고 초지능적 레밍들이 사회를 통치하는 방식, 작중 도시 국가에서 호박에 기초한 경제 체제가 돌아가는 양상 등 거의 모든 것이 설명의 대상이 된다. - P55

 설명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이야기를 독자가 이해하도록 돕는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다. 그렇지만 설명을 이야기의 맥락속에서 재미있고 논리적이며 기억하기 쉽고 수긍이 가도록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P56

 이를 중심으로 설명 전달 방식을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눠분석해보자.

1. ‘어떻게‘ 설명을 전달할 것인가?
2. ‘무슨‘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
3. ‘언제‘ 설명을 전달할 것인가? - P56

멋모르는 시점 인물을 통해

설명이 까다로운 까닭은 우선, 작가가 전달해야 하는 정보중 절반은 독자는 모르지만 모든 작중 인물이 이미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 P56

그래서 설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이 상황을 모르는 시점 인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인물은 마법, 기술, 또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서, 독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말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 인물이다. - P57

상황을 모르는 시점 인물은 주인공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된다. 게다가 상황을 모르는 시점 인물은 독자가할 법한 질문을 똑같이 할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에게 정보를 전하는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 P57

상황을 모르는 시점 인물이 설명을 접함에 따라 ‘개인적‘ 영향을 받으면 독자도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P59

상황을 모르는 시점 인물을 활용하는 작가들은 기억 상실장치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자주 눈에 띄지만 조금 안일하다고 할 수 있는 수단이다.  - P59

공짜가 아니면 오히려 좋아

독자란 본래 호기심이 많은 존재로, 이 점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비법이 있다. 바로 독자가 노력해야 설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P60

교황이 수영을 하는 동안


이제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설정하기도 곤란하고 서사적 보상 전략을 쓰기에도 무리가 있는 설명들이 남아 있다.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SAVE THE CAT! 모든 영화 시나리오에숨겨진 비밀》은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훌륭한 책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공한다. 바로 ‘교황이 수영을 하는 동안‘이다. - P62

‘교황이 수영을 하는 동안 전략은 독자가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거뜬히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놀랍더라도 억지로 꾸며낸 듯 부자연스러운 장면은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 P63

인물 창조

설명을 전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설명을 인물 창조의 맥락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 P63

갈등 일으키기

‘교황이 수영을 하는 동안‘ 전략을 활용하는 두 번째 방법은 갈등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설명을 담는 것이다. - P66

설명을 전달하는 데 갈등을 이용하면 설명을 하는 인물이누구인지에 따라 그의 개인적 신념을 드러낼 수도 있다. 작중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들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으며, 설명의 주체가 된 인물의 대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갈등에 얼마나 다양한 세력이 엮여 있는지도 보여줄 수 있다. - P67

환경 설명

대다수 작가가 환경 설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말하지 말고 보여주기‘라고 부르는 규칙을 다룰 때 흔히 나오는 조언이 바로 환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 P67

환경 설명은 인물들 간의 대화로는 자연스럽게 드러내기어려운 세계 설정과 관련된 요소들을 구축하는 데도 특히 효과적이다. - P68

무엇을 설명할지 고르는 법

무슨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는 작중 세계를 창조하는 재미에 푹 빠진 작가들이 고심하곤 하는 문제 중 하나다. - P69

문제는 이 모든 사항이 독자에게 중요하거나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이 만든 세상의 모든 부분이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돼야 할 필요는 없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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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세계사의 과거 수 세기 동안 흔히 사용된 쿠데타 방식이 아닌 합법적 선거로 선출된 공모자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 음모였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음모론자들이 품어온 우려가 구체화된 사례다. - P67

2010년대에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준비 기간의 광기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이 선거 기간과 트럼프 당선 후 기이한 음모론이 속속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는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 중 일부가 ‘Q‘와 ‘QAnon‘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음모론이다. - P68

또한 이런 음모론은 2016년 ‘피자게이트Pizzagate‘ 음모론으로 이어졌는데, 이 음모론의 주창자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힐러리가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사업을 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피자게이트 음모론을 믿은 한 젊은남자가 변태 행위를 척결하겠다며 AR-15 소총으로 한 레스토랑 가게를 난사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음모론적 망상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P69

거짓은 진보를 가로막을 수 없다

탈진실 시대의 진실스러움에 대한 진실

마이클 셔머 Michael Shermer


어휘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사전학자들은 어휘의 용법과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한다. 그 속에는 문화적 동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 P151

2017년 1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후, 그의 선임고문인 켈리앤 콘웨이 Kellyanne Conway는 NBC <밋 더 프레스Meetthe Press>에 출연해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 Sean Spicer가 취임식관람객 규모에 대해 잘못된 진술을 한 것을 옹호하며 ‘대안적 사실‘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후략).³ - P151

3 Interview with Kellyanne Conway. January 22, 2017. NBC Meet the Press. https://nbcnews.to/2wjC7bB - P164

그해 독일의 언어학자들은 대안적 사실을 ‘올해의 비언어‘로뽑았다. 이후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는 한 해 동안 사용량이 365퍼센트 증가하며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 P152

우리는 정말로 진실스러움, 가짜뉴스, 대안적 사실로 대변되는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 P152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스켑틱> 21호에 기고한 글 ‘탈진실을 넘어 사실의 세계를 향하여‘에서 왜 그렇지 않은지 설명한다. (중략). "우리는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문장은 참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말은 진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당신이 이 말이 참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당신이 이말이 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우리는 탈진실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는 뜻이다.  - P152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탈진실은 분명 진실이 이용(또는 오용)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핑커와 나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킨타이어는 핑커(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의 탈진실에 대한 주장을 (1) 진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2) 진정으로 진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없고, (3) 아무도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4)이 시대가 정말로 탈진실의 시대라면 우리는 그냥 다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으로 일축하며 핑커가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P154

 한나 아렌트가 썼듯이 어떤 사람들은 분명 사실과 허구,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그러나 사람들이 실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이들은 다른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고자 사실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 P154

언론인인 캐머로타는 범죄율의 장기적인 감소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치인인 깅리치는 사람들이 범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에 호소하여 지지자를 결집하려 한다. 깅리치는 시카고 · 볼티모어 · 워싱턴 등 최근 범죄율이 치솟은 도시들의 통계를 인용했고, 이 수치가 사실임을 캐머로타도 인정했다. 두 사람이 인용한 통계는 모두 사실이며, 따라서 최근에 등장한 탈진실스러움의 사례로는 볼 수 없다.  - P156

그보다는 1940년대 이후 등장한 추억의 ‘스핀 닥터**‘가 탈진실스러움에 더 가까운 사례다.


**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대국민 언론 담당자. 어떤 사안에대해 정부에 자의적으로 유리한 해석을 내리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 P156

탈진실이란 개념조차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이란 단어의 연대를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P157

즉 탈진실스러움이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용성 편향이 최대치로 증폭됨에 따라 2016년 ‘탈진실‘이란 단어는 그 이용 빈도가 이전 해에 비해 2000퍼센트 급증했고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되었다. 《옥스퍼드 사전》은 이 단어를 "여론의 형성에 있어서 감정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대한 호소보다 객관적 사실의 영향력이 더 낮은 상황을나타내거나 그와 관련된 단어"로 규정했다. - P159

사전 편집자들이 탈진실 언어가 급증했다고 염려하고 정치 전문가들은 진실의 종말을 고하며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공화국이라고 선언하는 오늘날, 사상의 인터넷은 비이성의비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로서 ‘실시간 사실 확인‘을이용해왔다. 정치인들이 연설 중 낡고 오래된 스핀 닥터 기술을 이용해 진실을 이용하려 들면 팩트체커들이 그 연설에서 오류와 거짓말을 추적하고 진실, 대부분 진실, 반쯤 진실, 대부분 거짓, 순거짓말 중에서 등급을 매긴다. - P160

인지과학자 위고 메르시에Hugo Mercier는 2020년 저서 《어제 태어나지 않았다Not Born Yesterday》에서 제이슨 브레넌Jason Brennan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를 인용하며 "인간은 속기 쉽고 인간의 뇌는 진실을 추구하도록 배선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권위에 의존하고 획일적인 의견에 굴복한다는 생각에 반하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 P160

 메르시에가 말하듯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면 그것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한다. 다른 적절한 단서가 없을 때 그 아이디어가 우리의 선입견이나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거부한다.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신중히 지속된 신뢰, 명확히 입증된 전문성 그리고 건전한 논증이 필요하다."²¹ - P161

21 Mercier, Hugo. 2020. Not Born Yesterday: The Science of Who We Trust and WhatWe Believ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7, 270-271. Quotes fromrennan are in: Brennan, Jason. 2019. Against Democracy, Princeton, NJ: PrincetonUniversity Press, 8. - P165

메르시에는 왜 잘 속는 동물은 진화할 수 없었는지를 보이며책을 시작한다. - P161

메르시에는 히틀러와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독일인이 나치 이념과 나치 정권이 제시한 대부분의 강령을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다. - P162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그토록 많은 지적이고 교양 있는 고학력의 독일인이 나치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정답은 "대부분은 아니다"이다. 소련이나 북한과는 달리 나치 정권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위에 세워졌다. 다원적 무지란 어떤 사안에 대해자기 자신은 그것을 믿지 않지만 집단 내 다른 구성원이 그것을 신뢰할 것이라는 믿음을 말한다.  - P163

과학자는 어떻게 가설을 만드는가

전주홍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과학에서 가설의 중요성은 이미 여러 과학철학자가 지적한 바 있다. 칼 포퍼 Karl Popper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에서 시험할 가설이 없다면 자연을 적절하게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P177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자에게 가설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대개 과학자들은 개별 가설들의 타당성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가설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 P177

무엇을 설명하려 하는가

가설은 과학 연구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가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 목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학 연구는 측정결과를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의생명과학에서 말하는 설명은 법칙보다는 기계론 혹은 기전mechanism에 근거한다.² - P178

2 Bechtel & Abrahamsen. Explanation: a mechanist alternative. Stud Hist Philos Biol Biomed Sci. (2005) 36, 421-441 - P194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용어나 개념을 정의하는문제는 대개 철학의 영역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⁵ 실험실에서는 가설, 설명, 기전, 인과관계, 환원주의라는 개념이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개념들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 P178

5 Machamer et al. Thinking about mechanisms. Phil. Sci. (2000) 67, 1-25; CraverCF, Darden L. Mechanisms in biology. Introduction. Stud Hist Philos Biol BiomedSci. (2005) 36, 233-244: Allen GE. Mechanism, vitalism and organicism in late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biology: the importance of historical context. Stud Hist Philos Biol Biomed Sci. (2005) 36, 261-283; Nicholson DJ. The concept of - P194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거절될 때 흔히 접하는 심사 의견 중의 하나가 "기계론적이지 않고 너무 기술적descriptive이다"라는 것이다.⁷ - P178

7 기술적인 것과 기계론적인 것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나 학술지 편집진도 이런 용어의 개념을 명료하게 정의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맥락적 이해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의생명과학에서 물리적 정체나 실체를 밝혔던 연구는 대부분 기술적인데, 이는 세포막의 조성이단백질과 지질로 구성되었거나 염색체가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었음을 밝힌 연구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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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음모론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Michael Shermer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한 오스트레일리아 남성이 총 다섯 자루를 들고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의 이슬람 사원 두 곳에 들이닥쳤다. (중략).
테러범 브렌던 해리슨 탤런트Brenton Harrison Tarrant의 선언문 또한 백인 우월주의 음모론으로 채워져 있는데 "출산율이 문제다"라는 문장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시작한다. (후략). - P59

사람들은 왜 음모론을 믿는가


그렇다면 음모conspiracy란 무엇이며 음모론conspiracy theory 과는 어떻게 다를까? 나는 음모를 ‘둘 이상의 사람이 비도덕적 또는 불법적으로 남들을 이용하거나 해치기 위해 비밀리에 행하는 모의나 행동‘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음모를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음모에 대한 구조화된 믿음‘으로 정의하는 음모론과 구분한다. 음모 이론가 또는 음모론자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가능한 음모에 대해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 P62

음모론은 누가 믿는 걸까? 정치학자이자 음모론 연구자인 조지프 우신스키 Joseph Uscinski와 조지프 패런트Joseph Parent에 따르면 음모론자는 "성별, 나이, 인종, 소득, 정치적 성향, 교육 수준, 직업상의 지위와 별로 관계가 없다." - P63

인종은 대체로 음모론 신봉에 대한 예측 변수가 아니지만, 인종에 따라 받아들이는 음모론의 종류는 대체로 다르다. (중략).
반면 교육은 음모론적 사고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의 42퍼센트는 음모론을 믿는 성향이 강한 반면, 석사 학위 소지자는 전체의 22퍼센트만이 음모론을 믿는다. - P63

인지 편향과 불안한 감정


이와 더불어 음모론을 믿는 또 다른 요인으로 세 가지 인지 편향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현재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재해석하는 경향이다. (중략). 두 번째는 사후과잉확신편향hindsight bias으로 이미 일어난 결과에 설명을 짜 맞추는 경향을 말한다. (중략). 세 번째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동시에 모순된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긴장이다. (후략). - P64

환경을 통제하거나 지배할 수 있다는 감정은 불안을 줄이지만, 반대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은 불안과 음모론적 망상에 불을 지필 수 있다.  - P65

사실로 밝혀진 음모들

연구자들이 대체로 무시해왔지만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종종 음모가 사실로 밝혀진다는 점이다. 음모론자들은 진실인 음모론도 적지 않으므로 실제로 음모의 희생자가 되기 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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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민주주의의
한계

미국 대통령 선거 몇 주 전에 서로 다른 형태의 포퓰리스트 저항세력이 단일한 기치 아래 뭉쳤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국면에서 무장 민병대 집단이 음모론자 및 백신 거부자 집단과 연합했다.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사기라고 주장하며, 선거일을 앞두고 말썽을 빚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반정부와 반反과학을 선동하는 주동자들은 주말에 가장 큰 규모의 민병대 집단 중 하나의 설립자와 합류하여 힘을 합쳤다.‘*

* 「미 민병대가 선거를 앞두고 음모론자들과 손을 잡다. US militias forge allianceswith conspiracy theorists ahead of election", theguardian.com>, 2020년 10월 14일. - P143

(전략).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폭력으로의 비약은 정말 손쉽게 일어난다. 2020년 10월, FBI는 우익 민병대 집단이 미시건 주지사 휘트머Gretchen Whitmer를 납치해서 위스콘신에 있는 보안 장소로 데려가려고 계획했다고 폭로했다. 거기서 휘트머는 ‘반역죄‘로 일종의 ‘인민재판‘을 받게 될 터였다. 민병대 집단에 따르면 휘트머는 주지 - P145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는 수십 년 전에 분명 극좌파 ‘테러리스트‘ 집단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절차들을 접수하고 있다. 물론 이는 두 ‘극단‘이 어떤 식으로든 일치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 P146

트럼프 자신은 여기서 양면적인 게임을 벌이고 있다. 폭력 사태와 음모론을 선동하는 급진 우파 집단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트럼프는 이 집단의 일반적인 애국적 태도를 칭찬하면서 문제적 측면과는 형식적으로 기꺼이 거리를 두고자 했다. 이 거리두기는 물론 공허하며, 순전히 수사적 태도다. - P147

게다가 이런 추세는 미국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 언론을 장식하는 표제 기사를 그냥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된다. - P148

 좀 더 일반적 차원에서 의회민주주의 개념에 내재한 모종의 긴장도 눈에 띈다. 민주주의는 두 가지 사항을 뜻한다. ‘인민의 권력‘(다수의 실질적 의지가 국가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거 메커니즘 자체에 관한 신뢰다. - P148

(전략). 이 두 가지 차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때 문제가 생겨나며, 좌파와 우파는 모두 종종 인민의 실질적 의지가 선거의 형식성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149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비중립성은 위기나 무관심의 순간. 대중이 실질적으로 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민주적 시스템이 반영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때 선명하게 감지된다.  - P150

요컨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십 년이 훨씬 넘게 지속된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그 위기를 어느 한도 이상으로 폭발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분명 모든 소수 의견을 좀더 포괄하는, 모종의 더 ‘진정한‘ 민주주의‘에 있지 않다. - P151

직접적 폭력은 대체로 혁명적이기보다 보수적이며, 좀 더 근본적 변화의 위협에 맞선 반작용이다. 하나의 시스템이 위기를 맞으면 자체의 규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 P152

한나 아렌트는 일반적으로 폭력적 분출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체의 모순들로 인해 이미 수명이 다한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낳기 위한산통이라고 말했다. - P152

 하지만 폭력이라는 ‘산통‘ 없이는 권력의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이양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 P152

그렇지만 오늘날 이 긴장을 야기한 주체는 우파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늘날 좌파의 임무는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지적했듯,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 P153

(전략). 트럼프와 그가 남긴 유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과제는 (그가 2024년에 귀환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념을 죽이는 일이다. 그래서 그를 그의 모든 쓸모없는 허영과 비일관성과 함께 낱낱이 드러내는일이다. - P154

 다시 한번 헤겔적 비유를 들자면, 그의 이념을 죽이는 일은 그를 자신의 이념으로 이끄는 일, 다시 말해 그를 내재적으로 파괴하는 일을 뜻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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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냥 보러 나왔어요."
흑인 여자 하나가 말했다. 또 다른 흑인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중략).
"아니 저 여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 저 여자가 언제 우리를 위해울어준 적이 있어? 어디 말해 봐!"
나도 이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집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황혼이 지는 것같이 노랗고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다시는 쿨리브리를 볼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 - P62

"이모, 서랍 속에서 리본으로 묶인 내 땋은 머리를 찾아냈어요. 처음에는 뱀인 줄 알았어요."
"네 머리칼을 잘라야 했단다. 네가 계속 아팠어. 그러나 이젠 나와 함께 있으니 안전해. 내가 우리는 모두 안전하리라고 말했었지? 침대에서 몸조리를 해야 한다. 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니? 네 머리는 잘 자랄 거다. 더 길게, 그리고 숱도 더 많아질 거야." - P63

"피에르는 죽었지요?"
"피에르는 여기로 오는 도중에 죽었단다. 가엾은 녀석."
‘그 전에 죽었어요.‘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 P64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크리스토핀과 함께 가겠다고 졸랐다. 내 몸이 아직 성치 못한 때문인지 어른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 P65

 어머니가 나를 어찌나 꼭 껴안으시던지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건 내 엄마가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맞아. 틀림없는 내 엄마야.‘ 어머니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셨고, 그러고는 또 문 쪽을 바라보셨다. 나는 감히 "피에르는 죽었어요." 라고 말할 수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 P66

수녀원으로 가는 날 나는 코라 이모를 꽉 껴안고 놓지 못했다. 인생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인생에 죽어라고 매달리듯이 나는 그날 이모에게 죽어라고 매달렸다. - P66

"저 미친 계집애를 좀 보라지. 네 엄마처럼 너도 미쳤지? 네 이모가 너를 왜 수녀원에 보내는지 알아? 너를 집에 두기가 무서운거야. 수녀님들이 너를 수녀원에 가두어두라고 보내는 거란다. 네 엄마는 미쳐서 신발도 양말도 안 신고, 게다가 속바지도 안 입고돌아다닌다며? 네 양아빠를 죽이려 했고 네가 시골집으로 찾아갔을 때는 너도 죽이려고 했다더라. 네 엄마 눈도 네 눈도 유령의 눈이야. 왜 나를 똑바로 못 보는 건데?"
괴상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말했다. - P68

나의적 빨강머리 소년이 담장을 따라 저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중략). 단지 초인종만 정신없이 눌러댔다.
드디어 수녀원 대문이 열렸고, 흑인 수녀님이 고개를 내미셨다. 그러나 수녀님은 기분이 상하신 모양이었다.
"초인종을 그렇게 눌러대서는 안 된다. 나도 벨 소리를 들으면최대한 빨리 달려오는 거란다."
나는 등 뒤로 육중한 수녀원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있었다. - P69

"무슨 일이니? 왜 우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거니?"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수녀님이 내게 우유 한 잔을 가져다주셔서 마시려 했지만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았다. - P70

"우리가 저스틴 원장 수녀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라임주스 원장님이라고 해. 별로 머리가 좋은 분은 아닌 것 같아. 너도 알게 될 거야." - P71

(전략).
저스틴 원장님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테오필루스, 여기 제가 장미를 한 송이 가져왔어요. 당신은 믿지 않는 그리스도, 나의 영원한 배우자의 정원에 피어 있던 꽃이에요. 테오필루스는 침대 곁에 둔 장미가 전혀 시들지 않는 것을보고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 P72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모욕하는 것과 같아요. 그들이 바로 주님께서 선택하신 분들이시니까요."
원장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아주 형식적으로 이 말씀을 하시고는 질서정연한 삶과 정조관념으로 주제를 바꾸셨다 - P73

이제 크리스토핀도 우리를 떠나 아들과 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근황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P75

모든 것은 밝음 아니면 어둠으로 나뉘어 있었다. 수도원의 벽들, 정원에 피어난 꽃들의 선명한 색깔들, 수녀님들의 흰 제의. 이런 것들이 모두 밝음에 속한다면, 수녀님들이 쓰신 베일, 허리로부터 길게 늘어뜨린 묵주 끝의 십자가, 나무의 그림자, 이것들은 모두 어둠이다.  - P77

기도를 하다가 신기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독교에서는 왜 죄가되는 것이 그리도 많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또 죄가 아닌가? - P77

내가 수녀원에 살던 약 십팔 개월 동안 메이슨 씨가 가끔 나를보러 오셨다. 그는 먼저 원장 수녀님과 면담을 했고,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은 후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중략).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 오셨을 때는 무언가가 좀 달랐다. 나는 응접실로 들어서자마자 변화를 금세 알아차렸다. - P78

"거기 말고, 당분간은 자메이카에서 같이 살자. 나하고 네 이모하고, 코라 이모가 드디어 고향으로 온단다. 영국에서 한 번 더 겨울을 지냈다가는 죽을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리처드도 함께 살자. 일생 동안 수녀원에서 숨어 살래?"
‘그러면 왜 안 되는 거지?‘ 나는 생각했다. - P78

우리가 수녀원 대문을 막 빠져나가려고 할 때 메이슨 씨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내가 영국 친구 몇 명에게 다음 겨울은 자메이카에서 보내자고 말해 놨다. 너도 심심치 않고 좋을 것 같아서."
"여기로 올까요?"
나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 명은 분명히 와. 그건 확실해."
메이슨 씨의 웃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나는 혼란과 슬픔. 그리고 상실감에 목이 메었다. - P79

그들은 안전하다. 수녀원 ‘밖‘의 세상이 어떠한지 그들이 무얼 알겠는가?
내가 두 번째 꿈을 꾼 것은 바로 이때였다. - P80

이제 마리 오거스틴 수녀님이 나를 기숙사의 침실에서 데리고나오신다. 내게 어디 아프냐고 물으시고, 다른 친구들이 자고 있으니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직도 몸을 벌벌 떨면서 혹 수녀님이 나를 그 신비한 커튼 뒤 당신의 침대로 데려가시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착각이다. - P81

이제 어머니와 나의 꿈이 한데 섞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닥나닥 기운 옷을 입고 빌린 말을 탄 채 돌을 깐 길위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계신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나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중략).
"너는 그런 인생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두지 마라. 악마가 왜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는지 누가 알겠니. 아무도 모른단다." - P82

제2장

그랑부아



그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전진과 후퇴*도, 의심도 주저도, 좋든 나쁘든 간에, 어쨌든 모든 것은 끝이 난 거다. 

* ‘로체스터의 서술로 시작하는 2장은 ‘성의 정치학‘ 안에서 발생하는 남녀의 갈등은 물론, 제국과 식민지, 흑인과 백인, 자연과 문화, 자연신앙과 기독교, 본능의발산과 절제 등 양극을 이루는 가치관들이 대립하는 장이다. ‘전진과 후퇴‘는 전투 용어로서 그 갈등의 심각성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 P85

옆으로 기울어 슬픈 모습을 한 야자나무며 해안 자갈밭 위로 끌어올려진 고기잡이배들, 삐뚤빼뚤하게 늘어선 흰 오두막집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동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매서커 (대학살)라고 해요."
"여기서 노예들이 학살을 당한 모양이지?"
"네? 아니에요."
충격을 받은 목소리다.
"노예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아주 옛날에 일어난 일인가 봐요.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 - P86

"카로구나."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맞아, 카로, 캐롤라인이야."
앙투아네트가 손을 흔들자 그 여인도 손을 흔들었다. 꽃무늬가 화려한 밝은 색 옷에다 머리에는 줄무늬 수건을 매고 금귀고리를 단 이 늙은 인간은 야하고 품위 없어 보였다.
"옷이 젖지 않겠소?"
내가 말했다.
"아니요. 비가 그쳐가는데요. 뭐" - P87

(전략).
그는 자기의 이름이 영 불(젊은 황소)이며, 나이는 스물일곱이라고 말해 주었다. 또 다른 짐꾼의 이름은 에밀이고,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저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영불이 슬쩍 말했다. 에밀이 확실하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열네 살인가? 네, 맞아요. 열네 살이에요."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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